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93화 (93/240)

-093-

-34장. 트레이닝#2-

빠악, 쾅!

“악!”

준혁의 형체가 흐릿하게 변한다 싶은 순간, 헌터 1명이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육모방망이의 모서리에 살갗이 찢어졌다.

터져 나온 핏방울이 분무한 듯 허공에 안개처럼 뿌옇게 모였다가 사그라졌다.

“끄윽! 이게 무슨 짓입니까?”

벽에 처박혔던 헌터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헌터는 이마가 찢어져 얼굴에 피가 낭자한 모습이었다.

살갗이 찢어진 가벼운 상처였지만, 비주얼만큼은 다른 헌터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준혁은 헌터의 항의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입에 담았다.

“지금 이 시간부로 기본기가 흐트러지면 강제 퇴장한다. 스킬을 사용해도 마찬가지.”

스산하게 울려 퍼지는 준혁의 목소리에 헌터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온몸을 덮치는 섬뜩한 기운에 헌터들이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다고 느끼는 순간, 준혁의 모습이 또 한 번 흐릿하게 변했다.

빠악, 빠악, 빠악!

박자를 맞추듯 일정한 간격으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타격음과 타격음 사이로 끼어드는 것은 헌터들이 온몸으로 벽을 들이받으면서 나는 소리였다.

“으악!”

“크억!”

엇박자로 쉴 새 없이 비명도 끼어들었다.

“더, 덤벼!”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개런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왼손에 든 타워 쉴드로 정면을 단단하게 받친 채 탱크처럼 준혁을 향해 돌진했다.

ITO를 통해 공개한 강의 영상의 기본기를 정확히 지키는 자세였다.

호쾌하게 달려들었고, 충돌 직전에 오른손에 든 배틀 액스를 불끈 쥐었다.

‘흡!’

하지만 개런의 방패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후려쳤다.

익숙지 않은 동작에 중심이 단번에 흐트러졌다.

풀려 버린 무릎에 바짝 힘을 주고, 발목으로 버티려는 순간.

거대한 충격이 개런의 등판을 두드렸다.

빠아악!

척추를 그대로 부러트리는 듯한 충격에 온몸의 신경이 저릿하게 울렸다.

원치 않는데도 몸뚱이가 쾌속하게 벽을 향해 돌격했다.

사지를 움직여 벽을 밀며 버텨 보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마비된 온몸은 뇌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꽝!

그대로 벽에 처박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개런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

그리고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벽에 처박히기 직전까지는 분명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땅에 떨어지는 동시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이거 설마……?’

준혁의 의도였다.

벽에 처박혔다가 일어나면 몸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딱 그 정도로만 팼다.

그 대신.

빠드드득!

개런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아붙였다.

아팠다.

그것도 더럽게 아팠다.

얻어맞은 등판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만큼 아팠다.

이 역시 준혁의 의도였다.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치명상은 없고, 사지 또한 멀쩡하게 움직이는 구타였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현상이지만, 준혁의 매운 몽둥이질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빠악, 쾅!

“크악!”

지금도 헌터들이 쉴 새 없이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벌떡 일어섰다.

헌터들은 매운맛을 한 번 보고는 감히 덤비지 못하고 주춤주춤 준혁과 거리를 벌렸다.

물론 그 역시 소용없었다.

오지 않으면 찾아가니까.

앞쪽 벽에서 뒤쪽 벽으로, 왼쪽 벽에서 오른쪽 벽으로.

30여 명의 헌터들이 30여 개의 공이 된 듯 쉴 새 없이 벽을 두드려 댔다.

그 무지막지한 폭력을 펼치는 중에도 준혁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게 만들어야지.’

준혁도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매우’ 어려운 사람을 상대하다가 ‘조금’ 어려운 사람을 상대하면 만만하게 느껴진다.

설명을 해 주고 방법을 알려 주어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말이 안 된다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의 당연한 심리가 뒤섞여 최유나를 몰아붙였을 것이다.

혹독하게 굴린 일에 대한 소소한 복수도 겸해서.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해만 할 뿐이었다.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빠아악!

무상곤의 타격에 강태웅의 턱이 세차게 돌아갔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후려친 힘을 이기지 못한 강태웅의 턱이 돌고, 그에 따라 목이 비틀렸고, 그 힘에 몸뚱이까지 돌았다.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며 허공을 날았고, 이번에도 기어이 벽에 처박혔다.

“끄억!”

당연하게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섬뜩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솟구쳤다.

약간이었다.

솜털을 들어 올릴 정도로 미약하기 짝이 없는 ‘약간’의 힘.

저 거무튀튀한 몽둥이에 그 정도 힘만 더 실렸으면 필시 목이 완전히 돌아갔을 것이다.

S급인 그의 몸뚱이는 그것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머릿속에 절로 드는 생각.

그 순간에도 비명은 쉴 새 없이 트레이닝 룸 안에 메아리쳤다.

쿵!

안면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뒤통수가 천장을 부술 듯이 후려쳤다.

S급, A급의 몸뚱이였다.

안면으로 바닥을 내리쳤으면 바닥에 구덩이가 패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콧구멍으로 2개의 핏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말이 되는가?

안 된다. 절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끊임없는 구타였다.

31명의 헌터가 모두 공평하게 여섯 번씩을 처박혔다.

머리가 깨지고, 코뼈가 주저앉았으며, 온몸의 근육이 터졌다.

바닥은 물론 사방의 벽과 천장까지 온통 시뻘건 피가 낭자했다.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헌터들의 모습을 보는 준혁의 눈에는 일말의 감정도 스며 있지 않았다.

어차피 포션 1병이면 말끔해질 몸뚱이였다.

중요한 건 훈련을 받는 것.

“최유나.”

준혁의 부름에, 한쪽 구석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최유나가 반응했다.

“네!”

“잘 보고 있지?”

“네!”

“훈련을 이렇게 시키는 거야.”

“네!”

“이대로 따라 할 수 있겠어?”

준혁의 물음에 헌터들이 표정으로 되물었다.

따라 해? 뭘?

그리고 절망적인 대답이 나왔다.

“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힘 조절 잘해라. 힘 조절 조금만 잘못하면 그대로 뒈지니까.”

누가?

간담이 서늘해졌다.

다들 이미 여섯 번씩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양태군을 제외한 30명의 헌터들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준혁의 몽둥이에 아주 약간의 힘만 더 들어갔으면 자신들은 벌써 요단강변에서 정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최유나에게 시킨다고?

준혁은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헌터들에게 말했다.

“진짜 전력을 다해라. 유나 쟤, 아직 힘 조절이 미숙하다.”

어설프게 배운 놈이 제일 무서운 법이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하자.”

끝난 게 아니었나?

모두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헌터들의 마음 따위는 준혁이 알 바 아니었다.

빠아악, 쾅!

“끄악!”

몽둥이 소리도, 벽을 두드리는 소리도, 비명도 이보다 더 찰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비명이 메아리치는 방 안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워낙 아수라장이라 그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준혁과 최유나, 두 사람밖에 없었다.

문제의 새 인물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와, 우와!”

첫 번째는 감탄이었다. 연거푸 다섯 번의 감탄 이후 본격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청자님들, 지금 이 장면 보고 계십니까? 솔직히 안 보이죠? 네? 잘 보인다고요? 아니, 제 말을 이해 못하셨네.”

강이찬이었다.

스마트폰에 카메라까지 연결해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저도 헌터들이 벽에 처박히는 건 잘 보입니다. 제가 보이냐고 물은 건 흑태자 님의 움직임을 말한 겁니다. 어떻게 패는지 안 보이시죠?”

말 그대로였다. 잠깐잠깐 멈춰 설 때는 보이는데, 정작 헌터들을 후려쳐 날리는 광경은 도저히 눈으로 좇을 수가 없었다.

“크아! 프레임조차 따돌리는 이 움직임. 이게 바로 흑태자 님입니다. 찬양하세요! 저부터 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카메라를 바닥에 놓고 아예 넙죽 절까지 올렸다.

<ㅋㅋㅋㅋ, 강이찬 이 또라이.>

<차니 방송 갑자기 급 재밌어짐.>

<이래야 강이찬이지.>

<이찬중독자 님이 풍선 300개를 후원하였습니다.>

연달아 후원이 터져 나왔다.

세계에서도 이름 높은 S급, A급 헌터들이 처맞는 광경을 보면서 절을 하는 강이찬은 또라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했다.

괜히 자낳킹이 아니었다.

“나가-!”

“당장 방송 꺼!”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헌터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정신없이 처맞고,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것만큼은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그런데 준혁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중 안 하네? 방송 같은 데 신경 쓸 여유씩이나 있네?”

흠칫!

소리치던 헌터들이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었다.

“강이찬 방송에 단 한 마디라도 하는 놈도 강제 퇴장이다.”

헌터들의 얼굴이 한층 딱딱하게 굳어 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말이 이어졌다.

“여유가 있어 보이니 템포 좀 올려 볼까?”

쩌어어억!

몽둥이와 인간의 몸뚱이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소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강이찬은 열성적으로 외쳤다.

“역시 흑태자 님! 배우신 분, 방송을 아시는 분! 또 한 번 찬양!”

강이찬의 무릎이 그대로 바닥을 쿵 찍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보며 공언하듯 외쳤다.

“흑태자 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훈련이 끝날 때까지 절을 올리겠나이다!”

또 한 번 무수한 풍선이 하늘을 뒤덮었다.

***

“하아! 어떻습니까? 역시 방송은 이런 맛 아니겠습니까?”

불과 몇 시간 만에 눈빛마저 바뀐 강이찬이었다.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강이찬의 정체성, 자낳킹의 본모습이었다.

강이찬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스마트폰에서 노트북으로 방송 화면을 바꿨다.

그리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아 곧장 방송을 이어 갔다.

“자자, 그럼 이제부터 다시 아이디어를 내 주세요. 이 강이찬, 목숨 걸고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호언장담하는 강이찬의 눈빛은 태양보다 뜨겁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이디어.

지금 마법사들이 각자 개인 훈련실에서 명상과 스킬 사용을 쉴 새 없이 반복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육체 계열과는 다를 것이라 예상되는 마법사들의 마나 움직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강이찬은 그것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려 하고 있었다.

방금 말한 아이디어는 바로 그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마나라는 것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을까?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채팅창에 무수히 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목숨 걸고 하겠다고는 했지만, 인간적으로 몸이 하나인 강이찬이 그 많은 아이디어를 모두 수행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이던 강이찬이 급히 무언가를 읽었다.

“아, ‘파이어볼’ 님의 의견입니다. 양손을 마주 대고 공격용 마법 사용. 음? 괜찮겠는데요?”

진심이었다.

아주 위험할 것 같았다. 아니, 미친 짓이었다.

이는 자신의 손에 대고 마법을 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낳킹이라면 응당 해 주어야 할 일이었다.

최근에는 흑태자를 따라다니느라 정도가 약해졌지만, 원래 강이찬은 스트리머들 중에서도 또라이로 유명했다.

관종 of 관종. 그렇기에 자낳킹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방송을 했었다.

그나마 강이찬이 욕을 먹지 않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였다.

보통 사람, 특히 어린아이들이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미친 짓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하려는 것 또한 강이찬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게 필요했다.

화제성.

특히 헌터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화제성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보다 많은 헌터들이 방송을 보도록 만들 수 있다.

그것을 통해 강이찬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는 2가지였다.

하나는 마법에 대해 아는 헌터들을 통해 진짜 효과가 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보다 많은 헌터들에게 지금의 훈련을 알리고 싶어 하는 준혁의 바람을 이루는 것이다.

“후우!”

크게 호흡을 머금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한다.

‘걱정하지 말자.’

어차피 이곳은 무훈 길드의 사옥 안이다.

포션이 상비약으로 쌓여 있는 곳이다. 함께 훈련하는 헌터들 중에는 사제 클래스도 있다.

그러니 죽지는 않으리라.

“알겠습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인 강이찬이 합장을 하듯 양 손바닥을 마주 댔다.

잠시 쉬다가 재개하는 상황이니, 첫 번째는 간 보는 거 없이 곧장 시행했다.

“파이어볼!”

콰앙-!

거대한 폭발이 강이찬의 방을 가득 메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