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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장. 음모론#2-
“인간?”
준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해가 안 간다.
“다시 한번 설명해 봐.”
“배면계는 시스템이 배면계 전체를 통제해. 간단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인공지능인 셈이지. 나는 그 인공지능과 연결된 단말기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런데 던전은 인간이 관리한다?”
“맞아. 던전을 일종의 기계에 비유한다면, 그 기계를 굴리는 운영 시스템이 있는 셈이지. 그리고 그 운영 시스템을…….”
“인간이 관리하는 거다?”
“그렇지. 다섯 명의 인간이 던전 시스템을 관리해. 집단 의사 결정기구의 형식인데……. 다섯 명의 인간이 모두 동의하고 던전을 관리하는 것 같더라.”
이야기를 듣던 준혁이 문득 해묵은 기억 하나를 끌어 올렸다.
“이거 음모론 중 하나잖아!”
게이트 발생의 빈도와 개수를 계산해보면, 인위적인 느낌이 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음모론이 존재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인구비례론’이었다.
게이트 발생 빈도와 게이트 다운으로 인한 게이트 돔의 개수가 각 국가의 인구수에 비례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각 국가의 인구수를 대입해 계산식에 넣으면, 해당 국가의 게이트 발생 수와 게이트 돔의 개수가 정확하게 나온다.
그러니 게이트 발생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다만, 이 음모론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인간의 지구 파괴를 막기 위한 비밀결사가 저지른 짓이다.’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절대 입증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렇기에 음모론에서 더 발전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음모론의 절반은 ‘진실’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준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야, 가만! 이거 혹시 로건 베런즈 그 자식이 설마?”
“그 관리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어. 다만, 네 말대로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지.”
로건 베런즈는 현재 던전 시스템과 배면계 시스템을 융합하려 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어떻게?’였다.
그런데 지금 알게 된 시스템 관리자의 존재.
로건 베런즈가 시스템 관리자라면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그리고 준혁의 고민이 시작된다.
‘국내에 있는 무명회 놈들도 잡아들여야 하는데…….’
문제는 로건 베런즈를 추적하는 일의 중요성도 아주 높아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었다.
둘 다 배면계 귀환자들과 관련된 일이지만 별개일 뿐인 일들.
‘어떻게……. 어?’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을 하는데 마주 앉은 리쉬옌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무명회원들을 잡는 정도의 일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스펙을 가진 인물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리쉬옌!”
“네?”
“일 하나 해줘야겠는데?”
“무슨 일이요?”
영문을 몰라 질문만 던지는 리쉬옌을 향해 준혁이 갖고 있던 서류를 건넸다.
“거기 있는 놈들 좀 잡아 와.”
“이 사람들은 누구죠?”
“무명회 놈들.”
“네?”
리쉬옌이 놀란 표정으로 준혁과 린디웨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지.”
지금까지 이 일을 준혁이 혼자 처리하려고 했던 이유는 린디웨 때문이었다.
린디웨가 시스템 아바타라를 사실을 숨겨야 했기에 준혁이 혼자 하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리쉬옌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일을 맡겨도 문제 될 일이 없었다.
준혁의 설명에 리쉬옌이 또 한 번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진짜 린디웨는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되뇐 탓이었다.
리쉬옌은 힘겹게 감정을 눌러 담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오케이, 믿고 맡길게. 린디웨, 너는 앞으로 뭐 할 거야?”
준혁의 물음에 린디웨가 문제의 그 술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일단 이거 마저 완성해야 하고, 틈틈이 시스템도 들여다봐야지.”
“그래, 들키지 말고. 그 관리자들 정체 알게 되면 곧장 말해 주고.”
“그러려고. 근데 말이야…….”
“뭐, 또 할 이야기라도?”
“던전을 관리할 권한을 갖고 있다면 누가 됐든 눈에 띄지 않았을까? 스스로 말하지는 않더라도 언행에서 티가 났을 텐데?”
순간 준혁의 머릿속에서 번뜩 불똥이 튀었다.
“하, 이런 미친!”
“왜?”
“ITO, 아니 BR 코퍼레이션!”
“아!”
린디웨도 뒤늦게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BR 코퍼레이션.
게이트 등장 1년여 후에 등장한 기업으로, 던전과 관련한 많은 제품을 만들어낸 회사였다.
게이트 생성을 조기에 파악하는 감지기, 게이트 에너지 측정기 같은 하드웨어에 레이드 시뮬레이션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만드는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내로라하는 그 어떤 과학자도, 엔지니어도 이들이 내놓는 제품의 비밀을 파헤치지 못했다.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구조라 방법이 없다며 모두들 항복을 선언했다.
그냥 딱 봐도 비밀이 많은 곳이고,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게 타당한 회사였다.
그럼에도 BR 코퍼레이션을 먼저 떠올리지 못한 것은 세월이 주는 익숙함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의문의 집단이었지만, 시간이 쌓이며 그들은 당연히 그런 회사로 인식이 덧씌워진 것이다.
하지만 던전 관리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그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주 당연했다.
그리고 준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또 한 가지.
‘그럼 그 추적자들은?’
ITO 사무총장, 볼런트 라일을 미행하던 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배면계 귀환자였다.
로건 베런즈가 던전 관리자일수도 있다는 의혹이 생긴 참이다.
그런데 그 로건 베런즈와 한패로 보이는 배면계 귀환자가 미행했던 볼런트 라일.
이 볼런트 라일은 BR 코퍼레이션의 대표이며 수석 연구원이었다.
갑작스레 아귀가 들어맞기 시작하는 퍼즐 조각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냈다.
벌떡 일어선 준혁이 성큼성큼 걸어가며 외쳤다.
“회의실에서 보자.”
“넌 어디 가는데?”
“유 길드장 데리러.”
이런 규모의 사안에 유민섭이 빠지면 일의 진행이 불가능했다.
***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해 본다.
하지만 괜히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를 않는다.
‘이러지 않았는데?’
강이찬은 익숙하면서 낯선 긴장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제로 던전에 들어오기만 하면 준 공황상태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방송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차츰차츰 나아졌는데, 오늘 갑자기 그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왜 이러지?’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괴물을 보고 안 떤 게 언제부터 였더……. 아!’
정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흑태자 형님!’
강이찬은 마음속으로 준혁을 부를 때도 꼬박꼬박 ‘형님’ 혹은 ‘님’을 붙였다.
강이찬에게 준혁은 절대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엄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쨌든 강이찬이 던전에서 겁을 먹지 않게 된 계기는 준혁이었다.
준혁이 가진 힘을,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부터였다.
준혁과 함께 있다면 절대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 그것이 강이찬을 담대하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준혁 없이 들어오자마자 몸이 먼저 이렇게 긴장한다.
‘어쩔 수 없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꺼내 보지도 않는다.
강이찬은 꽤 높은 등급으로 각성했으면서도 헌터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게이트만 통과하면 올라오는 이 공포증 때문이었다.
‘흠, 생각해 보니…….’
방송 목적이 아닌 일로 게이트를 통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때 강이찬 앞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이만 출발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곳은 던전이다. 그리고 공략을 위해 들어온 공격대가 있었다.
강이찬은 그 공격대에 부탁해 입장만 허락받은 것이었다.
강이찬이 매우 유명한 스트리머가 아니었다면 허락을 받지 못했으리라.
공격대가 던전 안쪽으로 향한 후, 강이찬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모든 신경을 자신의 몸속 상황에 집중했다.
‘심장이라고 했었지?’
강이찬이 이곳 던전에 들어온 이유였다.
리쉬옌이 말했던 심장 박동을 듣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쉬옌의 가설은 몸이 알아서 필터링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박동을 듣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증명되지 못한 내용이니 확신할 수 없다.
그 답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방법은 하나다.
양태군이 그러했든, 한 명이라도 성공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
그 방법을 고민하다 강이찬이 갑자기 떠올린 아이디어가 던전이었다.
흔히 헌터들은 던전 안에서 감각이 가장 예민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니 감각이 예민해지는 장소에서 훈련을 해보기로 생각한 것이었다.
“후우우우!”
크게 심호흡을 하며 모든 신경을 청력에 집중한다.
물론 쉽지 않다. 아니, 여전히 듣지 못한다.
미친 듯이 사방을 뛰고 몸을 혹사시켰다. 그에 따라 산소 공급을 위해 심장이 한층 격하게 방망이질 친다.
숨을 참아보기도 한다.
“헉, 헉헉!”
미칠 듯한 혹사에 심장의 펌프질이 한층 거세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 강력한 박동 소리는 귓가에 와닿지 않는다.
가슴팍의 묵직한 두근거림, ‘촉각’으로서의 박동은 느낀다.
이는 각성자가 아니라해도 전력질주하고 나면 자연스레 느끼는 그 촉감이다.
이것 때문에 더 이상하다.
촉각으로 느낄 정도로 거센 박동이 어째서 귀에는 들리지 않는가.
그래도 한 가지 수확은 있었다.
‘확실히 여기가 낫네.’
던전 안에서 헌터의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는 것은 확실한 듯했다.
‘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던전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까 들어갔던 공격대가 돌아오는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낮은 급수에 짧은 던전이라 공략이 금방 마무리 된 모양이었다.
“볼일은 다 봤습니까?”
공대장이 강이찬에게 슬쩍 다가와 친한척을 한다.
“아, 네. 이제 나갈 건가요?”
“예, 그래야죠. 아, 그런데…….”
“네.”
“혹시 괜찮으시면 여기 던전 안에서 사진 한 장 촬영해 줄 수 있을까요? 물론, 비용은 드리겠습니다.”
던전의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건 대부분의 헌터들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강이찬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같이 들어온 김에 부탁을 해본 것이었다.
그 말에 강인찬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아…….”
마나 훈련에만 골몰한 나머지 주변의 풍경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급수가 낮은 던전인데 반해 풍경이 환상적이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바위산의 골짜기로 들어서는 입구 같은 지형이었는데, 산을 구성하는 바위가 꽤 독특했다.
표면이 유달리 윤이 나는데 색깔이 파란색 일색이라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러시죠.”
흔쾌히 대답한 강이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감사합니다!”
크게 인사한 공대장이 황급히 공대원들을 향해 뛰어갔다.
10여 명의 공대원이 자리를 잡고 각자의 포즈를 취한다.
그 사이 강이찬도 촬영할 자리를 잡고 인벤토리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자, 카메라 보시고요. 셋하면 찍겠습니다.”
렌즈에 공격대를 담은 강이찬이 전형적인 촬영기사의 멘트와 함께 손가락을 움직였다.
찰칵!
셔터를 누르는 동시에 강이찬의 손이 바빠졌다.
카메라 한쪽의 덮개를 열고, 빠르게 메모리 카드를 꺼내 인벤토리로 집어 넣었다.
그러는 사이 카메라는 순식간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강이찬의 얼굴이 갑자기 멍해졌다.
‘어? 이거,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