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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장. 음모론#3-
“왜 그러십니까?”
촬영을 끝낸 공대장이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생각에 강이찬은 손을 들어 공대장의 말을 멈출 뿐이었다.
슬쩍 강이찬을 살펴본 공대장이 슬그머니 뒷걸음질 쳐 공대원들에게 돌아갔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래요, 대장?”
공대원들의 물음에 공대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몰라.”
“그럼 우리는?”
게이트 공략은 오프닝으로 시작해 클로징으로 마무리 한다.
공격대 전원이 들어간 시점이 오프닝이면, 들어갔던 사람 전원이 나오는 것이 클로징이다.
그리고 클로징 후 확인 신고를 해야만 공격대의 게이트 공략 관련 서류가 마무리 된다.
그런데 강이찬이 나가지 않고 버틴다면?
공격대도 못 나간다.
“일단 우리는 앉아서 좀 쉬자.”
공대장이 먼저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본인을 포함해 주변인들이 자주 망각하는 사실 하나는 강이찬이 각성자, 그것도 A급 마법사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등급이 낮은 이들은 강이찬처럼 높은 등급의 각성자에 대해서는 절대 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날아올지 알 수 없는 돌멩이에 대비하는 개구리의 자세였다.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그 ‘매개’가 무엇이든 인간 사회는 언제나 이렇게 일종의 서열이 있었다.
“그거 때문인가?”
공대원 중 마법사가 자리에 앉으며 독백처럼 말했다.
“그거?”
“강이찬 실시간 방송 내용이, 마법사들 훈련 법이거든요. 나도 마법사잖아? 그래서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 방법이 쉽게 안 나오는 모양이더라고.”
“그래?”
“일단 마나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공격대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강이찬은 번뜩 떠올랐던 단초를 잡고 사고의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있었다.
‘카메라. 내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이유. 그게 어쩌면 마나 때문이 아닐까?’
강이찬도 처음부터 사진 촬영이 가능했던 게 아니다.
우연히 던전에서 카메라를 꺼낸 적이 있었다.
깜짝 놀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려고 하던 중에 알게 되었다.
꺼내자마자 가루가 되었어야 할 카메라의 형태가 멀쩡하게 유지되었다.
다만,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여지없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는 했었다.
어쨌든 짧은 시간이나마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그저 신기했을 뿐이었다.
다른 물건도 꺼내 보았다. 확실히 보통의 헌터들에 비해 유지시간이 좀 더 길었다.
손에서 놓으면 바로 흩어졌고, 손에 쥐고 있을 때만 형태가 유지되었다.
‘재밌는데?’
그런 감정이었다.
남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어떻게 하면 이 유지시간을 늘릴 수 있을까?
시작은 그런 호기심이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고, 찾아낸 방법은 사실 별게 없었다.
그저 손에 쥔 물건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유지시간이 좀 더 길어졌다.
그 연습을 꾸준히 했고, 어느 순간부터 손에서 놓지 않는 한 물건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을 성공한 후 강이찬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카메라였다.
사진 촬영은 안 될까?
연습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셔터를 누를 수는 있었지만 정작 메모리 카드에 촬영한 이미지가 저장되지 않았다.
이미지가 저장되는 그 짧은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카메라가 부스러진 탓이었다.
하지만 이미 던전 안에서 사물의 유지를 성공한 강이찬은 포기하지 않았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마침내 사진 촬영까지 성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방금 사진을 찍다가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촬영이 가능하지?’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그 매커니즘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손에 든 사물에 정신을 집중했더니 그렇게 되더라.
그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마나’와의 연관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마나, 영력은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영역의 힘이다.’
준혁이 했던 말이었다.
손에 든 사물에 정신을 집중했던 것이, 어쩌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마나를 움직여 해당 물건을 보호했던 게 아닐까?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
강이찬은 급히 인벤토리에 담겨 있는 자신의 티셔츠를 꺼내 들었다.
꺼낼 때부터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덕분에 티셔츠도 바스라 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나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
이는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스킬을 사용할 때는 마나가 해당 스킬을 발동하는 데만 작용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는 손에 든 물건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나가 전신에 퍼져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다.
그 상태에서 강이찬은 천천히 자신의 모든 감각의 방향을 티셔츠가 아닌 가슴팍으로 옮겼다.
파스스스!
그 순간 손에 든 티셔츠가 바스라졌다.
“음!”
다시.
바지를 꺼냈다. 뒤이어 신발, 양말, 속옷까지 꺼내 손에 쥐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
‘될 거 같은데?’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왠지 될 것만 같은 느낌이 자꾸 손끝을 간지럽힌다.
인벤토리에 보관하고 있던 외부의 물건들이 끊임없이 밖으로 나왔다.
쓸데없는 잡화나 주전부리 등등 외부의 물건들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노트북과 캠코더, 그리고 휴대폰.
‘일단 나갔다가 다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후우!”
강이찬은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캠코더를 꺼냈다.
지금까지 꾸준히 반복한 그 과정을 또 다시 실행한다.
파스스스!
여지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캠코더를 보며 강이찬은 결국 인상을 잔뜩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쿵!
“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귓전에 스치는 묵직한 한 음절.
‘환청?’
헛것을 들은 건가 싶었다.
그럴 때는 다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벤토리에 남은 외부 물건은 단 두 개, 휴대폰과 노트북이었다.
그 중 강이찬이 고른 것은 휴대폰이었다.
몇 번이고 반복했던 과정을 또 다시 진행한다.
여지없이 바스러지는 휴대폰.
쿵.
또 들렸다.
거의 확실했다. 이건 환청이 아닌, 진짜 심장 소리였다.
하지만 강이찬은 심각한 갈등을 마주해야 했다.
노트북에는 수많은 자료들이 있었다.
방송을 위한 촬영본과 각종 자료들, 그리고 ‘할미새사촌’ 폴더.
하지만 지금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해야했다.
강이찬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인벤토리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잘 가라, 할미새사촌…….’
강이찬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비장함까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과정.
쿠쿵-!
강이찬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확실하다.
이건 분명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강이찬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방금 전의 그 감각을 좇았다.
끈질기게, 조금 전 그 순간의 느낌을 재현해 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 없는 반복.
실체가 없는 행동의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강이찬은 끈질기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쿠쿵, 쿠쿵!
귀가 번뜩 뜨일만한 소리가 귓속에서 쉼 없이 맥동했다.
드디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의도치 않았음에도 너무나 자연스레 몸속의 촉각을 자극하는 또 한 가지.
‘마나!’
몸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경로를 따라 힘차게 흐르는 마나의 흐름이 완벽하게 감지되었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강이찬이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유레카!”
한쪽 구석에 모여 있던 공대원들이 그런 강이찬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
“인구수 곱하기 0.0000001.”
한참을 입다물고 있던 유민섭이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눈동자의 초점이 아직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다.
거대한 해머로 후두부를 강타한 것 같았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시스템 아바타라고?’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 충격적인 단어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로 인해 린디웨도 조금은 민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고 앞으로의 일을 진행하기 위한 대전제가 린디웨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얼른 고개를 털어 머릿속을 비운 유민섭이 설명을 이었다.
“게이트가 발생한 첫해에 각 국가의 게이트 개수입니다. 이 계산식으로 하면 한국은 5.1개. 그래서 총 5개의 게이트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렇게 첫 해에 한국에는 매달 5개의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슬쩍 말꼬리를 흐린 유민섭의 시선이 저절로 린디웨에게로 향했다.
‘시스템 아바타라고?’
그러다 자신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 얼른 시선을 돌렸다.
린디웨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던 이야기 계속 해봐.”
“아, 네. 그러죠. 그리고 1년이 지날 때마다, 매달 발생하는 게이트의 개수는 0.5배가 늘었습니다. 이 역시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2년차에 매달 7개, 혹은 8개. 3년차에는 매달 10개씩.”
준혁이 그 말을 받았다.
“게이트 돔 개수도 인구에 비례하더라고요.”
“맞습니다. 이거 생각해보니……. 아예 게이트 다운이 발생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수치들 때문에 게이트에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정한 법칙이 꾸준히 유지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일이었다.
“이게 실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음모론으로만 남아 있었는데, 실제 관리자라는 자들이 존재한다니.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네요.”
게이트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겁을 내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태풍이나 홍수, 해일 같은 것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사람의 통제하에 있었다니.
이를 악무는 유민섭의 얼굴이 짙은 분노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개새끼들!”
장난기가 있어서 그렇지 사실 꽤 점잖은 편인 유민섭이었다.
그런 유민섭의 입에서 적나라한 욕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유민섭이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준혁이 그런 유민섭의 감정을 슬쩍 끊으며 들어갔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지. 자자, 각자 할 일을 정해보자. 우선 리쉬옌은 아까 말했듯이 국내 무명회 놈들을 잡아.”
“네.”
“그리고 유 길드장은…….”
유민섭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뭘 하면 됩니까?”
“공권력을 좀 써야 겠습니다.”
“공권력이요?”
“광화문 광장에 있던 로건 베런즈 주변에 다른 배면계 귀환자들이 있었어요. 로건 베런즈는 스킬을 써서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다른 귀환자들까지 모두 그러지는 못했을 겁니다.”
척하면 척이다.
의도를 바로 이해한 유민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전통적인 수사 기법을 이용해서 추적해야겠군요. 그러려면 공권력은 필수죠. 알겠습니다.”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기에 유민섭이 적격이었다.
“린디웨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계속 여기 있을 것이고, 나는 BR 코퍼레이션……. 아니, 볼런트 라일을 감시하겠습니다.”
그렇게 대강의 역할 분담이 마무리되었다.
“자, 그럼 각자 할 일 합시다. 먼저 가볼게요.”
가볍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준혁은 서둘러 린디웨의 숙소를 나섰다.
‘볼런트 라일에 앞서…….’
아직 확신이 없어 말은 한지 않았지만 준혁에게는 하나의 패가 더 있었다.
볼런트 라일을 쫓던 암살 계열의 여자 헌터를 몰래 감시하고 있는 흑호였다.
어쩌면 그쪽에서도 뭔가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흑호.
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흑호와 시야를 공유했다.
걷고 있는 복도의 풍경 위에 오버랩 되어 떠오르는 반투명한 또 하나의 광경.
준혁이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