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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장. 피습#2-
번쩍 고개를 든 강이찬의 눈에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엄마아-!”
넘어진 어린아이, 그 뒤를 쫓아오는 고블린 한 마리, 그리고 고블린이 입에 물고 있는 대롱 하나.
훅!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또 한 번 귀를 파고든다.
대롱에서 빠져나온 작은 침 하나가 넘어진 어린아이를 향해 빠르게 날아간다.
영화에서 너무나 흔하게 보아왔던, 너무나 뻔한 클리세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건 뻔한 클리셰가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린아이가 보호자와 함께 달리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혼자 떨어지는 경우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보호자가 안고 달려도 당연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정신없이 달아나는 와중에 아이를 놓쳐버리거나, 다시 안아들려고 할 때는 이미 사람들에게 밀려난 이후거나.
문제는 그 뻔한 광경이 강이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일순간 이성이 날아가는 기분. 그리고 찰나의 순간 강이찬은 이미 아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돼!”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뻗었다.
슈륵, 퍼엉-!
강이찬의 두 눈이 세로로 크게 벌어졌다.
침을 맞고 넘어진 아이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려던 고블린이 갑자기 머리가 터져나가며 몸뚱이가 그대로 허물어진 것이었다.
‘이, 이거!’
마나였다.
간절하게 손을 뻗는 순간, 팔을 타고 흐른 마나가 손바닥을 통해 발출되어 그대로 고블린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그저 마나의 감지만을 성공한 강이찬에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쓰러진 아이가 고블린이 쏜 침을 맞은 상태였다.
독침이라는 건 굳이 고민해 볼 필요도 없는 사실.
낚아채듯 아이를 안아 들었다.
부우욱!
독침을 맞은 어깨쪽 옷을 찢어내고 황급히 침을 뽑았다.
하지만 아이의 피부가 이미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젠장!”
다급해진 강이찬은 일단 침이 맞은 부위에 입을 대고 독을 빨아냈다.
고블린의 독은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중독이 되지만, A급 헌터쯤 되면 몸의 저항력으로 어지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아이의 중독 증상이 조금 완화되었다. 하지만 완전한 해독은 아니었다.
‘민호 형!’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장민호 밖에 없었다.
휴대폰도 없는 상황에서 장민호를 만나려면 맞은편에서 몰려오는 괴물들 사이를 뚫고 혼원길드까지 가야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어떻게 하지?’
순간적으로 마음속에 찾아온 갈등.
뚫고 가야했다. 아이를 구하려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이미 괴물의 존재를 인지한 몸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끄윽!”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라도 구하지 않았다면 그냥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구했고, 품에 안아 들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문제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두 발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제발, 움직여라!’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씨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런 게 소용이 있었다면 강이찬은 이미 괴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을 것이다.
‘제발. 제발, 움직여.’
이를 악물고,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하지만 두 발은 땅에 붙기라도 한 듯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는다.
‘더럽게 못난 놈!’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었다.
지금이라도 사람들과 함께 달아나, 뒤쪽에 있을 힐러를 찾는 게 낫지 않을까?
비겁한 자기 합리화다.
흔치도 않은 힐러를 이 위급한 상황에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어린아이의 몸으로 긴 시간 버틸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A급 마법사가 아이를 안고 달리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힐러를 찾는 게 최선이었다.
“크윽!”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오고, 분한 마음에 눈물까지 주르륵 흘러내리는 그 순간.
“엄……마…….”
실낱같은 아이의 목소리가 강이찬의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크아아아아!”
강이찬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언제 겁을 먹고 발을 땅에 붙이고 있었냐는 듯, 강이찬의 두 발이 거세게 달리기 시작했다.
킥, 키키킥!
고블린 무리가 마주 달려오는 강이찬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방방 뛰었다.
훅, 후훅!
그중 세 마리가 입에 물고 있는 대롱으로 독침을 쏘아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따다닥!
강이찬이 인벤토리에서 꺼내 휘두른 완드가 세 개의 독침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이어 볼!”
단숨에 펼친 불덩어리가 앞서 달려오는 다섯 마리 고블린을 그대로 불태웠다.
연달아 펼친 [파이어 볼]에 고블린 무리가 버티지 못하고 새까만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곳을 뛰어 넘은 강이찬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마나, 마나라는 게 이렇게 움직이는 거였구나!’
스킬을 펼치는 순간 몸속의 마나가 어떻게 흐르고, 외부로 발출된 마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파이어 볼]이라는 마법의 효과로 전환되는 지 완벽한 그림이 그려졌다.
안고 있는 아이에 대한 걱정, 마나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해 휘몰아치는 격정.
두 가지 감정이 한데 뒤섞이며 강이찬의 표정을 한 층 더 과격하게 일그러트렸다.
***
‘이렇게 끝나면 너무 싱거운데?’
상황 진압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유나, 린디웨, 리쉬옌, 청랑, 그리고 적사는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로부터 빌딩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가끔 뒤쪽으로 새어나가는 괴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유민섭이 투입한 헌터들에 의해 그 마저도 막혔다.
길드원들이 투입되기 전에 이미 뒤쪽으로 새어나간 괴물들 역시 유민섭이 파견한 헌터들이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었다.
인명피해가 0은 아니었지만,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게이트가 터져나간 것치고는 매우 훌륭한 수습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수상했다.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준혁은 다시 한번 짙은 영력을 피워올려 사방으로 기감을 펼쳤다.
“음?”
준혁이 눈을 번쩍 뜨며 한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뭐지?’
최유나가 도달한 S1등급이 되면 흔히 말하는 육감을 얻는다.
이것은 영력이나 마나를 감지하는 등의 기감과는 별개의 감각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촉’과 비슷한 감각이 육감이다.
그리고 일반인의 촉과 달리 육감은 매우 정확하다.
그런 준혁의 육감에 무언가 묵직한 감각이 걸려들었다.
위치는 맞은 편 빌딩.
거대하고 위험한 압력이 그곳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건 빌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다는 사실.
준혁이 급히 옥상 난간에 올라서서 맞은편 빌딩을 향해 뛰려고 할 때였다.
“엇!”
맞은편 빌딩에서 새어나오는 압력이 다른 곳에서도 느껴졌다.
이번에는 바로 오른쪽 옆 빌딩이었다. 뒤이어 왼쪽의 빌딩에서도 압력이 퍼져나왔다.
한두 개가 아니다.
‘이거 작정하고 왔다는 뜻인데?’
사람들이 게이트 발생의 인위성에 대해 의심을 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수준이면…….’
준혁이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바있는 수준이었다.
‘드래곤!’
마치 세포가 증식하듯 끝없이 솟구친 압력은 모두 17개였다.
그중 7개가 드래곤 급, 나머지 10개는 오크 영웅 크락크토 수준이거나 그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이었다.
-유 길드장!
-네?
-대피 범위 확장 시켜요. 헌터들 모아서 공격대 수준으로 다시 팀 꾸리세요.
-무슨 일 있습니까?
-또 옵니다. 드래곤 급!
-이러 미친!
기겁한 유민섭의 외침 직후, 빌딩 아래쪽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나왔다.
“헌터들 집합!”
확성기를 통해 외친 유민섭의 목소리였다.
-적사, 건물 입구로 돌아와. 청랑은 거기서 린디웨, 리쉬옌, 최유나와 같이 움직여.
명령을 마치는 즉시 아래로 뛰어 내렸다.
드래곤 한 마리라면 몰라도 7마리는 쉽게 볼 수 없었다.
단순히 싸워서 이기기만 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이곳은 서울의 중심부였다.
가급적이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좋았다.
쉬리리릿!
이미 빌딩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적사가 준혁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순식간에 왼쪽 팔뚝에 감겨들었다.
“후우!”
오른손에는 무상곤을, 왼손에는 금문묵룡삭을 쥐었다. 30자루의 금문묵룡비를 허공에 띄워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맞은편 빌딩의 압력은 점점 더 존재감이 짙어지고 있었다.
“후우!”
이런 상황에서는 속전속결로 마무리해야 했다.
그때 가장 먼저 존재감을 드러낸 맞은편 빌딩의 압력이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했다.
꽈아아앙-!
15층짜리 빌딩이 갑자기 터져나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시뻘건 몸뚱이를 가진 드래곤 한 마리였다.
-낯선 장소로군.
느릿하게 고개를 움직이며 사방으로 둘러보는 붉은 드래곤.
-내가 접한 적 없는 인간의 문명이라……. 흥미롭군.
드래곤은 마치 대사를 말하듯 나지막히 읊조렸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의 목소리가 아닌, 주변 모두의 머릿속에 직접 전달하는 하나의 심상이었다.
“으, 으아아악!”
누군가 털썩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혼원길드에서 일하던 일반인 직원이었다.
드래곤의 존재감은 낮은 등급의 각성자도 버틸 수 없는 그것이었다. 하물며 각성도 하지 못한 일반인이 이겨낼 리가 만무했다.
-내 이름은 ‘바흐론샤카’. 붉은 드래곤의 일족.
털썩, 털썩!
유민섭의 지시에 따라 빌딩을 벗어나려던 직원들이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아니, 그대로 쓰러졌다.
하나같이 흰자위를 들어내고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마치 간질이라도 걸린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인간의 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존재감인 탓이었다.
-이곳의 인간 대표자는 누군가? 나 바흐론샤카와 독대를…….
빠아아악!
호쾌한 소리와 함께 바흐론샤카의 고개가 격렬하게 튕겨나가며 몸뚱이가 휘청 흔들린다.
“도마뱀 새끼 주제에 똥폼은 더럽게 잡고 앉아 있네!”
-어떤 놈이 감히 드래곤의 몸에 손을 대는가!
황급히 고개를 추스른 바흐론샤카가 자신을 두드린 존재를 찾으려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리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준혁을 발견했다.
-너인가?
“그런데?”
-너에게 첫 죽음의 영광을…….
“지랄!”
빠아악!
또 한번 허공을 가른 무상곤이 바흐론샤카의 머리를 내리쳤다.
쿠웅!
무시무시한 힘을 버티지 못한 바흐론샤카의 머리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이노옴!
분기탱천한 바흐로샤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입을 쩍 벌렸다.
화르르륵!
시뻘건 드래곤의 숨결이 준혁을 향해 뿜어져나갔다.
드래곤의 기본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브레스.
물리력도 마법도 아닌 이 드래곤의 숨결은, 드래곤의 각 종족마다 고유의 특성을 가진다.
붉은 드래곤 일족의 브레스는 ‘뜨거운 얼음’의 숨결.
시뻘건 숨결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뿜어져 나갔다.
숨결이 닿는 곳은 하나같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부글거리며 녹아내렸다.
하지만 절대 흘러내리지 않는다.
녹아내린 직후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탓이다.
드래곤 브레스를 뿜어내는 바흐론샤카의 두 눈이 살짝 휘며 웃음기가 맴돌았다.
감히 인간주제에 드래곤을 능멸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때였다.
“야!”
코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그 인간의 목소리였다.
“입 냄새 난다.”
기겁한 바흐론샤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뺐다.
그 순간 무언가가 바흐론샤카의 얼굴로 날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