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97화 (9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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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 엽사#1-

‘뭐지?’

준혁은 충돌의 충격으로 저릿한 손목의 관절을 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 역시 준혁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뻐근해진 손목 관절을 흔들고 있었다.

준혁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준혁과 눈앞의 남자가 가진 근력이 동등한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준혁으로서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확실하게 확인부터.’

준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남자가 빙글 웃으며 물었다.

“본인 외의 엽사를 보고 놀라셨습니까? 설마 다른 엽사가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요?”

준혁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다행입니다. 생각보다 멍청한 분은 아니라.”

‘근데, 이 새끼가?’

울컥하는 기분을 내리누른 준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쓸데없는 도발은 그만하고……. 그냥 인사차 찾아온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

“뭔가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저를 찾아온 건 김준혁 님입니다.”

“아, 쏘리. 그건 그러네.”

“역시나 말이 통하시네요.”

“그래서?”

“네?”

“좋으냐?”

“그게 무슨…….”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시비조로 던지는 준혁의 태도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근데 내가 너 같은 놈들을 좀 알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준혁은 또 한 번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저 같은 사람?”

“그래, 모두에게 존댓말을 하는 사람.”

“그게 무슨?”

“너 같은 인간들은 둘 중 하나……. 흑호, 지금!”

콰콰콰콱, 빠악!

바닥을 긁듯이 찬란한 스파크를 터트리며 전개되는 [전뢰보].

정확한 타이밍에 밀어 뻗은 무상곤이 남자의 목울대를 두드렸다.

“컥!”

동시에 남자의 뒤쪽 공간이 크게 일렁이고, 그 속으로 남자와 준혁이 빨려들 듯 사라졌다.

콰콱!

거친 마찰음과 동시에 얽혀 있던 준혁과 남자가 다시 거리를 벌렸다.

“어딥니까, 여기는?”

순식간에 바뀐 풍경에 남자가 주변을 살피며 묻는다.

“네가 해 처먹고 모른다고 잡아떼는 거냐, 지금?”

“네?”

남자가 거듭 주변을 살폈다.

넓게 펼쳐진 거친 흙바닥, 그 흙바닥이 끝나는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와 차도들.

‘도심 안에 이런 황무지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준혁이 입을 열었다.

“잠실.”

“잠실?”

일전에 포럼을 열었다가 괴물들의 습격으로 완전히 황무지로 변한 잠실 종합운동장 부지였다.

잠시 기억을 떠올린 남자가 뒤늦게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아, 그곳. 그곳이군요.”

“하, 나 이 말아 먹을 개자식을 봤나…….”

“말씀은 품위있게 하셔야죠. 그나저나……. 내가 지금 꽤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광화문 광장에 있다가 갑자기 공간을 뛰어넘어 잠실 종합운동장 부지로 넘어왔으니 상식적인 일은 분명 아니었다.

“중간에 다른 풍경도 잠깐 봤던 걸 생각하면……. 환수가 한 일인 모양이군요.”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듯한 남자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편하지? 특급 익스프레스 서비스라고 생각해둬.”

“하하, 그렇습니까? 아, 이런! 인사를 하다가 말았군요. 반갑습니다, 김준혁 씨. 저는 으음……. 아, 그냥 ‘존 도우(John doe)’라고 불러주십시오.”

“허, 미친놈. 중2병이냐?”

존 도우(John Doe)는 신원불명인을 말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그럼 나는 아무개라고 불러라.”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무개’라고 쓸 수 있는 이름이었다.

“아, 그럴까요? 아무개 씨?”

“그러시든가요, 신원불명아.”

시큰둥하게 말을 하면서도 준혁은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환계를 몰라?’

이상했다.

방금 공간을 뛰어넘은 그 기술은 [도약]이라는 흑호의 스킬이었다.

[도약]은 현재 세계와 환계 사이에 통로를 열고 그사이를 오가는 기술이었다.

즉, 방금 전 흑호는 두 번의 [도약]을 통해 광화문에서 환계로 갔다가, 다시 환계에서 이곳 잠실로 건너온 것이었다.

‘린디웨가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인데…….’

배면계 시스템의 아바타인 린디웨는 분명 준혁을 향해 배면계 사상 최강의 엽사라고 말했었다.

처음 존 도우가 가진 힘을 느꼈을 때 준혁은 그 ‘사상 최강의 엽사’라는 말에 대해 의구심을 느꼈다.

존 도우가 가진 힘이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혼란스럽다.

‘환계를 모르는데 어떻게?’

준혁이 가진 [연환(聯幻)]은 환계의 환수와 계약을 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연환]은 ‘혼원급’에 올라야만 개방되는 스킬이었다.

다시 말해 존 도우의 등급은 아무리 높아도 혼원급의 아래인 ‘천강급’이었다.

그런데 준혁과 동등한 힘을 갖고 있으니 이해가 안 갈 수밖에.

‘겨우?’

천강급 주제에?

말이 안 됐다.

천강급의 기준은 모든 스탯이 999 이상이고, 혼원급의 기준은 모든 스탯이 1,500 이상이다.

즉, 놈의 각 스탯은 아무리 높아 봐야 1,499였다.

준혁과 비교한다면 각 스탯이 최소한 500, 스탯 총량은 2,500의 차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놈의 모든 스탯이 천강급 한계까지 성장했을 때의 이야기다.

어쩌면 500이 아닌 그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절대 메울 수 없는 간극이이었다.

그런데도 준혁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런 준혁의 생각을 눈치챈 건지 존 도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당황스러우십니까?”

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거리를 해 봐야 괜히 말려들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내가 김준혁인 건 어떻게 알았냐?”

말을 돌릴 생각으로 물었다.

실제로 준혁은 지금 매구탈을 이용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세상에 당신 정도의 영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랬군. 그런데 네가 무명회의 대장이냐?”

“흐음, 그것까지 알아내셨나요?”

“차근차근 알아가는 단계였지. 어때? 이번 기회에 서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는 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이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준혁의 무상곤이 가로막혔다.

존 도우의 손에 들린 것은 검붉은 색의 바스타드 소드였다.

준혁은 바스타드 소드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무상곤.’

모양과 색은 다르지만 저것 역시 무상곤일 터였다.

애초에 무상곤은 정해진 형태가 없는 물건이었다.

준혁이 최초의 형태를 육모방망이로 설정했기에 평상시에는 육모방방이 형태로 고정되는 것뿐이었다.

몸에 입고 있는 방어구도 준혁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일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면상 좀 보자!”

교묘한 궤적을 그린 무상곤이 존 도우의 턱을 향해 솟구쳤다.

쩌어엉-!

하지만 바스타드 소드의 저항에 막혀 닿지 못했다.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만?”

“너도 쓰고 있구나?”

“당연하지요. 함부로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존 도우도 준혁처럼 매구탈을 쓰고 얼굴을 바꾼 것이었다. 즉, 지금의 얼굴이 진짜 얼굴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럼 내가 손핸데?”

“저는 이득이지요.”

“아, 재수 없는 새끼!”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일까?”

되묻는 준혁의 입꼬리가 불쑥 말려 올라갔다.

존 도우의 두 눈에 의아함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쌍생상사(雙生相死)!”

쾅!

준혁의 주먹이 후려친 것은 땅바닥이었다. 정확하게는 존 도우의 그림자.

상황을 모르는 존 도우가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존 도우의 그림자는 온통 술법진으로 뒤덮인 후였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존 도우가 자신의 그림자와 준혁을 동시에 경게하며 물었다.

“아, 넌 아직 모르지?”

[쌍생상사] 역시 혼원급이 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술법이었다.

그리고 준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존 도우의 그림자가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하나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화려한 금발을 가진 40대 중반 백인 남자의 얼굴이었다.

존 도우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어렸다.

“아아, 너 저렇게 생겼구나?”

이어진 준혁의 말은 덤이었다.

[쌍생상사]는 상대의 그림자를 일으켜 양패구상 시키는 술법이었다.

그 그림자의 생김새가 상대의 진짜 모습이라는 건 덤이었다.

즉, 지금 그림자가 취하고 있는 40대 백인 남자의 얼굴이 존 도우의 진짜 얼굴이라는 뜻이었다.

많은 영력을 잡아먹는 데 비해 지속시간이 겨우 5분인 데다 괴물들에게는 사용도 못 한다는 큰 단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존 도우를 약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자, 이제 서로 비긴 거다, 그치?”

“큭!”

존 도우가 이를 악문 채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까아앙!

하지만 그림자 역시 칼 한 자루를 들어 막았다.

준혁도 가세했다.

캉, 카카카캉!

정신없이 들이치는 준혁과 그림자의 공격에 존 도우가 정신없이 밀려났다.

채 열 합도 지나지 않아 존 도우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상곤이 존 도우의 몸뚱이를 두드리는 횟수도 늘어났다.

“아, 아까 했던 얘기를 이어서 하자면 말이지…….”

빠악!

“너처럼 아무한테나 존대를 하는 인간들은 딱 둘 중 하나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존 도우는 휘몰아치는 준혁과 그림자의 공격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였다.

“진짜 모두를 존경하는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은 흔치 않지. 대부분은…….”

“천천!”

존 도우가 땅을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존 도우가 사용하는 스킬은 준혁은 물론 그림자도 사용할 수 있었다.

준혁과 그림자가 동시에 [천천]을 펼쳐 존 도우를 쫓아 올라갔다.

준혁이 순식간에 존 도우를 추월했다.

스탯의 차이는 [천천]을 포함한 모든 기술의 위력에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었다.

“……너처럼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놈들이지!”

아래로 내려친 무상곤이 존 도우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콰앙!

“컥!”

존 도우가 신음과 함께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하지만 아래에는 쫓아 올라오는 존 도우의 그림자가 있었다.

뭔가 기술을 쓰려는 듯 위로 뻗은 양손을 모으는 그림자의 모습.

“어?”

준혁의 입에서 김빠진 소리가 새어나왔다.

손을 들어 올린 그림자가 갑자기 멈칫했고, 그 사이 존 도우는 그림자의 곁을 스쳐 지나가버렸다.

‘뭐지?’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 순간 그림자가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유지 시간이 지난 탓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끼이이익!

무상곤을 활로 바꾼 준혁이 곧장 영력의 화살을 시위에 걸어 당겼다.

투웅, 쉐에에엑!

가볍게 시위를 떠난 화살이 세찬 바람을 안고 존 도우를 향해 날아갔다.

하나로 끝내지 않았다.

퉁, 투퉁!

연달아 세 개의 화살을 더 날렸다. 그것도 [추종시]의 기술까지 걸려 있는 화살이었다.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네 개의 영력 화살.

노리는 곳은 존 도우의 사지였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알아내야 할 것이 잔뜩 있으니 죽으면 오히려 준혁이 곤란했다.

준혁은 바닥을 향해 낙하하며 존 도우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네 개의 영력 화살이 동시에 존 도우의 사지에 틀어박히는 순간이었다.

쉬웅!

“엇!”

네 개의 화살이 존 도우의 사지를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관통이 아니었다.

화살이 관통했다면 피라도 뿜어져냐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준혁이 노린 것도 관통이 아니라 사지에 화살을 박아 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통한 것도 아니고 그대로 통과하다니.

‘뭐지?’

준혁이 당황하는 사이 존 도우가 빠르게 자세를 고치며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준혁 또한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며 바닥을 밟았다.

“너 뭐가 좀 이상한 거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뭐냐, 그거?”

“에이, 그렇게 빨리 비밀을 밝히면 곤란하죠.”

“하! 이 새끼, 주둥이만 살아서 한 마디도 안 지네?”

“일단 싸움을 걸었으면 이기는 게 당연하지요. 그럼 2라운드 들어갈까요?”

“그래 이제 입 닫고 제대로 붙어 보자 아무개새끼야!”

외침과 동시에 준혁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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