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72화 (7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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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 전환점#3-

삑!

출입증을 찍자 경쾌한 신호음과 함께 유리문이 좌우로 열렸다.

“후우!”

유리문을 통과한 강이찬은 긴 한숨을 내쉬며 출입증을 갈무리했다.

유민섭이 직접 강이찬에게 발급해 준 출입증이었다.

보안 시설을 제외한 정문과 일반 사무 공간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출입증이었다.

그만큼 강이찬이 혼원 길드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이찬에게도 혼원 길드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아니,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 같았다.

콘텐츠 고갈로 침체기에 들었던 강이찬의 방송은 혼원 길드와의 만남으로 콘텐츠가 쏟아져 내렸다.

혼원 길드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물론, 영웅적인 면모까지 드러내며 강이찬의 방송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쏟아지던 콘텐츠가 갑자기 뚝 끊어졌다.

잠실 사태라고 명명된 영수들의 습격 이후부터였다.

전국의 모든 취재진이 혼원 길드에 들러붙는 바람에 차별성이 사라진 것이었다.

당시에 깊이 있는 인터뷰라도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혼원 길드의 미국행으로 체면치레는 했지만, 그 후 거의 한 달 동안 혼원 길드와 관련한 새로운 것을 보여 주지 못했다.

시청자 수도 거의 반 토막이 난 상황이었다.

‘아, 제발 뭐 하나 터져 줘야 하는데…….’

그때 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어? 리쉬옌 씨, 안녕하세요.”

“아, 네.”

그런데 리쉬옌 역시 표정이 조금 어두워 보였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아니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네에. 아, 그런데 흑태자 님 어디 계신지 알아요?”

“지하 훈련실이요.”

그 대답에 강이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하 훈련실은 거의 최유나가 독점한 곳인 탓이었다.

“감사합니다.”

일단 인사부터 건넨 강이찬은 서둘러 지하 훈련실로 내려갔다.

쿵쿵!

지하실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강이찬은 서둘러 훈련실 문에 난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오!”

보자마자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최유나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준혁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강이찬은 늘 제 몸처럼 들고 다니던 액션 캠을 들고 녹화를 시작했다.

전광석화와 같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얼음여왕의 재발견!’

오늘의 콘텐츠였다.

자낳킹의 본능은 최유나의 움직임을 초고속 촬영 모드로 녹화하고 있었다.

물론 선 녹화, 후 허락이었다.

‘오늘 친위대 놈들한테서 풍선 쏟아지겠는데?’

친위대는 ‘얼음친위대’라는 최유나의 팬 카페를 이르는 말이었다.

최유나가 혼원 길드에 들어온 직후에는 친위대 사람들이 강이찬의 방송에 많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최유나가 기본기 다지는 데 집중하는 바람에 비중이 공기급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친위대원들은 강이찬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방송에서 사라졌다.

지금 촬영하는 이 동영상은 그런 친위대를 다시 불러들일 절호의 찬스였다.

어마어마한 팬덤을 가진 최유나인 만큼 유입되는 시청자도 무시무시하리라.

그때였다.

“내일 공략은 네가 메인 딜러로 간다.”

안에서 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이찬의 귀에는 풍선이 비처럼 쏟아지는 소리였다.

‘저를 콘텐츠와 풍선이 흐르는 땅으로 이끄는 흑태자 님께, 준멘.’

강이찬에게 흑태자는 신앙이었다.

***

준혁이 훈련실에서 올라온 때는 저녁 즈음이었다.

최유나는 준혁의 혹독한 훈련을 모두 소화한 후, 훈련실에서 기절하듯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사실 좀 더 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만났던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기에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마무리한 것이었다.

“준혁 씨!”

엘리베이터를 나서는 준혁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유민섭이었다.

“네?”

“잠시 얘기 좀 하시죠.”

“어? 약속이 좀…….”

“금방 끝납니다.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요.”

유민섭의 말에 준혁은 잠시 시간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20분 정도밖에 여유 없습니다.”

“네. 회의실로 가시죠.”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유민섭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이제 슬슬 대답을 내놓을 때가 된 거 같습니다만?”

“대답? 무슨 대답이요?”

“배면계요.”

“음?”

“그 무명회라는 조직이요. 대책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논의할 때가 된 거 같다고요.”

“아아.”

“와! 이런 식으로 나오깁니까?”

“이런 식이라뇨?”

“알아들어 놓고 못 알아듣는 척했잖아요, 지금.”

“눈치챘습니까?”

“내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였습니까?”

“크흐흐! 길드장님한테는 은근 장난치는 맛이 있단 말입니다.”

“아, 됐고, 어쩔 생각입니까?”

잠실 사태 이후 혼원 길드에는 전 세계에서 문의가 빗발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 오는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 탓에 혼원 길드 내에 있는 모든 유선전화는 아예 전화선을 뽑아 버렸고, 직원들은 모두 휴대폰을 하나씩 더 개통해야 했다.

준혁과 유민섭의 재판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 것 또한 이와 관련이 있었다.

법적인 절차가 끝나야 가능하다는 공지를 올린 탓에 대한민국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전방위적으로 압박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재판이 끝난 지금, 그 일에 대해서 혼원 길드도 답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

“조만간 한국 국적의 배면계 귀환자들을 찾아낼 겁니다.”

“어떻게요?”

린디웨의 정체를 모르는 유민섭으로서는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음… 비밀입니다.”

“네?”

이런 중요한 사안에 비밀이라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아무튼 국내부터 청소하고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그때까지는 문제의 그 술석이나 모으라고 얘기하세요. 현재로서는 시스템 혼란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국내부터라…….”

유민섭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유민섭을 향해 준혁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우리 가족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형과 형수, 조카, 길드장님을 포함해 우리 길드 소속 사람들이 안전해야 합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문젭니다.”

“김준혁 씨…….”

“바로 옆에서 다른 나라가 망한다 해도 가족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부터 할 겁니다. 누구에게나 각자 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다르니까요.”

“흐음, 저도 딱히 준혁 씨 의견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당연한 겁니다. 다만, 저한테는 ‘대’가 방금 말한 내 가족일 뿐이죠.”

여전히 진지하기 짝이 없는 준혁의 모습에 유민섭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왜 이러지?’

굉황이 카이르무스의 몸을 빌려 나타났을 때도 이죽거리며 말장난을 던지던 준혁이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유민섭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답은 금방 나왔다.

‘나 때문이구나.’

그러는 동안에도 준혁은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 길드장님도 우선은…….”

“준혁 씨.”

유민섭이 얼른 준혁의 말을 끊었다.

“네?”

“평소에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 정도로 박애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 역시 세계 평화보다 한국의 안전이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준혁은 혹여나 유민섭이 대의를 위해야 한다며 엉뚱한 말을 할지도 몰라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유민섭의 말에 준혁이 잠시 멈칫했다가 갑자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박애주의자?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요?”

“그럼 왜…….”

“호구.”

“네?”

“국제적인 호구 아니었습니까?”

“우와! 이 사람이 진짜 사람을 어떻게 보고…….”

“아, 저는 약속이 있어서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준혁이 서둘러 회의실을 나섰다.

그날 밤, 린디웨는 수백 장에 달하는 신상명세서를 보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

쿵, 쿵!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머리통 하나가 규칙적으로 벽을 두드렸다.

“씨발!”

머리통의 주인은 간헐적으로 욕설을 뱉으며 끊임없이 머리로 벽을 두드렸다.

쾅, 쾅!

남자가 앉은 방향의 반대편에 있던 철문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위협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32144호! 조용히 해!”

그제야 남자는 머리로 벽을 두드리는 행동을 멈췄다.

하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욕설을 또 한 번 뱉었다.

“김준혁 이 개새끼!”

짧게 자른 머리, 푸른색 수의, 양 손목과 발목에는 마나 구속 장치를 차고 있는 남자는 황도형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경기도 외곽 경천시에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각성자 전문 수감 시설인 ‘경천 교도소’였다.

“나가기만 해 봐, 이 개새끼들.”

황도형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이들을 향한 원한을 곱씹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깊은 원한을 품은 이가 있었다.

‘김준혁, 이 개새끼!’

황도형이 속으로 또 한 번 욕을 씹어 삼켰다.

김준혁을 만나고 황도형의 인생은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금 징역형을 살고 있는 것은 물론, 그동안 쌓아 놓았던 돈은 모조리 국고로 환수당했다.

SS급이라 불릴 정도로 강한 헌터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나가 봐야 그를 받아 줄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던전 공략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껏해야 3~4급 던전을 혼자 돌아야 하는데, 그 정도로는 이전에 누리던 생활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원인은 준혁이었다.

까드드득!

황도형이 억세게 이를 갈아붙일 때였다.

지이잉!

갑자기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헉!”

기겁한 황도형이 황급히 몸을 뒤로 물리는 순간, 튀어나온 그것이 정확한 형체를 갖췄다.

“반갑습니다.”

“너 뭐야?”

황도형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눈앞에 선 남자를 보았다.

‘이게 말이 돼?’

이곳은 각성자 수감 시설이었다. 외벽은 물론 내부 시설까지 모조리 마나가 차단되는 자재와 강철판을 이중으로 이용해 지은 곳이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면 S급 육체 계열의 각성자라 해도 일반인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기 때문에 각성자들을 수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곳에서 스킬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아니, 그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텔레포트? 그런 게 있을 리가?’

던전 안에서 긴급하게 대피하는 블링크를 가진 마법사들은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곳으로 바로 이동하는 텔레포트는 지금껏 등장한 적이 없었다.

황도형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감방 문에 난 작은 창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남자가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리는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황도형의 고개가 천천히 남자에게로 향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목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느낌이었다.

고급스러운 슈트를 차려입은 말끔한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하지만 말끔한 인상과 달리 싸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에 황도형은 심장이 저린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내가 겁을 먹었어?’

황도형의 두 눈에 불신이 번졌다.

아무리 마나 구속 장치를 차고 있다 해도 SS급이라 불리던 황도형이었다. 황도형은 그런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쉬이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인식의 영역이 아닌, 본능의 영역이었다.

황도형이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뭐야?”

“쓸데없는 통성명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본론?”

“제안할 게 있습니다.”

“무슨?”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복수?”

“김준혁.”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황도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온몸에서 검붉은 안개가 풀썩 피어올라 그를 휘감았다.

“그건 김준혁 그 새끼의…….”

황도형의 생각을 미리 읽기라도 한 듯 남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저도 김준혁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도형이 확인하듯 물었다.

“배면계?”

“그렇습니다.”

“그럼 너는…….”

남자가 빠르게 황도형의 말을 끊었다.

“이 배면계의 능력을 당신에게도 줄 수 있습니다.”

“뭐?”

“아마 김준혁 그놈을 능히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황도형의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진짜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드릴까요?”

“그런 힘이 정상적일 리가 없잖아.”

“당연한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이런 힘을 노력도 없이 얻는데 부작용이 없을 리가.”

“어떤 부작용이…….”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김준혁을 죽일 수 있다는 것.”

“그 말은 어떻게 믿지?”

“안 믿어도 됩니다.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린 남자가 황도형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이렇게 갇혀서 비루하게 사느니, 복수의 끈을 잡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만?”

황도형의 얼굴에 짙은 갈등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황도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복수, 확신할 수 있는 건가?”

“물론입니다.”

“받겠다.”

황도형이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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