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94화 (94/240)

-094-

-34장. 트레이닝#3-

‘죽겠네.’

흔히 지치고 힘들 때 관용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양태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진짜 죽는다!’

이곳에 있는 헌터 중 D급은 양태군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S급, A급이었다. 심지어 S급의 벽을 넘은 최유나와 그보다 강한 리쉬옌, 그리고 지구 최강인 준혁까지 있는 곳이었다.

그런 헌터들이 쉴 새 없이 무기를 휘두르고 처맞고 날아다녔다.

그 틈바구니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건 절대 과대망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당장 이곳을 나가야 했다.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양태군은 갈등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가면 미래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준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끙!”

양태군은 앓는 소리와 함께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의 신경이 당장 쓰러지라고 뇌를 향해 단체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인데 희한하게 몸은 잘도 움직인다.

준혁이 S급과 A급을 쥐어 패는 사이에 단 1명 존재하는 D급을 패면서 기가 막히게 힘 조절을 한다는 뜻이다.

“후!”

짧게 숨을 고른 양태군이 준혁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는 중에도 양태군은 숙제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최유나를 통해 들은, 마나가 통하는 길을 떠올렸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다.

전력으로 준혁에게 달려들면서 자신의 내부까지 관조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등급과 무관하게, 양태군이 가진 뛰어난 리딩 능력과 관계가 있었다.

항상 모든 상황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세세한 컨트롤을 진행할 수 있기에, 이렇게 2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도 가능했다.

쩍, 쩌억!

앞서 달려간 2명의 헌터가 여지없이 튕겨 날아가고, 마침내 양태군의 차례가 되었다.

어차피 처맞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단순히 맞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맞을 것인가?

이미 수십 번 처맞으며 갖가지 방법을 써 봤다.

회피는 기본이었다. 비껴 맞기, 흘리기, 타점 이동 등등 안 해 본 것이 없다.

제대로 하지 않았나 싶어 같은 방법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준혁의 무상곤은 악마의 몽둥이였다. 어떤 방법을 써도 귀신같이 정확한 타격이 들어왔다.

으득!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제대로 맞기’다.

날아오는 몽둥이의 궤적이 정확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절대 피하거나 흘리는 게 안 되는 저 몽둥이질은 정말이지 신비로웠다.

양태군은 부릅뜬 두 눈으로 몽둥이를 노려보았다.

어차피 맞아도 죽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숙지하고 있는 마나의 길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깔끔한 궤적을 그린 몽둥이가 마침내 양태군의 복부를 후려쳤다.

뻐억-!

양태군은 통렬한 타격음을 끌어안은 채 어마어마한 속도로 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신음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통증이 온몸을 두드리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것이 양태군의 뇌리를 때렸다.

‘이, 이건!’

준혁에게 맞은 복부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착각이 아니다. 뜨겁고도 시원한 무언가가 몸속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가는 느낌.

‘설마 이게…….’

마나?

그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양태군은 화들짝 놀라 질끈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한다. 모든 생각과 신경을 조금 전의 그 생경한 감각을 떠올리는 데 할애한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느껴지는 것이 없다.

다급하게 직전의 상황을 되짚은 양태군이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마나를 느끼게 할 만한 상황은 하나밖에 없었다.

준혁에게 처맞은 그 순간이었다.

‘제길!’

또 처맞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제대로 처맞아야 했다.

“후!”

짧게 숨을 끊는 동시에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 감각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준혁과 눈이 마주쳤다.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시커먼 몽둥이.

선연하게 그려지는 묵색의 궤적이 향한 곳은 얼굴이었다.

덜컥 겁부터 났다. 뇌리에 각인된 선명한 고통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 했다.

으득!

이를 악물었다.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붙잡아야 했다.

양태군은 날아드는 몽둥이를 보면서도 모든 신경을 자신의 몸속에 끌어 모았다.

최유나가 일러 주었던 마나의 길. 얼굴 쪽으로 뻗어 가는 그 길을 머릿속에 그렸다.

쩌억!

찰진 타격음과 동시에 양태군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벽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양태군은 뼈가 으깨지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다!’

확실히 느꼈다.

마치 혈관처럼 몸속의 길을 따라 거대한 강물과 같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기류가 있었다.

쿠웅-!

벽에 처박힌 충격에 등판이 뻐근해졌지만, 양태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 느낌을 잊지 않는 것.

제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살짝 꼬리 끝만 보인 후 다시 숨어 버린 마나라는 환상의 실체를 잡아야 했다.

그런 양태군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다.

준혁이었다.

‘뭐지?’

준혁은 훈련받는 헌터들 각각의 수준에 맞춰 힘을 조절했다.

양태군에게는 당연히 D급 수준에 맞게 무상곤을 휘둘렀다.

그런데 방금 양태군을 후려쳤을 때 손으로 되돌아온 감각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정확하게 휘두른 만큼 손으로 되돌아온 힘의 무게.

두 번 연속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어떻게든 피하고 막아 보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유일하게 D급 헌터 양태군이 자신의 구타를 오롯이 받아내려 했다.

이는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준혁으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예감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일어서는 양태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의왼데?’

훈련받는 헌터 중에서 가장 약한 양태군이 가장 먼저 어떤 단서를 잡았다.

쉬이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당연한 건가?’

어쩌면 게임의 레벨 업과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게임을 해 보면 그렇다.

1레벨이 레벨을 올리는 것과 30레벨이 레벨을 올리는 데 필요한 경험치는 현저히 다르다.

‘어쨌든 축하는 해 줘야지.’

마음을 먹은 준혁이 곧장 방향을 비틀며 외쳤다.

“최유나!”

“네!”

“교대!”

준혁은 부름과 동시에 득달같이 달려오는 최유나에게 짧게 말을 던지는 동시에 양태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른 헌터들은 최유나에게 맡기고, 준혁이 양태군을 전담하기 위해서였다.

그때까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양태군의 얼굴에 기겁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준혁은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지금부터 맨투맨.”

최유나는 아직 힘 조절이 미숙했다. S급의 벽을 넘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이다.

S급, A급이라면 어느 정도 실수해도 버틸 수 있지만, D급인 양태군을 상대로 실수하면 송장을 치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힘 조절에 능한 준혁이 양태군을 전담하는 것이 옳았다.

준혁은 무상곤을 갈무리하고 직접 손을 날렸다.

양태군의 상태에 맞춰 좀 더 미세하게 힘 조절을 하기 위해서였다.

퍽!

‘조금 강하게.’

빠아악!

‘너무 강해. 약하게.’

빡!

손을 타고 선명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동시에 쉴 새 없는 타격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양태군은 말 그대로 인간 샌드백과 같은 상태였다.

넘어지지도 못한 채 쏟아지는 준혁의 손을 하릴없이 온몸으로 받아 냈다.

그런데 양태군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움보다는 희열이 떠올라 있었다.

‘이거다!’

준혁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아스라하던 그 감각이 선연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조금만 더!’

빠바바박!

쉴 새 없이 고개가 돌아가고, 온몸이 뒤흔들렸다.

통증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본능은 당장 드러누우라고 악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양태군의 이성은, 그리고 욕망은 처절하게 본능의 명령을 거부했다.

이제 곧 닿을 것 같다.

준혁의 주먹에 맞을 때마다 타격점에서부터 아랫배로 이어지는 선명한 마나의 길이 느껴지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준혁은 온몸을 골고루 두드렸고, 양태군은 끊임없이 그 길을 뇌리에 각인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양태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과 동시에 뻗어 가던 준혁의 주먹이 양태군의 복부 앞에서 멈췄다.

‘왔다.’

양태군의 탄성은 어떤 깨달음, 혹은 희열을 가득 품고 있었다.

“최유나, 멈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자비한 최유나의 주먹질이 멎었다.

직전에 최유나에게 맞아 양태군을 향해 날아가던 헌터가 있었으나, 준혁의 손길에 저만치 튕겨 날아갔다.

모두의 시선이 준혁에게로 향했다. 그다음은 준혁 너머에 있는 양태군에게로 모였다.

트레이닝 룸이 삽시간에 침묵에 휩싸였고, 헌터들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설마?’

‘D급 아니었나?’

‘우리보다 빨리?’

‘그럴 리가?’

불신, 혹은 질투심.

헌터들의 싸늘한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양태군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모든 신경을 오로지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는 데 할애하고 있었다.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몸속의 마나 흐름이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아랫배에서 시작한 흐름은 그의 몸속에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띠를 그리며 순환하고 있었다.

척추를 타고 올라가 정수리를 돌아 몸 전면의 중심선을 타고 다시 아랫배로 되돌아왔다.

허리를 한 바퀴 휘도는 띠가 있는가 하면, 사지로 뻗었다가 되돌아오는 띠도 있었다.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되돌아오는 길이 없기에 몸 밖으로 마나가 새어 나가는 길도 있었다.

‘심장?’

문득 양태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동맥과 경맥…….’

마치 몸속에 또 하나의 순환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랫배에 마나가 차 있는 공간을 심장으로 삼고, 순환하는 여러 개의 띠가 동맥과 경맥이 되며, 기운이 배출되는 경로가 모세혈관의 역할을 하는 듯했다.

‘이것이 마나……. 어, 어어!’

몸속의 마나 지도를 완벽하게 파악한 그 순간이었다.

아랫배에 뭉쳐 있는 마나 덩어리가 강렬하게 소용돌이치더니 마나의 흐름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이, 이건 뭐지?’

위험한 게 아닐까?

덜컥 겁을 집어먹은 양태군은 황급히 마나의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생각을 집중하면 마나의 흐름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준혁과 최유나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몸속의 마나는 양태군의 바람을 가볍게 무시했다.

아니, 생각을 집중하면 할수록 마나의 흐름은 더욱 급해졌다.

뭔가 잘못된 것일까?

등급이 낮아 안 되는 것일까?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엄습해 올 때였다.

“그냥 지켜봐! 흐름에 순응해!”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양태군의 정신을 일깨우는 준혁의 목소리.

애써 불안한 생각을 내리누른 양태군은 어린아이처럼 준혁의 말에 따랐다.

그저 지켜보았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 한층 세세하게 마나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는 신경을 집중하지 않아도 마나의 흐름이 완전히 인지되기 시작했다.

마치 숨을 쉬는 듯 자연스러운 느낌.

그와 함께 또 하나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몸속의 마나가 생성되는 메커니즘이 이해가 되었다.

‘호흡.’

숨을 타고 들어온 어떤 에너지가 몸속에서 걸러지면서 순수한 마나가 되고, 그것이 아랫배의 한 지점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양태군이 모든 것을 이해한 순간, 마침내 변화가 찾아왔다.

마나의 길이 직전보다 한층 넓어졌다. 2차로였던 차선이 갑자기 4차선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길을 타고 흐르는 마나의 양은 늘어났고, 그에 호응하는 것인지 아랫배의 마나가 쌓이는 공간도 한층 커졌다.

‘이거 설마!’

양태군이 번쩍 눈을 떴다. 급한 마음에 상태창부터 열었다.

[상태창]

양태군

클래스:전사

근력:[132] 순발력:[79]

지구력:[99] 감각:[87]

마나:[73]

스킬

[지구력 증폭], [근력 증폭], [목줄 걸기], [쉴드 타워], [방패 나누기], [성벽 쌓기], [와일드 대시], [브로큰 스매시]

“B급!”

머릿속 생각이 저절로 목소리가 되어 튀어나왔다.

“축하합니다.”

지금까지 반말로 훈련시키던 준혁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정중하게 축하를 전했다.

“이,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D급에서 B급으로 단숨에 두 등급이 올랐다. 양태군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런 양태군의 기쁨에 공감해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의지대로 마나를 움직일 수 있습니까?”

준혁의 말에 양태군이 빠르게 의식을 집중했다.

이제는 굳이 관조하지 않아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마나의 길을 더듬어, 아랫배에 쌓인 마나에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양태군은 이내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안 되나요?”

“안 되는군요.”

“최소 A급, 어쩌면 S급은 되어야 마나를 제어하는 게 가능해지는 모양이군요. 양태군 씨는 이제부터 명상을 하면서 그 마나를 조종하는 법을 익혀 보세요. 방법은 최유나에게 들으면 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준혁이 양태군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준 후, 곧장 뒤로 돌았다.

훈련받던 헌터들의 시선이 모두 준혁에게로 쏠렸다.

이글거리는 열의로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듯 준혁을 바라보는 시선들.

“최유나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훈련해.”

그 말을 끝으로 준혁은 트레이닝 룸을 벗어났다.

준혁이 나오고 문이 닫히는 순간, 트레이닝 룸 안에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어떻게 한 겁니까?”

“마나, 마나는 무슨 느낌이죠?”

“와! 단숨에 두 등급이나 올랐다고?”

“방법을 알려 줘요, 당장! 현기증 날 거 같습니다!”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가 양태군에게 질문을 던져 댔다.

엄한 조교가 있고, 자극이 되어 줄 결과물도 나왔다.

무엇보다 자극으로 인해 촉발된 열의가 넘쳐났다.

이제는 더 이상 준혁이 붙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