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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장. 양대장#3-
던전에 있을 당시 준혁은 분명 ‘비밀 수사국’을 언급했었다.
이유는 단순히 편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비밀 수사국이라는 게 실재하는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그날 던전에서 이기혁 일행을 처리한 직후, 린디웨와 리쉬옌을 만났다.
린디웨와 리쉬옌을 만나 조금 복잡한 일이 있었고, 그 후에는 유민섭에게 두 사람의 길드 가입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밀 수사국을 언급할 시간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준혁은 그날 이후 ‘비밀 수사국’이라는 명칭 자체를 잊고 있었다.
오늘 각성자 관리청 성북 지청으로 갈 때도 준혁이 그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현재까지는 린디웨와 준혁 둘만 아는 일이기에 유민섭과 이 일을 의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린디웨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쩝.”
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할 말이 궁해진 준혁이 입맛을 다시며 양태군에게 다가갔다.
“후우!”
긴 한숨은 내쉰 준혁이 조금은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양…….”
양태군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제 이름을 말했다.
“양태군.”
“예, 태군 씨. 좋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그런데 양태군 씨는 거기 뭐 하고 있었던 건가요?”
“뭐 하긴? 당신 찾으러 갔지.”
“에?”
준혁의 표정이 또 한 번 멍하게 변했다.
이건 또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이해를 못하는 준혁을 향해 양태군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 때문이야.”
“저요?”
“내 라이센스!”
“라이센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오, 답답해! 잘 들어. 그날 그 던전에서…….”
양태군은 분한 얼굴로 연신 숨소리를 씨근덕대며, 그러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다.
“끙!”
준혁이 외마디 앓는 소리를 흘렸고, 양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준혁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뭔 짓을 했는지 이제 알겠습니까?”
꽤나 흥분한 탓인지 양태군의 말은 존대와 반말이 수시로 뒤바뀌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준혁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던전에서 돈을 꽤 벌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어떻게 압니까?”
이번에는 양태군도 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조치를 했으니…….”
당연히 준혁이 아닌 유민섭이 한 일이었다. 준혁이 던전에서 일을 벌이는 바람에 입을 피해를 메워 주기 위해 유민섭이 손을 써 두었던 것이다.
준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양태군의 이런 행동을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다.
“조치를 했다고?”
“예. 그날 저 때문에 피해를 봤을 테니, 그에 대한 사과의 의미도 곁들여서…….”
“그랬죠. 분명 돈은 더 벌었죠.”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이 사람아!”
“네?”
“세상에 돈이 전부인 줄 알아? 내가, 내가 말이야! 겨우 D급이어도 공대장 면허가 무려 7급이었어! 그게 무슨 의민 줄 알아?”
관심이 없는 준혁이 알 리가 없었다.
반응은 곁에 있던 린디웨에게서 나왔다.
“7급?”
“그래요, 7급!”
“각성 등급이 D급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헐! 기가 막히네.”
두 사람의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사람은 준혁이었다.
그 모습을 본 린디웨가 준혁을 향해 말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감이 안 오지?”
“어. 모르겠는데?”
“이래서 다 가진 놈들은 안 된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어떤 건데?”
“D급 헌터가 공대를 모집하면 공대원으로 들어오는 헌터 등급은?”
“그야 D급이나 E급…….”
“통상적으로 그 수준의 공격대가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의 한계는 기껏해야 4급이야. D급 헌터의 공대장 면허 또한 4급이 한계고. 그런데 저 사람은 D급 헌터인데 무려 7급 던전을 공략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는 뜻이야.”
“7급 던전의 통상적인 공략 등급은…….”
“B급.”
“허!”
B급 헌터로 팀을 짜야만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을, 양태군은 D급 헌터를 모아서 공략했다는 뜻이다.
정교한 전략·전술과 뛰어난 리딩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다시 해석하면, 양태군이 전술적으로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별명이 괜히 양대장이 아니었네요?”
“그걸 당신이 날려 버린 거라고!”
“아니, 그래서 보상을…….”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고! 이건 내 정체성과 삶의 성취라고! 그런 걸 돈 주고 살 수 있는 줄 알아?”
양태군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그 7급 라이센스였다.
“으음…….”
거기까지 들으니 준혁도 양태군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내 라이센스 돌려놔!”
버럭 내지르는 양태군의 고함은 더 이상 억지가 아니었다.
준혁은 입을 꾹 다문 채 미간에 짙은 주름을 접었다.
이는 어찌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민섭을 움직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준혁은 머릿속으로 다른 해결 방안을 떠올리고 있었다.
“양태군 씨.”
“왜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그 전에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이겠군요. 죄송합니다.”
“어… 예, 뭐.”
준혁의 정중한 사과에 양태군도 표정을 한결 누그러트렸다.
“그리고…….”
준혁이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얼굴을 한번 훑었다.
그렇게 드러난 준혁의 진짜 얼굴에 양태군의 두 눈이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어, 어어! 다, 당신…….”
“…계속 얼굴을 숨기고 이야기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요.”
“흑태자!”
“험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준혁입니다.”
짐짓 헛기침을 한 준혁이 별명 대신 이름으로 다시 인사를 건넸다.
어떨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별명이었다. 이제 적응이 되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또 어떨 때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민망해졌다.
준혁은 애먼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며 민망함을 털어 낸 후 양태군을 향해 말했다.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습니다.”
“제안? 저한테요?”
양태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양태군도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김준혁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니 의아할 수밖에.
“혼원 길드의 작전팀장 자리를 제안합니다.”
“에? 자, 작전팀장이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양태군이 멍한 탄성을 흘렸다. 뒤에서 듣고 있던 린디웨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준혁을 보고 있었다.
혼원 길드에 작전팀 같은 건 없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린디웨가 당황하는 기척을 느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혼원 길드가 앞으로 만나게 될 괴물과의 싸움에 대비해 작전을 세우는 일입니다. 팀장으로서 전권을 드리죠.”
“도대체 왜 저를……?”
양태군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고, 준혁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7급 던전을 공략할 때 공대원의 수가 몇 명이었습니까?”
“42명이요.”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공격대의 숫자는 15명 내외다.
즉, 양태군은 7급 던전을 공략할 때 통상적인 숫자의 3배 정도를 데리고 들어간 것이다.
“D급 3명이 B급 1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준혁의 물음에 양태군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다.
B급과 D급의 간격은 스탯의 높고 낮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300의 힘으로 1대 때리는 것과, 100의 힘으로 3대 때리는 것은 절대 같은 효과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킬의 차이도 있다. 등급이 높을수록 스킬의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양태군은 그러한 차이를 단순히 3배의 숫자로 메워 낸 것이다.
그만큼 전략, 전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보통은 겁먹고 시도하지 않을 공략을 무려 41명이나 따라오도록 만들었다.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쌓은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태군을 향해 준혁이 말을 이었다.
“물론 거쳐야 할 절차는 있습니다. 일종의 테스트, 그리고 길드장의 결재가 필요하긴 합니다. 2가지가 딱히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아, 아니, 뭐 그거야 당연히…….”
준혁은 양태군이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 가정하고 말했고, 그 페이스에 끌려가는 건지 양태군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취소된 면허를 재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면허 재발급은 유민섭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양태군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힘 있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양태군을 향해 준혁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좀 냉정한 말입니다만, 양태군 씨는 딱 한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네. 뭐 그거야…….”
양태군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에게 부족한 한 가지는 바로 등급이었다.
전술적인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등급이 달리면 그 재능을 활용할 수가 없다.
자신이 통제해야 할 팀원들의 움직임조차 눈으로 좇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준혁이 해결할 수 있었다.
“길드장의 허가가 떨어지면, 양태군 헌터는 등급을 올리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양태군으로서도 나쁠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유명한 길드에서 자신을 채용해 주고, 등급도 올려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준혁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제가 말한 조건은, 훈련에 들어간 후에는 면허 재발급에 대한 이야기는 무효화됩니다.”
“그게 무슨……?”
준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낙장불입이라는 말입니다.”
“저의 영입을 길드장이 거부했을 경우에는요?”
“그때는 당연히 재발급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양태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내 수위의 길드에 받아 주고, 등급도 올려 주면서 거는 조건치고는 확실히 이상했다.
숨겨진 무언가가 있나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그럴 만한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참을 고민 끝에 양태군이 수락했고, 준혁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불쑥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네. 저야말로…….”
“그럼 나갈까요?”
준혁이 양태군을 이끌고 나가려 할 때였다.
“잠깐만.”
“응?”
두 사람의 발길을 잡은 이는 린디웨였다.
“왜?”
“나하고 잠깐 이야기 좀.”
준혁이 고개를 돌려 양태군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양태군이 순순히 밖으로 나서는 것을 확인한 후 린디웨가 말했다.
“괜찮겠어?”
“뭐가?”
“저 사람 D급이잖아.”
“그런데?”
“길드 사람들이랑 등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
“그거랑 작전을 짜는 건 완전히 별개지.”
“으음…….”
하지만 린디웨는 석연찮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시스템의 아바타인 탓에 등급에 대한 구별이 심한 탓이었다.
“아니다 싶으면 길드장이 알아서 자르겠지. 일단은 들어가서 이야기해 보자고.”
“그래. 안에 있는 놈은?”
린디웨가 잡아 온 무명회원을 언급했다.
“재워 놔. 추적당할 만한 건 없지?”
“당연하지.”
간단하게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은신처를 벗어났다.
밖으로 나가니 양태군이 멀뚱히 서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시다.”
“지금 바로 가는 겁니까?”
“그래야죠.”
“따로 준비할 건…….”
“없습니다.”
준혁은 단호하게 말하며 앞장서 걸었다.
그런 준혁의 모습에 린디웨가 조금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준혁의 얼굴에 어린 확신은 조금도 희석되지 않았다.
특별한 근거는 없지만, 강렬한 촉이 준혁을 지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