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71화 (7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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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 전환점#2-

“여기 괜찮네요.”

“아무래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여기로 잡았습니다.”

“역시 눈치가 빠르네요. 그런데 장소가 하필이면… 이거 너무 애환이 섞인 장소 같네요.”

준혁이 마주 앉은 남자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뭐, 대표님이 워낙 싱글 몰트를 즐기시니 저도 이렇게 됐습니다.”

마주 앉은 사람은 유민섭의 수행비서인 장형준이었다.

그리고 지금 준혁과 장형준이 와 있는 곳은 ‘리큐르 덴’이라는 이름의 고급 위스키 바였다.

매장 가장 안쪽에 유리 칸막이로 구분된 룸에 앉아 있었는데, 문만 닫으면 완벽한 방음이 되는 곳이었다.

장형준이 준혁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따로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경찰 중에 아는 사람 있습니까?”

“경찰……?”

준혁의 말을 한 번 되뇐 장형준은 이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짧은 시간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말을 이었다.

“말씀하시는 분위기가 경찰이면 아무나 상관없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수배 가능합니까?”

“그에 대답하기에 앞서… 왜 하필 접니까?”

질문에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대답을 미룬 장형준이 준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 그 눈빛이 꽤 날카롭고 공격적이었다.

장형준은 각성자이기는 하지만 그 등급이 C급이었다. 그런데 S급을 훨씬 상회하는 준혁을 노려보면서도 조금도 주눅 드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강단 있는 사람이네.’

항상 조용히 유민섭 뒤에만 있었기에 지금까지는 발견하지 못한 의외의 모습이었다.

준혁은 자연스럽게 장형준의 눈빛을 받아넘기며 입을 열었다.

“유민섭 길드장은 바른생활 사나입니다. 요즘은 저 때문에 약간 탈선을 하기는 했지만, 정도를 넘어선 적은 없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그런 도덕적인 성격으로는 나올 수 없는 결과가 한두 번씩 나와요. 사람을 조사한다든가, 어떤 정보를 찾는다든가 할 때 말이죠. 저는 그게 장 비서님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맞습니까?”

장형준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길드장님은 천성이 선한 분이라 그런 지저분한 일에 손을 담그면 안 되니까요.”

“큭!”

준혁이 참지 못하고 터트린 웃음에 장형준의 눈빛이 한 층 날카롭게 변했다.

“왜 웃죠?”

“절대 순진한 사람이 아닌데 너무 순진해서 말이죠.”

“네?”

“설마 유민섭 길드장이 그 사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 빠꼼이가?”

“그게 무슨……?”

“그거 알면서도 묵인하는 겁니다. 물론 유 길드장이 천성적으로 선한 사람은 맞습니다. 하지만 장 비서님 생각처럼 융통성 없이 올곧기만 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한민국 1위 길드를 만듭니까? 그냥 알면서도 받아 주는 겁니다.”

“그런…….”

장형준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준혁을 보았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은 못해 봤다는 얼굴이었다.

준혁은 재빨리 화제를 본론으로 돌렸다.

“뭐, 유 길드장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기준이 있으니 일단 넘어가죠. 돈으로 부릴 수 있는 경찰, 수배 가능한가요?”

“그 전에 확인할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뭡니까?”

“길드장님께 피해가 가는 일은 아니겠죠?”

“허! 정말 만고의 충신이시네요. 조만간 단심가라도 읊을 기셉니다.”

“농담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요?”

준혁은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하하! 제가 졌습니다. 좋아요. 약속하죠. 절대 유 길드장한테 피해 안 갈 겁니다.”

“설마 김준혁 씨 정도 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좀 믿어요. 내가 그렇게 믿음을 못 주는 사람은 아닐 텐데?”

하지만 장형준은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 표정으로 준혁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품에서 피처폰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받으십시오.”

“대포폰?”

“내일 아침에 그 휴대폰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착수금으로 대충 300 정도 요구할 겁니다. 미리 준비해서 가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천천히 들어가십시오.”

말을 마친 장형준이 성큼성큼 룸을 나섰다.

그리고 준혁은 그런 장형준의 뒷모습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삐쳤네.”

***

‘확실히 이런 쪽으로 능력은 좋은 거 같네.’

이른 아침, 준혁은 매구탈로 얼굴을 바꾸고 길을 나선 참이었다.

새벽에 장형준에게 받은 대포폰으로 문자가 1통 왔다.

「오전 8시 30분, 독립문역 5번 출구 앞 벤치,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고 앉아 있으시오.」

「확인 암호는 ‘불 좀 빌립시다.’, ‘성냥밖에 없습니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문자였다. 물론 고민할 필요도 없이 준혁이 원한 그 경찰이리라.

그 탓에 준혁은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불도 붙이지 않았지만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탓인지 간간이 날카로운 눈빛도 받았다.

하지만 문제의 경찰이 등장할 때까지는 이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앉아 10여 분이 지났을 때였다.

덩치 좋은 중년 남자가 갑자기 옆에 앉더니 말을 걸었다.

“불 좀 빌립시다.”

기다리던 암호였다.

“성냥밖에 없습니다.”

“에이, 성냥은 좀……. 그래, 무슨 일이슈?”

남자가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람들 신상 좀 뽑아 줬으면 좋겠군요.”

“신상?”

남자의 반문에 준혁이 종이 1장을 건넸다.

종이에는 여러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난밤에 린디웨가 작성한 명단으로, 배면계 귀환자 중 한국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뭐요? 대한민국에 같은 이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름만 덜렁 주면 어쩌자는 거요?”

“그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 가출, 혹은 실종 신고가 접수된 적 있는 사람, 혹은 현재도 실종 상태인 사람들의 인적 사항을 뽑아 주십시오. 사진까지 있는 걸로.”

준혁은 지구의 시간으로 2개월 만에 귀환했지만, 보통의 경우 귀환하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

그런 경우 대부분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름을 뽑고, 그중에 가출이나 실종으로 신고된 이들을 뽑으면 범위를 극단적으로 좁힐 수가 있었다.

“음.”

“힘듭니까?”

“힘들 게 뭐 있겠수? 그냥 이상한 걸 요구한다 싶어서 그러지.”

“오늘 밤까지 받아 봤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럽시다, 까짓것. 대신 돈은 좀 더 들 겁니다.”

“말해 봐요.”

“총 800. 착수금으로 300 먼저 내고, 나머지는 결과 받을 때 주슈.”

“알겠습니다.”

장형준이 말한 대로였다. 준혁이 미리 준비한 봉투를 건네자 남자가 낚아채듯 그것을 품에 넣었다.

“안 세어 봐도 되겠죠?”

“뭡니까? 아마추어같이.”

“허허! 이 판에도 사기 치는 놈들이 많아서 말이요. 그럼 저녁에 문자 하겠수.”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일어나 제 갈 길을 갔고, 준혁 또한 이내 혼원 길드로 향했다.

***

쿵, 쿠쿵!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층 전체가 간헐적으로 흔들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준혁은 발바닥으로 올라오는 흔들림을 느끼며 새삼 감탄을 터트렸다.

“크!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공사 참 잘했네. 진작 건물이 무너졌어도 이상하지 않겠어.”

쿵쿵거리는 소음과 흔들림은 이곳, 혼원 길드 지하 훈련장의 일상이었다.

준혁은 휘적휘적 걸어 훈련실 문에 난 창을 통해 훈련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쾅, 콰쾅!

던전 부산물로 만든 충격 흡수용 자재의 벽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가로세로 20미터 정도 되는 넓은 공간에 2개의 인영이 격렬하게 맞붙고 있었다.

“늦어요!”

목소리는 앳되지만, 그 안에 담긴 엄격함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카앙, 캉!

롱 소드가 그리는 궤적이 한층 과격하게 변했다.

“좋아요. 그겁니다. 정말 많이 좋아졌네요. 기본은 지키되, 상황에 따라 힘을 싣기도, 빼기도 할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무기를 제 몸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리쉬옌이었고, 그 지도를 받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최유나였다.

소음과 흔들림을 혼원 길드 지하의 일상으로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최유나가 한창 공격에 집중하며 무아지경에 빠지려던 찰나였다.

꽈앙!

“끅!”

묵직한 소음과 함께 최유나가 꼴사납게 바닥을 마구 굴렀다.

리쉬옌이 한층 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중하는 건 좋지만, 과도한 몰입은 좋지 않습니다. 그게 가장 위험해요. 시야가 좁아지고,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게 됩니다.”

최유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묵직하게 끄덕인 후 검을 고쳐 잡았다.

안을 들여다보던 준혁이 훈련실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그때였다.

“열심히 했어?”

“네.”

여전히 무미건조한 대답이었다.

‘도통 뭔 생각을 하는지……. 아니, 그냥 생각을 안 하나?’

준혁이 보기에도 최유나는 확실히 이상했다.

혼원 길드에 들어온 날부터 최유나의 일상은 늘 이 훈련실이었다.

게이트 돔 진압이나 길드의 공식 업무가 있을 때를 제외하면 식사는 물론 잠까지 이 훈련실에서 해결했다.

사람이란 그렇다.

돈이 있고 풍족해지면 그에 맞는 삶의 질을 누리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런 일에 딱히 흥미가 없는 준혁도 야구 선수로서 큰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나름의 호사를 누리고 살았다.

그런데 S급 헌터는 억대 연봉자인 프로 선수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번다.

그런데 최유나는 그 어떤 것도 누리지 않았다.

옷은 항상 트레이닝복 일색이고, 머리도 항상 쇼트커트로 짧게 치고 다녔다.

극도로 효율만을 중시하는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잠깐 상념에 잠겼던 준혁이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뭐 내가 걱정해 줄 일은 아니지.’

지난번 잠실에서 싸울 때 보니 이제 제법 기본기가 다져진 듯했다. 그래서 잠깐 시간이 난 김에 점검 차 찾아온 것이었다.

“얼마나 늘었는지 한번 보자.”

그 말에 최유나의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이 번뜩였다.

‘뭐야, 갑자기 눈에 생기가 돌아?’

최유나가 롱 소드를 고쳐 쥐었고, 준혁은 무상곤을 뽑아 들었다.

“덤벼.”

쉬우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유나가 짓쳐 들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깜짝 놀란 리쉬옌이 황급히 몸을 빼는 찰나, 최유나의 롱 소드가 준혁의 목을 향해 섬뜩한 궤적을 그렸다.

까앙-!

날카로운 금속성이 훈련실 안에 메아리치고, 두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얽혀 들었다.

깡, 까가강!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베고 찌르는 검격 하나하나가 명확한 목적과 선명한 궤적을 품고 바람을 갈랐다.

준혁의 두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제법!’

기본기를 잡는 데만 꽤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었다. 어설프게 몸에 밴 동작들이 큰 걸림돌이 되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최유나의 성취는 준혁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잠실에서 잘못 본 게 아니군.’

운이 좋으면 한두 번은 제대로 된 공격을 날릴 수 있다.

잠실에서의 그 공격이 운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였다.

그리고 최유나는 합격이었다.

까앙-!

거세게 휘두른 준혁의 무상곤에 최유나의 롱 소드가 튕겨 나왔다.

까득!

어깨가 활짝 열릴 정도로 거센 반발력에 최유나는 이를 악물었다.

쾅!

떠 있던 오른발로 땅을 찍는 동시에 왼발을 들으며 몸을 뒤흔드는 반발력에 오히려 몸을 실었다.

쉬이익!

롱 소드의 검날이 회전력까지 끌어안은 채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아 준혁의 목을 향해 수평의 원을 그렸다.

최유나가 날린 회심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게 무색하게 최유나의 회전은 덜컥거리며 멈추고 말았다.

준혁의 손에 롱 소드가 잡힌 것이었다.

“큭!”

최유나는 짧은 신음과 함께 준혁을 바라보았다.

겨우 손가락 2개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하지 않는 롱 소드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절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아직 멀었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최유나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결정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에 최유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네?”

“내일 공략은 네가 메인 딜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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