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99화 (9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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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장. 머리를 보다#1-

니아옹~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소형화한 흑호의 소리가 들린다.

린디웨의 챙상 위였다.

“너 거기서 뭐하…….”

준혁이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고양이 크기로 변한 흑호가 준혁을 쳐다보는 눈동자에 묘한 비웃음이 맺혀 있었다.

저 눈빛의 의미는 명확했다.

방금 전 린디웨와의 대화를 두고 비웃는 것이었다.

“이 자식이 빠져가지고…….”

니아오옹-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의 흑호를 보며 준혁이 중얼거렸다.

“이래서 고양이들은 안 돼. 역시 댕댕이들이 충성스러워.”

준혁의 말에 흑호가 흠칫한 표정으로 고개를 번쩍 들더니 황급히 준혁에게 달려왔다.

니아아앙.

준혁의 발목에 몸을 부비며 난데 없이 골골이를 해보지만 준혁의 표정은 냉담했다.

“됐고, 린디웨한테 그놈 얼굴이나 보여줘라.”

니아아…….

시무룩하게 애처로운 소리를 내보지만 준혁의 표정은 여전했다.

흑호는 결국 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 린디웨에게 시선을 돌렸다.

흑호의 두 눈동자가 잠깐 동안 빛을 머금었고, 그 순간 린디웨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흑호와 백효는 효과가 겹치는 스킬이 몇 개 있었다.

백효는 감시와 관찰, 흑호는 추적과 암살에 특화한 환수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흑호가 펼친 [목표 투영]도 그런 경우였다.

백효가 [시야 공유]로 자신이 보는 것을 준혁에게 전달해 주는 것과 비슷하게, 흑호는 기억 속에 있는 어떤 대상의 생김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린디웨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화려한 금발을 가진 40대 백인 남자의 얼굴이었다.

준혁이 쌍생상사로 만들어냈던 존 도우의 진짜 모습이었다.

“어?”

“누군지 아냐?”

“알지.”

“누구?”

“로건 베런즈. 너 다음으로 높은 경지에 올랐던……. 배면계 사상 두 번째로 강한 엽사.”

“국적은?”

“미국.”

시스템 아바타인 린디웨에게 존 도우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추적할 단서를 얻는다.

준혁의 플랜B였다.

고개를 끄덕인 준혁이 곧장 휴대폰을 들었다.

「오! 미스터 김,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미스터 프레지던트?”

「물론이죠. 그런데 전화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아닌가요? 지금 시간이 오전 6시인데?」

“아, 그래요? 여기는 저녁인데, 불편하면 나중에 다시 걸겠습…….”

「그럴리가요? 아침 일찍 목소리를 들어서 반갑다는 뜻이었습니다.」

준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 시간에 연락을 한 걸로 보아, 특별한 용건이 있는 모양인데요?」

“네, 사람 하나 찾아 주세요.”

「사람? 어떤 사람입니까? 미스터 김의 요청이면 제가 위성 궤도를 바꿔서라도 찾아야죠.」

준혁의 통화 상대는 ‘앤서니 바일레어’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는 감사하죠. 이름은 로건 베런즈, 나이는 40에서 45사이. 금발에 녹색 눈동자, 키는 180cm정도입니다.”

「로건 베런즈……. 스펠링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준혁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린디웨에게로 향했다.

린디웨는, 던전 시스템을 기준으로 하면 S3 등급의 헌터였다. 스피커폰이 아니라고 해도 통화 내용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린디웨가 메모지에 영문자를 적고 준혁이 그것을 읽었다.

“B-E-R-O-N-Z입니다.”

「그리고요?」

“네?”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사진이나, 사는 곳 혹은 직업 이런 정보들 말입니다.」

이번에도 모두 듣고 있던 린디웨의 입에서 바로 대답이 나왔다.

“몰라.”

준혁이 그 대답을 바로 받아 바일레어 대통령에게 말했다.

“다른 정보는 없습니다.”

동시에 휴대폰 너머에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정적에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바일레어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미스터 김?」

“네, 대통령님.”

「미국의 인구가 몇 명쯤 되는지 아십니까?」

“그게 무슨?”

「3억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름과 대략적인 나이, 머리색과 눈동자 색만으로 어떻게 사람을 찾습니까?」

“그런가요?”

「그렇지요.」

대답하는 바일레어 대통령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물러설 준혁이 아니었다.

“불가능합니까?”

「힘듭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군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게 흔한 성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 사람이 만약 미국 내 수입원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회보장번호 조차 없을 가능성이 있단 말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라요.」

“그렇다면……. 해 줄 수 없는 겁니까?”

조금 더 강경한 목소리로 던지는 준혁의 질문에 또 한 번 바일레어 대통령의 말이 뚝 끊겼다.

얼굴도 안 보이는데 당황하는 표정이 보이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찾아보죠. 찾아보겠습니다. 미스터 김의 부탁인데 시간이 걸려도 찾아야죠.」

바일레어 대통령은, 다른 나라도 아닌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그런 위치의 사람이 한국의 일개인에게 이런 저자세를 보인다는 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단순한 일개인이 아니었다.

아주 낯선 광경이지만, 그 누가 보아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모습이기도 했다.

얼마 전 준혁이 드러낸 그 힘을 생각하면 말이다.

게다가 준혁은 현재 미국의 팀 히어로 소속 헌터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본인의 안전과 자국의 국익을 생각하면 바일레어 대통령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정도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일이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통화가 끝났을 때였다.

“어이구, 뭔 갑질을…….”

린디웨가 꼴사납다는 눈빛으로 준혁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준혁은 당당했다.

“로건 베런즈가 누군지 아냐?”

“뭐, 무명회의 누군가…….”

“무명회 대장이거나 핵심. 이번 일의 원흉, 아무리 가볍게 잡아도 시스템에 직접 손댄 놈.”

“훌륭하다!”

“뭐?”

“훌륭한 갑질, 좋은 갑질, 착한 갑질 인정.”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는 린디웨를 보며 준혁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린디웨라는 인간의 인격을 갖고 있다는 게 확실해 보였다.

준혁이 어깨를 한 번 털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

“뭐가?”

“흑호가 거기 갈 수 있으면 생긴 모습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데 그걸 못해서.”

환수계를 거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도약]은, 흑호가 직접 가 본 장소로만 갈 수 있었다.

준혁이 미국에 갔을 당시에는 흑호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마리 환수에게 형네 가족을 지키라고 시켰기에 흑호는 미국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몽타주라도 만들어 보든가.”

“몽타주?”

“어, 그림 그리는 사람 머릿속에 흑호가 이미지를 전달해주면 어마어마하게 정확한 몽타주가 나오지 않겠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

그거라도 있으면 로건 베런즈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도 크게 단축되리라.

“당장 가야겠다.”

“어딜? 아는 몽타주 전문가라도 있어?”

“아니.”

“그럼?”

“몽타주 전문가를 수배해 줄 사람을 알아.”

그런 쪽 일에 가장 뛰어난 사람은 역시나 유민섭이었다.

***

“릭, 어떻게 생각해?”

이마가 훤하게 넓어진 50대 중반의 백인 남자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얼 말입니까?”

대답한 이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수트로도 가려지지 않는 다부진 체격의 40대 중반의 흑인 남자였다.

처음 물음을 던진 남자가 불쑥 자신의 명함을 꺼내 흔들며 말했다.

“이거 말일세.”

명함의 상단에는 ‘Integrated Security Agency’, 중앙에는 ‘Oliver Nelson’, 그 아래에 ‘director’이 새겨져 있었다.

ISA 국장 존 넬슨, 남자의 정체였다.

그리고 존 넬슨의 말을 받아주는 이는, ISA 사무차장 리처드 파웰이었다.

리처드 파웰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ISA를 창설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어. 연락관 파견은 고사하고, 충원조차 제대로 안 됐단 말이야. 그런 시점에 백악관에서 처음 내려온 지시가 사람 찾기라고. 과연 이 ISA 국장이라는 자리가 가치가 있을까?”

존 넬슨의 구시렁거림에 리처드 파웰은 매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ISA(Integrated Security Agency), ‘통합 안보국’은 지난번 준혁의 기자회견 직후에 창설된 미국의 국가 기관이었다.

준혁이 말했던 문제에 대해 신속하고 직접적으로 대응하려는 조치였다.

설립과 동시에 미국 내에서 어마어마한 반응을 불러 모은 기관이기도 했다. 일개 국가 기관이 가진 권력이 너무 강력한 탓이었다.

ISA는 기존에 미국 내 모든 정보기관을 통괄했던 DNI를 해체 후 흡수하여 정보 권력을 틀어쥐고, 예하에 300명 규모의 각성자 부대를 두어 강력한 무력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권력 기관이었다.

미국 정부가 그만큼 준혁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런 기관의 국장이 저런 말을 하고 있으니 리처드 파웰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존 넬슨의 말대로 아직 조직 구성이 제대로 끝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존 넬슨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아무튼, 회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다들 국장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 대충 시간 좀 끌었지?”

“충분한 것 같습니다.”

ISA는 이제 막 설립된 기관이었기에, 하부에 소속된 기관장들의 기를 초반에 눌러 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 들어가지.”

문이 열리고 원형의 회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회의실 벽면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모니터에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그중에는 CIA 국장인 윌리엄 카인셀의 얼굴도 있었다.

FBI나 NSA, DEA 등 모두 미국 정보공동체에 속해 있는 기관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ISA의 산하 기구이기도 했다.

그 면면을 쓱 훑어본 존 넬슨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죠.”

늦게 도착했음에도 형식적인 사과 한 마디 없는 존 넬슨의 태도에 모니터에 떠오른 모든 얼굴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존 넬슨은 그 표정이 보이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백악관의 지시로 사람을 하나 찾아야겠습니다.”

“사람이요?”

“네, 정황상 TH, ‘더 헌터’의 요청인 것 같습니다.”

더 헌터(The Hunter). 미국 정보 기관 내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준혁의 코드네임이었다.

“인적 사항은 어떻게 됩니까?”

“로건 베런즈, 스펠링은 B-E-R-O-N-Z. 키는 6피트, 금발에 녹색 눈동자, 나이는 40에서 45사이. 이상입니다.”

존 넬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같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게 끝입니까?”

존 넬슨이 앤서니 바일레어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끝입니다.”

그리고 존 넬슨이 한 대답은 앤서니 바일레어 대통령의 답과 똑같았다.

당연히 성토가 쏟아졌다.

“겨우 그 정도 정보로 어떻게 사람을 찾습니까?”

“입수한 첩보가 옳은지 틀린지 확인할 방법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일 처리는 ISA가 다른 기관들을 기죽이려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화면의 얼굴들이 하나 같이 열변을 토하는 그 순간, 존 넬슨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한 사람.

아무 말도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긴 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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