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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 마스터#3-
“흐음, 그러니까 길드장도 뭔가를 좀 배워 보고 싶다?”
“그렇죠.”
“맞아. 하긴 해야지. 이대로 있으면 김준혁 발목만 잡을 테니……. 아니, 많이 늦었지. 길드장 자격을 의심해 봐야 하는 거 아냐?”
“에이, 겨우 그 정도로 거창하게 무슨 자격까지 꺼내요?”
“길드장이 스스로 병풍이 되려고 하는 게 그렇게 가벼운 일은 아닐 텐데?”
“에헤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건 뭔가요? 무슨 실종자 명단 같은데?”
유민섭의 말에 린디웨가 황급히 보고 있던 서류를 뒤집었다.
“아, 개인적인 볼일. 신경 꺼. 아무튼 훈련법을 알려 달라는 거지?”
“네. 그런 거죠.”
“음… 혹시 스킬을 쓸 때 영력, 아니 마나가 몸속에서 움직이는 거 느낀 적 있어?”
“아니요.”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대답에, 오히려 질문을 던진 린디웨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상하고 있었어?”
하지만 유민섭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예상을 한 건 아니고, 마나 감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구한테?”
“유나한테요. 벽을 깬 후? 아니, SS급이 된 후? 아무튼 그러고 난 후에 이야기를 해 봤는데, 이전과 달리 몸속의 마나를 감지할 수 있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랬군. 어쨌든 그게 시작이자 끝이야.”
“시작이자 끝?”
“마법사, 우리 쪽으로 이야기하면 술사는 일단 그걸 마음먹은 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하거든. 성장이라는 것도 그걸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단 말이지.”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그걸 감지할 수 있습니까?”
“몸 쓰는 쪽은 영력이나 마나가 육체의 움직임에 반응해. 이건 스킬 쓰는 것과는 무관한 거야. 말했듯이 마나가 알아서 몸을 따라가니까. 그러니 무식하게 몸 쓰는 훈련을 하면 어떻게든 되는데…….”
린디웨가 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처럼 머리 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훈련하면 안 되거든?”
“그럼 어떻게 훈련합니까?”
“일단은 중단전에 있는 영력의 존재를 느끼는 것부터.”
“중단전? 단전? 그건 무협 소설에나 나오는 거잖아요.”
“어? 가만… 마나는 혹시 다른 데 저장되나?”
린디웨의 물음에 유민섭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스킬을 쓰면 마나가 빠져나가 어떤 작용을 하고, 그로 인해 마법이 구현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마나가 어디에 저장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
유민섭이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뭐? 왜 그래?”
“영력이 무협 소설의 내공 같은 거라고 치면… 옛날 판타지 소설에도 마나가 나오잖아요. 그럼 그 소설들처럼 마나는 심장에 모이는 거 아닐까요?”
“그런가?”
“혹시 중단전이 심장입니까?”
린디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옥당, 단중 그 어림이 중단전인데, 그게 딱 심장 위치랑 비슷하긴 하니까…….”
“흠… 왠지 이야기 속에나 있던 게 현실이 되는 거 같아서 느낌이 묘한데요?”
“그래도 확신할 수는 없지.”
“그야 그렇죠.”
“으음…….”
“음…….”
두 사람이 동시에 앓는 소리를 힘없이 흘렸다.
미간에 짙은 주름을 모은 채 한참을 고민하던 린디웨가 갑자기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방법이 있습니까?”
“있지.”
“일단 어디 훈련실에 들어가서 스킬을 사용해.”
“그리고요?”
“스킬이 펼쳐질 때 마나가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살펴봐.”
“네? 그거 설마…….”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유민섭의 어깨에 손을 올린 린디웨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길드장이 몸소 확인해서 이론을 정립하는 거야.”
“결국 테스트용?”
“따지면 그렇긴 하지만… 뭐, 좋은 거잖아. 길드장이 몸소 이론을 정립해서 세상의 수많은 마법사들이 성장할 수 있게 바탕을 깔아 주는……. 이거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냐?”
“뭐, 그렇긴 하죠.”
유민섭이 곧장 동의하고 나섰다. 그런 일에는 아주 관심이 많은, 아니 사명감이 투철한 유민섭이었다.
***
“그러니까…….”
준혁이 말꼬리를 늘어트리며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 정확하게는 옆에 앉은 개런까지 세 사람이었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현 무훈 길드의 길드장 강태웅, 그리고 일전에 던전에 함께 들어갔던 백호 길드 길드장 백호진이었다.
강태웅은 유민섭이 소유권을 가진 무훈 길드의 길드장 자격으로, 백호진은 지난번 던전 공략과 관련한 논의를 한다는 이유로 혼원 길드 사옥에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각각의 이유는 당연히 핑계였다.
유민섭이 아닌 준혁을 먼저 찾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준혁은 두 사람이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개런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회의실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개런과 같은 이유로 찾아온 거 맞죠?”
“네? 캡틴 개런이요? 그 말씀은 혹시 개런도?”
강태웅은 눈치 빠르게 바로 그 뜻을 이해했고, 백호진은 무슨 말인지 몰라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
“맞습니다.”
“네. 저희도 김준혁 헌터에게 제대로 된 훈련을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네네. 맞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원래 알던 사입니까?”
“유 길드장님 계실 때부터 종종 교류가 있었습니다.”
강태웅의 설명을 들은 준혁이 개런을 향해 말했다.
“개런, 강태웅 헌터하고는 안면이 있죠?”
“물론입니다.”
유민섭의 무훈 길드 소속 S급 헌터였으니 당연히 인연이 있으리라.
“그럼 이렇게만 인사하면 되겠네요. 이쪽은 리처드 개런, 미국의 팀 히어로의 대장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한국의 백호 길드의 길드장 백호진입니다. 앞으로 깊은 관계가 될 테니 인사 나눠요.”
준혁의 소개에 두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준혁의 ‘깊은 관계’라는 말 때문이었다.
먼저 눈치챈 사람은 개런이었다.
“어? 설마 이 두 분도?”
“네.”
“그 말은… 제 요청을 받아 주는 겁니까? 오 마이 갓! 고마워요, BP. 아니, 사랑합니…….”
개런이 마구 말을 쏟아내려 했지만, 준혁이 단호한 목소리로 개런의 이야기를 끊었다.
“내가 제시한 조건을 수락해야만 받아 줍니다. 그러니 미리 사랑하지 마세요.”
개런이 한껏 끌어올린 분위기가 준혁의 말에 착 가라앉았다.
개런은 멈칫했고, 강태웅은 긴장했다.
하지만 뒤늦게 준혁의 말을 이해한 백호진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준혁이 한 손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5퍼센트.”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외로 꼬는 순간 준혁이 설명을 더했다.
“트레이닝이 마무리된 순간부터 5년 동안 길드 총매출의 5퍼센트와 1년에 다섯 번 길드 소집권. 대신 혼원 길드의 파트너 길드 타이틀을 쓸 수 있다는 조건. 물론 5년이라는 기간 한정.”
“네!”
곧장 대답한 사람은 백호진이었다.
그 탓에 개런과 강태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백호진은 그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백호진은 안유정에게, 준혁이 무슨 조건을 말하건 무조건 수락하라는 언질을 미리 받았기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한 것이었다.
하지만 개런과 강태웅은 그렇지 못했다.
팀 히어로와 무훈 길드는 각각 미국과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였다.
그런 두 길드의 순이익도 아닌 총매출의 5퍼센트라는 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총매출에서 그 정도의 금액이 빠진다는 건, 길드원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1년에 다섯 번이라고는 해도 아무 때나 불러낼 수 있는 소집권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혼원 길드의 이름을 등에 업을 수 있는 파트너 길드 타이틀이 나름 매력적이었으나, 앞서 나온 두 조건의 부담스러움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길드장의 권한이 막대하다고 해도 혼자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준혁의 조건은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또 하나의 조건. 여기서 훈련받고 S급의 벽을 깬 후, 2개의 길드를 뽑아 여기서와 같은 방식으로 훈련을 시켜 줘야 합니다. 그리고 훈련받는 길드 역시 다른 2개의 길드를 뽑아 훈련시킨다는 조건을 수용해야 합니다.”
세계 헌터들의 성장은, 다가올 신수와의 전쟁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 개런의 요청을 거절하려 했던 이유는, 특정 길드만 뽑아서 일을 진행하면 수많은 잡음이 나올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훈련을 받은 길드가 다른 길드를 교육시킨다면 준혁의 목적에 부합하게 된다.
처음에는 겨우 3개의 길드지만, 그 후에는 추가로 6개의 길드가 혜택을 보고, 그다음은 12개의 길드가 혜택을 보는 식으로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앞선 조건들과 마찬가지로 쉬이 수락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백호진은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가볍게 수락하기 힘들었다.
“으음…….”
개런이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강태웅이 먼저 말했다.
“저희 길드 소유주와 의논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강태웅은 일반 회사로 따지면 CEO였다. 회사의 진짜 소유주는 다름 아닌 유민섭이었기에 강태웅 마음대로 처리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사안이었다.
“그러세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강태웅이 휑하니 나간 직후, 개런도 황급히 일어나 물었다.
“저도 길드원들과 의논을 좀 해 보겠습니다.”
“편하신 대로.”
준혁은 여유롭게 손짓을 해 주었다. 어차피 아쉬운 사람은 준혁이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회의실에 준혁과 백호진 두 사람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백호진은 둔한 성격 탓에 붙임성이 좋지 못했고, 준혁은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당연히 짙은 정적이 회의실 공기를 물들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는 그게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준혁은 애초에 독불장군 스타일이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백호진은 눈치가 없다 보니 회의실 분위기 자체를 감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백호진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불쑥 입을 열었다.
“일전에는 제가 너무 흥분했던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뭐 그런 상황이면 그럴 수도 있죠. 신경 쓰지 말아요.”
“네. 감사합니다.”
할 말을 다 한 백호진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고, 준혁은 신경을 끊었다.
그렇게 어색하지만 당사자들은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먼저 회의실로 들어온 사람은 개런이었다.
“BP, 이제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 거 같아!”
“남자의 사랑은 사양.”
“쳇! 사랑에는 그런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
“아, 됐고. 아무튼 이야기는 잘된 거지?”
“물론이죠!”
“일단 알았어. 나머지 이야기는 강태웅 헌터 오면…….”
그때였다.
콰앙!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갑자기 등장한 사람은 유민섭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지금 내 재산을 얼마나 털어먹겠다는 거야?”
“거 돈도 많은 양반이. 좀 나눠 씁시다.”
“우와, 이런 뻔뻔한 사람을 봤나! 그리고 소집권? 거기에 더해서 파트너 길드 타이틀이요? 길드장이 허락도 안 했는데 그런 거 막 해도 됩니까?”
“음…….”
준혁이 턱을 매만지며 묘한 눈길로 유민섭을 보았다.
“뭐, 왜요?”
“나는 강요한 적 없어요. 굳이 억지로 시킬 생각 없으니 그냥 빠져도 상관없고. 파트너 길드는… 정 싫으면 내 이름을 타이틀로 넣어도 되겠네.”
거리낌 없는 준혁의 말에 유민섭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사실 진짜 화가 나서 따지러 온 건 아니었다. 가볍게 투덜거리는 정도의 느낌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준혁이 이렇게 나오니 유민섭으로서도 쉬이 물러서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다고 내가 뭐 아쉬울 거 같습니까? 유나한테 부탁하면…….”
“안 돼요.”
“안 되긴 뭐가 안 됩니까?”
“조교로 쓸 거라서 그럴 시간 없을 겁니다. 아, 리쉬옌도 당연히 같이 합니다.”
“뭐, 이런…….”
결국 유민섭은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무뚝뚝하던 최유나가 백호진을 향해 길고 긴 설명까지 했을 정도다.
유민섭의 눈에, 최유나는 준혁이 죽으라고 말한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거꾸로 들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완벽한 패배였다.
“항복.”
과장되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유민섭이 터덜거리며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대충 회의실 분위기가 진정되자 준혁이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각 길드에 몸 쓰는 헌터 10명씩, 그리고 마법 계열 5명씩 불러요.”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개런이었다.
“마법사? 그럼 그 성장이라는 게 마법사도 가능합니까?”
“가능은 할 거야. 다만, 그쪽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아봐야겠지.”
“뭐든 좋습니다! 지금 당장 불러들이죠!”
“너무 좋아하지 마.”
“네?”
되묻는 개런을 향해 준혁이 피식 웃어 보였다.
최유나를 훈련시킬 때는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었기에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마나를 감지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최유나가 있었다.
준혁은 최유나를 통해 던전 시스템의 육체 계열 헌터들의 마나에 대한 개념을 파악한 상태였다.
당연히 그에 맞는 훈련 계획이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아주 체계적인 계획이었다.
그리고.
“진짜 지옥을 경험하게 될 거야.”
준혁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고, 그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