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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장. 양대장#2-
양태군도 처음부터 비밀 수사국이라는 곳을 파 볼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런 곳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양태군은 나름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헌터 계통에서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길드에도 들지 못하고 막공을 운영하는 D급 헌터. 헌터계에서는 소시민일 뿐이었다.
그런 양태군이 이름부터 뭔가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비밀 수사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해당 공격대를 이끄는 공대장이었다.
던전 공략 도중 발생한 사망 사건은 조사 대상이었다.
양태군은 비밀 수사국의 수사관을 언급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던전 관리청은 이 일을 살인 사건으로 경찰에 이관했고, 양태군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공략에 참가했던 헌터들이 모두 같은 증언을 한 덕분에 재판까지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양태군은 공격대 관리 소홀로 공격대 모집 면허를 취소당했다.
공대장으로서 안정적인 운영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탱커로서의 능력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던 양태군이다.
면허 취소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행정 소송도 해 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친분 있는 관리청 직원에게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비밀 관리국에서 양태군과의 접촉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양태군이 비밀 수사국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리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알게 된 의외의 내용 한 가지는, 비밀 수사국이 그 이름과는 달리 딱히 비밀스러운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저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업무 자체가 비밀스럽다 보니 그런 이름일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하위급 헌터가 이곳을 알아내고 찾아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희한하게…….’
문득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상하게도 운이 틘 덕분이었다.
면허를 박탈당한 후 예전만 못한 던전을 돌았는데, 오히려 돈은 이전보다 더 벌었다.
그로 인해 생긴 시간적 여유 덕분에 비밀 수사국을 파헤쳐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비밀 수사국을 파헤치던 중에는 포기할까 고민도 여러 번 했었다.
예전보다 더 풍족하게 벌고 있는데 파고들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도 그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헌터로서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양태군은 공격대의 대장으로서, 사람들을 이끌고 안전하게 공략을 마치는 데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문제의 사건을 일으켰던 그 수사관을 찾아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면허를 되돌려 받아야 했다.
‘분명히 여기로 온다.’
양태군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되뇌며, 포기하려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그작!
양태군이 컵 속의 얼음을 거칠게 씹어 삼킬 때였다.
“어?”
입을 헤 벌린 양태군의 벌어진 입에서 잘게 깨진 얼음 알갱이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양태군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양태군의 시야에 담긴 것은 저 멀리 보이는 빌딩의 옥상이었다. 정확하게는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는 하나의 그림자.
양태군은 D급이라 해도 어쨌든 각성자는 각성자였다. 그런 그의 눈에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먼 곳의 빌딩이었다.
‘뭐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빌딩 위의 저 사람을 보고 자신이 이렇게 놀라는지.
난간 위의 사람에게서 움직임이 일어났다.
‘활?’
문제의 실루엣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어디를 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실루엣은 시위를 놓았다.
무언가 길쭉한 것이 시위를 떠나 하늘을 날았다.
“어? 어?”
활시위에 걸었다가 쏘았으니 저것은 화살이 분명했다.
그런데 화살이 이상했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양 하늘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뒤틀며 자유비행을 하고 있었다.
“어? 어!”
양태군의 입에서 나오던 신음이 비명처럼 변했다.
어느 순간부터 직선으로 날기 시작한 화살의 화살촉을 정면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화살이 양태군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순간 양태군의 눈빛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 그저 놀라 당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냉정함이 두 눈에 자리 잡았다.
빠르게 움직인 시선이 상황을 살폈다.
카페, 2층, 다른 손님 없음, 직원 1명, 화살 도착까지 4~5초.
양태군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다.
어느새 그의 양손에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거대한 방패와 전투 도끼가 각각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생각을 마쳤을 때 그의 손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콰앙-!
매장 바닥을 그대로 터트려 1층으로 내려갔다.
“꺄아악!”
카페 직원의 비명이 들린 방향을 향해 땅을 박찼다.
설명할 시간 따위 없었다.
도끼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비어 버린 오른손으로 카페 직원을 어깨에 들쳐 메고 곧장 뒷문으로 몸을 날렸다.
“살려 주세요-!”
상황을 모르는 카페 직원의 날카로운 비명이 양태군의 귓전에서 쟁쟁 울린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양태군은 자신의 예상이 정확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화살이라고 느꼈는데, 정말로 폭음을 일으킬 정도의 위력을 품은 화살이었던 것이다.
“음?”
하지만 예상이 빗나간 부분도 있었다.
거칠게 땅이 흔들렸지만, 정작 양태군은 폭발의 여파를 직접 겪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페 직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훌쩍 뛰어올라 건물 외벽의 요철을 몇 번 밟아 곧장 지붕에 올랐다.
“음!”
화살의 목표는 양태군, 혹은 양태군이 있던 카페가 아니었다. 카페 맞은편에 있던 각성자 관리청 성북 지청, 즉 비밀 수사국이었다.
비밀 수사국 주차장이 뿌연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다급하게 뛰쳐나오고 있었다.
양태군은 건물 지붕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겼다. 혹시나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탓이었다.
그런 후 양태군의 시선이 향한 곳은 문제의 실루엣이 있던 빌딩 옥상이었다.
하지만 빌딩 옥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쳤……. 아!’
해당 빌딩과 비밀 수사국 건물 사이의 건물들 지붕 위를 빠르게 뛰어넘는 문제의 실루엣이 보였다.
‘미친!’
그리고 양태군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가끔 그 형태가 눈에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흐릿한 잔상만 남는 수준이었다.
눈 몇 번 깜빡할 사이 문제의 인영은 어느새 비밀 수사국 건물의 지붕 위에 내려서 있었다.
그리고 양태군은 앞서 놀랐던 장면들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기겁했다.
‘저 얼굴!’
그곳에 있었다.
던전 안에서 ‘비밀 수사국’을 읊으며 사람 셋을 처리했던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비밀 수사국 소속이 아니었던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비밀 수사국의 수사원이라는 사람이 비밀 수사국을 공격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양태군은 지금껏 자신의 주장이 무시당한 이유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비밀 수사국이라는 기관은 존재하지만, 비밀 수사국이 그 던전에 사람을 파견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헙!’
양태군이 황급히 지붕에 바짝 엎드리며 몸을 숨겼다. 순간적이지만 문제의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든 탓이었다.
그때였다.
“누구?”
등 뒤에서 들린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동시에 양태군은 그대로 시야가 암전되는 것을 느꼈다.
***
털썩!
린디웨가 한 사람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구시렁거렸다.
“이 인간은 뭔데 거기서 관음하고 있었던 거야?”
“어?”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의 얼굴을 본 준혁이 짧게 실성을 흘렸다.
“왜?”
“내가 아는 얼굴인데?”
“그래?”
“이름이 양… 음, 양대장이라고 불린 건 기억하는데…….”
준혁은 던전에서 뭔가 일을 꾸미는 실행책인 이기혁, 황동진, 신광훈, 이 세 사람을 잡기 위해 막공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 막공의 공대장이 린디웨에게 잡혀 온 양태군이었다.
“죽인 건 아니지?”
“내가 무슨 살인마냐?”
“너무 미동이 없어서.”
“안전하게 데려오려고 재웠지. 지금 꿀잠 자고 있을걸?”
“아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준혁이,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흠칫 얼굴을 굳히며 황급히 고개를 털었다.
“왜?”
“아, 아니야, 아무것도.”
준혁은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우, 진짜…….’
양태군을 보니 갑자기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양태군이 자신을 따로 불러 트롤링 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장면이다. 준혁으로서는 의도치 않은 흑역사였다.
‘트롤이라니…….’
준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흑역사를 황급히 털어내고 있을 때 린디웨가 물었다.
“제대로 잡아 온 거지?”
“당연하지.”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창문 하나 나 있지 않은 지하실이었다.
정확하게는 서울 변두리의 낡은 단독주택의 지하실로, 원래는 창고로 쓰던 곳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개인 연습장은 준혁이 정체를 드러낸 이상 누군가 찾아올 수도 있기에 따로 은신처를 준비한 것이다.
“일단 확인해 볼…….”
“영력 확인했어. 무명회 회원인지는 몰라도 배면계 출신인 건 분명하니까 그쪽은 신경 꺼.”
준혁이 각성자 관리청 성북 지청 주차장에 폭발을 일으킨 이유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린디웨가 뽑은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준혁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목표했던 사람을 잡아 왔다.
다만, 한 가지 계획에 없던 일이 지금 린디웨가 데리고 온 양태군이었다.
“일단 그 사람 좀 깨워 봐.”
준혁의 말에, 린디웨가 양태군의 머리에 흩뿌리듯 영력을 흘려 냈다.
‘이 사람이 왜?’
왜 그곳에서 각성자 관리청 성북 지청을 살펴보고 있었을까? 일반적인 헌터가 할 일은 아니었다.
아니, 그조차도 준혁이 딱히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때 눈을 마주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데리고 오지도 않았으리라.
“으음…….”
양태군이 옅은 신음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몇 번 눈을 끔뻑거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다, 당신!”
“오랜만입니다.”
“여기는 어딥니까?”
“대답하기 전에… 도대체 거기서 뭐 하고 계셨던 겁니까?”
순간 양태군의 두 눈에 살기가 번뜩 떠올랐다.
“이봐요! 내가 당신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데, 뭐 하고 있었냐니! 그리고 날 왜 끌고 온 겁니까?”
준혁은 양태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실수네.’
생각해 보니 양태군을 데리고 온 것은 실수였다.
지금 준혁은 매구탈을 이용해 이순신 장군의 얼굴로 변장한 상태였다. 즉, 김준혁이라는 신분이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성북 지청에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탓에 일단 잡아온 것이었는데, 차라리 그냥 두는 게 나았을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밀고 가는 수밖에.’
결정을 내린 준혁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는 비밀 수사국 취조실입니다. 당신은 비밀 수사국의 임무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일단 여기로 모셔 온 것입니다.”
말의 내용은 평이했으나, 목소리만큼은 꽤나 위압적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뭐?”
“…….”
“여기가 어디라고요?”
“비밀 수사국 취조…….”
“야, 이 사기꾼아!”
“뭐라고요? 말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여기는…….”
맥락 없이 튀어나온 양태군의 말에 준혁이 날카롭게 쏘아붙이려는 찰나였다.
“비밀 수사국 요원이 비밀 수사국 본부를 공격하냐, 이 사기꾼아!”
순간 준혁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 표정 그대로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거기가 비밀 수사국 본부라고!”
준혁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그게 진짜 있는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