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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꼬리를 잡다#2-
“어? 냄새가 납니까? 방향제 뿌렸는데…….”
유민섭이 제 옷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내 감각 스탯을 알면서 그런 소리 하는 겁니까?”
준혁의 감각 스탯은 1,999였다. 방향제를 뿌렸다고 섬유 깊숙이 스며 있는 냄새를 놓칠 리가 없었다.
“고기에 불 냄새…….”
“하하! 근처에 불백 맛집이 있더라고요. 평일이라 그런지 줄도 없고, 마침 출출하기도 하고.”
“아주 맛났겠어요?”
“괜히 맛집이 아니던데요?”
“와, 이렇게 치사할 수가! 내가 길드를 옮기든가 해야지.”
순간 유민섭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농담인 걸 아는데도 반사적으로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그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또 무슨 말을 그렇게…….”
본전도 찾지 못한 유민섭이었다.
“자, 그럼 장비들 챙깁시다. 이제 들어가야죠. 내가 먼저 들어가면 두 번째로 리쉬옌이 들어와.”
방어 계열 투사인 리쉬옌이 먼저 들어오는 쪽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좋았다.
모두 빠르게 장비를 착용한 직후 린디웨가 게이트를 활성화했다.
지이잉-!
무언가 떨리는 듯한 소음과 함께 벽에 빛나는 둥근 원이 나타났다.
첫 진입자는 은신으로 투명화한 흑호였다. 뒤이어 준혁이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왼쪽 팔뚝의 묵린갑을 방패 형태로 바꾸고, 오른손에는 무상곤을 든 채 전방을 보호하며 게이트를 통과했다.
“음?”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게이트 너머는 조용했다.
“어?”
뒤따라 들어온 동료들 역시 예상치 못한 정적에 잠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유민섭이 두리번거리는 사이, 마지막으로 린디웨까지 게이트를 넘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키아앙-!
흑호의 포효가 갑자기 몰아쳤고, 준혁이 사방으로 금문묵룡비를 퍼트렸다.
뒤이어 울려 퍼진 외침은 리쉬옌의 것이었다.
“곽!”
새하얀 영력이 폭사되었다. 무시무시한 압력과 굉음이 터진 것은 그 직후였다.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화염과 압력이 일행들을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혁은 모든 영력을 끌어올려 감각을 돋웠다.
맹렬하게 사고를 회전시켰다.
‘술사.’
폭탄에 의한 폭발이 아니었다. 영력, 술법으로 일으킨 폭발이었기에 준혁이 미리 눈치챈 것이었다.
‘어디냐?’
폭발의 타이밍은 마지막으로 린디웨가 들어온 직후였다.
모든 팀원이 넘어온 직후에 터진, 자로 잰 듯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이것은 사전에 세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분명 가까운 곳에 폭발을 일으킨 놈이 있다는 뜻이었다.
최대로 확장된 준혁의 감각에 마침내 무언가 하나가 걸렸다.
“머리 위 막아!”
외침과 동시에 준혁이 두 발로 땅을 박찼다.
콰앙!
정확한 타이밍에 휘두른 무상곤에 천장이 뚫리고, 수직으로 통로가 만들어졌다.
로켓처럼 수직으로 솟구쳐 오른 준혁의 두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 멀리 희미하게 무언가가 움직이는 기척이 확장된 감각에 걸렸다.
“흡!”
허공에서 ‘전뢰보’를 펼친 준혁의 신형이 푸른 뇌전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여전히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끌어올린 감각은 정확하게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잡았다, 이 새끼!”
충격과 동시에 놈이 펼치고 있던 투명화, 혹은 은신이 풀리며 실체가 드러났다.
배면계 술사들이 주로 입는 도포 같은 형태의 옷을 입은 30대 남자였다.
준혁은 금문묵룡삭으로 남자를 포박하고, 구련환까지 목에 씌운 후 고개를 돌렸다.
“어?”
그리고 짧은 실성을 흘리며 흔들리는 눈으로 급히 주변을 살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준혁이 서 있는 곳은 첩첩산중이었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 봐도 능선과 산봉우리만 시야에 담길 뿐이었다.
그나마 준혁이 서 있는 곳은 산 중턱의 고원지대처럼 어느 정도 평평한 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준혁의 시선 끝에 닿은 것은 반쯤 탄 후 흠뻑 젖어 새하얀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는 축사 같은 건물이었다.
조금 전, 준혁이 천장을 뚫고 뛰쳐나온 그 건물이었다.
게이트를 통과해 도착한 장소, 그러니까 이 의문의 집단이 은신처로 사용한 건물이 가축을 키우던 커다란 축사라는 말이었다.
준혁이 남자를 끌고 축사로 다가가니, 때마침 유민섭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라?”
유민섭도 준혁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의외라는 표정으로 주변 환경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축사를 보고는 준혁을 향해 말했다.
“어쩐지 내부 구조가 많이 이상하더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은신처로 이만한 곳도 없기는 하겠네요. 인적도 드물고, 누가 봐도 의심스럽지 않고.”
“그렇긴 하네요.”
“다른 사람들은?”
“안에서 쓸 만한 게 있나 찾고 있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어 보였지만…….”
“불은 린디웨가 끈 모양이네요.”
“그렇죠.”
“일단 같이 한번 찾아봅시다.”
“그럽시다.”
두 사람은 다시 축사 안으로 들어갔다.
팀원들이 열심히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었다. 바닥을 두드리거나 벽을 치며 숨겨진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도 보였다.
준혁과 유민섭도 합류해 창고 안 여기저기를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폭파를 준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놈들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실체를 잡을 수 있나 싶었는데, 아무것도 건진 게 없어 다들 맥이 빠진 표정이었다.
결국 지금 가진 단서는 준혁이 붙잡은 남자 하나였다.
이 남자를 심문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게 놈들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외에 실낱같은 기대라도 할 만한 부분은 이 축사 자체였다.
축사 내부에 전등이 있었다. 지금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전기가 들어왔던 장소라는 뜻이었다.
이는 누군가가 허가를 받고 건물을 지었다는 말이다. 즉, 등기부등본과 같은 공문서가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추적하면 작은 무언가라도 건질 수 있을 터였다.
“일단 돌아갑시다.”
그때 유민섭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근데 지금 여기가 어딥니까?”
대답은 휴대폰의 지도 앱을 켠 장민호의 입에서 나왔다.
“여기 강원도, 대관령 쪽인데요?”
“젠장. 어쩐지 좀 춥더라.”
준혁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저기 차가 올라올 수 있는 도로가 있기는 한데…….”
유민섭의 시선이 준혁을 따라 움직였다. 확실히 차가 오갈 수 있을 정도는 되는 도로가 있었다. 문제는 비포장도로라는 점이었다.
와락 인상을 구긴 유민섭이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수행비서인 장형준이었다.
“장 비서님, 제가 여기 GPS 좌표 불러 줄 테니 헬기 1대만 빨리 섭외해 주십시오.”
다행히 목장을 하던 고원지대라 헬기가 착륙할 정도의 공간은 충분했다.
(헬기요?)
“네. 최대한 빠르게. 여섯, 아니 일곱 명 탈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수배하고 바로 전화드리겠습니다.)
역시 돈을 쓰는 게 제일 편했다.
***
헬기를 타고 돌아온 곳은 혼원 길드 본사 옥상의 헬리포트였다.
옥상에서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유민섭이 말했다.
“그럼 저는 그 집 소유주부터 건설 업체, 목축업 관련 업체들까지 쭉 훑어보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놈 통해서 최대한 알아보도록 하죠.”
“네. 바로 연락 주십시오.”
인사를 마친 준혁은 사로잡은 남자와 린디웨만 데리고 다시 차로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준혁이 예전에 사용하던 개인 연습실이었다.
사방이 완전히 막혀 있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누군가를 심문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금문묵룡삭이 남자를 포박한 채 홀로 스르륵 움직여 남자를 천장 대들보에 매달았다.
준혁이 금묵묵룡비를 통해 남자의 몸에 영력을 흘려보냈다.
“끄아아아악!”
기절해 있던 남자가 갑자기 온몸을 비틀어 대며 괴로움에 찬 비명을 질러 댔다.
그리고 준혁은 굳이 말을 걸 필요도 없다는 듯, 남자의 목에 맨 구련환을 발동시켰다.
“끄어어억!”
구련환을 통해 몸속으로 스며드는 영력의 고통에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준혁이 남자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움직이지 말고 대기해라.”
“끄윽, 네, 네!”
남자가 제 입으로 대답을 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구련환의 효과였다.
준혁은 린디웨와 리쉬옌에게는 따로 행동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매어 놓고 언제든 숨통을 끊을 수 있다는 위협을 가했을 뿐이다. 구련환으로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면 생각과 행동의 괴리에 의해 정신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남자에 대해서는 그런 걱정을 해 줄 필요가 없었다.
“지금부터 너는 자살, 자해 이딴 거 절대 안 한다. 알았냐?”
“크으윽…….”
남자가 황급히 도리질을 쳤다. 하지만 그런 남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입이 움직였다.
“저, 저는……. 끄으윽!”
구련환의 작용에 저항하느라 힘을 쓰는지 남자의 온몸에서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남자의 몸은 뇌의 의지를 거스르고 있었다.
“끅! 저, 저는 자해, 자… 살을 하, 하지 않습니다.”
비밀 결사 비슷한 놈들의 특징은 잡히면 자결해서 비밀을 지키려 든다는 점이었다.
준혁은 구련환을 이용해 그것부터 막았다.
그런 후에야 심문이 시작되었다.
“이름?”
준혁의 물음에 남자가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차라리 죽… 여…….”
여전히 반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준혁보다 영력이 높지 않는 한 구련환의 작용은 거스를 수 없다.
“오… 오인환.”
“그래, 인환아.”
준혁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에 반해 오인환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준혁을 노려보았다.
두 눈에 번뜩이는 안광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시간 많으니까 우리 차근차근 가자. 알았지?”
“죽여.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신사적이냐? 고문도 안 하고, 오히려 니 목숨도 걱정해 주고. 니가 봐도 참 괜찮은 사람 같지 않냐?”
“개새끼!”
욕이 튀어나왔다. 구련환으로 특별히 금제하지 않은 이런 말까지 막는 것은 아니었다.
“개새끼? 음, 그건 뭐 상대적인 거지. 원래 우주는 상대적인 거잖아. 니가 나한테 개새끼인 것처럼.”
“끄윽!”
“그래, 직업은?”
“술사…….”
“등급은?”
“도지(跳地).”
배면계의 등급은 홍안자(紅顔子)에서 시작한다.
홍안자 다음으로 인립(人立), 이인(理人), 탈인(脫人), 답지(踏地), 도지(跳地), 율지(律地), 지천(至天), 외천(外天), 천원(天元), 천강(天綱), 혼원(混元)급이었다.
애송이라는 뜻의 홍안자에서 시작해 우주라는 뜻의 혼원급까지 가는 것이었다.
도지급이라면 준혁보다 6등급 아래였다.
“좋아. 지금까지 잘하고 있어.”
“차라리 죽여!”
“안 죽인다니까 그러네? 그래서 너희 조직 이름은?”
“무명회(無名會).”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러면 너희 보스 이름은?”
“모른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준혁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오인환의 대답은 진실이었다. 구련환을 쓰고 있는 이상 거짓은 말하지 못한다. 이렇게 지체 없이 대답이 나왔다는 건 오인환은 정말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제길. 내 이럴 줄 알았어. 망할 점조직!”
그 반응에 화답하듯 오인환이 나지막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크흐흐, 나한테 무슨 짓을 해도 네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없다.”
점조직이라는 게 그렇다. 조직에 속한 조직원은 자신의 위와 아래 외에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무명회라는 조직의 이름도 가짜일 수 있다. 오인환은 자신의 조직이 무명회라고 알고 있어도, 실제로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향한 오인환의 비웃음에 준혁도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빼낼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지. 네 인생을 통째로 털다 보면 뭔가는 나오겠지.”
그 싸늘하면서도 소름 돋는 미소에, 오인환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