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60화 (6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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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흑태자 김준혁#3-

“무슨 짓이냐!”

대책반의 다른 반원들의 반응은 한 박자 늦었다.

너무 빨라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지 못했다.

콰지지직!

준혁이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비틀어 부러트린 후 대책반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해 봐.”

“해, 해 보라니?”

“너네 대책반이라며?”

“…….”

“대책반이 뭐야? 이런 상황에 ‘대책’을 세우는 게 ‘대책’반이잖아. 그럼 ‘대책’을 세워야지.”

말을 하는 준혁의 온몸에서 영력이 풀썩 피어올랐다. 뒤쪽에 있던 청랑과 흑호 역시 소형화를 풀고 거대한 몸집으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대책반은 그 이름답지 않게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쭈뼛거리며 자기들끼리 눈치만 볼 뿐이었다.

“뭐 하냐?”

준혁이 다시 물은 후에야 한 사람이 다급히 움직였다.

“반장님, 반장님!”

그의 선택은 황도형을 깨우는 것이었다. 아마도 힐러였는지 하얀 빛과 함께 황도형이 정신을 차렸다.

“으음, 이게 무슨 일…….”

그리고 준혁은 그런 황도형을 무시한 채 유민섭에게 말했다.

“자리가 복잡하니 다른 나라 헌터들은 일단 돌려보내시죠?”

유민섭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바짝 말라 버린 입술을 핥으며 준혁을 보았다.

맡겨 보라더니 거하게 사고를 쳐 버렸다. 그리고 수습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 선택할 수 있는 것도 하나밖에 없었다.

‘젠장! 이미 난 못 내려.’

그의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호지세였다.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유민섭이 우르르 몰려온 다른 나라의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 쉬고 계십시오.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사냥한 괴수의 사체는 해당 팀에 반드시 넘겨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자리를 피해 주십시오.”

유민섭은 세계적으로 인망이 있는 헌터였다. 그런 유민섭의 말이니만큼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한 헌터들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남은 이들은 긴급 대책반과 혼원 길드, 그리고 강이찬이었다.

“이놈이 감히…….”

그사이 힐러의 치유로 정신을 차린 황도형이 입을 열었다.

“넌 인마, 이제 좆 됐어. 거기, 지금 촬영해서 방송 내보내고 있지?”

강이찬은 뜬금없이 자신을 향한 질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 국민이 증인이다, 이 새끼야. 어디 한번 날뛰…….”

이번에도 말이 끊어졌다.

“야.”

“아직도 할 말이 남았…….”

“너도 인사해.”

“뭐?”

“전 국민이 보고 있잖아. 그럼 대책반 대표로 인사도 하고 그래야지.”

“무슨 헛소리를…….”

“지금부터 뒈지게 처맞을 대책반장 황도형입니다, 해 봐.”

“뭐?”

빠악!

이번에도 황도형의 신형은 저만치 날아가 땅바닥에 긴 흔적을 남기며 처박혔다.

다른 대책반원들이 다급하게 뒷걸음질 치는 사이, 준혁은 강이찬을 향해 말했다.

“마이크 끄고 대책반 애들 좀 찍고 있어라.”

이번에도 반문은 없었다. 강이찬은 빠릿빠릿하게 마이크를 끄고 혼원 길드원에게서 앵글을 치웠다.

그것을 확인한 후 준혁이 길드원들을 향해 말했다.

“좀 갑작스럽지만, 다들 결정을 좀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평소 툭툭 내뱉는 투가 아닌 꽤 진지한 말투였다. 그 말에 길드원들 모두의 시선이 준혁에게 모였다.

“리쉬옌과 린디웨는 알고 있겠지만, 오늘 나온 괴물들은 배면계의 영수급 괴물입니다. 누구인지도 모르고 방법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런 괴물을 현세로 불러낼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나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세계 포럼장을 노리기는 했지만, 준혁이 가장 큰 목표였을 것이다.

이는 린디웨와 리쉬옌이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지. 괴물을 이용해서 일을 꾸미는 거면 나 같아도 ‘엽사’부터 처리한다.”

“같은 생각입니다.”

준혁이 말을 이었다.

“즉, 나하고 같이 있으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결정을 하십시오. 지금이 아마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그 말에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유민섭이었다.

“내가 예전에 말했죠?”

“뭘요?”

“난 이미 기호지세라니까?”

“죽는 것보단 나을 텐데요?”

“까짓것 그냥 뒈지지, 뭐.”

유민섭이 평소 성격과 달리 호방하게 말하며 준혁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다음은 장민호였다.

“하하! 나는 세상에서 흑태자 형님이 제일 무서운 사람입니다.”

관계의 시작점은 이상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준혁에게 충실한 장민호였다.

“조금 전에 그 괴물들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괴물보다 형님이 더 무서워요.”

“그놈의 형님 소리. 네가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

“에이, 액면가로 따지죠?”

장민호가 준혁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다음은 리쉬옌과 린디웨였다.

“난 애초에 같이 움직이자고 찾아왔다고 몇 번을 말하냐?”

린디웨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구련환이라도 풀어 줘 놓고 그렇게 말했으면 멋있었을 텐데 말이죠.”

리쉬옌이 손목의 구련환을 슬쩍 흔들며 다가왔다.

“액세서리로 써. 예쁘잖아.”

마지막은 최유나였다.

“후우!”

최유나는 작게 숨을 골랐다. 모두의 시선이 최유나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이해관계가 조금도 엮이지 않은 이가 최유나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속도 잘 내비치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신기한 것이 팀원들 모두가 최유나도 자신들과 같은 선택을 해 주기를 바란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팀이 되어 같이 다녔던 사람이다.

게다가 최유나의 부족한 실력을 커버하기 위해 다 같이 그녀에게 신경을 쓰고 한편으로는 보호하다 보니, 모두에게 최유나는 막냇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팀원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유나는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강해지고 있다.’

최유나는 아까 괴사불상과 싸울 때 자신의 실력이 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애초에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는 최유나였다.

자신이 강해졌다는 게 확인된 이상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준혁을 따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었다.

“흠, 뭐 새삼 고마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준혁이 조금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사실 준혁의 제안은 2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는 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팀원들을 테스트한 것이다.

같이 갈 사람인가, 아닌가.

배면계에서 10년의 세월을 살았던 준혁은 그런 점에서 냉정할 정도로 선이 분명했다.

내 사람이라면 끝까지 안고 가지만, 그 외에는 바로 옆에서 죽어 나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배면계에서의 생존법이었다.

그때였다.

“흑태자 님-!”

갑자기 강이찬이 준혁을 애타게 불렀다.

“응?”

“저는요?”

“뭐?”

“저도 같이 가야죠.”

맥락 없는 얘기에 준혁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같이 가?”

“저도 끼워 주십시오.”

“아서라. 그러다 뒈진다.”

“왜 이러십니까? 저 강이찬,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남잡니다.”

“의리는 무슨. 풍선에 죽고, 풍선에 사는 남자겠지.”

“뭐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저도 끝까지 같이 갑니다.”

“죽을지도 모른다.”

“이래 봬도 제가 A급 마법삽니다. 그것도 공격형 마법사. 제 몸 하나는 건사합니다.”

“잘도 하겠다.”

“아무튼 끼워 주십시오!”

결연한 눈빛으로 말하는 강이찬을 보며 준혁이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흘렸다.

“그래. 넌 와서 대가리 박고.”

왠지 미워할 수 없는 놈이었다.

그때였다.

“너 이놈의 새끼…….”

저 멀리서 황도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새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대책.”

“뭐?”

빠악!

황도형은 또 한 번 준혁의 손에 맞아 기절했고, 대책반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사이 준혁이 유민섭을 향해 말했다.

“일단 저 사체들 싣고 갑시다.”

“헐! 저 큰 걸 전부 어디로 옮깁니까?”

“야적장 같은 거 없어요?”

“있기는 한데…….”

“그럼 거기로 옮기면 되죠.”

“지킬 인원도 부족하고, 관리청에서 어떻게 나올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오늘부터 야적장에서 농성하면 되죠.”

“하아!”

같이 가기로 다짐하자마자 골치 아픈 일이 시작되었다.

그때 유민섭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준혁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놈들은 어떻게 처리하려고요?

-저놈들?

-대책반 놈들이요.

준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반응했다.

-에이, 왜 이래요? 아마추어같이.

-아마추어?

-이번 일, 여론이 누구 편을 들 것 같습니까?

-여론이요?

-네.

-흐음, 정서적으로 보면 준혁 씨를 지지할 겁니다. 대책반이 워낙 대책 없는 놈들이라.

대책반의 공식 별명이 괜히 뒷북 대책반이 아니었다.

어지간해선 긴급하게 도착하는 법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 반면, 준혁은 가장 먼저 나서서 괴물을 막고 사람들을 구했다.

여론이 누구를 지지할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유민섭이 말을 덧붙였다.

-헌터들은 당연히 우리를 지지할 겁니다. 그리고 오늘 괴물들을 막은 모습이 이찬 씨를 통해 생중계된 이상, 기본적으로 일반 사람들은 우리, 특히 준혁 씨를 지지하겠죠.

거기까지 말한 유민섭이 한 박자 쉰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법입니다.

-문제이기는 하죠.

-네. 괴물이 나타난 현장에서는 던전 관리청의 통제가 최우선이거든요. 그런데 준혁 씨는 저쪽 공무원한테 폭력까지 행사했으니…….

-저놈들은 따로 처리할 방법을 생각해 놨습니다.

-그러면야…….

-그런데 그러지 않아도 솔직히 상관은 없습니다.

-네?

-묻겠습니다. 대책반과 흑태자, 대한민국에 누가 더 절실하게 필요할 것 같습니까? 배면계의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시점에서요.

-그야 당연히 흑……. 어?

-왜요?

-그거 아십니까?

-뭐요?

-지금 준혁 씨가 스스로를 흑태자라고 칭했다는 거.

“뭐? 이런 씨…….”

준혁이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을 뱉을 뻔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강이찬을 향해 살기 어린 시선을 날렸다.

입에서 저도 모르게 ‘대가리 박아.’가 나오는 걸 억지로 집어 삼켜야 할 정도였다.

-실숩니다. 하도 그렇게 떠들어서 나도 입에 밴 거예요.

-험험! 뭐 알겠습니다. 아무튼 대한민국에는 당연히 흑태, 아니 준혁 씨가 더 필요하죠.

-내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낯부끄러운 소리이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사실이죠.

유민섭이 준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혁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묵혀 놨던 것도 한꺼번에 해결할까 합니다.”

“해결이요? 뭘요?”

“지금까지는 여러 문제가 걸려 있어서 못했는데, 흑호랑 백효가 나온 덕분에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뭔데요?”

“보면 압니다.”

“에?”

유민섭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준혁이 강이찬을 향해 말했다.

“이찬 씨, 나 좀 찍어 줘요.”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반문인데, 강이찬의 손에 들린 액션 캠은 이미 준혁을 원 샷으로 찍고 있었다.

준혁의 얼굴에서 풀썩 영력이 피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 쓰고 있던 매구탈이 아무런 무늬도 없는 흰색 가면으로 바뀌었고, 준혁은 그것마저 벗었다.

유민섭의 입에서 기겁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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