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95화 (9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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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장. 낯선 상황#1-

“나는 이거!”

“저는 이 방법을 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여섯 번째?”

마법사들의 훈련실이 때 아닌 소란으로 가득 찼다.

각자의 개인 훈련실이 아닌, 로비 같은 공동 공간에 30여 명의 마법사가 모여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강이찬이 있었다.

“형님, 누님들! 너무 빨라요!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절규하듯 외치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단순히 즐거운 수준이 아니다. 비명, 행복한 비명이었다.

낮인데도 실시간 시청자가 20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헌터들이 접속했기 때문이다.

혼원 길드에서 ITO를 통해 내놓은 교본 영상은 육체 계열 헌터를 위한 것이었고, 마법사를 위한 영상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세계에 있는 모든 마법사가 강이찬의 방송으로 몰려온 것이었다.

강이찬이 실수를 깨닫고 방송을 재개한 지 하루 만에 만들어진 극적인 변화였다.

급하게 동시 통역사를 3명이나 고용해, 방송에 실시간으로 영어 자막까지 깔고 있었다.

채팅창을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자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 모든 언어에 대응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영어로만 자막을 깔았다.

“죄송하지만 여기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독일어, 줄루어까지입니다.”

중국어는 유민섭이 가능했고, 줄루어는 린디웨의 모국어였다.

나머지 언어들은 팀 히어로에서 온 헌터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자, 각자 10가지씩 정해졌으니 이제부터 확인을 하시죠! 자기가 낸 아이디어 잘 기억하고 계세요. 캡처 잊지 마시고!”

쓸 만한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경품도 내걸었다.

혼원 길드 트레이닝 참가권 혹은 한정판 슈퍼 카였다.

이 모든 것이 강이찬의 실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첫 계기는 폭발에서부터였다.

위험천만한 짓을 벌인 강이찬은 진짜 죽을 뻔했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혼원 길드의 보안팀이 들이닥치고, 인근 훈련실에 있던 장민호가 달려오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목숨이었다.

‘목숨 걸고 미친 짓 하기는 했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괜찮겠는데요?’

강이찬의 방송 내용을 알게 된 유민섭의 반응이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 모두 모여서 같이 하면 훨씬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을까요?’

홀로 명상만 하는 것이 힘들었던 다른 마법사, 사제들이 기다렸다는 듯 동참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쏟아지는 아이디어 중 한 사람당 10개씩 뽑아서 테스트를 하고, 효과가 없으면 다시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괜찮네.’

린디웨는 마법사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린디웨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시스템의 아바타가 되기 전의 린디웨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켜보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노린 건가?’

마법사 트레이닝을 시작할 당시, 준혁은 유민섭과 린디웨에게 강이찬이 무언가 한다면 그대로 따라 주라는 말을 했었다.

어쩌면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정도면 신경 꺼도 되겠네.’

생각을 마친 린디웨는 방향을 돌려 마법사들의 트레이닝 룸을 빠져나갔다.

“여어.”

문을 열고 나서니 준혁이 린디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왔네?”

“안은 어때?”

“잘하고 있는 듯?”

“잘됐네. 그럼 이제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지?”

하지만 린디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혼자 해도 되잖아?”

준혁은 멈칫한 표정으로 린디웨를 보았다.

“갑자기 뭐냐?”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일은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럼 됐어.”

“근데 혼자 하면 번거롭…….”

“안 돼.”

단호한 린디웨의 말에, 준혁은 더는 같이 갈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린디웨의 얼굴에서 뭔가 심각한 기류를 읽었기 때문이다.

“오래 걸려?”

“아마 그럴 거 같아.”

“흐음.”

린디웨는 일반 사람이 아닌 배면계 시스템의 아바타였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기에 저러는 것일 터.

하지만 불쑥 치솟는 궁금증을 참기가 어려웠다.

“무슨 일인데?”

잠시 묘한 표정을 지은 린디웨가 이내 입을 열었다.

“선물 준비.”

“선물?”

“그런 게 있어. 더는 못 알려 줘.”

“허!”

준혁이 실성을 흘리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궁금증을 해결하려다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하지만 린디웨의 태도를 보니 물어도 답해 줄 분위기는 아니었다.

“선물이라. 기대해도 되냐?”

“흐흐, 물론이지.”

“오케이. 그럼 술석이나 줘.”

린디웨가 작은 가방 하나를 건넸고, 준혁은 그 안에 든 술석들을 도깨비 보따리에 집어넣었다.

‘백효라도 불러서 데리고 다녀야겠네.’

혼자 해도 되지만, 빠른 처리를 위해서 누군가의 서포트는 필요했다. 현재 준혁에게는 드론 역할을 할 수 있는 백효가 제격이었다.

“그럼 수고.”

인사를 한 준혁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준혁 씨!”

갑자기 유민섭이 밖으로 튀어나와 준혁을 불렀다.

“예, 길드장님.”

“내일 그거 안 잊으셨죠?”

“그거? 라일 사무총장?”

“네. 기억하고 있었네요?”

“뭡니까, 그 의외라는 반응은?”

“한 인물에 대한 타인의 반응은, 그 인물이 지금까지 쌓아 온 역사에 대한 평가와 같죠.”

“흠, 그걸 다른 말로 선입견이라고 하죠. 인간이 가지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가지는 거죠.”

“가끔은 주변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건 어디까지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평가일 때의 이야기죠. 내가 괜히 선입견이라고 말한 건 아닙니다만?”

“하아!”

결국 유민섭이 한숨을 푹 쉬며 항복을 선언했다.

늘 반복된 패턴이다.

“훈련은 어떻습니까?”

“일단은 이찬 씨를 중심으로 해 보고 있어요. 하다 보면 결과가 나오겠죠.”

“그럼 열심히 하세요.”

“장소는 기억하시죠?”

“물론……. 아, 차 좀 빌려 줘요.”

당당하게 내민 준혁의 손을 보며 유민섭이 물었다.

“차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없더라고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살 생각이 없는 거겠지. 그 많은 돈 쌓아 뒀다 뭐 하시려고?”

유민섭은 꼬박꼬박 준혁의 이나(I.N.A) 계좌에 정산을 해 주고 있었다.

물론 직접 하는 것이 아니니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었지만, 못해도 100억 가까이 정산되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활동을 게이트 돔 공략에 집중한 걸 생각하면 꽤 많은 돈이었다.

미국이 끼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흠, 어쩌다 보니 쌓아 놓은 거죠.”

“좀 써요, 써.”

“뭐, 때 되면…….”

“내가 딜러 소개해 줄까요?”

“아뇨.”

준혁은 단호한 거절과 함께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그 위에 자동차 키와 유민섭의 한숨이 함께 얹혔다.

자동차 열쇠에는 황금색의 성난 황소 1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

준혁이 응접실에 앉아 휴대폰에 저장해 둔 명단을 살피고 있었다.

린디웨가 뽑아 놓은 배면계 출신 귀환자 명단이었다.

대한민국에 있는 귀환자는 준혁을 제외하고 모두 17명이었다.

사망자를 제외한 숫자인데도 꽤 많았다.

배면계에 강제 소환당하고, 그곳에서 임무를 마치고 제대로 귀환할 확률을 따진다면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은근 전투 민족일세?’

머릿속으로 실없는 농담을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어 보인 준혁은 다시 명단에 집중했다.

모두 다 찾은 건 아니었다.

사람이 사라졌다고 해서 무조건 실종 신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넘어가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런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는 가정하에 본다면, 파악하지 못한 이는 많아 봐야 대여섯 명 정도일 것이다.

파악된 귀환자 17명 중 1명은 이미 비밀 장소에 감금된 상태고, 남은 귀환자는 16명이었다.

다시 이 16명 중에서 소재가 파악된 사람이 12명, 나머지 4명은 소재가 불명확했다.

물론 이 자세한 신상정보는 장형준에게 소개받았던 그 경찰을 통해서 얻었다.

‘일단 서울에 9명. 이쪽부터 차근차근…….’

그때 노크와 함께 응접실 문이 열리고 볼런트 라일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음…….”

볼런트 라일이 미간을 찡그리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준혁이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배면계 출신 각성자들의 데이터 수집을 위해서였다.

ITO에서 각성자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는 국제 각성자 기구, ITO의 설립 배경에 ‘BR 코퍼레이션’이 있기 때문이었다.

BR 코퍼레이션은 던전 감지기, 던전 에너지 측정기, 레이드 시뮬레이션, 각성 계측기 등을 개발한 회사였다.

BR 코퍼레이션은 앞서 언급한 장치들 외에도 던전 부산물을 이용한 신소재 개발과 던전 내 생존을 위한 마나 장치 개발 등에도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업체였다.

그러니 배면계 출신 각성자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BR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자 수석 연구원이 지금 준혁과 한 공간에 있는 볼런트 라일이었다.

사명인 ‘BR’이 볼런트 라일의 이니셜이었던 것이다.

또한 ITO가 실권이 없음에도 전 세계의 각성자들에게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이유 또한 BR 코퍼레이션이 배경에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의미한 반응은 나오지 않는군요. 다음에 조금 더 준비해서 모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 말씀하십시오.”

“배면계의 등급 중 율지급이 S급이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그 위로 지천, 외천, 천원, 천강, 마지막으로 김준혁 헌터의 혼원급 맞습니까?”

“네.”

“흐음…….”

볼런트 라일이 버릇인 듯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그러시죠?”

“아, ITO에서 새롭게 등급 기준을 지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명칭이 조금 고민이라서요.”

“그렇군요.”

“뭐, 김준혁 헌터에게 묻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지금 ITO 내부에서 나온 가장 유력한 안은 현재의 S급은 그대로 유지, 최유나 헌터부터 S1, S2, S3로 숫자를 붙여 나누는 것입니다. 어떨 것 같습니까?”

“나쁘지 않겠는데요?”

배면계의 등급은 단어로 표현하기에 이래저래 헷갈리는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반면, ITO의 안은 숫자만 보면 되니 훨씬 직관적이고, 굳이 외울 필요도 없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김준혁 헌터의 등급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은 등급이라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만?”

“흐음… 천강급을 S4급으로 지정하고, 김준혁 헌터의 혼원급은 뭔가 상징적인 면이 있으니 단순 숫자가 아닌 새로운 등급으로 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뭐, 그거야 ITO에서 알아서 하실 일이죠.”

“하하!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X급 어떻습니까?”

볼런트 라일의 말에 준혁이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어째 중2병 느낌이…….’

S급도 그런 느낌이 없는 게 아닌데도 이상하게 X급이라고 하니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던전 시스템의 각성자 등급이기 때문이었다.

“ITO에서 알아서 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좀 더 준비해서 청하겠습니다. 그때 한 번 더 검사에 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잠깐의 한담 후 용건을 마친 준혁은 바쁜 걸음으로 ITO 한국 지부를 나섰다.

이제야말로 진짜 해야 할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서울 내부부터 한 번 훑고…….’

그렇게 막 ITO 한국 지부 현관을 나서던 중, 준혁이 갑자기 오른쪽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나오던 걸음 그대로 자연스레 발을 옮기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백효.

준혁의 부름에, 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 백효가 미세한 자극을 보내 준혁에게 반응을 보였다.

-시야 공유.

준혁의 시야에 반투명한 영상이 겹쳐 떠올랐다.

하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백효의 눈에 펼쳐진 광경이었다.

순간, 준혁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의 모습.

순간, 준혁의 얼굴에 묵직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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