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70화 (7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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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 전환점#1-

“그런데 궁금한 게 있거든?”

준혁이 운전하는 차의 동승석에서 린디웨가 입을 열었다.

“뭐가?”

“아까 그렇게 말했지? 처음 만났을 때 위화감을 느꼈다고.”

“그랬지.”

“도대체 그게 무슨 위화감인데?”

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니가 한 말.”

“내가 한 말?”

“니가 이렇게 말했지. ‘굳이 엽사한테 안 덤벼도 자살할 방법은 많다고. 그것도 배면계 사상 최강의 괴물한테.’라고.”

“그게 뭐 어때서?”

“배면계 사상.”

“응?”

린디웨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각성자가 배면계의 역사를 어떻게 알아?”

“아!”

린디웨도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아까 패턴이 보인다고 한 건 어떤 걸 말하는 거야?”

“별로 대단할 건 없어. 오인환이 윗선을 만난 시간대를 봐 봐.”

“시간대?”

린디웨가 자신이 기록한 노트를 꺼내 확인했다.

“으음… 전부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에 만났네?”

“그리고 장소를 봐.”

“다양한데? 겹치는 지역도 있지만, 꽤 다양하게 퍼져 있어.”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더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낮 12시에서 1시 사이면 점심시간이잖아.”

“그렇지?”

“그 시간대에만 개인의 볼일을 볼 수 있다는 건, 아마도 직장인이라는 뜻일 거야.”

“일하는 시간에 개인적인 볼일을 볼 수 없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겨우 그 정도는 딱히 단서라고 말할 수 없지 않나?”

“그런데 장소는 엄청 다양해. 직장인인데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영업직?”

곧장 튀어나오는 린디웨의 말에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럼?”

“영업직이나 다른 외근직은 점심시간이 아니어도 잠시 짬을 내서 개인 볼일을 보는 게 가능해. 이건 근무지가 수시로 바뀐다는 뜻이야. 그런데 직장이 바뀌는 건 아닐 거야. 한두 달 간격으로 수시로 직장을 바꾸는 건 힘드니까.”

린디웨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 패턴에서 보이는 게 뭔데?”

“영업직 혹은 외근직이 아닌데 수시로 근무하는 장소가 바뀌고, 업무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아, 뭔데?”

린디웨가 답답하다는 듯 급히 물었다.

“던전 관리청.”

“응?”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한데, 던전 관리청 직원이라면 그 조건을 충족한단 말이지.”

“어떻……. 아, 혹시 게이트 통제소 직원?”

“빙고.”

게이트는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생성되는 위치는 항상 변한다.

그러니 던전 관리청의 게이트 통제소 직원은 근무지가 수시로 바뀐다.

게다가 공무원이니 점심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기도 해야 한다.

지금 말한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럴싸한데?”

“뭐, 일단은 길드로 돌아가서 분석팀에 확인 작업을 요청해야지. 그 시간, 그 장소 인근에 게이트가 있었는지. 그 전까지는 장담하긴 좀 이르긴 해.”

“이렇게 단서가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하지만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이것들이 점조직이라는 거야. 한 놈 잡고, 그 윗선 잡고, 또 그 윗선 잡는 식으로 하나하나 타고 올라가야 한다고. 몇 단계나 거쳐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젠가는 실체가 잡히겠지.”

준혁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여유롭지 않을 텐데?”

“응?”

“시간 벌어야 한다며.”

“아…….”

“어? 가만!”

준혁의 갑작스러운 말에 린디웨가 멈칫했다.

“왜?”

“무명회 그놈들, 배면계 출신들만 모였겠지?”

“아마도?”

배면계 출신이 아니라면 배면계의 시스템에 대해 알지도 못할 테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 당장 오늘 붙잡았던 오인환이 배면계 출신 술사였던 것만 봐도 그랬다.

“그리고 너는 배면계 각성자들 중에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사람들을 다 알 거 아냐.”

그 말에 린디웨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응?”

“배면계에서 귀환한 인간들이 어디 있는 누군지 알지 않느냐는 말이잖아?”

“어.”

“몰라.”

“진짜?”

“그걸 알았으면 이렇게 고생하고 있겠냐?”

“아, 그러고 보니…….”

준혁은 그제야 잊고 있던 한 가지를 깨달았다. 린디웨와 리쉬옌은 인터넷에서 준혁의 존재를 확인한 후에야 찾아왔었다.

“시스템이면서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준혁의 타박에 린디웨가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면계로 소환할 때는 그냥 재능이 있는 사람을 통째로 불러들이는 거다. 비유를 들면, 그물을 던져서 그물에 걸리는 사람들을 한 번에 끌어오는 거라고.”

“이야, 비유도 참 찰지게 하네.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빡칠 거라는 생각도 안 하고 말이지.”

“어? 아니, 그건…….”

“하아! 아무튼 뭐 됐다.”

무시하는 듯한 준혁의 말에 린디웨가 결국 발끈했다.

“야, 그래도 얼굴이랑 이름 정도는 알아!”

“시스템 주제에 성깔도 있네?”

급기야 린디웨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시스템의 아바타라지만, 그 육체는 린디웨라는 인간이었기에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흐음, 아무튼 이름이랑 얼굴은 안다, 이거지?”

“그래. 그것만 알아서 참 면목이 없네.”

“아니, 얘기 좀 들어 봐.”

준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하게 변하자, 린디웨도 감정을 죽인 후 물었다.

“무슨 얘기?”

“그 이름 중에 한국식 이름만 추려 낼 수 있지?”

“있지.”

“그럼 일단 한국 내에서만 찾아보는 건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그게 무슨……?”

“만 17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전산으로 사진을 확인할 수 있지.”

“그거 설마?”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다.”

“이런 미친!”

정부의 전산 시스템에서 이름으로 목록을 뽑고, 일일이 사진을 보며 배면계 귀환자들을 솎아내라는 말이었다.

린디웨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하지만 준혁의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거보다 빠른 방법 있냐?”

“그건 아니지만……. 아니, 그 전에 그걸 우리가 어떻게 확인해? 몰래 잠입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 걸리는 것도 아닌데…….”

“뭐, 그건 방법을 마련해 봐야지. 어쨌든 열람시켜 준다면 할 거야, 말 거야?”

“해야지.”

린디웨가 생각하기에도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좋아.”

준혁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에 집중했다.

아바타라고는 하나 어쨌든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을 부려먹는다고 생각하니 과거의 원한이 조금은 녹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들 아직도 안 갔어요?”

준혁이 혼원 길드 본사 내 회의실로 들어서며 물었다.

“뭐, 궁금하긴 할 겁니다.”

“저 직업도 참 힘들긴 하겠어요.”

두 사람이 말하는 이들은 본사 건물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이었다.

잠실 종합 운동장 사태 직후 열렸던 기자회견을 취소한 이후, 준혁은 단 한 번도 언론과 접촉하지 않았다. 준혁만이 아니라 혼원 길드에 적을 두고 있는 그 누구도 언론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쌓이다 보니 언론사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기자들이 혼원 길드 본사 건물을 포위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유민섭이 조심스레 물었다.

“조만간 기자회견 한번 하는 건 어떻습니까?”

“글쎄요?”

대답은 모호하게 했지만, 말에 담긴 뉘앙스는 꽤 부정적이었다.

애초에 준혁은 유명한 운동선수로서 언론과의 접촉이 잦은 편이었다. 그러니 언론의 습성을 모르지 않았고, 언론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번 기자회견은 그 의도가 명백하게 달랐다.

작정하고 악의를 드러내고 덤비는 모습이,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아예 상대를 안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민섭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당시 기자회견이 생중계되는 바람에 기자들도 욕 많이 먹었습니다. 이제는 안 그럴 거예요. 그리고 준혁 씨 얼굴이 밝혀졌으니 해명할 것도 있잖아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한국시리즈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준혁의 생각은 달랐다.

“뭐하러 그래요? 차라리 이찬 씨를 불러서 인터넷으로 이야기하는 게 낫겠습니다. 채팅창 보면서 대답도 하고.”

“뭐 일단은 생각 좀 해 보세요.”

유민섭은 더 이상 강권하기는 애매한지 그렇게 한발 물러섰다. 준혁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

“일단 놈들에 대해서 이야기합시다. 그게 중요한 거니까.”

“그러죠.”

“조직의 이름은 무명회인데… 가장 재수 없는 상황입니다.”

“재수 없는? 설마……?”

“맞아요, 점조직.”

“쯧.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심문해 본 결과…….”

준혁은 차근차근 오인환에 대해 알아낸 것들을 이야기했다.

“던전 관리청의 게이트 통제소 직원이라……. 그럴듯한 추측이군요.”

“여기에 해당 내용을 기록해 놨으니, 분석팀 통해서 확인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거기 축사에 대해서 뭐 알아낸 건 없습니까?”

이번에는 유민섭이 조사한 내용을 알려 줄 차례였다.

“등기상 소유자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마 차명인 것 같습니다.”

“그럼 차명으로 그걸 짓고 꾸준히 써 왔다는 말이군요. 언제부터죠?”

“4년 전입니다.”

준혁의 봉인이 풀린 시점이 작년 11월 초였다. 무명회라는 조직이 한국에서 음모를 꾸민 지 3년 정도 만에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이상을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이 조직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확신은 없으니, 놈들은 그보다 더 오래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렇게 봐야죠.”

“그럼 처음부터 놈들이 그 축사를 아지트로 사용했다면?”

“축산이나 낙농업과 관련된 업체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은 당시 축사를 지은 건축 업체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꽤 걸리겠군요.”

“네. 그러니 준혁 씨가 가져온 단서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조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우리가 수사기관도 아니고… 일단 알아봐야죠.”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사이에 잠깐 부업 좀 할까요?”

“부업?”

“네. 다른 길드에서 던전 공략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던전이요?”

혼원 길드는 게이트 돔 진압 전문 길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던전 공략을 부업이라고 불러도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네. 백호 길드에서 들어온 요청인데, 10급 던전입니다. 분배 비율 7 대 3으로, 우리가 7을 가져가는 조건입니다. 보름 전에 들어온 요청인데, 그때는 여유가 없어서 일단 보류했던 사안입니다.”

한번 움직일 때가 되기는 했다.

잠실 사건 직후 미국의 로날드 돔을 진압한 이후로 혼원 길드는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너무 웅크리고 있는 것도 좋지 않으니 무언가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백호 길드에서 마침 제안이 온 것이었다.

제주도에 아직 게이트 돔이 하나 남아 있었지만, 유민섭이 생각하기에 그건 지금 공략해서는 안 됐다.

정부를 상대로 거래를 제안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죠. 아, 그런데 린디웨는 이번 공략에서 빠질 겁니다.”

“왜요?”

“응? 나?”

준혁의 말에 유민섭과 린디웨가 동시에 되물었다. 그리고 준혁이 차례차례 대답했다.

“따로 할 일이 좀 있습니다. 응, 너 맞아.”

그와 동시에 준혁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하지만 준혁은 그 메시지를 깔끔하게 무시한 채 유민섭을 향해 말했다.

“공략은 언젭니까?”

“아, 이틀 뒤로 잡을 예정입니다. 그때가 지나면 아마 게이트 다운이 일어날 거라고 하더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죠.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네.”

빠르게 자리를 마무리한 후 준혁은 회의실을 나서며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녁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답장이 왔다.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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