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20화 (12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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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장. 서천회#2-

“말씀하신 대로 정보를 취합한 결과,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보량이 폭증했습니다.”

스미스의 보고를 받은 로건 베런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일본 쪽이었군요.”

“일본 내부에서의 움직임도 현재 단서를 잡은 것 같습니다. 계속 추적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아, BR코퍼레이션 쪽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나요?”

“없습니다. 이거 혹시…….”

“혹시?”

“BR코퍼레이션은 관계가 없는 게 아닐까요? 일전에 볼런트 라일을 미행했을 때도 그랬지만, 그 이전에도 아무런 연관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로건 베런즈는 고개를 저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오랜 감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단서도 잡히지 않다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는 뜻이겠죠.”

“좀 더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아, 그런데…….”

말꼬리를 흐리는 스미스의 모습에 로건 베런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볼일이 남았나요?”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요?”

“어떻게 일본 쪽이라고 예견하신 겁니까?”

“저의 명령은 가용 자원을 모두 탐색 임무에 투입하라는 것 아니었나요? 특별히 일본을 따로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평상시 자원 투입의 비중이 일본 쪽이 조금 높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몇 년 전 한일 사이에 군사적 긴장감이 돌던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로건 베런즈의 한쪽 입꼬리가 삐죽 말려 올라갔다.

“그때 은색이 실수를 했거든요.”

“실수요? 그곳 위원들은 모두 철두철미한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스미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로건 베런즈가 가장 믿는 수하로서, 던전 관리자들의 회의에 대해서도 꽤 깊이 아는 편이었다.

“당시 한일 간에 분쟁이 일어났던 그 섬의 이름을 알고 있나요?”

“한국에서는 독도, 일본에서는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제가 그들 사이의 문제에 정답을 내려 줄 수는 없지만, 그 섬은 ‘독도’가 정확한 명칭입니다. 실효 지배는 물론 객관적인 사료를 따져도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게 은색의 실수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겁니까?”

“당시 독도에 설정한 게이트는 일본에 배정된 게이트였습니다. 그걸 은색이 저도 모르게 독도에 찍은 겁니다. 이유가 뭔지 아나요?”

“음……. 혹시 영유권 분쟁을 불거지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까?”

“아니요. 그는 정말로 그 섬이 일본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넣었던 겁니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일본의 땅이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스미스는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의 그런 주장은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그걸 아는 사람이 실수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생각해 봐요.”

“네?”

“위원회는 무엇보다 중립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런 위원회 소속의 위원이 하필이면 분쟁의 우려가 있는 장소에 게이트를 넣을까요?”

스미스는 뒤늦게 탄식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네요. 중립적으로 작용하려는 위원회라면 당연히 분쟁의 우려가 있는 곳은 피하려고 하는 게 맞는 결정이겠군요.”

“네. 그런데 은색은 독도의 게이트가 분쟁의 여지가 없이 일본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그곳을 찍은 겁니다.”

“하지만 다른 위원들이 그걸 용인한 것이 이상합니다만?”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분쟁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논란거리를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거나 관심이 없으면, 그 섬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컸다.

“그렇군요.”

“그리고 이번에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지요.”

“본색이요?”

“김준혁의 시스템 침입에 가장 격렬하게 반응을 보인 게 은색이었다는 말은 했었지요?”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노의 근간을 받치는 감정은 경멸이었습니다.”

“경멸이요?”

“네. 낮은 신분의 반란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스미스의 얼굴에 또 다른 의문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건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CIA 시절에 제가 동아시아 지역 블랙 요원으로 지냈던 시절이 있다고 이야기했었지요?”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 일본에서 참 이상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 이상한 집단이라고 해야겠군요.”

“이상한 집단?”

“내 할아버지가 태평양 전쟁 당시에 다리를 잃은 것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네, 말씀하십시오.”

“그 집단은 한국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죠. 그 싫어하는 이유까지 꺼내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그냥 그렇다고만 알고 있어요. 어쨌든 그들의 기본적인 사상이 그렇습니다. 일본인은 위대하고, 한국인은 미개하다. 이번에 은색이 보여 준 태도가 그거였습니다. 신분 낮은 한국인이 자신의 소유인 던전 시스템에 손을 댄 것에 대한 발작적인 반응.”

“그렇군요.”

“과거 독도의 게이트 문제가 심증을 주었다면, 이번의 태도는 확신을 심어 준 겁니다.”

“완전하다고는 못해도 대강은 알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에 좀 더 듣겠습니다.”

“하하, 다음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일단 원래 있던 자원은 그대로 두고, 다른 곳에 추가 투입했던 모든 자원을 일본으로 모으세요. 김준혁보다 우리가 빨라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

“일본? 서천회? 욱일?”

짧은 단어를 연달아 읊어 대는 유민섭의 목소리에 바짝 날이 서 있었다.

얼굴도 평소와 달리 울컥하는 표정이다.

“네. 우리 가족을 건드린 여자의 배후가 일본의 서천회라는 비밀 조직입니다.”

“이 새끼들이 진짜! 뭐? 욱일? 욱이이일? 진짜 얌전하게 살고 싶은 사람 욱하게 만드네!”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유민섭을 보며 준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조상님 중에 독립운동하셨던 분이라도?”

“아뇨. 제가 독립운동을 못해서 한이 된 놈입니다.”

“아니,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독립운동을 못해서 한이 생겨요?”

“심심하면 시비를 걸잖아요.”

“저번에 보니 일본의 그 정검회라고 했었나? 그 길드랑 친하게 지내시던데?”

“누가 일본이 싫대요? 개소리하는 것들이 싫다는 거지.”

“뭐, 아무튼……. 그 분노는 좀 접어 두시고, 제가 일본에 가야 하는데 유 길드장이 좀 도와줘요.”

준혁의 말에 유민섭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한참을 숨을 골랐다.

그리고 뭔가 각오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가지 약속해 줘요.”

“무슨 약속이요?”

“그놈들 꼭 작살을 내겠다고.”

“그건 말 안 해도 당연히 합니다. 우리 가족을 건드린 게 제일 화나기는 하지만, 나도 한국 사람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인실좆이 뭔지 보여 줘야지, 이 새끼들.”

유민섭이 던진 말에 준혁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말이 이럴 때 쓰는 건 아닐 텐데요?”

“아무렴 어때요? 준혁 씨한테 쥐어 터지는 것 이상의 실전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어? 음…….”

뭔가 심각하게 우기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한참 고민한 끝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가 실전을 보여 주면 끝났다고 봐야지.”

“그렇죠? 크, 역시 세상에는 쓴맛 보여 줘야 하는 놈이 꼭 있다니까요?”

“맞아요.”

티키타카를 하며 서로를 향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준혁과 유민섭이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린디웨가 짧게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착착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래서 필요한 게 뭡니까?”

“내 신분으로 일본 들어갔다가는 당연히 답이 안 나올 것이고……. 위장 신분이 하나 필요합니다.”

“위장 신분이라. 흠, 그러니까 위조 여권 같은?”

“그렇죠.”

유민섭이 갑자기 말을 끊고 고개를 살짝 외로 꼬며 말했다.

“그런데 사실 흔적도 없이 일본 들어갈 방법도 있잖아요.”

“음?”

“헤엄쳐서 가세요. 준혁 씨 스탯 생각하면 헤엄쳐 가도 얼마 걸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 아니, 헤엄이 뭐야? 물 위로 뛰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싫은데요?”

“왜요?”

“그러면 유 길드장은 왜 차를 타고 다닙니까? 달리는 게 차보다 빠를 텐데?”

“이거랑 그거랑 좀 다른 것 같은데요?”

“다르긴 뭐가 다릅니까? 그리고 일본 들어가도 공식적인 신분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준혁의 면박에 결국 유민섭이 꼬리를 내렸다.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그거 범죄라는 거 알죠?”

“그러니까 부탁하는 거죠.”

“이거 괜히 내가 인실좆 당할 것 같은데?”

“거, 말 좀 점잖게 씁시다.”

“흐음, 아무튼 알았습니다. 그 외에 또 필요한 건?”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유민섭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한 후 말했다.

“사흘, 사흘이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얼굴은 어떻게?”

위조 신분이니 진짜 얼굴로 여권을 만들 수는 없었다.

잠시 생각한 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순신 장군님 얼굴로 하죠. 사진은 바로 찍어서 드릴게요.”

그 말에 유민섭의 얼굴에도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하긴 일본 혼내 주는데 우리 장군님만 한 얼굴이 없죠. 그럼 저는 일 보러 가 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째 복잡한 일들은 전부 나한테 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야 유 길드장이 이런 쪽으로는 빠삭하잖아요.”

“지금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압니까? 당장 이번 습격 사태 수습하는 것도 머리 아파 죽겠다고요.”

괴물들의 습격 사태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었다.

혼원 길드에서 빠르게 대처했고, 인근에 있던 다른 길드 소속 헌터들이 대응해 준 덕분에 인명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하지만 그 인명 피해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사망자도 10여 명 정도 나온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도심은 폭격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로 대파된 상태. 그 재산 피해 또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그 일 처리의 중심에 유민섭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 준혁이 또 다른 일을 맡긴 것이다.

“원래 유능한 사람의 숙명이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유능하면 빡빡 굴러야 합니까?”

“유 길드장 한정입니다.”

“돈이나 주고 말씀하시죠?”

“우리 길드에서 가장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유 길드장이잖아요.”

“어? 그건 또 그러네…….”

“일해요, 일. 돈도 제일 많이 가져가는 사람이 그러면 못 쓰지.”

“끙!”

유민섭은 앓는 소리를 힘차게 한 번 뱉은 후 서둘러 문을 나섰다.

그 직후 방 안에 세차게 혀 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쯧쯧…….”

린디웨가 내는 소리였다. 고개를 돌린 준혁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다 큰 어른들이 하는 짓이 완전 철부지 같아서. 이렇게 유치할 수가 있나 싶다.”

“이런 건 위트라고 하는 거다.”

“위트는 무슨 얼어 죽을! 그런데 사흘 정도 시간도 남은 것 같은데 사람들 훈련이나 좀 봐주지 그래? 쉬옌이랑 최유나가 많이 고생하는 것 같던데.”

유민섭과 길드의 사무직들은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있었지만, 정작 헌터들은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사태가 끝난 직후에는 부상자나 매몰자 구조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끝났다.

그러다 보니 무훈 길드, 백호 길드, 팀 히어로의 수장인 강태웅, 백호진, 리처드 개런 정도만 대외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진 헌터들은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잘하고 있던데? 굳이 나까지 갈 필요가?”

“그럼 뭐 하려고?”

린디웨의 물음에 준혁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우리 지유랑 놀아 줘야지. 이번 일로 많이 놀랐을 텐데, 삼촌이 같이 있어 줘야 하지 않겠냐?”

“조카 바보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거야?”

린디웨는 말없이 한쪽에 놓인 TV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에 짧게 한숨을 쉰 준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 더블인지, 듀얼인지 하는 각성은 언제쯤 가능하냐?”

“글쎄?”

“시스템 접속만 해 보면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더니.”

준혁의 핀잔에 린디웨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흘.”

“응?”

“일본 가기 전에 들러라.”

“어?”

흠칫하는 준혁을 향해 린디웨가 더욱 짙은 미소로 대답했다.

“길드장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는 모르지만, 길드장 염원을 들어줘야지. 안 그래?”

“알았다.”

준혁이 지금까지 보인 적 없는 들뜬 표정을 지으며 린디웨의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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