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62화 (6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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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대립각#2-

<김지후, 거짓 신분으로 국민을 우롱하다.>

<거짓된 신분으로 세운 업적을 업적이라 부를 수 없다.>

<헌터 김준혁, 던전 관리청 직원에게 폭력 행사.>

<영웅이라 불리던 김지후, 그가 드러낸 김준혁이라는 민낯.>

<헌터의 폭력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그날 저녁 TV와 신문, 인터넷 뉴스 등 수많은 언론이 준혁의 일을 메인 기사로 다루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독할 정도로 적대적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웅이라 치켜세우던 언론들은 순식간에 등을 돌리고 총구를 들이밀었다.

신기한 것은 여론의 방향은 완전히 반대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잘못한 게 뭐라는 말인데?>

└던전 관리청이랑 싸운 거?

└자기가 잡은 괴물 사체를 자기가 가져간 거?

└결국 잘못한 거 없다는 말?

└있기는 하지. 때린 거.

<이로써 확실해졌다. 통안부, 던관청이 진짜 힘이 세긴 한 듯.>

└어느 시댄데 어용 언론 타령이냐?

└그게 아니면 언론이 왜 여론이랑 반대로 가냐?

└기사 보고 얘기해라.

<솔직히 자업자득이다. 던관청 예전부터 말 많았지. 특히 길드들 사이에서.>

└ㅇㅈ. 황 뭐시기랑 얘기할 때 유민섭 얼굴 썩더라. 그거 보면 말 다 했지.

<김준혁이 법을 어긴 건 맞잖아.>

└그건 맞지. 근데 동영상 보고 와서 말해라.

└그거 보면 열불 터질걸?

└미안하다. 지금 보고 왔다. 댓글 왜 안 지워지냐?

<근데 지금 김지후, 아니 김준혁이랑 척 져서 좋은 게 있냐?>

└내 말이. 이러다 김준혁 딴 나라 가면 어쩔?

└내 말이 2. 제발 던관청 치우고 흑태자 마음대로 하게 둬라.

└난 진짜 강이찬 방송 보면서 육성으로 김준혁 응원했다.

여론은 준혁의 행동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폭력을 사용한 것도 이상하게 옹호 여론이 많았다. 폭력 자체는 잘못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이해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리고 스포츠 면에서도 기사가 실렸다.

<야구팬을 우롱한 김준혁의 거짓말, 이대로 좋은가?>

<거짓말로 움켜쥔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조금 늦은 저녁 시간, 유민섭은 준혁의 기자회견을 빠르게 준비했다.

워낙 뜨거운 이슈였기에 기자회견장은 기자들로 가득 찼고, 준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단상의 연설대 앞에 섰다.

파파파파팟!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해일처럼 질문이 쏟아졌다.

“지금 얼굴은 본인의 얼굴이 맞습니까? 얼굴을 변형시킬 수 있는 것 같던데, 그걸로 김준혁 선수의 얼굴을 도용하는 건 아닙니까?”

“김준혁 선수, 지난 은퇴 선언 당시의 기자회견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준혁 선수, 국민들을 우롱한 것에 대한 사과는 없습니까?”

준혁은 야적장에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동산이 되어 버린 영수의 사체를 배경으로 기자들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들이 곱지가 않았다.

그것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본인의 생각일까, 데스크의 지시일까, 그보다 더 윗선의 의도일까?

그러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보였다.

뭐든 상관없었다. 계획한 대로 일을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준혁은 기자들의 소란이 가라앉은 후 입을 열었다.

“제 기자회견의 규칙은 지난번과 마찬가지입니다. 손을 들고 지목을 받으신 후 질문하시고, 질문은 한 사람당 하나입니다.”

사실 기자회견을 하면 이게 당연했다. 질문의 기회야 여러 번 가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구난방으로 질문 세례를 퍼붓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지키는 기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준혁의 말에 바로 반발이 튀어나왔다.

“지금 국민을 우롱해 놓고 그게 반성하는 태도입니까?”

그에 준혁이 웃으며 답했다.

“규칙을 어기셨네요. 나가세요.”

순간 난리가 났다.

“국민들께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자회견을 열어 놓고 기자와 싸우자는 겁니까?”

“전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

아우성을 친다.

준혁이 마이크를 끈 후 옆에 있는 유민섭을 향해 말했다.

“신기하죠?”

“뭐가요?”

“왜 나한테 덤비는 걸까요?”

“뭐, 기자들이 그렇죠. 보통은 연예인이 물의를 일으켜도… 회견문 읽을 때까지는 기다리는데, 오늘은 왜 이러는지……. 어?”

말을 하던 유민섭이 저도 모르게 움찔 눈꼬리를 떨었다.

준혁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 걸 본 탓이었다.

“웃는 게 어째 위험해 보이는데요?”

“에이, 왜 이러십니까? 언제는 내가 안전한 적 있었습니까?”

“에?”

유민섭이 놀라 소리를 흘리는 순간, 준혁이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제대로 할 사람이 없어 보여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준혁은 그대로 회견장을 떠났다.

저들을 진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설득할 이유도, 먼저 사과할 만큼의 절박함도 없었다.

싫으면 안 하면 그뿐이었다.

“김준혁 씨!”

“지금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겁니까?”

또 한 번 아우성이 몰아쳤다. 하지만 자리를 떠난 준혁은 돌아오지 않았다.

***

“아, 어쩌려고 그래요?”

유민섭이 종종걸음으로 준혁의 뒤를 쫓으며 물었다.

“뭘 어째요? 안 하면 그만이지.”

“언론이랑 척 져서 좋을 거 없다니까요?”

“친하게 지내서 좋을 건 또 뭡니까?”

“좋은 거야 당연히 많죠.”

하지만 준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아쉬울 거 없으면 기사 한 줄에 목 안 매도 됩니다.”

“안 아쉬워요?”

“내가 아쉬워 보입니까?”

“아뇨.”

“그죠? 그런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민섭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나는 오른쪽 뺨을 때리면 얼굴을 뭉개 놓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싸우면…….”

뭐라 계속 말하려는 유민섭에게 시선을 둔 준혁이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그 말을 끊었다.

“길드장님, 아니 민섭 씨.”

“네?”

정색하는 준혁의 모습에, 유민섭이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따라서 표정을 굳혔다.

“저는 민섭 씨의 성격을 좋아합니다. 쉽게 화내지 않고, 매사에 좋은 방향으로 문제를 풀고…….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방금 전에 그런 성격 좋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가까워지지는 못했을 겁니다.”

준혁의 말대로였다. 준혁이 골드 드래곤의 레어를 무단으로 공략했을 때, 유민섭은 많은 걸 양보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름의 계산도 있었지만, 그의 좋은 성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그런 유민섭의 선택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나는 민섭 씨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의가 호의로 돌아오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필요에 따라 강경하게 나갈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유민섭은 어느 정도 손해를 보면서 사는 사람이기도 했다.

준혁의 말을 곱씹던 유민섭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뭔데요?”

“같이 하시죠. 따라오세요.”

피식 웃으며 말하는 준혁의 모습에, 유민섭은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불안감을 애써 억눌렀다.

***

『헌터계 소식입니다. 검찰에서 전 야구 선수이자 현재 혼원 길드 소속 헌터인 김준혁 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신청했습니다.』

『지금까지 거짓 신분으로 활동한 점과 긴급 대책반 황도형 반장에게 폭력을 행사한 점 등을 사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또한 김지후라는 거짓 신분에 헌터 라이센스를 발급해 준 이중결 통합안전보장부 장관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위해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그 외에 혼원 길드의 유민섭, 최유나, 장민호 헌터에 대해서도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휴대폰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뉴스 내용 때문에 손을 멈추지 않는다.

준혁을 비롯한 혼원 길드의 길드원들은 끊임없이 손을 놀리고 있었다.

“끄으! 죽겠네.”

장민호가 갑자기 허리를 잔뜩 뒤로 젖히며 깊이 스트레칭을 했다.

그런 장민호의 뒤쪽에 무언가 낯선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쉬지 마라.”

준혁의 말에 장민호가 황급히 스트레칭을 멈췄다.

“예, 형님!”

혼원 길드의 길드원들은 모두 영수의 사체를 해체하고 있었다.

장민호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육체 능력이 S급이라 작업의 진행 속도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빨랐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주 이질적인 외모가 끼어 있었다.

“오, 이게 배면계 괴물의 마나석이군요!”

감탄을 터트리는 이는 다름 아닌 ‘팀 히어로’의 캡틴인 개런이었다.

그리고 개런 옆에는 함께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왔던 팀 히어로 소속의 헌터도 1명 있었다.

“어이, 거기 알바생 아저씨! 내가 시범 보여 준 거 까먹었어요? 똑바로 안 합니까?”

준혁의 농담에 개런이 과장되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태자 전하!”

그때 야적장 쪽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길드장님!”

유민섭의 수행 비서인 장형준이었다.

“네, 장 비서님.”

“지금 밖에 검찰이!”

동시에 준혁이 감탄을 터트렸다.

“허어! 이런 클리셰 덩어리들 같으니라고.”

유민섭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쩜 이렇게 예상을 안 벗어날까요?”

상황은 다급한데 두 사람의 태도는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장민호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대답은 유민섭이 했다.

“네, 뭔데요?”

“검찰이 왜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올까요? 솔직히 우리 형님이 잘못한 게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저렇게 오버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유민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황 반장이 각성자 특수부하고 엄청 친합니다.”

각성자 특수부는 각성자들이 일으키는 사건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헌터들과 마찰이 많은 현장의 대책반과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게 당연했다.

“그럼 어쩌죠?”

장민호가 꽤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검찰이 준혁에게 날을 세울 때부터 불안했던 장민호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준혁이 너무 여유로워 가만히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준혁이 저쪽에서 열심히 괴물 도축용 칼을 놀리고 있는 개런을 향해 말했다.

“어이, 리키.”

“네. 말씀하세요.”

“대한민국 검찰이 떴다는데, 준비는 다 끝난 거지?”

“물론이에요, BP.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개런의 호언장담에 준혁이 유민섭을 향해 말했다.

“준비 끝났다는군요. 나가시죠.”

유민섭은 고개를 끄덕인 후 준혁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야적장 입구에서 검찰이 경비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준혁이 나서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말에 검사들 사이가 갈라지며 장년의 남자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서울 중앙지검 각성자 특수부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야적장에 있는 괴물의 사체는 법적으로 국가 소유입니다. 여기 괴물 사체와 야적장에 속한 모든 부속 건물에 대한 압수, 수색영장입니다. 방해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뒤로 파란 박스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서 있었다. 그 너머로는 거대한 트럭들이 묵직한 엔진 굉음을 나지막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 곳곳에 방송국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기자와 카메라들이 즐비했다.

그때 검찰에서 나온 수사관들 뒤쪽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 개새끼, 평생 후회하면서 살게 만들 거다.”

황도형이었다.

준혁은 그런 황도형을 향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물었다.

“오늘은 대책을 갖고 왔냐?”

“지금 이게 대책이다, 이 새꺄.”

“진짜?”

“뭐, 수틀리면 여기서도 힘자랑 한번 해 보든가?”

황도형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준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그때 낯선 소음 하나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부아앙-!

급박한 느낌이 역력한 엔진 소리에 황도형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도형만이 아니다. 검찰에서 나온 이들 역시 깜짝 놀라 시선을 움직였다.

방송국 카메라들도 일제히 카메라 앵글을 돌렸다.

그 모든 이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오를 때, 준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뭐 하냐, 대책 안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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