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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꼬리를 잡다#1-
“뭔 사람이 말도 안 해 주고 이렇게 끌고 갑니까?”
유민섭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구시렁거렸다.
“내가 원래 서프라이즈 좋아하잖아요.”
“허! 뭡니까, 그 어울리지 않는 명칭은?”
“왜요? 처음에 골드 드래곤의 레어를 공략한 것도 나름 서프라이즈 아니었습니까?”
“서프라이즈는 무슨? 그건 그냥 불법 공략이죠. 선 불법, 후 수습 정도면 적당하겠네요.”
“크크! 그럼 이건 선 조치, 후 보고라고 합시다. 아, 다 왔습니다. 여기 내려 주세요.”
준혁의 말에 운전석의 장형준이 길가에 밴을 정차시켰다.
“일단 저기 2층의 커피숍이 좋겠습니다. 저기로 가시죠.”
“에이, 진짜. 말을 좀 해 줄 것이지…….”
유민섭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준혁이 말하는 대로 곧장 움직였다.
“어서 오세요. 커피 라운드입……. 헉!”
들어서는 손님을 보고 반사적으로 인사 멘트를 입에 담던 아르바이트생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서는 대여섯 명의 손님이 하나같이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탓이었다.
게다가 가장 선두의 남자는 덩치가 엄청나게 컸다.
검찰과의 사건 때문에 일행들의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져 취한 조치였다.
“손님입니다.”
유민섭이 황급히 하는 말에, 아르바이트생이 움찔하며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올라갈게요. 나는 아아.”
“나는 아이스 카페라떼.”
“커피요.”
“따뜻한 코코아 마실게요.”
준혁을 포함한 공략팀 팀원들이 1명씩 메뉴를 말하고는 2층으로 후다닥 올라가 버렸다.
유민섭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팀원들을 노려보는데, 장민호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저는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 생크림 잔뜩 올려 주세요. 사이즈는 벤티로.”
“내가 길드장이라고!”
나지막이 고함을 질러 보았지만 누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유민섭이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슬쩍 치우고 얼굴을 드러낸 후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수상한 사람들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혹시 방금 한 주문 메뉴들 다 외우셨나요?”
“앗! 혹시 혼원 길드?”
“하하! 네. 놀라셨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호호! 놀라기는 했는데 괜찮아요. 아, 그런데 혹시 나중에 사인 좀…….”
“지금 해 드릴까요?”
“아니, 흑태자 님 사인…….”
“크흠, 흠흠!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사인도 해 주세요.”
“동정은 됐습니다. 주문 좀 처리해 주세요. 다 외우시죠?”
“호호! 물론이죠. 음료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유민섭이 2층으로 올라가니 일행들은 창가에 있는, 조금 분리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자, 이제 말해 봐요.”
유민섭이 조금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준혁도 그제야 진지한 표정으로 창밖의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 옥상 난간 위에 있는 거 보입니까?”
자리에 있는 모두는 각성자들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을 무언가가 일행들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였다.
새하얀 털 뭉치처럼 생긴 그것은 백효가 소형화한 모습이었다.
준혁이 설명을 붙였다.
“잠실에서 영수가 나타났죠?”
린디웨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랬지.”
“처음 생각한 건 벌써 시스템이 하나로 합쳐졌나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거기에는 유민섭도 동의했다.
“그랬으면 던전이든 어디든 벌써 이상이 생겼을 테니까요.”
“그러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이 많은 영수들을 여기로 불러들인 놈이 있을 거라는 거죠. 그래서 백효한테 정찰을 시켰고, 몇 놈을 찾았습니다. 당연히 미행하게 했고요.”
여기까지는 유민섭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그때 아르바이트생이 쟁반에 음료를 들고 올라왔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음료를 내려놓은 아르바이트생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흑태자 님은…….”
“여깁니다. 얼른 사인 받으세요. 사진도 찍어 줄 겁니다.”
준혁이 고개를 홱 돌려 유민섭을 보았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아, 정말요? 여기 사인 좀 부탁드려요.”
“아, 얼른 해 줘요. 스타는 스타로서 팬 서비스를 잘해야지.”
다행히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준혁의 살벌한 표정을 가려 주었다.
준혁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사진을 찍어 주고 사인도 해 주었다.
“하아,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겁니까?”
“뭐, 인기인의 숙명이라고 생각하세요.”
준혁은 사인이나 같이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선수 시절에는 달랐다.
프로선수는 팬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렇기에 팬 서비스 역시 투철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헌터는 괴물을 잡아 그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었다.
그러니 팬 서비스도 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유민섭의 소소한 복수가 끝나고, 준혁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난 한 달 동안 주시해 본 결과, 저 골목 안쪽에 뒷문이 하나 있고 거기로 드나드는 놈들을 확인했습니다. 영력을 지닌 놈들이었습니다.”
“그럼 당장 쳐들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 달이나 지켜보다니, 준혁 씨가 그렇게 느긋한 성격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말이죠?”
“왜 그래요? 난 세상 신중한 사람입니다.”
“허! 그런 사람이 대책반장을 그렇게 다짜고짜 후드려 팼어요?”
“그때는 계획이 있었으니까.”
유민섭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그냥 단순히 기다린 건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하나 있더군요.”
“문제?”
“저 안에 들어가 봤습니다.”
“네? 어떻게요?”
“흑호를 보냈죠.”
“안 들켰어요?”
유민섭이 놀라 묻자, 린디웨가 툭 끼어들어 설명했다.
“환수를 다룰 수 있는 건 엽사밖에 없어. 저쪽에 엽사가 없는 한 들킬 일은 없다고 봐야지.”
하지만 유민섭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저쪽에 엽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엽사가 그렇게 흔한 줄 알아? 배면계에 100명 소환되면 그중에 1명 있을까 말까 한 게 엽사야. 그런데 대부분 초반에 죽어. 성장이 지독하게 힘든 직업이거든.”
린디웨의 설명에 유민섭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준혁을 보았다.
“흠! 제가 좀 잘났습니다.”
“말이나 못하면…….”
“아무튼 흑호를 은신시켜서 들어가 봤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없어?”
“대신 포탈이라고 해야 하나? 게이트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하나 있더군요.”
모두들 멈칫했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은 린디웨였다.
“통로 같은 거야? 그러니까 저기 뒷문 안쪽은 단순히 통로를 숨기는 장소일 뿐?”
“그렇게 봐야지.”
가만히 듣고 있던 유민섭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게이트? 포탈? 배면계 술사는 그런 것도 만들 줄 압니까?”
대답은 린디웨가 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금 내 놀란 표정이 안 보이냐?”
“전혀 놀란 것처럼 안 보입니다만?”
“뭐? 이……. 아, 됐고. 아무튼 나도 처음 들어 봤어.”
부연 설명은 준혁이 했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아는 정돕니다. 내가 배면계에 있을 때, 술사 하나가 이런 걸 만들다가 실패하고 내상을 당했었죠.”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유민섭의 물음에 준혁이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거 손 댈 수 있겠냐?”
린디웨를 향한 물음이었다.
“나?”
“어, 너. 그 게이트 같은 거 가동할 때 술석을 쓰는 것 같더라고.”
“일단 봐야 알지.”
“그럼 지금 가자.”
“뭐? 지금?”
“마침 아무도 없거든.”
그렇게 말하며 준혁이 일어섰다. 뒤이어 일행들이 우르르 일어나자, 준혁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일단은 나하고 린디웨, 리쉬옌, 이렇게 3명만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잠깐 기다리세요.”
유민섭이 묘하게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눌러앉았다.
고층 빌딩 사이의 틈으로 들어가 모퉁이를 돌자 문제의 쪽문이 나왔다.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건 흑호를 통해 이미 확인했기에 준혁은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문 너머로 2평 남짓의 작은 방이 나타났다.
“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린디웨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문 맞은편의 벽으로 다가갔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벽일 뿐인 곳이지만, 그곳이 준혁이 말한 게이트가 있는 장소였다.
“확실히 영력 냄새가 짙게 배어 있네.”
그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력 냄새’라는 표현은 준혁이 배면계에 있을 당시 같은 기수의 술사들도 주로 쓴 표현이었다.
술사가 가장 깊이 있고 섬세하게 영력을 다루는 직업군이라 그런지 다른 직업군들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전혀 접점이 없는 다른 기수의 술사가 똑같은 표현을 쓰니, 그 ‘영력 냄새’라는 게 확실히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바닥에 양반다리로 털썩 주저앉은 린디웨가 벽에 손을 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뒤이어 린디웨의 손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며 벽에 동그란 원이 떠올랐다.
“뭐 좀 알겠냐?”
준혁이 곧장 물었지만 린디웨는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순식간에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 외부의 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준혁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무상곤을 뽑아 들었다.
놈들이 게이트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리쉬옌이 조심스레 물었다.
“잠실에 영수들을 풀어 놓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가 보네요.”
“응?”
“여기 게이트를 유지하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어?”
그제야 준혁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만에 하나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현재로서는 놈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으니…….”
준혁은 조금 새삼스러운 눈으로 리쉬옌을 보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묻는 말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자기 의견을 내는 모습이 조금은 새로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음!”
옅은 신음과 함께 린디웨가 눈을 떴다.
“어때?”
준혁이 물었다. 그런데 질문은 린디웨에게 하는데 시선은 리쉬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열 수 있어.”
그 말에 준혁이 꽤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너 진짜 천재냐?”
“만드는 거랑 발동하는 게 다르니까. 만들기 엄청 어려운 거치고는 의외로 구조가 간단하기도 하고. 어쨌든 술식만 이해하면 활성화하는 건 어렵지 않아.”
“좋아.”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쩌려고?”
이럴 때 준혁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들어가 본다.
“당연히 쳐들어가야지.”
지난번에 굉황이 등장한 이상 게이트 때도 준혁은 일단 부딪쳐 보는 걸 택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뭐?”
“그럼 우리 엿 먹인 것들을 그냥 두자고?”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대비는 해야…….”
“어차피 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직접 들어가 보기 전엔 알 수 없잖아. 시간을 끌어도, 안 끌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긴 한데…….”
준혁은 지체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네, 준혁 씨.)
유민섭이 바로 전화를 받는다.
“이쪽으로 오세요.”
(알아볼 건 다 알아봤습니까?)
“예. 이제 쳐들어갈 겁니다.”
(뭐요?)
“뭘 새삼스럽게 그렇게 놀랍니까? 얼른 와요.”
(하아!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준혁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지금 온단다.”
“하아! 알았어.”
어째 유민섭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린디웨였다.
하지만 그 순간 준혁은 리쉬옌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역시 뭔가 있어.’
조금 전 린디웨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리쉬옌을 살펴본 것은, 리쉬옌이 린디웨에 대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배면계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두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쉬옌은, 린디웨가 이 게이트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지었었다.
찰나의 순간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준혁은 그것을 똑똑히 확인했다.
이는 리쉬옌에게도 린디웨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라는 뜻이었다.
즉, 리쉬옌이 알고 있던 린디웨와 무언가 다른 부분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좀 더 집중적으로 살펴봐야겠어.’
다행히 준혁에게는 흑호라는 최고의 정탐꾼이 있었다.
그때 유민섭 일행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준혁이 물었다.
“뭡니까, 이 냄새? 그사이에 뭐 먹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