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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 흑호의 추적 일기-
주인놈은 성격이 참 더럽다.
더러운 개 자식도, 멍청한 새 자식도, 돼지같은 뱀 자식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뱀돼지는 본 지가 좀 오래됐다.
그렇다고 딱히 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환계의 위대한 일족, 검은 호랑이족이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더 위대한 왕가의 혈통이다.
그래서 주인놈이 세상모르고 까부는 걸 보면 가끔 어이가 없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건지.
계약이 있으니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어림없는 말이다.
-계약을 맺었으니 대우는 해준다만, 자꾸 까불면 안 참는다.
-이 멍청한 고양이 자식아. 생각은 머릿속으로만 해라. 시끄럽게 굴지 말고.
-이 개자식이!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을 한 모양이다.
주인놈을 통해 계약한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말도 마음대로 못한다.
호권 존중도 없는 주인놈 같으니라고.
-위대한 푸른 늑대다.
-하는 짓은 영락없는 개주제에.
-고양이 놈이 만날 입만 살아서……. 쯧쯧.
-뭐라?
-그렇잖아? 주인님만 보면 기가 죽어서 숨을 자리부터 찾는 놈이 혼자서 참니 안 참니. 찌질해도 이렇게 찌질할 수 있을까?
-헛소리. 주인놈이 아직 선을 넘지 않아서 참아 주는 것뿐이다.
-훗, 평생 넘지 않을 선이로군.
-이 개자식이 감히!
-푸른 늑대다!
-작은 주인놈에게 가서 아양이나 떨어라.
그때 다른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시끄러 이 자식들아. 누가 개, 고양이 아니랄까봐 만날 싸우고 지랄이야?
멍청한 새자식이다.
개자식이 한마디 한다.
-새대가리는 조용히 해라.
이럴 때는 또 참 마음에 든단 말이지.
-쯧, 입만 산 것들.
그렇게 한 마디 한 후 새자식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저 새자식은 항상 저런 식이다.
제 맘대로 할 말만 하고 사라져 버린다.
비겁한 놈.
그나저나…….
이 여자 인간은 뭘까?
주인놈이 시킨 대로 감시하고는 있는데…….
이상한 인간이다.
배면계, 그곳과 달리 이곳의 인간들은 참으로 다양한 것으로 일상을 보낸다.
주인놈의 요청으로 작은 주인을 호위하며 이미 이곳의 인간들에 대해 파악이 끝났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탐구욕이 좀 센 편이라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파악해야 적성이 풀리거든.
아무튼 이곳의 인간들은 그렇다.
어린이집이라는 곳에서 다른 인간들과 어울리고,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고, 작은 네모난 판떼기인 휴대폰이라는 걸 항상 즐겨보고, 가족이라는 구성원과 이야기도 한다.
큰 인간들도 비슷했다.
인간들이 잔뜩 모인 곳에 모여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개자식이 좋아하는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감시하고 있는 인간은 그런 게 없다.
잠을 잔다.
일어나면 밥을 먹고, 바닥에 앉아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다.
잠깐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하루에 한두 번 정도다.
딱 한 번, 식량을 잔뜩 사들고 온 일 외에 작은 방에서 밖으로 나간 일이 없다.
가끔 내가 있는 쪽을 힐끗 보는 일이 있다.
내가 숨고자 마음 먹으면 인간이 절대 찾을 수 없는데, 은근 감이 좋은 모양이다.
물론, 내가 들킬 일은 절대 없다.
어쨌든 내가 할 일은 이 인간을 감시하는 일.
작은 주인을 호위할 때처럼 변화무쌍하지 않은 일상이라 조금 무료하기는 하다.
하지만 상관 없다.
-나는 환계의 위대한 검은 호랑이족, 그것도 왕의 혈통이다. 무료한 시간마저도 새로운 즐거움으로 환원할 수 있다.
-맨날 숨어 사는 게 일상이니 그렇겠지.
-이 개자식이!
-시끄러 이 고양이 놈아. 생각은 제발 니 머릿속으로만 해라.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신경 꺼라.
-신경 끌 수 있게 해주던가. 그나저나 작은 주인님이 너 보고 싶다고 찾는데?
-후훗, 이 몸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뜻이지.
-그래. 야옹아.
-이 파랑이 자식이!
그때 새자식이 또 끼어들었다.
-파랑이, 야옹이 그만.
-뽀송이는 빠져라.
그때였다.
-배고파!
엇! 이건 설마?
-배고파아-!
그놈이다.
-젠장!
-젠장!
-젠장!
나와 개자식, 새자식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주인놈이 돼지 같은 뱀자식까지 불러낸 모양이다.
-시끄러! 조용히 해!
이번에도 셋이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 정도 해줘야 저 놈은 조용해진다.
잘못하면 하루종일 ‘배고파’를 들어야 한다.
알았다는 대답도 없이 뱀자식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직후 묘한 일이 일어났다.
-어? 이거 뭐지?
-음?
개자식과 새자식이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 나도 의아함을 느꼈다.
주인놈의 느낌이 갑자기 사라졌다.
-주인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가?
개자식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나깨나 주인놈. 개자식의 종특이다.
새자식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겼으면 우리도 자연스레 알았겠지.
이럴 때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맞다. 주인놈과 우리 계약은 원래 그런 식이다. 호들갑 떨지 마라, 개자식아.
-이 야옹이 놈이!
-아무튼 기다려. 우리 계약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끄응, 알았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시 감시 임무에 집중했다.
물론, 딱히 할 일은 없다.
저 인간은 여전히 방 한가운데 앉아서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
-배고파아-!
끊겼던 주인놈과의 연결이 다시 돌아오는 동시에 뱀자식의 외침이 귓전에 쟁쟁 울렸다.
한 소리 해주려는데, 개자식이 먼저 외쳤다.
-주인님, 주인님은 괜찮으신 거냐?
어이구, 환계의 환수가 자존심도 없다. 같은 환수라는 게 이렇게 수치스러운 수가.
-배고파!
물론 뱀자식에게서 멀쩡한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다.
그때 새자식이 끼어들었다.
-한 번만 더 배고프다는 소리를 하면 다음번에 보면 내가 너로 배를 채울 거다.
배고파를 외치던 뱀자식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러고 보니 뱀자식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저 새자식이다.
머릿속에 온통 먹는 것밖에 없는 놈이라 그런지 진짜 무서운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거다.
띠잉-!
변화 없던 방 안에 낯선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양 방 한가운데 앉아 있던 인간도 마침내 변화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리를 울린 휴대폰을 확인해 보는 것.
그리고 입고 있던 옷가지를 훌훌 벗더니 한쪽 구석에 걸어 놓았던 검정색 일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무료한 시간은 끝났다.
드디어 움직인다.
밖으로 나간 인간은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 한 시간 정도 걸어 사람이 많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인간들이 시장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그때부터 인간의 걸음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또 다른 한 인간과 어깨를 툭 부딪친다.
두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대로 서로 지나쳐 걸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어깨를 부딪치는 그 짧은 순간 두 인간은 눈을 마주쳤고, 손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건넸다.
한패다.
당연히 새로 등장한 인간에게 [표식]을 붙였다.
내가 뭐든 알아서 잘 하는 위대한 검은 호랑이족, 왕의 혈통이거든.
원래 감시하던 인간 여자는 그 길로 시장을 벗어나 또 다시 어디론가 꾸준히 걸었다.
노리는 건지 좁은 골목길만 골라서 움직이더니 어느 순간 옷차림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새까만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주인놈의 도깨비 보따리 비슷한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인간은 꺼내든 물건들을 지금 입고 있는 옷 위에 겹쳐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복면을 꺼내 얼굴에 뒤집어 쓰는가 싶더니, 기다란 날붙이를 꺼내 등에 멨다.
허리에는 짧은 날붙이를 잔뜩 매단다.
싸우러 가는 거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구경을 할 거 같다.
그때 여자의 존재감이 갑자기 희미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걱정할 필요 없다.
나의 [표식]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확인할 수 있다.
[감식(鑑式)]
기술을 쓰자마자 [표식]해 놓은 인간의 모습이 반투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때 인간이 갑자기 내 쪽으로 홱 돌더니 정확하게 내가 있는 곳에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허!
이번에는 나도 좀 놀랐다.
확실히 감이 좋은 인간이다.
인간은 주변의 집 지붕으로 올라서더니 이내 건물들 위를 뛰어 넘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인간들처럼 자동차라는 걸 운전하거나 버스라는 걸 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뭐, 나는 나쁠 것 없다.
인간이 이동수단을 타면, 내가 같이 탈 수는 없기에 쫓아가는 게 생각보다 귀찮거든.
이렇게 걸어서 움직이면 구경할 게 많아서 오히려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이거 뭔가 이상하다.
그때 개자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옹아, 이거 뭐냐?
나도 같은 생각이다.
꽤 놀랐다.
개자식이 야옹이라고 부르는 것도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다.
인간은 지금 어느 건물 옥상에 쭈그려 앉은 채 높디높은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 주인이 사는 건물이다.
개자식이 이거 뭐냐고 물은 이유도 그거다.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까이 왔다는 게 이상해서 물은 것이다.
-멍청한, 고양이 놈! 이건 누가 봐도 작은 주인님을 노리는 거잖아! 가까워 진다 싶으면 미리 말했어야지!
개자식이 발작적으로 외친다.
저놈의 개 근성은 약도 없다.
환수가 돼서 말이야. 좀, 응? 막, 고고하고 기품이 넘치고 응? 그런 멋이 좀 있어야지.
저렇게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면 어쩌자는…….
-흑호야, 시야 공유해라.
갑자기 주인놈의 요청이 훅 들어온다.
계약이 있으니 이런 건 거부할 수 없다. 요청이 오면 그대로 들어주는 수밖에.
내가 보는 시야를 공유해 주었다.
-어?
주인놈의 당혹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뒤이어 날아든 것은 잔뜩 화가난 감정이다.
-이 망할 고양이 새끼, 이런 걸 말도 안 하고 있었냐!
아무튼 성격 참 더럽다. 내가 이런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할까봐 그러냐?
-무슨 수를 쓰든 지유랑 형수 보호해라. 털끝 하나만 다쳐봐라. 가죽을 벗겨서 바닥 러그로 써버릴 테니!
거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말을 그리 살벌하게 할까?
아무튼 성격 참 더러운 주인놈.
그때 인간이 훌쩍 몸을 날리더니, 작은 주인이 사는 집 외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손에 별다른 도구도 없는데 미끄러운 건물 외벽을 잘도 타고 오른다.
물론, 나도 저 정도는 쫓아갈 수 있다.
살금살금.
조심스레 놈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주인의 집 외벽에 도착했다.
안에 있던 개자식이 고개는 다른 쪽으로 둔 채 슬그머니 눈동자만 움직여 이쪽을 확인한다.
-어떻게 된 거냐?
-대비해.
-이미 해 놨다.
그건 확실하다.
개자식의 뒤쪽으로 인간 여자가 작은 주인을 끌어안은 채 앉아 있었다.
당연히 개자식은 이쪽과 인간 여자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뭐든 시작되거든 너는 작은 주인님부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라.
-싫은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뭐? 이 고양이 자식이 미쳤다.
-시끄러, 이 멍청한 개자식아!
그때였다.
와장창!
벽에 붙어 있던 인간이 창문을 깨고 들이닥쳤다.
당연히 나도 뛰어 들어갔다.
착지와 동시에 잔뜩 힘을 모은 뒷발로 바닥을 박차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작은 주인을 대피시키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럴 때는 머리를 써야지.
그저 눈앞에 급급하면 안 된다.
앞발로 인간의 등판을 두드리는 동시에 [도약]을 펼쳤다.
정면에 환계로 향하는 통로가 열리고, 인간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지이잉-!
환계로 들어서자마자 다시 한 번 [도약]을 펼친다.
당연히 작은 주인의 집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어?”
주인놈의 눈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