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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신수(神獸)#2-
단단한 주먹이 호쾌한 바람을 끌어안았다.
쩌억!
통렬한 격타음과 함께 목이 꺾일 기세로 돌아가는 것은 황도형의 턱이었다.
빠악!
일순간 심장이 멎고 폐가 오그라들었다.
퍼억!
복부의 내장이 제 위치를 잃고 배 속에서 요동쳤다.
“끄억!”
황도형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껏 영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준혁의 주먹은 그것마저 뚫고 들어왔다.
한 방, 한 방이 죽음을 부를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아니, 죽지는 않아도 벌써 정신을 놓았어야 정상인 수준의 구타였다.
하지만 황도형은 또렷한 정신으로 그 무자비한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 내야 했다.
정확하게는 준혁이 딱 정신을 잃지 않을 수준으로 패고 있었다.
스킬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영력을 두른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자아낸 상황이었다.
‘이런 놈을 어떻게 이겨?’
끊임없이 얻어맞는 도중에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공포였다.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다.
특히 ‘썬더클라우드’를 펼쳤던 그 순간 목격한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황도형은 뇌전 계열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였고, ‘썬더클라우드’는 그의 스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기술이었다.
원래는 직경 10미터 공간에 10초 동안 무작위로 수십 개의 벼락을 떨어트리는 스킬이었다.
그 스킬이 영력에 의해 강화되었다. 범위는 직경 20미터로 늘어났고, 순차적으로 떨어지던 벼락이 한꺼번에 떨어져 20초간 유지되었다.
직경 20미터의 공간을 벼락으로 가득 채우는 스킬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그런데 준혁은 그 속에서 아주 태연했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편안한 걸음으로 벼락 속을 걸었다.
스킬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준혁은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다.
그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수백 줄기의 벼락을 온전히 맞으며 걸어오던 그 모습.
그때 얼굴에 떠올라 있던 그 편안한 미소가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뼛속까지 전해지는 고통이 더욱 선명한 공포를 아로새겼다.
쿠웅!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준혁의 주먹이 멈추자, 황도형은 그제야 바닥에 널브러질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였다고?’
황도형은 이미 준혁에게 한 번 맞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절대 이런 충격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힘 조절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교도소에서 탈출할 때만 해도 머릿속에 원한으로 가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통과 공포에 원한이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이 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다못해 이대로 기절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면.
저벅, 저벅!
“하아…….”
천천히 다가오는 준혁의 발소리에 황도형은 갑자기 마음이 놓였다.
어떤 식이든 더 이상 이런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렇게 황도형이 가만히 눈을 감았을 때였다.
‘씨발…….’
속에서 갑자기 욕설이 치밀었다.
눈을 감기 전에는 이대로 편안해졌으면 했는데, 눈을 감자마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쾌감이 치솟았다.
그리고 불쾌감과 함께 마음속에 공존하는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이거 왜 이래?’
황도형은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었다.
화를 내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졌었는데 왜 화를 내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불쾌함과 분노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격렬하게 부풀어 올랐다.
‘내, 내가 왜?’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 절로 눈이 떠졌고, 때마침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준혁과 눈이 마주쳤다.
“아!”
갑자기 터져 나온 탄성. 그와 동시에 황도형의 정신은 마치 스위치를 내린 듯 꺼져 버렸다.
직후, 번쩍 뜬 황도형의 두 눈에서는 흰자위가 사라져 있었다.
심연 같은 암흑으로 뒤덮인 황도형의 눈이 준혁에게로 향했다.
-도살자.
“이제 나왔냐?”
-김준혁.
“참 힘들었다. 그치? 이 짐승 새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의 무상곤이 누워 있는 황도형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1자루의 대도로 형태를 바꾼 대감도가 공간을 갈랐다.
날카로우면서도 무겁기 짝이 없는 거대한 압력에 주변의 공간이 뒤틀릴 정도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땅이 터져 나갔다. 영력의 파편과 터져 나간 흙이 한데 섞여 사방으로 비산했다.
“쳇!”
하지만 준혁은 쓰게 혀를 찰 뿐이었다.
터져 나간 땅 깊숙한 곳에는 잘려 버린 다리 한쪽이 덩그러니 널려 있었다.
‘태산인(泰山刃)’까지 사용한 공격치고는 성과가 아쉬웠다.
그리고 저 멀리 황도형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황도형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 상태가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제야 다리 한쪽이 잘려 나간 걸 인지했지만, 딱히 충격을 받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부우우우웅-!
어디선가 둔중한 바람 소리가 한데 뭉쳐 울리더니, 새까만 날벌레 떼가 황도형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간 날벌레 떼가 한곳에 뭉친 순간, 순식간에 황도형의 다리로 변했다.
그리고 준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아, 너였냐? 충충교(蟲蟲驕) 이 벌레 새꺄!”
동시에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화룡연무!”
뻗어 나간 영력이 거대한 술식진을 그렸다.
원형의 술식진을 비집고 튀어나온 것은 1마리의 거대한 화룡.
세상마저 태워 버릴 듯 작열하는 불길이 황도형, 아니 충충교를 향해 쏟아졌다.
부우우웅-!
또 한 번 들리는 날갯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튀어나온 벌레 떼가 화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픽, 피피피픽!
벌레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간극을 찾기 힘들 정도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주변 공기까지 태우며 기세 좋게 날아가던 화룡이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그 덩치가 사그라졌다.
그리고 충충교에게 닫기 직전에 완전히 꺼져 버렸다.
충충교의 새까만 눈이 준혁에게로 향했다.
-해함충(海含蟲)을 벌써 잊었나?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데도 마치 으스대는 듯한 느낌이 드는 태도였다.
준혁은 여전히 씩 말아 올린 입꼬리를 내리지 않은 채 말했다.
“어이구, 우리 충충교가 많이 약해졌네? 귀신 놀이 하느라 힘든가 보다?”
-뭐?
당연히 준혁은 해함충을 기억하고 있었다.
충충교는 벌레를 원형으로 하는 신수였다. 그리고 불은 벌레에게 가장 상극인 존재.
그 대비책으로 창조한 것이 바다(海:해)를 머금은(含:함) 벌레(蟲:충), 해함충이었다.
해함충 앞에서 ‘화룡연무’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도 준혁이 굳이 화룡연무를 사용한 까닭은 테스트였다.
“배면계에서는 100마리만 있어도 끄던 불인데, 이제 좀 많이 쓰더라? 한 1,000마리쯤 썼나?”
준혁은 이미 굉황을 겪어 보았다. 그 일을 통해 신수들이 본신으로 오지 않는 한, 원래의 힘을 제대로 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화룡연무’는 그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할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그제야 준혁의 의도를 알아챈 충충교가 빠르게 뒷걸음질 치는 순간, 준혁이 달려들었다.
“이 정도면!”
스걱!
충충교의 오른팔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전뢰보’까지 섞어 쇄도한 준혁의 속도는 신수라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해볼 만!”
온전히 남아 있던 왼쪽 다리가 끊어졌다.
“하잖아!”
뒤이어 잘려 나간 것은 왼쪽 팔.
충충교가 빠르게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순간, 준혁의 칼질이 그 뒤를 쫓았다.
“뒈져, 이 벌레 새꺄!”
츠컥!
마지막으로 목이 잘렸다.
퍽, 퍼퍽!
준혁의 칼질에 해체당한 충충교, 아니 황도형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동시에 준혁의 마지막 칼질이 공간을 갈랐다.
까가가가가강!
준혁의 칼에서 쉴 새 없이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칼날을 가로막는 막대한 저항감에 결국 준혁의 칼이 허공에서 멈췄다.
“젠장! 망할 벌레 자식!”
준혁은 허공에서 멈춘 대도를 갈무리하며 혀를 찼다.
준혁의 대도가 지나간 궤적의 바닥에는 수없이 많은 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이 녀석들은 금강문(金剛蚊)이라고 한다. 금강석과도 같은 침을 가진 모기들이지.
어느새 훌쩍 거리를 벌린 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뭐?
“벌레 새끼가 이렇게 친절한 설명‘충’이 될 줄 누가 알았겠냐?”
-무슨 말이지?
벌레와 ‘충(蟲)’ 자를 이용한 드립이었지만, 배면계의 신수에게 먹힐 만한 내용은 아닌 탓에 아재 개그가 되고 말았다.
준혁이 그만큼 여유롭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물론 준혁은 충충교의 이능과 놈이 부리는 모든 벌레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안물안궁이다, 이 새끼야!”
칼을 고쳐 잡은 준혁이 그대로 뛰쳐나가려 할 때였다.
그때였다.
과르르릉-!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
동시에 귓바퀴를 때린 것은 리쉬옌의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완(完:완전할 완)!”
10개의 영패가 동시에 빛을 발하며 허공을 날았다.
홀로그램이라도 된 듯 반투명하게 변한 영패들이 순식간에 최유나를 휘감았다.
짧은 소음이 울렸을 때, 영패들을 서로 이은 영력이 완전한 빛의 구가 되어 최유나를 감쌌다.
오경희에게서 터져 나온 공격이 쏟아진 것도 거의 동시였다.
콰콰콰콰!
수십 개의 거대한 무언가가 동시에 최유나를 후려쳤고, 그에 반응이라도 하듯 최유나를 감싼 구에서 새하얀 빛이 폭사되었다.
콰아앙, 파스스스!
폭음과 함께 최유나를 공격한 거대한 무언가가 순식간에 삭아 없어지듯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세상을 하얗게 탈백시킬 것 같은 빛이 최유나 주변 5미터의 공간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완(完)]
사용자와 영력으로 이어진 10개의 영패(靈牌)를 이용해 반경 1장(丈:약 3미터)의 구(球) 형태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공간은 완전무결한 상태로, 어떠한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해당 공간이 공격을 받으면, 배의 힘으로 반격해 주변 3장(약 9미터)의 공간을 소거한다.
공간은 10초 동안 유지된다.
사용자의 영력 8할을 소모한다.
리쉬옌이 가진 궁극의 기술인 ‘완’이었다.
완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물론, 무엇이듯 반격하여 없애 버리는 말 그대로 궁극의 기술.
하지만 영력 소모가 극심한 탓에 어지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기도 했다.
“헉헉!”
리쉬옌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무릎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영력의 80퍼센트를 한꺼번에 소모해 몰려온 탈력감 탓이었다.
그때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일대를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 탓이었다.
그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리쉬옌의 등을 받치는 손길이 있었다.
“고생했다.”
준혁이었다.
준혁의 목적은 저 신수들이 직접 나서도록 만드는 것이었고, 최유나와 리쉬옌은 그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셈이었다.
준혁이 일대를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꽃과 벌레라……. 조합 한번 끝내주네!”
거대한 그림자의 주인은 지표면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수십, 아니 수백 줄기의 넝쿨이었다.
“이름이 화과(花果)였던가?”
곧장 대답이 되돌아왔다.
-김준혁!
“오랜만이지? 오랜만에 잡초 좀 뽑아야겠…….”
하지만 뒤이어진 외침에 준혁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너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뭐?”
부모? 신수가?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