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75화 (75/240)

-075-

-28장. SS급#3-

-지금 최유나가 S급을 넘었다고 들은 거 같은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

-당연하죠. 조심해야 할 적이 늘어난 거잖아요.

-상관없다. 우리 힘으로 모두 짓누를 수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B급 주제에 내 말에 토를 달겠다는 거냐?

-말조심해요! 지금은 당신이나 나나 같다는 거 몰라요?

아무도 모르게 대화를 나누던 오경희의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이 솟구쳤다.

그때였다.

“경희야, 뭘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어?”

길드장이자 알파팀의 팀장, 백호진이 오경희에게 말을 걸었다.

“아, 팀장님.”

“뭐 고민이라도 있어?”

“아, 아뇨.”

오경희가 고개를 저으며 벌떡 일어났다.

“저는 정찰 좀 다녀올게요.”

오경희는 그렇게 말한 후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오경희의 뒷모습을 보는 백호진의 두 눈에 안타까움이 깃들었다.

‘힘들겠지.’

오경희는 한 달쯤 전에 부모님을 잃었다. 불의의 사고였기에 오경희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었다.

한동안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정도다.

그러다 다시 길드에 모습을 드러낸 지 이제 불과 일주일이었다.

애써 씩씩한 척하는 것처럼 보여 길드장인 백호진은 좀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안유정이 백호진에게 다가왔다.

“길드장님.”

“응?”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백호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안유정이 슬쩍 몸을 틀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저쪽 팀에서 말했던 거요.”

“SS급?”

“네.”

“사실이겠지, 뭐.”

조금은 어눌한 말투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백호진의 모습에 안유정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왜 그래?”

조금 겁을 먹은 듯 상체를 뒤로 빼는 백호진을 바라본 안유정은 한층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호진은 출중한 실력을 가진 근접 딜러였다. 하지만 우직하고 조금은 아둔한 면이 있는 탓에 항상 손해를 보는 사람이었다.

안유정이 처음 백호진을 만났을 때도 백호진은 정규 공대에서 심각하게 착취당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안유정이 백호진을 데리고 나와 백호 길드를 만들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백호진의 실력과 안유정의 센스가 시너지를 만들면서 지금의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다.

머리 회전이 조금 늦기는 해도 남자다운 우직한 모습 덕분에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헌터 바닥에서 두 사람은 온달과 평강 커플로 유명했다. 심지어 안유정의 이름을 안평강으로, 백호진의 이름을 백온달로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

하지만 그런 안유정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었다.

“으이구, 이 답답아! 뭐 느끼는 거 없냐?”

“느끼는 거?”

“지금까지 S급이 등급을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지?”

“그랬지.”

“그런데 최유나 헌터는 보란 듯이 S급을 뛰어넘었잖아.”

“그래서?”

“그럼 우리도 A급을 넘어 S급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냐고!”

백호진은 그제야 거기에 생각이 미쳤는지 멈칫했다.

“어,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러니까 유정이 네 말은…….”

“그렇지. 혼원 길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우리도 이 지긋지긋한 A급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잖아.”

보통 각성자들은 초기 각성 등급에서 2등급까지는 더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하위 등급의 경우였다. B등급이 A등급이 된 사례는 꽤 드문 편이었고, A등급이 S등급이 된 사례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백호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내가 기회를 봐서 저쪽 길드장님이랑 이야기를 좀 해 볼게.”

하지만 안유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응?”

“오빠한테 맡기면 될 일도 안 될 거 같아. 그냥 내가 가서 말할게.”

“어, 으응……. 그럴래? 솔직히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도 안 와.”

“그럴 줄 알았다.”

“흐흐, 고마워.”

“니가 좀 알아서 해라, 응? 길드장님아.”

하지만 백호진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끄윽!”

눈을 뜬 최유나가 처음 뱉은 것은 묵직한 신음이었다.

“이상하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최유나의 귓속으로 리쉬옌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리쉬옌은 지금 최유나의 상태를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감각이 확장된 직후라 산들바람만 불어도 살갗이 에이는 느낌일 거예요.”

리쉬옌의 말대로였다. 입고 있는 갑옷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멀리 확장된 시야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많아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를 정도였다.

과도할 정도로 많은 정보에 모든 감각기관이 타 버릴 것 같은 느낌.

“끄윽!”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고통이 한층 심해졌다.

“S등급은 배면계의 율지(律地)급과 비슷해요. 율지, 땅 위의 규칙을 안다는 뜻이죠. 그리고 율지급 위의 단계가 지천(至天)급이에요. 하늘에 닿았다는 뜻이죠. 그 순간 성장을 막고 있던 인간이라는 껍데기가 깨지는 거예요. 지금의 그 감각은 처음으로 한계를 벗은 감각들이 마구 날뛰는 탓이죠.”

꾹 닫힌 최유나의 눈꺼풀 너머로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지금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명확한 의미가 머릿속에 각인되듯 박히며 이해가 갔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느낌.

리쉬옌이 말을 이었다.

“마음을 다스리면서 감각을 조절해 봐요. 우선은 호흡부터. 천천히, 천천히 숨을 골라요. 마시고, 내쉬고…….”

최유나는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양 리쉬옌의 말에 따랐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호흡이 이어지자 리쉬옌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천급이 되면 감각 역시 숨을 쉬듯 조절할 수 있어요. 어렵지도 않아요. 지천급이 되었다는 건 불수의근도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뜻이거든요.”

불수의근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근육 중 본인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육을 뜻한다. 보통 내장 근육이 이 불수의근에 속했다.

반대로 수의근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인데 골격근이나 혀, 괄약근 등이 여기에 속하는 근육이었다.

리쉬옌의 말대로라면 최유나는 이제 내장 근육까지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가장 먼저 다스려야 할 감각은 시각이에요. 눈을 감기만 하면 차단할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에 시각부터 다스리는 거예요.”

최유나는 리쉬옌의 인도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감각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시각에서 시작해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의 순서로 이어진 감각의 컨트롤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쉬옌의 말대로 이미 그것을 할 수 있는데 처음이 낯선 상태였던 것뿐이기 때문이다.

“어?”

그리고 모든 감각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최유나가 놀란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오감이 아닌 또 다른 어떤 감각이 뇌로 정보를 보내오고 있었다.

이 또한 리쉬옌이 설명해 주었다.

“육감(六感), 오감을 넘어선 여섯 번째 감각이에요. 지천급이 되면서 또 다른 감각이 열린 거죠.”

“아!”

최유나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감각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 상황이 홀로그램으로 영상화한 듯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 최유나를 향해 리쉬옌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SS급.”

“SS급…….”

최유나는 리쉬옌의 말을 입으로 되뇌며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최유나

클래스:전사

근력:[728] 순발력:[573]

지구력:[599] 감각:[526]

마나:[515]

스킬:

[마나 컨트롤], [불굴의 의지], [전사의 검], [근력 증폭], [와일드 대시], [마이티 세버], [브로큰 스매쉬], [스피어 스트라이크], [디비젼 블래이드], [소드 래피츠], [스피어 웨이브], [브로큰 타워], [광전사],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미개방]

망막에 비치는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최유나는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노력을 해도 단 1도 변화가 없던 스탯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솟구쳐 있었다.

각 스탯이 대부분 400 이상 치솟은 상태였다.

미개방 상태였던 9개의 스킬 중 5개가 새롭게 열려 있었다.

“SS급…….”

그제야 자신이 S급을 넘어 SS급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SS급…….”

같은 말을 계속 되뇌던 최유나는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겁고 낯선 무언가가 최유나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그동안 목숨 걸고 해 온 훈련에 대한 감회 때문인지, 드디어 맛본 결실에 대한 기쁨 때문인지 최유나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최유나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리쉬옌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 시각, 준혁은 작은 언덕 정상에서 청랑에 올라탄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디냐?’

계속 느껴 왔던 음습한 그 기운의 근원을 찾는 중이었다.

‘으음…….’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기운의 근원지를 정확하게 잡아낼 수가 없었다.

준혁은 천천히 눈을 감은 채 감각을 확장했다.

머릿속에 주변 일대의 상황이 완벽하게 형상화되어 떠올랐다.

최유나가 새롭게 얻은 그 감각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육감이라 해도 그 범위는 절대 최유나가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최유나의 육감이 반경 2~3미터 정도의 범위라면, 준혁은 무려 50미터에 달했다.

정확도 또한 차이가 났다. 화질로 비유하자면 최유나가 270p급이면 준혁은 거의 1,080p급이었다.

‘둘인데…….’

일단 음습한 기운이 두 종류라는 것까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음!”

준혁의 감각으로도 두 줄기의 기운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꽤 심각한 문제였다.

‘이 정도면 신수급인데?’

준혁의 감각 범위 내에서 정체를 숨길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정도 급이라고 봐야 했다.

‘백효를 두고 온 게 아쉽네.’

혹시나 싶어 형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흑호와 백효를 밖에 두고 들어온 참이었다.

만약 백효가 있었다며 좀 더 정밀한 탐색이 가능했으리라.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유나가 S급의 벽을 넘었다는 점이다.

최유나와 리쉬옌 두 사람이라면 팀원들을 지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지난번 굉황 때처럼 신수들이 본신의 힘을 완전히 쓸 수 없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거기까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놈들이 제힘을 온전히 쓸 수 있었으면 벌써 난장판을 만들었겠지.’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준혁은 청랑을 타고 다시 일행들에게로 돌아갔다.

“이쪽으로 포즈 한번 잡아요!”

강이찬이 불쑥 튀어나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지금까지는 상황이 급박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는데, 때마침 기회가 온 것이었다.

잠실에서도 촬영한 적이 있지만, 던전 안에서의 이런 모습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습관이 된 것인지 반사적으로 자세를 잡아 준 준혁이, 황급히 메모리카드를 회수하는 강이찬을 향해 물었다.

“사진은 많이 찍었냐?”

“당연하죠. 유나 씨가 SS급이 된 그 순간, 그리고 김준혁 헌터님이 유나 씨를 상대하던 그 순간까지 완벽하게 카메라에 잡았습니다.”

역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강이찬이었다.

준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최유나에게 다가갔다.

“후우!”

최유나는 이제 좀 진정이 됐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하게 감정을 추스르지는 못한 듯 아직 양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SS급이 된 소감은 어때?”

최유나가 냉큼 일어나 준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 오늘 던전은 네가 끝까지 마무리해라.”

“네.”

최유나가 한층 단단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아, 그런데 앞으로도 한동안은 스킬 사용 금지다.”

급작스럽게 바뀐 피지컬에 적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유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완전한 신뢰가 자리 잡은 후였기에 준혁의 말이라면 뭐든 수행할 준비가 된 최유나였다.

준혁이 유민섭을 향해 외쳤다.

“다 쉬었으면 이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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