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92화 (9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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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장. 트레이닝#1-

‘이러면 안 되는데…….’

강이찬은 울상을 지으며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실시간 시청자 수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이찬아, 이건 좀 아니다.>

<재미없다.>

<돈 벌기 쉽네.>

<끝나면 그때 보자.>

<차니 오빠 너무 욕하지 마시죠.>

<넌 저게 재밌냐?>

<아니,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됐다. 재미없으면 안 보면 되지.>

채팅창에는 온통 강이찬을 성토하는 내용뿐이었다. 간간이 쉴드를 쳐 주는 팬도 있지만, 그 팬들 역시 재미없다는 말에는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강이찬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그의 방송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강이찬은 지금 혼원 길드의 마법사 트레이닝 룸에 앉아 있었다.

준혁의 형 김준석이나 유민섭, 장민호 등과 똑같은 신세였다.

그리고 이 일의 시작은 준혁의 엄포에서 시작되었다.

‘성장 못하면 이제 안 데리고 다닌다.’

강이찬에게는 밥줄 끊겠다는 통보로 들렸다.

강이찬도 고분고분하지는 않았다.

‘우와~ 흑태자 님, 이런 식으로 갑질하기 있습니까?’

‘갑질?’

‘이게 갑질이죠. 굳이 던전에서 싸울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밥줄을 쥐고 억지로 성장해라, 마라 하시는 건 당연히 갑질이죠.’

‘너 지금 상태로 거기 들어가면 바로 죽어, 인마.’

‘네?’

‘생각해 봐. 최유나 같은 애들 10명, 20명이 우르르 모여서 들어가잖아. 그런 애들이, 나도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랑 목숨 걸고 싸우는 자리야. 그런데 네가 그 옆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으음…….’

‘거서 튄 파편만 맞아도 넌 그냥 인생 퇴갤이야.’

‘진짜요?’

‘그럼 가짜겠냐?’

‘만약에 제가 성장하지 않고 던전 따라 들어가면요?’

‘안 데리고 가지.’

‘에이, 이거 왜 이러세요? 제가 흑태자 님한테 얼마나 충성하는데요.’

‘데리고 들어가면 뒈질 게 뻔한데 어딜 데리고 가?’

‘흑태자 님이 구해 주면 됩니다. 저는 흑태자 님을 믿습니다.’

‘신수 상대로는 나도 목숨 내놓고 싸워야 할 판인데 누굴 구해? 나는 내 목숨 걸고 다른 사람 구해 줄 정도로 착한 사람 아니다.’

그 말을 할 당시 진지하기 짝이 없던 준혁의 얼굴을 떠올린 강이찬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당시의 진지한 표정이 아니어도 강이찬 또한 알고 있던 사실이다.

준혁은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선에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할 수 있는 기준선이 일반인은 물론 고등급 헌터보다 까마득하게 높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훈련을 받다 보니 방송은 자연스레 재미없을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죽치고 앉아서 스킬을 펼치고, 명상하고, 스킬 펼치는 걸 반복하는 방송이 뭐가 재미있겠는가.

최소한 입이라도 털 수 있으면 조금 낫겠지만, 그마저도 힘들었다.

명상하는 순간에 말을 하겠는가, 스킬을 펼칠 때 말을 하겠는가.

스킬을 쏟아내고 마나가 바닥나면, 그때는 몰아쳐 오는 탈력감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모로 누워 노트북 화면을 보는 강이찬의 각막에 채팅창의 글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난 나간다.>

<나도. 바이.>

<배가 불렀네, 불렀어.>

<초심을 잃었네.>

<실망.>

<차라리 방송을 쉬어라.>

<죽어도 주둥이는 털고 죽는다던 강이찬은 어디 갔냐?>

<그러게. 물주 나와라, 물주.>

찬물을 확 끼얹은 기분이었다.

‘물주.’

맞다. 강이찬은 개인 방송을 시작했던 초기에 ‘물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으득!

억센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초심.

뻔하디뻔한 말이다. 직간접적으로,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통해 수도 없이 듣게 되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고 스스로 돌아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 강이찬에게 그 드문 타이밍이 찾아왔다.

‘뭐 하냐, 강이찬?’

자신에게 되물었다.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다는 듯 따라다니던 자낳킹이라는 별명의 강이찬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콘텐츠가 없다고 징징대지 않았다.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뭐든 했었다.

언젠가부터 자신만의 기술이 생기면서 거기에 의존했고, 결국에는 타성에 젖었다.

다시 시작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다.

“오오, 물주를 기억하는 형님이 계시네요? 물주를 아는 형님, 당신은 진정한 고인 물.”

여전히 모로 누운 채였지만, 강이찬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방송을 위해 만들어 낸 미소지만, 누구도 거짓이라고 볼 수 없는 해맑은 미소였다.

방송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이 강이찬을 개인 방송 업계 톱으로 만든 마음가짐이었다.

“물주가 뭐냐고요? 아, 이거 초기 시절 별명인데?”

<뭐냐? 갑자기 주둥이가 뜨기 시작했다.>

<크크! 그게 바로 물주지.>

<근데 이제는 하다 하다 철 지난 눕방이냐?>

<아무튼 주둥이 털기 시작한 거.>

“형님들,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쿵!

이찬이 모로 누운 자세 그대로, 옆머리로 바닥을 찍으며 외쳤다.

“형님, 누님들의 물주. ‘물’에 빠지면 ‘주’둥이만 둥둥 뜨는 ‘물주’ 강이찬입니다!”

파앙!

손으로 바닥을 거칠게 밀치며 몸을 일으켰다.

“자,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건 혼원 길드에서 실시하고 있는 마법사 트레이닝 프로그램입니다. 흑태자 님의 요청이 있어서 참가했습니다.”

요청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방송하면서 사소한 디테일에 신경 쓰면 안 되는 법이었다.

“여기서 어떤 훈련을 하냐면 말이죠, 바로 마나입니다! 그런데… 음, 이런 비밀을 말해도 될까요? 아~ ‘구독’이랑 ‘좋아요’가 늘어나면 내가 위험을 무릅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이고, 오늘은 보시는 분이 적네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위험을 무릅쓰고…….”

스트리머의 본분인 은근한 풍선 유도도 잊지 않는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는 건 거짓말이었다.

준혁은 방송하는 것을 허락했다. 아니, 오히려 권장했다.

이 방송을 통해 다른 마법사들이 훈련을 따라오도록 하려는 목적이었다. 물론 준혁은 자신의 의도를 강이찬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의도를 알려 줌으로써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아! ‘법사D’ 님, 5천 개 후원 감사합니다!”

풍선을 보니 고갈된 마나가 빠르게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마법사 훈련의 첫 번째 단계는 다름 아닌 ‘마나 인지’입니다. 마법, 스킬을 사용하면서 몸속의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열심히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역시 스트리머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입을 털어야 했다.

“형님, 누님들 생각에는 어떤 방식을 쓰면 마나를 빨리 인지할 수 있을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채팅창의 스크롤이 빠르게 내려갔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내는 아이디어를 모으다 보면 어쩌면 좋은 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시청자가 빠져나가서 10여 명 정도지만, 원래 강이찬의 실시간 시청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

10만 명의 아이디어가 모인다면 기가 막힌 방법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션으로 진행할까요?”

강이찬은 스트리머의 본분을 잊지 않고 방송을 이끌었다.

그리고 문에 난 작은 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잘하고 있군.’

준혁이었다.

준혁이 강이찬에게 방송을 허락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마법사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것.

아마 마법사 수련법의 결정적인 단서는 저기서 나올 가능성이 컸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준혁은 원래의 볼일을 보기 위해 린디웨의 사무실로 향했다.

***

“갑자기 뭐야?”

준혁은 투덜거리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2시간 후에 출발해.’

원래는 양태군에 대한 업무가 마무리되면 바로 나서려고 했었다.

아직 잡아 와야 할 무명회원이 16명이나 더 있었다.

그런데 린디웨가 갑자기 출발 시각을 늦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준혁도 하릴없이 다시 트레이닝 룸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따로 할 일도 없으니 훈련이나 좀 손봐 줄 생각이었다.

트레이닝 룸 앞에 도착한 준혁이 문을 열었다.

“훈련에 대한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문을 열자마자 준혁의 귀에 들린 누군가의 불만 어린 목소리.

분위기가 이상했다.

준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채꼴로 늘어서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헌터들의 뒷모습이었다.

둘러싸인 사람은 다름 아닌 최유나였다.

최유나를 포위하듯 서 있는 이들은 이번에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한 헌터들이었다.

준혁과 마주 보는 위치에 선 최유나의 얼굴은 늘 그렇듯 표정이 없었다.

헌터들은 뒷모습만 보였기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 들었던 말과 분위기만 봐도 무슨 상황인지 뻔했다.

“김준혁 헌터의 방법입니다.”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최유나가 말했다.

훈련 방법에 대한 불만에 집단으로 반발한 것이었다.

개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설명을 해 달라는 겁니다.”

“김준혁 헌터님이 이미 설명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최유나와 김준혁의 눈이 마주쳤다.

때를 놓치지 않고 준혁이 슬쩍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러서지 말고 원하는 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방금 최유나가 말한 대로 준혁은 이미 훈련 방법을 설명했다.

관조(觀照).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라.

내부를 관조하여 마나의 움직임을 느껴라.

분명 그렇게 말했다.

모호한 설명이고 그 느낌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것을 해야만 등급의 벽을 깰 수 있다는 설명도 부연했다.

옷깃이라도 스치면 직접 훈련시켜 주겠다는 내기를 했을 때, 그 내기를 하기 직전에 자세하게 설명을 했었다.

강태웅이 앞으로 나섰다.

“유나야.”

“네.”

“너도 훈련을 받아 봐서 알 거 아냐. 이거 되게 뜬구름 잡는 느낌이잖아. 근데 너는 이미 한 번 겪어 봤으니 나름 노하우가 있을 거고, 우리는 그걸 알려 달라는 거지.”

“모릅니다.”

“최유나, 너무 치사한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사람 괴롭히는 거 아니다.”

“아닙니다.”

“우와! 진짜 너무하네.”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는 강태웅의 모습.

“아닙니다.”

거듭 대답하는 최유나의 두 눈에 노기가 어렸다.

지금의 훈련이 뭔가 체계도 없는 막무가내식으로 보이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최유나는 그보다 더했다.

무작정 들이받았다.

정말로 목숨을 걸었고, 지난하기 짝이 없는 그 훈련 과정을 단 한마디 불만도 없이 묵묵히 따랐다.

그렇게 얻은 결과였다.

지금의 훈련법은 최유나가 그토록 고생하며 벽을 넘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최유나로서는 크나큰 손해를 보는 셈이기도 했다.

게다가 최유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강태웅이었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을 보이니 최유나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하지만 강태웅도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하아! 뭐 어쩌겠냐? 우리 조교님이…….”

“최유나가 받은 방식으로 훈련시켜 주지.”

갑작스레 튀어나온 목소리에 헌터들의 고개가 동시에 홱 돌아갔다.

“헙!”

“어, 언제……?”

모두의 얼굴에 하나같이 기겁한 표정이 떠올랐다.

준혁은 헌터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쳐 최유나 옆에 섰다.

“최유나의 노하우를 알고 싶다는 거지?”

짙은 미소를 짓는 준혁의 모습에, 사색이 된 헌터들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혁은 무상곤을 뽑아 들었다.

무상곤의 기본 형태인 육모방망이는 과거 포졸들이 죄인을 진압할 때 사용하던 무기였다.

그런데 말 안 듣는 교육생의 정신을 되돌리는 데도 아주 유용한 무기였다.

“무기 뽑아.”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한 준혁의 목소리가 트레이닝 룸을 차갑게 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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