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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장. 침입#1-
“질문 있습니다!”
손을 번쩍 들고 외친 사람은 강이찬이었다.
“네, 지, 질문 하세…….”
대답한 사람은 리쉬옌이었다.
육체 계열 각성자들을 가르치던 리쉬옌이 마법 계열 각성자들 앞에 선 이유는 간단했다.
훈련 교관이었다.
육체 계열 헌터들의 훈련은 분위기가 한껏 고양된 상태였다.
양태군이 성과를 낸 덕분이었다.
더불어 그 양태군이 훌륭한 조교 역할을 해 준 덕에 특별히 가르칠 것이 없었다.
그저 최유나가 직접 굴려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에 반해 마법 계열 헌터들의 훈련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마법 계열 헌터들은 마나 감지의 단서를 강이찬의 방송에서 찾으려 했다.
경품까지 걸어 놓고 수많은 시청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을 모두 시도해 보았다.
한반도 북쪽에서도 철지나 버린 고난의 행군이었다.
정말 목숨을 걸고 했다.
세상은 넓었고, 그만큼 또라이도 많은 탓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고난의 행군을 했는데도 방법이 나오지 않자,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급작스럽게 처진 분위기는 점점 내려앉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땅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욕적이었던 마법사들의 얼굴에는 피로감만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땅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 급기야 천연 암반수 퍼올릴 지경에 이르렀다.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누군가가 절실했다.
그렇게 불려온 이가 리쉬옌이었다.
같은 마법 계열인 린디웨가 오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린디웨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절대 찾지 말라는 말을 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불려온 리쉬옌이 심하게 말을 더듬는 이유는 강이찬의 방송용 캠코더였다.
“어, 어서 질문하세요.”
원래 아주 내성적인 성격의 리쉬옌이었다.
그나마 혼원길드 안에서는 익숙함 덕분에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강이찬이 캠코더로 방송을 할 때도 린디웨를 포함한 길드원들이 같이 있었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교육을 받겠다고 앉아서 자신만 뚫어지라 보는 이들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카메라까지 들이대는 바람에 지금껏 없었던 심각한 병이 발병해 버렸다.
‘카메라 울렁증이네.’
강이찬은 단번에 그 사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강이찬은 그 사실을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나는 분명 존재하는 거죠?”
“마,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게……. 그, 그러니까…….”
증상이 심각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파르르 떠는 입술, 어찌나 주먹을 꽉 쥐었는지 핏줄이 도드라진 손등.
게다가 격렬하게 호흡을 고르느라 어깨가 심하게 들썩이는 것이 저러다가 당장 과호흡증이 올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헌터, 그것도 육체 계열, 더군다나 S3등급인 천원급 각성자가 과호흡증후군이라니 어불성설이었다.
일단 각성을 하게 되면 몸에 생기는 이상증상은 몸이 스스로 반응해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다만, 그 정도로 리쉬옌의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모두 각성자라서 감각이 아주 예민하잖아요? 그러면 그 예민한 감각으로 마나도 느껴야 하는데, 왜 안 될까요? 아, 그렇게 떨지 마시고 대답 좀!”
그럼에도 강이찬은 리쉬옌을 몰아붙였다.
카메라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강이찬의 지론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점이었다.
리쉬옌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모든 상황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는 심리상태까지 내몰렸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
쿵쿵쿵!
귓전에는 환청까지 메아리쳤다. 귀 옆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기분이었다.
‘아?’
그와 동시에 아주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째서?’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떠올라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장 박동, 아니 맥박 소리조차 안 들리는…….’
인간은 원래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듣지 못한다.
흔히 턱 아래 맥이 뛰는 부위에 강렬한 맥동이 존재하지만 그 조차도 당연히 듣지 못한다.
‘그런데 각성자는?’
각성자의 감각은 평범한 인간의 그것을 몇 배, 몇십 배, 심지어 몇백 배를 상회한다.
하지만 각성자 역시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듣지 못한다.
‘왜?’
각성자는 듣고자 마음먹으면 상대의 심장 박동은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그것은 들을 수 없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리쉬옌이 한껏 청력을 돋워 자신의 가슴팍에 신경을 집중했다.
‘안 들려!’
이변은 없었다. 들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진 사고가 마침내 종착역을 향해갔다.
‘필터링! 불필요한 정보!’
인간의 시야에는 항상 자신의 코가 들어와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의식하고 보지 않는 한 자신의 코를 자신의 시야 안에서 인식하지 못한다.
불편함을 주는 불필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뇌가 알아서 그 정보를 걸러버리는 것이 원인이었다.
각성자에게 자신의 심장 박동이나 맥박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 가능성이 컸다.
‘마나나 영력의 흐름도?’
리쉬엔은 몸속 영력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조금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가만히 모든 신경을 영력의 흐름에 집중해 보았다.
하단전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몸속을 휘도는 강력한 에너지의 맥동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이 정도로 강렬한 흐름을 왜 평소에는 느끼지 못할까?
‘이게 힌트!’
어렴풋이 힌트를 잡았다.
번쩍 두 눈을 뜬 리쉬옌이 자신을 향해 두 눈을 초롱초롱 뜨고 있는 헌터들을 보았다.
“어, 그, 그러니까…….”
하지만 말을 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찾아온 것은 심각한 카메라 울렁증의 증상.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욕지기가 치밀어 점심으로 먹은 것을 그대로 게워낼 거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솟구치는 토악질을 억지로 참아낸 리쉬옌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묘수가 떠올랐다.
‘그래, 그거!’
리쉬옌은 번뜩 떠오르는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빙글!
정확하게 180도 회전한 리쉬옌이 입을 열었다.
“심장 박동이요.”
하지만 리쉬옌의 말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선을 맞추지 않고 뒤통수를 보여준 채 가르쳐 주는 낯선 광경에 다들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리쉬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강이찬 헌터가 말한 것처럼 각성자의 감각은 비각성자에 비해 엄청나게 예민하죠.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손 들어 봐요.”
하지만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 보고 있어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으니 손 들어 보세요.”
리쉬옌의 말소리가 확연한 차이를 느낄 정도로 안정되었다.
리쉬옌이 재차 물었지만 여전히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정보입니다.”
“불필요한 정보요?”
“간단한 예를 들면, 일부러 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면 일상의 시야에서 자신의 코를 보고 인식하는 사람은 없어요. 인간의 시야라면 코가 보이는 게 정상인데 말이죠. 만약 코를 인식하게 되면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에 두 눈으로 정보를 받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코의 이미지를 지우는 거예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강이찬이 확인하듯 물었다.
“각성자는 심장 박동이나 맥박 뛰는 소리가 그런 불필요한 정보에 해당한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그러니까…….”
리쉬옌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뒤통수만 보여준 채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갔다.
모든 설명을 다 들은 후 강이찬이 대표로 질문했다.
“즉, 일단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 연습을 먼저 해보라는 거죠?”
“네, 그거예요. 뇌로 전해질 때 불필요해서 누락되는 정보를 인위적으로 습득하는 훈련을 먼저 하는 거죠. 마나와 달리 심장 박동은 가슴에 손만 대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뛰고 있다는 걸 알고 들으려 노력하는 심장 박동 소리와 그 존재를 확인조차 할 수 없는 마나를 인지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보면 마나도 감지할 수 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크다고는 해도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서조차 없는 것과는 천지 차이.
“자, 그럼 다들 그 방법으로 각자 훈련해봐요.”
“네!”
마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때였다.
띠잉-!
리쉬옌의 휴대폰이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을 터트렸다.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린 리쉬옌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면을 채운 린디웨의 메시지였다.
「잠깐 내 방으로 와줘.」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발걸음이 문으로 향했다.
배면계에서 서로 의지하며 고난을 이겨온 린디웨와 리쉬옌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 압박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핑계이기도 했다.
벽을 보고 이야기했다고는 해도 카메라의 존재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 또한 리쉬옌에게는 크나큰 압박이었다.
“어? 어디 가요?”
한쪽에 서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유민섭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리쉬옌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답을 내놓았다.
“질문은 문자로 해요!”
“에?”
사람이 너무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머릿속에 생각이 사라지는 법이다.
지금 유민섭이 그랬다.
아니, 유민섭만이 아니라 한데 모여 있는 마법 계열 헌터들 모두가 그랬다.
‘문자?’
‘겨우 문자로 질의가 가능하다는 거야?’
교육을 받는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떠다녔다.
하지만 유민섭은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멍해져 있었다.
‘중국인이 한글이나 영어로 보낸 문자를 보고 대답할 수 있다는 건가? 영어나 한글을 읽을 수 있었던가?’
[영화] 덕분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보니 모두가 잊고 지내던 핵심, 리쉬옌은 중국인이었다.
하지만 리쉬옌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어? 김준혁 씨?”
린디웨의 방으로 들어서던 리쉬옌이 함께 있는 준혁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최근 린디웨가 중요한 일이 있다며 준혁하고만 붙어 다니는 바람에 꽤 서운했던 리쉬옌이었다.
그런데 따로 방으로 불러서 왔는데, 그 자리에도 준혁이 함께 있으니 괜히 그 서운함이 증폭되는 기분이었다.
“뭐해? 얼른 들어와.”
린디웨의 손짓에 리쉬옌은 언제 서운함을 느꼈냐는 듯 냉큼 다가가 소파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자신을 보는 린디웨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러잖아도 피부색인 짙은 린디웨인데, 표정까지 엄숙하게 잡으니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후우!”
그런 리쉬옌을 보며 린디웨는 무거운 한숨을 깔았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거듭 말하지만 린디웨는 시스템 아바타였다.
하지만 육체는 린디웨의 육체였고, 당연히 뇌에 저장된 기억과 감정까지 린디웨의 것이었다.
완벽하게 린디웨의 자아가 남아있는 셈이었다.
이를 정리하면, 린디웨의 자아를 가진 시스템 아바타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래서 어렵다.
리쉬옌이 그렇게 의지하고 따랐던 린디웨가 사실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말하기가.
준혁에게는 자신의 정체를 반강제적으로 밝혔지만, 리쉬옌에게는 말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
융합되고 있는 던전 시스템을 조사하는 일은 그 어떤 사안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 생각을 이해하고 린디웨의 ‘기억’을 품고 있는 ‘육체’가 반응한 것이었다.
“왜? 왜 그래요?”
당황한 리쉬옌의 외침.
두 눈을 질끈 감은 린디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린디웨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