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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대립각#3-
황도형의 동공이 일순 초점을 잃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함께 온 검사를 보았다.
하지만 검사 역시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검사의 이름은 이현필이었다.
서울 중앙지검 각성자 특수부 부장검사로, 황도형과는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사람이었다.
각성자 특수부는 검찰 내에서는 주류 중의 주류인데, 그냥 각성자 특수부도 아닌 ‘서울 중앙지검’의 각성자 특수부였다. 탄탄한 라인을 잡고 있지 않으면 앉을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런 이현필의 오랜 검사 생활 중 지금 순간만큼 당혹스러울 때는 없었다.
‘이건 도대체…….’
그는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을 매우 즐겼다.
지금까지 일이 있을 때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정의로운 검사의 모습을 보이며 차곡차곡 이미지를 쌓아 왔다.
훗날 정치권으로 가기 위해 오랫동안 다져 온 밑 작업이었다.
그런 경험이 많은 만큼 어떤 돌발 상황도 임기응변으로 제대로 처리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차량들은 다름 아닌 군대의 전술 차량이었다.
게다가 한국군도 아니었다. 낯선 외양의 전술 차량들은 분명 미군의 장비였다.
그렇게 몰려온 차량들이 일제히 야적장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미군 복장의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차에서 내리더니 바깥쪽을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철컥, 처처척!
일제히 노리쇠를 당겨 장전까지 마쳤다.
“다, 당신들, 뭐야?”
갑자기 총구가 자신들을 향하는 모습에 이현필은 말까지 더듬었다. 하지만 쉬이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매스컴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절대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말해. 당신들, 뭐야?”
대답은 미군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장년 남자의 입에서 나왔다. 남자 역시 미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미합중국, 주한미군 해병대 사령관 마이클 레디셔트 소장입니다.”
‘미 해병대? 해병대 사령관이 직접 왔다고?’
이현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황급히 물었다.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나는 대한민국 검삽니다. 그리고 지금 공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의 검사에게 총을 들이대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입니까?”
“현재 이 뒤에 있는 야적장에는 미합중국 소유의 괴물 사체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미합중국의 재산을 대한민국의 검찰이 가져가게 둘 수 없습니다.”
“그, 그게 무슨……?”
“며칠 전 잠실에서 있었던 괴물 소탕 작전에, 미국의 헌터가 소속된 팀이 괴물을 1마리 사냥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헌터들은 그 소유권을 미합중국 정부에 이양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황도형이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앞으로 나섰다.
“해당 괴물의 토벌은 제대로 된 공략권 없이 행해진 일입니다. 그런 고로 토벌에 참여한 헌터 개인에게는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황도형은 조금도 굴하지 않는 태도로 당당하게 말했다.
미국이라면 그 누구보다 적법한 절차를 따질 수밖에 없을 테니 이쪽의 말에 반박할 수 없으리라.
“그러므로 귀하가 말한 괴물의 사체 역시 소유권은 대한민국…….”
“저는 그저 미합중국의 재산을 보호할 뿐입니다.”
레디셔트의 말뜻은 명백했다.
네 말은 듣지 않겠다.
“아니, 무슨 일을 하든 절차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 해병대는 미군의 절차를 수행할 뿐입니다.”
황도형의 입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황도형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SS급이라 불리는 강력한 능력이 아닌 지금 말한 ‘절차’였다.
물론 본인의 강력한 능력이 배경에 있기에 그 절차도 힘을 발휘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공적인 업무 수행이 그가 가진 전가의 보도였다.
그런데 지금 그 절차에 대해 완전히 귀를 닫아 버린 상대가 나왔다.
문제는 황도형이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봉인당하니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 이현필이 나섰다.
“미국이 소유한 괴물의 사체는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미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물러서면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황도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맞다. 저런 방법이 있었다.
그때 야적장 안쪽에서 1명의 백인이 밖으로 나와 레디셔트와 뭐라고 말을 주고받았다.
‘저 남자는?’
황도형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미국 1위 길드인 ‘팀 히어로’의 대표 리처드 개런이었다.
개런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레디셔트가 다시 이현필을 향해 말했다.
“현재 사체를 해체해 후처리 작업 중이기에, 어떤 것이 미국의 소유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뭐 그런 억지가!”
황도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건 누가 들어도 명백한 억지 주장이었다.
하지만 레디셔트는 이번에도 황도형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므로 현재 이 야적장에 있는 사체는 그 어떤 것도 손댈 수 없습니다!”
“정말 외교적인 분쟁으로 가겠다는 말입니까!”
“그런 건 나는 모릅니다. 그저 미합중국의 재산을 지킬 뿐입니다.”
“이, 이런!”
그때 이현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혼원 길드 본사로 간, 각성자 특수부 소속의 유철형 검사였다.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은 이현필은 뒤로 물러서며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여기에 미군들이 들이닥쳐서 건물로 진입하는 걸 막고 있습니다.)
“뭐? 거기는 또 왜?”
이현필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물었다.
이곳은 야적장에 미국 소유의 괴물 사체가 있다는 핑계를 댔다. 하지만 혼원 길드 본사는 미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은가.
(이 건물 안에 미국 안보와 관련한 중요한 보안 문서가 있다면서 막아서고 있습니다.)
“보안 문서? 무슨 보안 문서!”
(그, 그건 저도 잘…….)
“하아! 알았어. 일단 전화 끊고 대기해.”
황급히 통화를 마친 이현필이 레디셔트에게 물었다.
“혼원 길드 본사에 미국의 보안 문서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존재합니다.”
“무슨 보안 문서요!”
“자세한 내용은 보안 사항이므로 밝힐 수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수많은 법적 절차를 생략하더라도, 타국의 국민에게 총을 들이대고 위협하는 건 거의 침략 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뭐라 반박해 보려고 생각을 쥐어짜 보았지만, ‘안보’와 ‘보안’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미군은 벽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 일, 책임 질 수 있습니까?”
마지막 발악으로 버럭 소리를 질러 보았다.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그에게 절망감을 안겨 줄 뿐이었다.
“저는 군인으로서 군인의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이건 답이 없었다.
말을 받아 줄 마음이 없으니 설득은 절대 불가능했다.
주권국가의 사법 체계를 타국의 군인이 힘으로 누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이현필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준혁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레디셔트 장군님. 김준혁이라고 합니다.”
준혁이 거만한 자세로 걸어 나오며 해병대 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레디셔트 소장이 준혁을 향해 먼저 거수경례를 하는 것이었다.
“주한미군 미 해병대 사령관 마이클 레디셔트입니다. 미스터 김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현필은 뒤를 돌아보며 수사관들과 검사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철수합시다.”
황도형이 기겁하며 외쳤다.
“아니, 영감님! 여기서 물러서면 어쩌자는…….”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방송국 카메라가 찍고 있는데도 버럭 소리를 내지른 이현필이었다. 그만큼 그가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다.
이현필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준혁을 향해 말했다.
“이봐요, 김준혁 씨, 대한민국 검찰을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것 같습니까?”
“어이구, 살벌해서 못 살겠네.”
“지금 정말 큰 실수 하는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법을 어겨서 어쩌자는 겁니까?”
“음… 검사님.”
“뭐요?”
“한 가지 간과하는 거 같아서 알려 드려야 할 것 같군요.”
“간과?”
이현필이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적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기, 가까운 곳에 미국 사람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레디셔트가 곧바로 그 말을 받았다.
“미스터 김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백악관에서 무척이나 기뻐할 것입니다.”
“하하! 그래도 제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넘쳐나서 말이죠.”
“물론 미스터 김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주고받는 대화가 죽이 척척 맞는다. 미리 준비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화였다.
파파파파팟!
함께 온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어마어마한 광량을 쏟아냈다. 방송국 카메라들 역시 준혁을 한껏 줌으로 잡아당긴 채였다.
“이이익!”
이현필은 이를 악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었다.
“돌아갑니다.”
야적장의 사무실로 들어서는 준혁을 향해 장민호가 급히 물었다.
“형님, 바깥의 저 미군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어젯밤에 혹시나 해서 미국 정부하고 계약해 놨지.”
“미국? 계약?”
“1년에 4개씩 미국 내에 있는 게이트 돔을 진압해 주는 대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1년에 4개?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미국 땅덩어리는 우리나라보다 어마어마하게 넓어. 게이트 돔도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많지. 대충 70~80개 정도 되던가? 1년에 4개씩 해도 20년은 미국을 부려 먹을 수 있다.”
“그, 그렇기는 하네요. 그런데 조건이 파격적이기는 한데요?”
그에 대한 대답은 유민섭이 했다.
“게이트 돔에 대한 인식이 예전의 그것이면 파격적인 조건이지. 그런데 게이트 돔에 이상 현상도 생겼고, 배면계 얘기도 진짜라는 게 증명됐고, 배면계의 괴물도 직접 등장했어. 정부 입장에서 보면 게이트 돔이라는 건 무시무시한 위협이야. 게이트 돔이 또 다른 이상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아아…….”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정부 입장에서는 다급할 만했다.
“그럼 아까 말한, 본사 건물에 있다는 보안 문서라는 건 거짓말인 겁니까?”
다시 준혁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
“네?”
“진짜 있어, 보안 문서.”
“무슨 보안 문서요?”
“미국 내에 있는 게이트 돔을 진압할 때, 주방위군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내용이지.”
“네? 그게 어떻게 보안…….”
“군대 이동 계획은 당연히 보안 사항이지. 민간인 통제를 위해서 주방위군이 도로를 막는다. 군사 작계 맞지?”
“허!”
“뭐든 명분은 중요한 거야.”
“그래도 미군은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거 잘못하면 외교적으로…….”
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이 형님을 어떻게 보는 거냐?”
“예?”
“나는 겨우 그 정도로 안 끝낸다.”
“그게 무슨……?”
“겪어 봐서 아는 놈이 왜 그래?”
순간 장민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준혁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당했던 그 끔찍한 악몽 같은 밤이 떠올라 일순 공황장애를 느낄 정도였다.
그런 장민호를 향해 준혁이 말을 이었다.
“저놈들 두드려 팰 몽둥이는 아직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