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64화 (6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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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장. 길들이기#1-

쾅!

책상을 으스러트릴 듯 내리치는 주먹은 강평준의 것이었다.

그의 직업은 검사였고, 직급은 검사장, 근무처는 서울 중앙지방 검찰청이었다.

서울 중앙지방 검찰청은 200명이 넘는 검사와 30여 명의 부장검사, 차장검사도 3명이나 되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검찰청이었다.

그런 서울 중앙지검의 검사장이라는 직위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검찰 내의 관례를 생각하면 차기 검찰총장이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그런 강평준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때 마침 사무실의 전화가 울렸다.

(검사장님, 검찰총장님 전화입니다.)

강평준의 표정이 한층 더 심하게 구겨졌다.

올 게 왔다.

“후우!”

짧게 심호흡을 한 강평준이 수화기를 들며 말했다.

“바로 연결해.”

짧은 신호음 뒤로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강 지검장.)

검찰총장 한진엽의 목소리는 심각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예, 총장님.”

(지금 뉴스에 나오는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것이… 지금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외교부나 국방부는 물론이고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조차도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 그것이…….”

강평준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사령관은 미군 쪽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국군 중에서는 부사령관이 연합사에서 가장 높은 직급이었다.

그런 부사령관에게까지 어렵게 연락을 해 알아보았음에도 아는 것이 없다면, 국내에서는 전혀 알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미군이 총을 들이대고 대한민국 검찰의 공무 수행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TV로 전 국민에게 생방송됐어요! 대한민국 검찰이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냔 말입니다!)

“이현필 부장검사의 말로는 김준혁이 뭔가 수를 쓴 거 같다고는 합니다만…….”

(김준혁!)

한진엽 경찰총장이 그 이름을 되뇌며 잠시 말을 끊더니 질책하듯 외쳤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그 사람은 왜 건드린 겁니까?)

“그, 그것이…….”

수화기를 든 강평준의 얼굴에 억울함이 떠올랐다.

이 모든 일은 당연히 검찰총장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준혁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사실이 보도되었을 때 한진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는 무언의 허락이었다.

검찰 내에서 각성자, 그중에서도 헌터만큼 작업하기 좋은 대상은 없기 때문이었다.

헌터는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소위 말하는 상류층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건드리기 힘든 권력자나 거대 재벌에 비해 손쉬운 상대이기도 했다.

물론 권력자나 재벌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다소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헌터는 그런 게 없었다. 범죄를 저지르면 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는 존재였다.

범죄를 저지른 상류층을 응징하는 검찰의 모습.

이는 검찰의 위상을 쌓는 데 아주 좋은 재료였고, 실제로 그런 방법으로 검찰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각성자 특수부가 검찰의 요직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대외적으로 정의로운 검사라는 이미지도 만들면서 실적이 좋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도 그런 맥락이었다.

김준혁은 경찰권을 가진 대책반의 체포에 불응했다. 그것도 생중계 중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

게다가 신분을 속였다는 사실까지 스스로 드러냈다.

이만큼 작업하기 좋은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김준혁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나 대대적인 언론 브리핑, 망신 주기의 목적으로 행한 압수·수색까지 오직 그 한 가지 목적이었다.

영웅이라 불리던 헌터의 추악한 민낯을 밝힌 검찰이야말로 진짜 영웅이라는 그림을 그리려 했던 것이다.

한진엽 역시 그런 생각으로 이번 일을 묵인했을 것이다.

그랬는데 난데없이 미군이 들이닥쳐 오히려 망신을 당했다.

그렇게 일이 틀어지자 자신을 질책하니 억울할 수밖에.

한진엽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장 깔끔하게 처리하세요. 이런 망신이 어디 있습니까?)

이미 물러설 수 없다는 걸 한진엽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강평준이 급히 말했다.

“김준혁이 미국과 모종의 관계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일단은 김준혁을 출국 금지시켜 놓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김준혁 본인을 불러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미군들은 기밀문서가 있으니 내부의 물건을 손대지 말라는 거지, 김준혁을 보호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았으니까요.”

(알았습니다. 법무부 쪽과 이야기가 끝났으니 영장실질심사도 문제없을 겁니다. 빠르게 진행하세요.)

“예, 총장님.”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됐다.

한진엽과 강평준,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껏 일을 처리해 온 관성과 검찰들이 갖는 그릇된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실수였다.

그리고 준혁을 그저 그런 S급 헌터 정도로 보는 뒤떨어진 현실 감각도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후우!”

강평준이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누구야?”

(사모님입니다, 검사장님.)

“연결해.”

곧장 통화가 연결되었다. 그런데 연결과 동시에 비명 같은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여보!)

“무슨 일이야?”

(지윤이, 지윤이요!)

“지윤이가 왜?”

(미국에서 경찰에 잡혔대요.)

“뭐?”

강평준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

“지금쯤 일 터졌겠네요.”

“그렇죠?”

준혁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유민섭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검찰과 싸우는 것을 꺼려했던 유민섭이었다.

유민섭은 애초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특별히 위법한 행위를 한 적도 없었다. 비밀 계좌인 이나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편리함을 위해 사용했을 뿐 세금 탈루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훨씬 많이 하고 살아왔다.

흔히 유민섭을 갓민섭이라 부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 부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기에 검찰과 싸우는 것이 달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침에 있었던, 혼원 길드 건물에 대한 압수 수색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그런 감정적인 태도로 나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마침 유민섭의 휴대폰이 울렸다.

내용을 확인한 유민섭이 준혁에게 말했다.

“시작됐군요.”

“어디죠?”

“FBI입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검찰 요직의 자녀 중 범죄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모조리 체포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IRS인가요?”

미국연방국세청, IRS(Internal Revenue Service)는 미국 내에서도 지독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헌터에게 가장 무서운 곳은 던전이 아닌 IRS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영웅을 좋아하는 미국 문화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헌터들조차 이 IRS를 피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IRS가 검찰과 혼맥으로 맺어진 국내 기업 중 미국 현지 법인을 차린 기업들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오랫동안 유학 생활을 한 그 자녀들도 먼지 나오게 털 예정이었다.

그때 장민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떴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여 있던 일행들 모두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검찰 간부의 딸 강 모 씨, 미국에서 광란의 마약 파티 중 현행범으로 검거.>

그것을 본 유민섭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여기는 진짜 인터넷 찌라시만 모아서 기사 내는 곳이잖습니까?”

실망스러운 표정이었다.

장민호 역시 그제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어? 그러네요? 여기밖에 기사가 없어요.”

“흐음, 어쨌든 메이저 언론에서 기사가 나와야 할 텐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준혁이 끼어들었다.

“우리 길드장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근심이 많았던 겁니까?”

“이게 제대로 나와 줘야 다음 것도 제대로 가죠.”

“릴렉스, 릴렉스~”

“이건 언론이 검찰과 손잡았다는 뜻이라고요.”

“하아, 우리 길드장이 어쩌다 이렇게 쫄보가 된 거지? 나한테 딜 걸던 길드장이 그립다.”

“아,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기다려 봐요.”

“뭘요?”

“메이저 언론들이 지금 이 기사를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어떻게 보는데요?”

유민섭의 물음에 준혁이 웃으며 답했다.

“먹자니 탈 날 거 같고, 안 먹자니 아까워 죽겠고. 제발 눈치 없는 놈 한 놈만 나와라.”

“눈치 없는? 아!”

유민섭도 그제야 준혁의 말을 이해하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누구 한 사람 먼저 터트려 주기만 하면 어쩔 수 없다는 스탠스로…….”

그때였다.

“떴습니다!”

장민호가 또 한 번 외치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기사가 도배되어 있었다.

<서울지검 차장검사 아들 양 모 씨, 성폭행 혐의로 구속.>

<미국에서 유학 중인 검찰 고위 간부들의 자녀 범죄 행위로 구속 러시. 얼굴을 들 수 없는 검찰.>

<검찰의 일그러진 이면, 이대로 좋은가?>

한 곳에서 기사를 터트리니, 기다렸다는 듯 기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준혁의 말대로 다들 누가 물꼬를 터 주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검찰에서 따지면 이미 기사가 나와서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댈 속셈일 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기사의 제공처는 FBI였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 경찰과 FBI 사이의 관할권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대통령과 각 주의 주지사들이 합의하여 모든 사건을 FBI 관할로 이관시켜 버린 덕분이었다.

그때 기사를 보던 최유나가 준혁을 향해 불쑥 휴대폰을 내밀었다.

“음?”

휴대폰에는 준혁에 관한 기사가 나와 있었다.

<검찰, 김준혁 헌터에 대해 출국 금지 명령.>

기사를 읽은 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발악하네요.”

“뭐, 상관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출국을 금지해도 이곳에서까지 금지할 수는 없었다.

준혁을 포함한 혼원 길드 팀원들은 현재 오산 미군 기지의 군용기에 탑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비행기가 엔진 굉음을 울리며 가뿐하게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여론에 누군가가 던진 돌멩이 하나가 미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김준혁 지금 어디 있는 거냐?>

└거기 야적장에서 괴수 시체 해체하고 있는 거 아니었냐?

└도촬해서 올리던 놈 나와라.

└도촬하던 놈이다. 우리 아파트에서 망원렌즈로 야적장 찍을 수 있어서 매일 찍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안 보인다.

<나 혼원 길드 직원인데, 우리 길드장 포함해서 공략팀 전원 아침에 짐 싸서 어디론가 갔다.>

└설마 해외?

└출국 금지잖아.

└킹왕짱 센 흑태자 님 능력이면 그냥 바다도 건널 듯.

└헛소리하지 마라. 김준혁이 뭐 하러 해외로 가냐?

└그야 모르지. 좆검 하는 짓거리 짜증나서 해외로 떴을지 누가 아냐?

└기사 나오는 거 보면 김준혁이 아니라 좆검부터 탈탈 털어야 하는 거 아니냐?

작은 파문이 끊임없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그 순간, 준혁 일행이 탄 비행기는 제주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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