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86화 (86/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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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 마스터#2-

“제발!”

“아, 뭐가 그리 급해요?”

“BP, 당신의 베프가 이렇게 부탁합니다!”

“그러니까 왜 지금 당장이냐고.”

“지금이어야 합니다. 당장, 말해요! 날 허락한다고!”

“아, 말이 이상해지고 있잖아.”

끝없이 졸라 대는 이는 개런이었고, 어쩌다 보니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는 준혁이었다.

개런은 타고 왔던 바이크도 팽개친 채 밴에 올라타 준혁을 따라가고 있었다.

“하아!”

“후우!”

준혁이 한숨을 탁 뱉자, 개런도 긴 숨을 내쉬며 어깨를 털었다.

“개런.”

“네, 준혁.”

“이거 좀 경우가 아닌 건 알죠?”

“경우가 아닌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바로, 답을 해 줘요!”

준혁이 애써 차분하게 말하며 개런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였다.

“어?”

운전을 하던 장형준이 갑자기 소리를 내질렀다.

또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에 정면으로 시선을 던진 준혁 또한 흠칫 어깨를 떨었다.

차량 정면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혼원 길드의 사옥 입구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Shit!”

뒤이어 튀어나온 것은 개런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감탄사였다.

“왜 그래요?”

“이래서 먼저 허락을 받으려고 했던 건데…….”

“네?”

준혁의 물음에 개런은 손가락으로 사옥 앞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누군지 모르겠어요?”

“어, 저 사람들…….”

먼저 알아보고 외친 사람은 유민섭이었다.

“흑태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헤이타이쯔(黑太子)! 헤이타이쯔!”

“준혁, 김준혁 헌터를 만나게 해 줘요!”

사옥 앞에서 각양각색의 언어로 ‘준혁’ 혹은 ‘흑태자’를 외치는 사람들.

지난번 포럼을 통해 안면이 있는 중국의 쓰자오밍이나 일본의 하시모토 타츠야 등도 있었고, 일면식도 없지만 너무 유명해서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 인종과 언어가 뒤섞여 말 그대로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인파 속 구성원들이 모두 하나같이 이름난 S급 헌터라는 점이었다.

유민섭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사람들 전부 다……?”

뒤에 준혁에게 트레이닝 받겠다는 사람들이냐는 말이 생략되었음에도 개런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량을 쫓아왔던 거였는데…….”

개런이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준혁을 보았다.

그리고 유민섭이 묘한 표정으로 준혁을 향해 물었다.

“겁을… 먹는다고?”

“험험!”

“겁을 너무 먹어서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내가 너무 살살 했나?”

하지만 개런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기자회견장에 있던 S급만 200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겁먹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요. 지금 저기 모인 사람들은 각자가 이름값이 있어서 그렇지, 다 해도 30명도 안 됩니다.”

“으음, 역시!”

준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거만하게 어깨를 폈고, 유민섭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런이 다시 준혁에게 말했다.

“BP, 아무리 저 사람들이 여길 찾아왔어도 내가 먼저라는 거 알죠?”

하지만 준혁은 개런의 간절한 외침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밴의 슬라이딩 도어를 열었다.

“BP!”

깜짝 놀란 개런이 준혁을 불렀다. 문제는 그 외침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준혁 헌터다!”

“흑태자다!”

개런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헌터들이 우르르 이쪽을 향해 몰려왔다.

“김준혁 헌터님,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헤이타이쯔! 스승의 예로 모시겠소! 우리 천룡방을 받아 주시오!”

“같은 한국의 헌터들을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각양각색의 요구가 쏟아졌다. 그냥 두면 이대로 온종일 떠들 기세였다.

하지만 준혁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열정적으로 떠들던 헌터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조만간 그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를 할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개런의 얼굴은 환하게 변했고, 다른 헌터들의 기대감 가득하던 얼굴은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몰려온 헌터들을 돌려보낸 후 길드 사옥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준혁 씨.”

“네?”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유민섭의 갑작스러운 말에 준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민섭의 표정이 갑자기 무겁고 진지해진 탓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따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런 조짐도 없다가 갑자기 꺼내는 말에, 준혁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은 유민섭의 요구에 응했다.

“어? BP, 어디 가요?”

황급히 준혁을 붙잡은 사람은 개런이었다.

사옥 앞에서 돌려보낸 헌터들과 달리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 도움을 주었던 개런은 특별히 방문을 허락했던 것이다.

“우리 길드장이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네요. 회의실에서 기다려요.”

약간은 명령조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개런은 조금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듯 고분고분 준혁의 말에 따랐다.

오늘 보여 준 힘의 과시가 낳은 결과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자존감이 높은 S급 헌터가 보일 만한 반응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이 오히려 당연한 축에 속했다.

실상 헌터계는 말 그대로 야생, 혹은 야만의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약한 헌터는 강한 헌터를 따르면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강한 헌터는 약한 헌터를 부리며 자신의 세력을 만든다.

S급, A급 헌터들은 부와 명예를 다 가지지만, D급이나 E급 헌터는 일반인에게도 별다른 대우를 받지 못한다.

던전에 들어가면 강한 자의 말이 곧 법이다.

법치가 상식으로 자리 잡은 현대사회가 나아가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곳이 바로 헌터계였다.

A급, S급들은 자신들이 강하기에 존중받는 만큼,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면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의 몸에 밴 습성인 것이다.

그것도 쳐다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자라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 법일 수밖에 없었다.

오는 내내 준혁에게 조르고 칭얼대던 개런이, 준혁이 진지하게 꺼내는 말에 조금도 토를 달지 않고 따르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유민섭이 준혁과 친하게 지내고 심심하면 드립을 치면서도, 준혁이 하는 일에 제대로 된 반대를 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유민섭이 준혁을 끌고 간 곳은 자신의 사무실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습니까?”

하지만 유민섭은 몇 번 입만 벙긋거릴 뿐,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거 사람, 평소답지 않게 뭐 그리 부끄러워해요?”

“내가 언제 부끄러워했습니까?”

“지금 표정이 딱 그런데요, 뭐.”

“어험, 험!”

“자, 빨리 말해요.”

준혁의 재촉에 유민섭이 말을 꺼냈다.

“저기, 그… 그러니까 마법사는… 안 됩니까?”

“마법사? 안 되다니? 어떤 거요?”

“그거요, 그거.”

“그거?”

“훈련. 그러니까 성장.”

“아, 아아~ 크흐흐흐!”

준혁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하지만 터진 웃음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큽, 크흑, 크큭!”

그런 준혁의 모습에 유민섭이 발끈하며 나지막이 외쳤다.

“아, 뭐가 그렇게 웃겨요?”

“크크큭, 아니… 그, 크흐흐! 길드장님이 너무 힘겹게 말하시는 게… 부끄러움도 잘 탄다 싶어서요.”

“아, 아무튼요. 할 수 있습니까?”

“있죠.”

“진짜요?”

“린디웨 보면 느끼는 거 없어요?”

“그게 어렴풋이 생각은 해도, 배면계 술법과 우리 마법은 뭔가 달라 보여서요.”

유민섭이 그렇게 생각할 여지는 충분했다.

던전 시스템의 경우 주어진 스킬을 통해서만 마법을 쓸 수 있지만, 배면계 시스템의 경우 술사들이 술석을 제작하거나 하는 등 술법을 사용하는 데 어느 정도 창조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그제야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가능합니다. 제가 알기로도 배면계의 술사 역시 처음에는 정해진 술법밖에 못 써요.”

“정말입니까?”

“물론이죠. 그러니 그 부분은 린디웨하고 이야기해 봐요. 그나저나…….”

준혁이 화제를 전환할 것처럼 말을 꺼내더니 이내 말꼬리를 흐렸다.

눈까지 게슴츠레 뜨는 준혁의 모습에, 유민섭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요?”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한 겁니까?”

“음… 지금까지는 내 역할에 대해서 그런 생각이 좀 있었어요.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전문 경영인? 아니, 이건 아니고…….”

중얼중얼 뭔가를 고민하던 유민섭이 딱 맞는 단어를 떠올린 듯 딱! 하고 손가락까지 튕기며 외쳤다.

“얼굴마담!”

“음?”

“응?”

유민섭은 더없이 적당한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준혁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준혁의 반응을 이해 못한 유민섭이 고개를 외로 꼬며 실성까지 흘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닙니까? 딱 맞는데? 내가 던전이나 게이트 돔 들어가서 딱히 하는 일도 없고, 주로 하는 일이 대외, 대관 업무잖아요.”

“음… 그렇게 들으니 맞는 것 같긴 하네요.”

준혁이 과장되게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동의하니까 왠지 뭔가 막 빈정이 상할 거 같은 기분인데요?”

“에이, 기분 탓이겠죠.”

“그럴 리가?”

발끈하는 유민섭의 말을 준혁이 서둘러 말을 끊었다.

“아무튼 린디웨하고 상의해 봐요. 아니지. 내가 말할게요, 나중에 찾아가라고.”

그러고는 도망치듯 유민섭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트레이닝은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첫 번째는 ITO(국제 각성자 기구)를 통해 강의 동영상을 공개하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최유나와 리쉬옌이 교관이 되어 직접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강의 동영상이라고 해 봐야 사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준혁이 직접 다양한 무기의 기본기를 선보인 것이 동영상 내용의 전부였다.

지금 시연한 기본기를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그렇기에 동영상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면 결국 포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최유나의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충고를 했음에도 제대로 그 성과를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기본기가 어떤 것인지만 알아도 훗날을 위한 발판은 되기 때문에 배포하기로 한 것이었다.

설명을 들은 개런의 얼굴이 대번에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BP는? 직접 트레이닝을 하지는 않습니까?”

“저요?”

“네. 저는 BP에게 직접 훈련받고 싶습니다.”

“흐음, 그건 좀…….”

준혁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린디웨와 함께 무명회를 상대하는 일을 은밀하게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따로 헌터를 모아서 훈련시키는 일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우린 베프잖아요!”

사실 말로는 베프라고 하지만, 실제로 베프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관계였다.

미국 정부와 이어 준 일이나, 로날드 돔을 진압했을 때 함께했던 것 등을 생각하면 혼원 길드와 가장 가까운 곳이 팀 히어로이기는 했다.

아니, 애초에 혼원 길드와 가까이 지내는 길드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인연이 있는 곳이라면 유민섭이 길드장으로 있었던 무훈 길드와 얼마 전 함께 던전에 들어갔던 백호 길드 정도였다.

‘이거 잘하면…….’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던 준혁은 어쩌면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 히어로는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강력한 길드였다.

그런 길드를 이번 기회에 확실한 아군으로 만들면 앞으로 꽤 쓸모가 많을 터였다.

‘괜찮겠는데?’

준혁의 머릿속에 다른 계획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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