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84화 (8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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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장. 거대한 반향#3-

경기장에 또 한 번 격랑이 휘몰아쳤다.

아니, 단순한 격랑 수준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쓰나미급이었다.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진정시키며 준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 귀에 낀 통역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 잔뜩 겁먹은 얼굴로 준혁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사람 등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준혁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구천구백구십오, 이것이 제 스탯의 총합입니다.”

그때 관중석의 누군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BP! 설마 모든 스탯이 9,995라는 말입니까?”

미국 1위 길드인 팀 히어로의 캡틴이며, 잠실 사태 때 준혁을 백악관에 연결해 준 일등 공신인 리처드 개런이었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저와 최유나 헌터 사이에는 4등급의 차이가 있습니다.”

“왓더……!”

기겁하는 개런의 표정을 보며 준혁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성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제가 배면계에 있을 당시에는 더 성장하기 전에 모든 임무를 마쳤으니까요.”

헌터, 기자, 정부 관계자, 던전 및 각성 분야의 전문가 등 회견장에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이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최유나의 스탯 총합은 2,941이었다. 그런데 준혁의 스탯 총합은 그보다 훨씬 높은 9,995에 최유나보다 4등급이나 높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 남아 있었다.

스탯 총합 9,995가 성장의 한계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기자회견장 안에 다양한 상념이 뒤섞였다.

‘저 말이 사실일까?’

‘헌터들의 성장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어떤 훈련을 해야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질 헌터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저렇게 강한 김준혁이 경고할 정도라면 배면계 신수는 얼마나 위험한 존재이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준혁은 그런 상념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제가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군요.”

사람들이 퍼뜩 상념에서 빠져나와 준혁에게 시선을 모았다.

“저는 배면계에서 모든 신수들을 잡아 봉인한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감이 퍼지려는 찰나, 준혁은 빠르게 그것을 뭉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대일의 상황이었습니다. 배면계의 신수들은 유아독존인 놈들이라 다른 신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든요.”

누군가 손을 들었고,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시스템이 통합된 후에 둘 이상의 신수가 연계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까?”

“정확합니다. 아니, 이미 실제로 한 번 겪었습니다.”

질문은 한 사람당 하나이기에 또 다른 기자가 준혁의 말을 받아 질문했다.

“이미 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말입니까?”

잠실에서 열었던 헌터 포럼에서 준혁과 유민섭은 배면계의 정보를 모두 공개했었다.

하지만 단 하나, 공개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준혁이 게이트 돔에 생성된 또 하나의 게이트를 통해 던전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골드 드래곤 카이르무스에게 빙의한 굉황을 만났었다는 내용이다.

배면계의 이야기만으로도 충격이 큰데, 신수가 이미 이쪽 세상에 관여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공개되면 너무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최유나라는 존재가 헌터들에게 벽을 깨고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저는 던전 안에서 두 차례 신수와 조우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준혁은 굉황과 조우했던 일, 그리고 충충교, 화과와 싸웠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풀어 놓았다.

“인간에게 괴물이 빙의한다고?”

“언제 그런 놈을 만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잖아!”

“던전 몬스터는 억지로 이해한다 쳐도 사람에게까지?”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궁금한 점은 질문 받겠습니다.”

공황으로 물들었던 회견장이 한순간에 침묵에 잠기며 차분한 분위기로 변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멈칫하며 입을 다물면서 생긴 일이었다.

준혁이 목소리에 영력을 잔뜩 담아 외쳤기 때문이다.

누군가 손을 들었고, 그렇게 질문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인간에게 빙의가 가능한 겁니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각성자에게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신수를 받아들인 인간이 던전 밖에서 활동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다만 신수의 힘을 일정 수준 이상 받아들여 신체가 변형되는 수준까지 갈 경우, 신수들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던전 외부에서는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시스템이 통합된 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몸을 빼앗은 대상이 지닌 힘에 비례해 신수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을 빌렸을 때 어느 정도까지 본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저의 체감으로는 30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라서 그런 것인지, 해당 신수의 능력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답이 이어졌다.

준혁은 알고 있는 선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기자들은 바쁘게 손을 놀리며 그 내용을 기록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기자들이 준혁의 영력이 담긴 목소리를 통해 받았던 충격이 희석되었을 때쯤이었다.

“김준혁 헌터는 지금 황도형 헌터와 오경희 헌터 두 사람을 직접 살해했다고 시인한 겁니까?”

장내에 있던 모든 이들이 기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 기자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자리한 모두가 한 번 정도는 스치듯 떠올렸던 질문이다.

하지만 준혁과 척을 질 것 같아서 차마 던지지 못한 이야기였다.

다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준혁에게 시선을 모았다.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사실관계는 명확하게 해야죠. 황도형은 제 손에 죽은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오경희는 생포했으나 신수가 이곳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배면계로 달아나는 바람에, 이미 신체가 변형된 오경희가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겁니다.”

문제의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참지 못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디테일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던전 내부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까?”

그리고 준혁은 질문은 하나라는 룰을 어긴 것을 지적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인정합니다.”

기자회견장 안에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퍼져 나갔다.

던전 내부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는 일반 형법보다 훨씬 더 중벌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던전 안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로 기소된 헌터는 지금까지 단 1명도 없었다.

법 조항만 존재할 뿐,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최초로 던전 안에서의 살인을 시인한 헌터가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당사자가 현재로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준혁이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질문을 던진 기자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질문을 이어 갔다.

“현재 선고유예 상태인 것으로 아는데, 그런 범죄 사실을 자백해도 괜찮겠습니까? 가중처벌은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준혁이 피식 웃으며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내가 거기서 죽었어야 하는 겁니까?”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건가요?”

“내가 죽었으면 지금 말씀드린 사실들이 모두 묻혀 버렸겠지요.”

“의도가 좋다 해도 범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제가 그 자리에서 죽고, 그 비밀 집단이 목표를 달성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전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그것, 이것은 이것이죠.”

“계속 그런 질문을 던지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군요.”

“그저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해도 범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김준혁 헌터님은 지금 스스로 죄를 자백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자수할 생각입니까?”

마지막으로 나온 질문에 준혁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회견장의 분위기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다.

그저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준혁의 반응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준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갑자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로 인해 회견장의 긴장감은 오히려 증폭되었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준혁 헌터는 혹시 지금 자신이 법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문제의 기자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네?”

그제야 문제의 기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으로 하나 묻겠다고요.”

“아, 네.”

“그래서 어쩔 건데?”

“네?”

“질문이 너무 어려웠나? 자세하게 풀어 줄 테니 잘 들어라. 내가 던전 안에서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나한테 어쩌고 싶은 거냐고.”

“당연히 사법기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그럼 그러라고 해.”

“네?”

“마음대로 하라고.”

“지금 망명이나 국적 변경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번거롭게 뭐 하러?”

“그, 그게 무슨……?”

“마음대로 해라.”

“…네?”

“사법기관이든, 언론이든 때릴 수 있으면 때려. 단, 그 책임은 직접 져야 할 거다.”

대놓고 던지는 협박이었다.

준혁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법이, 공권력이 나를 못 건드린다고 해서 나를 욕하지 말고…….”

잠시 말을 끊은 준혁이 좌중을 한 번 훑어본 후 말을 이었다.

“나보다 약한 그 공권력의 무능을 욕해라.”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궤변이었다.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회견장에 모인 이들 대부분의 얼굴에 반발심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컥!”

“뭐야?”

“끄윽!”

회견장 전체에 놀람에 찬 실성이 퍼져 나갔다.

“기습?”

“뭐야? 이건!”

기자회견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몸뚱이에 시커먼 그림자가 휘감겨 있었다.

준혁이 펼친 ‘영박’이었다.

쿵, 쿠쿠쿵!

묵직한 소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한 번 울릴 때마다 한 사람씩 무릎을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몸을 휘감은 그림자가 어깨를 짓눌렀고, 그 힘을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끄으으으읍!”

대부분이 무릎을 꿇고 있는 가운데,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이들은 S급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그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콰앙!

버텼던 힘의 반동으로 더욱 거센 소리가 울렸다.

혼원 길드 동료들과 볼런트 라일 사무총장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무릎을 바닥에 처박은 모습은 놀랍기 짝이 없었다.

일순간 퍼지는 감정은 공포였다.

‘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S급들 중 누구도 버티지 못하고 있다고?’

‘도대체 몇 명을 한꺼번에 제압한 거야?’

‘뿌리칠 수가 없다.’

그리고 무력감이었다.

준혁의 오만한 말에 반발심을 품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감정적인 문제를 떠나 이성의 문제였다.

이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동반된다면, 그 오만한 말도 충분히 논리적인 이야기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힘이라면 ‘개인’으로서 ‘국가’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무력감에 휩싸인 기자회견장을 휘 둘러본 준혁이 ‘영박’을 풀었다.

“커헉!”

“헉헉!”

모두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는 이가 참가자의 3분의 2를 훌쩍 넘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준혁이 말했다.

“그럼 기자회견은 여기까지.”

갑작스러운 말에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룰 위반이야. 모두 꺼져.”

말을 마친 준혁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그대로 단상에서 내려갔다. 유민섭과 최유나 또한 한 마디도 토를 달지 않고 준혁과 함께 나가 버렸다.

장내에 있던 이들은 모두 멍한 얼굴로 무기력하게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회견장 안에 기이한 안광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헌터, 이상할 정도로 눈을 빛내며 준혁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이들은 모두 헌터들이었다.

‘노력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단 말이지?’

눈을 빛내는 헌터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이었다.

그들의 눈에서 빛나는 것은 강렬한 희열이었다.

준혁이 내보인 압도적인 힘이, 헌터들의 마음속 호수에 거대한 바윗덩이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파문이 끊임없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고 있었다.

강력한 힘, 어떤 제약도 당당하게 받아 낼 수 있는 자신감.

헌터라면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위상이었다.

이는 마음의 선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순수한 열망이었다.

헌터란, 힘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갈망의 최종 진화 형태가 준혁이었다.

준혁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고 공언했고, 그 결과물이 최유나의 성장으로 드러났다.

처음 그들이 준혁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맞이한 것은 지독한 열패감, 그리고 좌절감이었다.

하지만 모든 헌터가 그 열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것은 아니었다.

호승심, 혹은 향상심으로 늪에서 빠져나와 의욕을 불태우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 준혁의 등을 바라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준혁의 등은, 반드시 따라잡아야 할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헌터들의 이러한 갈망은 모두 준혁의 의도대로였다.

이러한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기자의 질문을 이런 방향으로 유도한 것이었다.

그렇게 준혁의 기자회견은 지구상에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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