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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꼬리를 잡다#3-
“네 인생을 털기 전에… 정말 궁금한 게 2가지 있거든?”
“…….”
“목적, 그리고 이유.”
“무슨……?”
“너희 무명회의 목적, 그리고 네가 이딴 짓을 하고 다니는 이유.”
“목적은 세상을 파괴하는 거다. 지금 배면계의 신수가 세상에 풀리면 말 그대로 멸망을 맞이할 거다.”
“지랄. 그래서 이유는?”
“복수.”
“무슨 복수?”
“크으윽!”
오인환이 치가 떨린다는 듯 이를 악물며 준혁을 노려보았다.
“말을 해.”
“배면계에서 내가 보낸 세월이 얼만지 알아? 무려 70년이다.”
배면계로 소환된 각성자들은 늙지 않는다. 신수들을 봉인한다는 그 임무를 위해 늙지 않는 육체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준혁은 잘 모르지만, 배면계에서 모든 신수를 봉인하는 데 걸린 시간이 70년이면 평균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만에 혼원급에 올라 신수들을 평정한 준혁이 오히려 이상한 축에 속했다.
“그래서?”
“배면계의 70년이면 현실에서는 자그마치 14개월이다. 1년이 넘는 시간이라는 소리야. 그 시간 동안 내가 없었던 탓에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빌어먹을! 세상을 구하겠다고 배면계에서 괴물을 때려잡았는데, 정작 내가 구한 세상은 우리 부모님을 조금도 돌봐주지 않았다고!”
오인환의 목소리가 감정에 복받쳐 그렁그렁 울렸다.
준혁은 가만히 오인환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심정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배면계 출신이기에 역지사지할 수 있는 것이다.
준혁도 배면계에서 돌아왔을 당시, 형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다면 쉬이 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심정이 이해 간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한다는 짓이 세계 멸망이라는 짓거리냐?”
“아무렴 어때? 어차피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나도 그리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준혁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쩌냐?”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에 오인환의 눈동자에는 의아함이 깃들었다.
“우리 형은 아직 살아 있는데.”
이놈들에게 그들만의 정의가 있다면, 준혁게에도 그만의 정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그런 이유로 세상을 파괴하려 하는 거라면, 준혁은 가족들을 위해서 그것을 막아야 했다.
사실 오인환이 이런 조직에 가담한 이유가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다만, 무명회라는 조직의 성격이 어떤지 알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놈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지금, 준혁의 머릿속에는 1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너는 네 생각대로 살아라. 그런데 나도 내 생각대로 살아야겠다.”
설득이 먹힐 놈들이 아니었다. 이런 극단적인 놈들은 그냥 힘으로 눌러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이제 네 인생을 한번 들어 보자.”
그리고 만 하루가 흘렀다.
준혁은 스스로 장담한 대로 오인환의 인생을 모조리 탈탈 털었다.
정확하게는 배면계에서 귀환한 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었다.
오인환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오인환은 완전히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멍하니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련환의 부작용이었다.
2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본인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24시간 동안 한 탓에 육체와 정신의 괴리가 심해진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뇌의 과부하였다.
준혁은 오인환과 그의 관리자 사이의 접선 방식에 대해서 집요하게 캐물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흐려지거나 뒤섞이고, 왜곡되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 준혁은 오인환의 뇌를 쥐어짰다.
뇌에 각인된 정확한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구련환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심각할 정도로 부하가 걸린 것이었다.
“흐음…….”
하지만 준혁은 오인환의 상태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24시간 동안 기록한 오인환의 인생을 거듭 읽을 뿐이었다.
바로 옆의 린디웨 역시 따로 작성한 문서를 읽고 또 읽었다. 영화를 통해 말은 알아들을 수 있지만, 문자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닌 탓에 심문 내용을 따로 기록해야 했던 것이다.
“그륵, 그르르륵!”
급기야 오인환이 게거품을 문 채 극심하게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육체와 정신의 괴리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몸뚱이까지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준혁도 린디웨도 그런 오인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적에 대한 극도의 냉혹함은 배면계 출신들의 공통적인 특성 중 하나였다.
배면계는 단순히 괴물하고만 싸우는 곳이 아니었다.
함께 소환된 인간들 사이에도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분쟁은 항상 피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적’이라고 규정된 존재에 한해서는 동등한 인간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문서의 기록을 수십 번 반복해 읽던 준혁의 눈에 마침내 무언가가 들어왔다.
“이거 패턴이 보이는 거 같은데?”
“응? 뭔데?”
린디웨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악!”
갑자기 린디웨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린디웨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준혁을 쏘아보며 물었다.
갑자기 구련환이 손목을 죄며 무시무시한 영력이 침투한 탓이었다.
“연기는 그쯤 하지 그래?”
“연기?”
“어. 티 나. 너 완전 발연기야.”
그렇게 말하는 준혁의 두 눈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여전히 괴로운 표정으로 준혁을 노려보던 린디웨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하!”
짧은 한탄을 터트리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 손목에 감겨 있던 구련환을 쑥 빼 버렸다.
“그럴 줄 알았다.”
린디웨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알았냐?”
“위화감을 느낀 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위화감?”
“어, 위화감. 그거 때문에 지켜봤고, 이상한 부분이 계속 보여서 신경 썼고, 결국은 확인 작업까지 해 봤지.”
청랑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 점이나 술석을 카피한 것들은 모두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문제의 게이트를 활성화시킬 때 리쉬옌의 반응을 본 후 확신했고, 지금 그 확신에 대해 검증을 하는 것이었다.
“구련환까지 무용지물로 만들었는데, 조금도 긴장을 안 하네?”
“대강 짐작이 가거든.”
“무슨 짐작?”
“네 정체 말이야.”
“그래서 니가 짐작한 내 정체가 뭔데?”
“하수인.”
“음?”
“배면계 시스템의 하수인.”
린디웨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의혹이었다.
“무섭네.”
“정답이냐?”
“50점 줄게.”
“50점?”
“반만 맞았다. 배면계 시스템과 관련 있는 건 맞지만, 하수인은 아니거든.”
“그럼 뭔데?”
“아바타.”
“뭐?”
이번에는 준혁이 이해 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예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직접 이 세계에 방문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린디웨의 육체를 빌렸다.]
준혁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음? 그럼 린디웨는?”
[린디웨는 죽었다. 린디웨의 나라는 치안이 매우 불안한 나라였고, 린디웨가 귀환했을 때 그녀의 가족은 모두 죽은 후였지. 그리고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육체를 잠시 빌려 쓴 거다.]
메시지를 모두 읽은 준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가리 싸물어.”
“뭐?”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린디웨가 시스템 메시지가 아닌 육성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준혁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빠아악!
콰앙-!
린디웨가 의자에 앉은 그대로 벽을 뚫고 날아갔다.
맞고 날아갔던 린디웨가 뚫린 구멍으로 되돌아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거!”
완전히 짓뭉개진 린디웨의 얼굴 반쪽이 묘한 소음을 내며 원상복구되고 있었다.
“너 만나면 이건 꼭 한 방 먹여 주려고 했거든.”
“뭐라고?”
“허락도 없이 아무나 납치해서 사지에 집어던졌는데, 이거 한 방으로 끝난 게 다행인 줄 알아라.”
“하! 뭐 그렇다고 치자.”
“이게 반성하는 기색이 없네? 무명횐지 뭔지 하는 놈들이 그 지랄 하는 데는 니 책임도 있다는 거 모르겠냐?”
하지만 린디웨는 가타부타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대화는 다시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배면계가 신수들에게 잠식당하면, 그 반대편인 이쪽 세상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와, 이게 진짜 빡돌게 만드네.”
[나의 의지가 아닌, 나에게 각인된 ‘섭리’일 뿐.]
“그래서 책임이 없다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젠장!”
준혁은 와락 인상을 구기며 린디웨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딱히 인간도 아닌 존재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술석 복제했을 때 말했지? 시스템의 조각이 섞여 있다고.”
[그랬지.]
“각성자가 그게 시스템 조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봐? 시스템과 관련된 존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잖아.”
[그랬군. 어떻게든 사실을 알려야 했기에 입에 담은 말이었다.]
준혁은 잠시 말없이 린디웨를 노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지만 구련환의 영향도 받지 않는 존재였다. 가까이 두기에는 위험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니 준혁으로서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한 준혁은 일단은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목적이 뭐냐?”
[최초의 목적은 사태 수습이었다.]
“수습?”
[누군가 배면계와 이쪽 세계 사이에 통로를 만들려 시도한다는 걸 알아냈다. 그것을 확인하고 바로잡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하지만 내가 린디웨를 통해 이쪽 세상에 대해 알아보았을 때는 이미 그것을 막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술석을 확인한 끝에 나의 복제품이 다른 시스템과 결합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한마디로 뒷북?”
[그런 셈이다.]
고개를 끄덕인 준혁이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지금은?”
[시간을 버는 것.]
“벌어서 뭐 하게? 이미 늦었다며?”
[나의 존재 이유는 이 세상을 배면계로부터 구하는 것이다. 두 시스템의 융합을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늦추고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 세상을 구할 방도를 찾아낼 것이다.]
“어이구, 아주 사명감이 쩔어 주시네.”
솔직히 과거의 그 갑작스러운 소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에 관해 성토하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지금은 이 시스템 메시지의 말대로 세상을 구할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답답한 면도 분명 있었다.
“잘난 시스템치고 너무 무능력한 거 아니냐?”
[나는 어디까지나 시스템일 뿐. 린디웨가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 이상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
“술석 복제나 게이트 활성화는 잘만 하드만.”
[정보 체계를 읽을 수 있기에 가능한 것뿐이었다.]
꽤 아쉬운 부분이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말하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 방법이라는 걸 찾는 데는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알 수 없다.]
“그럼 니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너도 시간을 버는 데 도움을 주면 좋겠지.]
“쯧!”
혀를 차기는 했지만, 지금은 서로 협력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시스템 스스로 자신의 위기를 방치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한 처음의 공격이 먹힌 걸 보면 어쨌든 린디웨 자체가 불사는 아닐 듯했다.
그러니 여차하면 린디웨를 제거해 버리면 될 일이었다.
‘약간 부담스러운 도구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준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들은 이야기는 너와 나만 아는 걸로 했으면 좋겠는데.]
“팀원들한테는 알리는 게 좋을 텐데?”
[굳이 지금 혼란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아, 뭐 그러시다면야 네 마음대로 해라.”
그때였다.
“끄윽!”
억눌린 비명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오인환의 입에서 새어 나온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금문묵룡삭에 의해 매달린 오인환의 몸뚱이가 축 처져 있었다.
준혁이 가까이 다가가 호흡을 확인했다.
“죽었네.”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숨을 거둔 것이다.
상관없었다. 필요한 건 다 알아냈고, 어차피 살려 둘 생각도 없었다.
준혁이 금문묵룡삭을 회수하자, 린디웨가 술법으로 오인환의 시체를 태워 흔적을 지웠다.
뼛가루조차 날려 버린 후 준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일단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