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17화 (11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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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장. 각자의 전투#1-

최유나는 검을 쥔 오른손의 느낌이 새삼 차갑다고 느꼈다.

어쩌면 극도의 긴장감에 체온이 떨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압도적인 존재가 최유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골드 드래곤 카이르무스.

최유나의 인생에 최초의 절망을 안겨 주었던 초월적인 존재.

-인간인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카이르무스의 목소리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온몸이 저리고 갑자기 정신이 아득하게 곤두박질치는 기분이 들었다.

시야마저 암전되는 듯 점점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은 충동에 두 발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유나 씨.”

갑작스러운 부름에 최유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최유나를 부른 사람은 리쉬옌이었다.

“겁먹지 말아요.”

“안 그랬습니다.”

힘겹게, 하지만 애써 힘을 주어 평소보다 더욱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혼원길드에서 최유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리쉬옌이었다.

최유나의 전담 트레이너나 마찬가지였으니 당연했다.

최유나가 카이르무스에 대해 가지는 공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최유나를 다독이는 데 가장 적격인 인물은 리쉬옌일 수밖에 없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누구나 공포를 느껴요. 그저 겁을 먹어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과 뒷걸음질 치는 사람이 있을 뿐이에요.”

“나도 알아요.”

하지만 리쉬옌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숨부터 추슬러요.”

“네?”

“유나 씨, 지금 과호흡 증후군이에요.”

“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세계 최초의 S1급이 최유나였다. 배면계 출신을 제외하면 지구 최강이다.

그런 최고등급 각성자에게 과호흡 증후군이라니,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잇었다.

최유나에게는 분명 과호흡 증후군의 증상이 나타나 있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최유나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후우우.”

길게 호흡을 추슬렀다.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저릿한 감각이 사라지고 아득하게 추락하던 정신도 제자리를 찾는다.

마음먹는 것에 따라 몸이 알아서 반응하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이 각성자의 육체다.

그런 육체를 가진 최상급의 각성자가 긴장감만으로 과호흡 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정신’이라는 게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잘 알수 있는 일종의 역설이었다.

“이제 준비 끝?”

조금은 사무적인 목소리의 린디웨가 물었다.

아우우우-!

청랑이 긴 하울링으로 가장 먼저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리쉬옌과 최유나의 대답이 떨어지는 동시에 린디웨가 먼저 움직였다.

“압산(壓山)!”

10개의 술석이 빠르게 하늘 높이 치솟았다.

쿠쿠쿵!

거대한 공기의 막이 카이르무스의 머리를 짓눌렀다.

그러잖아도 거대한 몸뚱이가 가지는 무게에 더해진 압력에 지면이 으깨지며 내려앉는다.

카이르무스의 시선이 린디웨에게 향하는 순간 마법이 전개된다.

특별히 마나를 조종할 필요도 영창도 필요 없다. 드래곤의 마법은 생각과 동시에 발현된다.

굉음과 함께 린디웨의 머리로 떨어져 내리는 시퍼런 한 줄기 벼락.

“산(傘)!”

린디웨의 머리 위에 반투명한 우산 형태의 막이 펼쳐진다. 단숨에 흩어지는 벼락 사이로 튀어나간 린디웨가 술석을 있는대로 뿌리며 공격을 날렸다.

시리도록 푸른 번개가 황금색 비늘을 두드리고, 빛으로 벼린 칼날이 휘몰아쳤다.

카이르무스의 반격도 격렬했다.

쉴 새 없이 마법이 쏟아져 내린다. 거대한 몸뚱이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며 꼬리를 휘두르고 머리로 들이받는다.

당연히 방어는 리쉬옌의 몫이다.

10개의 영패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잔뜩 웅크린 채 기회를 엿보고 있던 청랑이 마침내 움직였다.

크엉!

포효와 함께 훌쩍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청랑이 순식간에 드래곤의 머리 높이에 도달했다.

켜켜이 겹친 날카로운 바람이 카이르무스의 콧잔등을 할퀴었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리는 순간 갑작스러운 폭발이 청랑을 덮쳤다.

하지만 청랑은 오히려 그 압력을 그대로 받아 안으며 허공을 박차더니 어느 순간 카이르무스의 등판 위에 올라탔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공방의 여파가 애꿎은 주변 건물들을 두드려댔다.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빛과 폭발이 번뜩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미동도 없이 전황을 살피던 최유나가 마침내 움직였다.

“디비젼 블레이드!”

날카롭게 휘두른 최유나의 애검 ‘기사의 신념’이 섬뜩한 빛을 머금었다.

린디웨의 공격, 청랑의 육탄 공세, 리쉬옌의 현란한 방어, 거기에 더해 카이르무스의 공격까지 얽혀 있는 복잡한 공간.

그사이에 생긴 실낱같은 틈으로 최유나의 [디비젼 블레이드], 차원의 칼날이 비집고 들어갔다.

츄아아악!

단단하기 짝이 없는 드래곤의 비늘이 갈라지며 핏방울이 뿜어졌다.

-감히!

화가 난 카이르무스가 거대한 입을 벌리며 황금빛 드래곤의 숨결을 내뿜었다.

“간(干), 간(干), 간(干), 쇄(鎖)!”

리쉬옌의 영패가 득달같이 날아들었다.

3개의 반투명한 방패가 반투명한 쇠사슬로 엮이더니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방패로 변했다.

그그그긍!

방패 위로 쏟어지는 드래곤 브레스,

“크윽!”

영패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리쉬옌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드래곤 브레스는 단순히 압력만 따져도 거대한 쓰나미에 맞먹는 수준이었다.

격렬하게 흔들리던 리쉬옌의 거대한 방패가 결국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폭류(暴流)!”

그때 방패 뒤쪽에서 린디웨의 술석이 빛을 뿜었다.

콰아아아아!

동시에 거대한 물결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밀려나는 방패의 뒤를 받쳤다.

격렬한 대치 와중에 청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청랑이 포효를 터트리며 앞발을 사납게 휘젓자, 날카로운 바람칼이 드래곤의 목을 갈아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틈을 놓치지 않은 사람이 또 한 명.

“스피어 웨이브!”

청랑의 바람칼이 훑고 지나간 자리 위로 날카로운 창격이 쏟아져 내렸다.

한 사람과 한 마리가 쏟아내는 공격에 마침내 황금색 비늘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잦아들어가는 드래곤 브레스.

-어떻게 인간 따위가?

하지만 ‘따위’로 취급당한 인간들은 제 할 일에만 충실했다.

“청랑, 최유나, 린디웨!”

리쉬엔이 외쳤다. 부른 순서 그대로 공격이 쏟아진다.

크어엉!

청랑이 만든 [돌개바람]이 마치 드릴처럼 터져나간 비늘의 안쪽 가죽을 갉아냈다.

“디비젼 블레이드!”

비늘이 터져나간 그 위에 정확하게 최유나의 차원의 칼날이 날카로운 각인을 새겼다.

가죽이 쩍 벌어지며 골드 드래곤의 속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린디웨.

“천락(天落)!”

카이르무스의 위쪽에 갑자기 하나의 하늘이 떠올랐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그 ‘하늘’이 순식간에 한 점으로 뭉치더니 찰나의 틈도 없이 그대로 떨어졌다.

꾸우웅-!

-끄아아아아!

카이르무스의 비명이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카이르무스는 지면까지 함몰시키며 패대기쳐졌다.

***

“저 미친놈!”

강이찬의 매니저 홍인석이 진심을 담아 외쳤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온 강이찬이 방송 장비를 가져오라는 소리에 일단 달려온 참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스트리머가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10여 명의 헌터들과 함께 덩치 큰 오크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네임드!’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크의 스펙을 처절하게 씹어 먹을 수준의 오크였다.

3m는 될법한 키의 붉은 피부를 가진 오크는 붉은색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차려입고 있었다.

무장도 제대로다.

왼손에는 붉은색 버클러를 오른손에는 역시나 붉은색 칼날의 아밍 소드를 쥐고 있었다.

3m 거구의 오크가 쥐고 있으니 ‘아밍 소드’로 보이는 것이지, 인간의 손에 쥐면 칼날 길이만 2m에 육박하는 거대한 양손검이었다.

인간 공격대의 전투는 정석 중의 정석이었다.

탱커 세 명이 앞서서 막고, 근접딜러가 틈틈이 타격을 주고, 원거리 딜러가 마법과 화살을 쏘아댔다.

조금 다른 점은 2선의 근접 딜러들 뒤쪽, 2.5선 쯤의 위치에 탱커처럼 보이는 남자가 한 명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원거리 딜러 속에 강이찬이 끼어 있었다.

완드를 휘두르며 날리는 것은 뜨거운 화염구.

강이찬이 괴물과 싸우는 장면을 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홍인석으로서는 커다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홍인석은 빠르게 고개를 털어 충격에서 헤어나왔다.

‘방송을 하겠다는 거지?’

저러면서 방송 장비를 가져오라는 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홍인석은 차에서 거대한 방송 촬영용 카메라를 꺼내 어깨에 걸쳤다.

카메라를 노트북에 연결하고 무선 마이크도 준비를 한다.

신속하게 방송 환경을 만든 홍인석이 강이찬을 불렀다.

“이찬아!”

강이찬의 고개가 이쪽으로 향하고, 홍인석이 손에 들고 있던 무선 마이크를 냅다 던졌다.

“받아!”

거리가 꽤 떨어져있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홍인석 역시 F급이긴 하지만 각성자이기 때문이다.

턱!

마이크를 받은 강이찬이 서둘러 헤드셋 형태의 마이크를 착용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홍인석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방송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형님, 누님들! 강이찬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지금부터 ‘붉은 오크 영웅 살라두크’ 공략 실황을 중계해드리겠습니다!”

까가강!

강이찬이 말하는 사이 살라두크의 아밍 소드가 1선의 탱커 3명을 동시에 뒤로 물렸다.

“버텨!”

누군가 외쳤고, 세 명의 탱커가 밀려나는 두 발에 잔뜩 힘을 주며 가까스로 멈춰 섰다.

“더스트 애로우!”

후방의 원거리 딜러가 연달아 활을 쏘아댔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허공에서 갑자기 가루처럼 흩어지더니, 이내 문제의 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살라두크를 향해 날아갔다.

갑옷과 갑옷의 틈, 그 사이로 스며든 [더스트 애로우]가 살라두크의 살갗을 마구 긁어댔다.

“크라라락!”

살라두크가 괴성을 질러댄다.

치명상을 주지는 못해도 신경을 거슬리는 역할은 충분히 해 준다.

그 틈에 2.5선에 있던 탱커가 큰 소리로 외쳤다.

“1번 왼쪽으로 돌아서 발 걸어. 2번 물러나. 3번은 2번 지원!”

2.5선이라는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던 탱커가 리딩을 맡고 있었다.

공격대는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으며 살라두크와 비등한 상태를 이루어냈다.

강이찬은 다른 딜러들과 보조를 맞춰 마법을 날리면서 방송을 지속했다.

“저놈 이름이 ‘붉은 오크 영웅 살라두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신 분들 많죠? 그건 저 놈이 등장하자마자 ‘나는 붉은 오크 영웅, 살라두크, 인간들이여, 죽음을 경배하라!’라고 중2병 허세 잔뜩 섞어 멘트를 날렸기 때문입니다! 저 새끼 저거 완전 중2병이에요. 중2 오크!”

화면의 채팅을 볼 수 없기에 강이찬은 자신의 페이스에만 맞춰 멘트를 이어갔다.

목소리 크기는 적당히 조절했다. 리딩과 오디오가 섞이면 공격대 운영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방송을 허락받은 것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이었다.

안정을 되찾은 공격대는 꾸준히 살라두크의 하단을 공격했다.

강이찬은 리딩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방송을 이어갔다.

“아, 지금 리딩을 맡고있는 리더는 근접 딜러 훈련 멤버 중 가장 먼저 마나를 감지하신 양태군 헌터입니다. 별명은 양대장!”

강이찬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뒤이어 소개를 마저했다.

“그리고 현재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공대의 공대원들은 다름 아닌 백호길드 알파팀입니다!”

백호길드와 양태군이 완벽한 조합으로 살라두크를 공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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