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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받고 각성 더!-114화 (114/240)

-114-

-43장. 피습#1-

-무슨 수를 쓰든 지유랑 형수 보호해라. 털끝 하나만 다쳐봐라. 가죽을 벗겨서 바닥 러그로 써버릴 테니!

그 자리에 멈춰선 준혁이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되돌아오는 감정이 심드렁하기 짝이 없다.

화난 준혁의 감정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

‘이 자식이 진짜!’

흑호, 이놈은 눈앞에서는 설설 기면서 안 보이는 데서는 격렬하게도 반항적이다.

이런 때는, 환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게 준혁에게는 참 다행이었다.

만약 녀석들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으면 이미 배면계에 있을 때 홧병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청랑과 흑호가 있는 한 위험할 일은 없다.

‘그나저나 누구 짓이지?’

지금 상황에서 의심해 볼 만한 인물은 단 한 명이었다.

‘로건 베런즈?’

준혁을 적대하는 인물은 로건 베런즈와 무명회 밖에 없으니 당연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여자는…….’

볼런트 라일을 추적하던 당시 준혁을 제외하고 두 명이 더 붙었었다.

한 명은 배면계 귀환자로 보이는 남자, 또 한 명이 지금 흑호가 쫓고 있는 여자였다.

배면계 귀환자는 분명 무명회 소속이었다. 그리고 그 암살 계열 헌터인 여자와 배면계 귀환자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왜 그래요?”

때마침 뒤따라 밖으로 나온 유민섭이 물었다.

준혁이 그답지 않게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게 이상했다.

“아, 유 길드장.”

“무슨 일 있어요?”

“음, 형수님이랑 조카가 공격을 받은 거 같은데…….”

“네?”

기겁한 유민섭이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다 멈칫했다.

상황이 그렇게 위급한데 준혁의 반응이 너무 덤덤했기 때문이다.

“아, 그쪽은 걱정 안 해도 돼요. 청랑이랑 흑호, 백효가 이럴 때 대비해서 지키고 있는 거니까. 그런데 누굴까요?”

“그거야 지금으로서는 로건 베런즈밖에 생각할 수 없는…….”

“로건 베런즈는 아니에요.”

“네? 그럼 누……. 어엇!”

유민섭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눈앞에서 갑자기 공간이 활짝 열리더니 거기에서 흑호가 튀어나온 탓이었다.

크허어엉-!

거대한 포효를 터트리는 흑호의 앞발 밑에 문제의 암살 계열 여자가 엎어져 있었다.

등판을 지긋이 누르는 흑호의 앞발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상태.

반사적으로 준혁이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철컥!

“꺄아악!”

여자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준혁이 여자의 목에 씌운 구련환 탓이었다.

신문을 할때 이보다 좋은 물건은 없다.

“뭐야?”

날카로운 비명에 숙소에 있던 린디웨와 리쉬옌까지 튀어나왔다.

“크흑, 큭!”

서서히 고통이 가라앉고 있는지 여자의 비명이 잦아든다.

무시무시한 고통에 저항하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은 모습이 조금은 애처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준혁에게는 티끌만한 감흥도 없었다.

적은 어디까지나 적일뿐이었다. 인간적인 감정 따위는 사치다.

더군다나 형수와 지유를 노렸던 암살자였다.

최대한 악독하게 다뤄야 할 아주 중요한 이유였다.

준혁이 여자를 향해 가장 시급한 명령부터 내렸다.

“너는 내 명령 없이는 절대 죽을 수 없다. 알았냐?”

“끄으으윽!”

여자가 거세게 도리질을 쳤다.

구련환의 강제 작용과 이성 사이에서 오는 현상이었다.

“나, 나는…….”

옆에서 듣고 있던 유민섭이 흠칫 놀라 외쳤다.

“일본인?”

멈칫한 준혁도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일본인이요?”

“방금 이 여자 ‘아타시’라고 했어요. 그거 일본어잖아.”

[영화]때문이었다.

[영화]는 자동 통역 스킬이다.

상대가 뭐라고 하든 준혁에게는 한국어로, 리쉬옌에게는 중국어로, 린디웨에게는 줄루어로 들린다.

하지만 유민섭은 있는 그대로 들리니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그때 여자가 끝내 구련환의 제약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명령 없이는 절대 죽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제 차근차근 대화를 좀 해봐야지. 린디웨, 네 방으로 가자.”

그때였다.

“어? 잠깐!”

린디웨가 번쩍 손을 들어올리며 일행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왜?”

“게이트?”

“응?”

혼잣말처럼 한 번 중얼거렸던 린디웨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게이트야!”

“갑자기 어디?”

“이 건물 사방에! 전후좌우 하나씩 총 4개의 게이트! 지금 개방! 당장 막아야 해!”

준혁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 개새끼들이!”

예전이었다면 이해할 수 없는, 간단히 이상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건물 하나를 에워싸고 게이트가 생긴다는 건 누가 봐도 인위적인 현상으로 보일 테지만 근거가 없기에 그저 이상현상이라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던전 관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이 게이트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안다.

그렇다면 이게 누구 짓인지도 뻔하게 답이 나온다.

다섯 명이라는 관리자 모두 관여했거나, 최소한 형수와 지유를 공격하려 했던 이 여자와는 관계가 있는 놈이다.

“먼저 나가서 막아! 유 길드장은 당장 훈련실의 헌터들 꺼내요!”

그나마 지금 혼원길드 사옥 지하에 실력이 쟁쟁한 헌터들이 잔뜩 모여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알았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린디웨와 리쉬옌이 복도 끝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와장창!

창문을 박살 내며 건물 밖으로 사라진 린디웨와 리쉬옌.

지금 이곳이 무려 20층이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유민섭도 그 뒤를 따라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유민섭이 마법사 계열이기는 하지만 S급 마법사는 피지컬만으로 초인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가진 스킬이라면 걱정할 게 없다.

준혁은 흑호의 앞발 아래 깔려 있는 여자의 멱살을 그러쥐며 말했다.

“너는 그 어떤 공격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이번에도 잠깐 반항을 하는 듯했으나, 이내 구련환의 위력에 순응했다.

“저는 그 어떤 공격 행위도 하지 않겠습니다.”

단단히 대비책을 만든 준혁이 흑호를 향해 말했다.

“너는 이 여자랑 형수, 지유 데리고 안가로 가 있어라. 가는 중에 청랑은 여기로 보내고. 알았냐?”

크허어엉!

흑호가 큰 포효로 대답하며 또 다시 [도약]을 펼쳐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도약]으로 청랑을 데려다 놓은 후 되돌아갔다.

“청랑아, 오랜만에 푸닥거리 한 번 하자.”

아우우우!

긴 하울링으로 답한 청랑이 곧장 소형화를 풀었다.

준혁이 그 거대한 등판에 올라타고, 청랑은 준혁을 태운 상태 그대로 창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직, 쾅!

청랑의 거대한 몸뚱이를 감당하지 못한 창틀이 벽과 함께 터져나갔고, 그렇게 빠져나간 청랑이 빌딩의 벽을 밟으며 아래로 내달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황은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려가는 왼쪽 측면의 게이트를 린디웨가 맡고 있었다.

빌딩 외벽을 타고 도니 빌딩의 뒷면에는 리쉬옌이 버티고 있었다.

남은 장소는 정면과 오른쪽.

다시금 청랑을 몰아 외벽을 타고 정면으로 향하며 아래로 내달렸다.

-헌터들 모았습니다.

지휘권을 통해 유민섭이 생각을 전해 왔다.

-최유나, 빌딩 오른쪽으로 보내요!

-네.

-헌터들은 2인, 혹은 3인 1조로 구성해서 괴물들이 주변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아요.

-사람들 대피도 시켜야 합니다.

-네, 그것도 헌터들한테 맡겨줘요. 도움 청할 데는 없습니까?

-최대한 연락을 돌려놨습니다.

-알았습니다!

쿠웅!

대화가 끝나는 순간 청랑이 지면에 도착했다.

“사람살려!”

“끄아아악!”

비명이 들린 방향은 준혁의 뒤쪽, 정문 너머 빌딩 안쪽이었다.

그 짧은 사이 괴물들이 건물 안으로 밀고 들어간 것이었다.

“돼지야, 가서 다 처먹어!”

키헤에엑!

적사가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다. 적사의 성장 상태를 생각하면 먹어봐야 도움도 안 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준혁은 짧은 한 마디로 적사의 반항을 잠재웠다.

“굶을래?”

키아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적사가 준혁의 손목에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거대한 붉은 구렁이 형태로 변한 적사가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쉬리리리릿!

벌어진 적사의 입속에서 붉은 영력 수십 줄기가 뻗어나와 가까이 있는 괴물들을 한꺼번에 휘감았다.

꿀꺽!

“잘 했어! 안 쪽에 다른 괴물들 없는지 샅샅이 훑어서 다 먹어.”

키히이익!

대답과 함께 적사가 몸뚱이를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건물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계단실 문을 터트리고 튀어나온 날렵한 하나의 인영.

“왔습니다!”

최유나였다.

“오른쪽으로!”

“네!”

이미 유민섭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온 참이었다.

최유나가 빌딩 외곽으로 돌아간 후, 준혁은 청랑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청랑!”

컹!

“단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커엉-!

준혁은 청랑의 힘찬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스킬을 펼쳤다.

[천천]

수직으로 솟구쳐 금세 빌딩 옥상에 내려선 준혁이 주변을 살폈다.

‘무슨 수작이지?’

게이트에서 괴물이 몰려나오는 것은 분명 위협적인 일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히 생명의 위협이고, 괴물의 수준에 따라서는 각성자라도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석연찮았다.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괴물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가장 낮은 수준이 소형 동물형 괴물이었고, 높아 봐야 오크였다. 그 외에 위험하다 싶은 높은 한두 마리 섞여 나오는 오거 정도.

명색이 던전 관리자의 공격이다. 겨우 그런 수준으로 공격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봐야했다.

최대한으로 감각을 넓게 퍼트려보았다.

‘일단 배면계 놈들은 없는데?’

마나는 몰라도 영력은 실낱같은 수준만 되어도 감지할 수 있는 준혁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영력은 린디웨와 리쉬옌, 그리고 청랑과 적사 밖에 없었다.

일단, 로건 베런즈는 이 일과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준혁은 옥상의 난간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며 육안으로 사방을 살폈다.

분명 무언가 있을 것이다.

***

“기사님, 잠깐만요!”

던전을 나와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강이찬이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강이찬이 외치기 전에 택시는 이미 급정지하고 있었다.

끼이이익!

기다란 마찰음과 함께 격렬한 피쉬테일링을 겪은 후 택시가 멈춰 섰다.

“아까 전화번호로 꼭 연락 주세요!”

던전 안에서 갖고 있던 모든 걸 날려먹은 탓에 돈조차 없던 강이찬은 이미 택시를 탈 때부터 나중에 돈을 주겠다고 말해 놓은 터였다.

그나마 얼굴이 꽤 알려진 덕분에 네 번째 택시 기사와 합의를 했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런데 거리가 난장판이다.

도로 곳곳에 자동차들이 멈춰선 채 경적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맞은 편에서는 이쪽을 향해 사람들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달려온다.

“사람살려!”

크게 구조요청을 하며 뛰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요. 무슨 일이에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었지만,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람에게 대답을 듣는 것은 무리였다.

사람들이 달려오는 방향은 혼원길드의 사옥이 있는 곳이었다.

‘일단 가보자.’

강이찬은 일단 사람들이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내달렸다.

“어우, 씨!”

하지만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급히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쫓아 오는 오크 무리를 목격한 탓이었다.

던전에서 나오기 직전에 유레카를 외쳤던 강이찬이었다. 하지만 마나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강이찬이 괴물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괴물과 싸우는 일은 강이찬에게는 여전히 벅찼다.

하지만 다른 것은 할 수 있다.

끼이이익!

도로의 차들을 밀어붙여 사람들이 편하게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정도의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A급 마법사의 피지컬이라면 멈춰선 차를 옆으로 밀어내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빠르게 길이 넓어지고, 사람들이 조금 여유롭게 달릴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철퍼덕!

강이찬의 귓전에 작고 불길한 소음 하나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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