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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세계 헌터 포럼#2-
-크하하하하하!
바깥에서 거대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이었다.
“푸훕! 푸하하하!”
헌터 하나가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웃음은 사방으로 전염되었다.
“푸하!”
“크크큭!”
그리고 순식간에 실내 체육관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하나같이 배를 접은 채 미친 듯이 웃어 댔다.
아니, 그들은 웃는 게 아니었다.
웃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배 속에서 쥐어 짜내듯 웃음이 억지로 꾸역꾸역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끅, 끄어억!”
원치 않는데도 억지로 속에 든 걸 게워 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이건!”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유민섭을 포함한 S등급과 A등급 헌터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준혁 씨, 이거 뭡니까? 사람들이 이상합니다!
-사면오공!
-사면오공이요?
-이 지네 새끼가 사람의 감정을 쥐어 짜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기서는 방법이 없어요. 밖에서 리쉬옌과 린디웨가 방벽을 칠 겁니다. 그때까지 조심하세요. 웃는 걸로 안 끝납니다.
-웃는 걸로 안 끝난다니?
-A급 이상은 괜찮죠?
-네!
-거기서 웃고 있는 사람들 전부 때려서 기절시켜요. 당장!
-알았어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민섭은 준혁의 지시를 빠르게 전달했다.
“지금 서 있는 사람들 주변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 전부 기절시키십시오! 빨리!”
외침과 동시에 유민섭은 풀쩍 몸을 날렸다.
S급 지휘관인 그가 순수하게 힘으로 기절시킬 수 있는 상대는 C급 헌터들이 한계였다.
C급은 관중석 쪽에서도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헌터들이었다. 유민섭은 관중석의 배치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빠악!
그나마 다들 웃느라 진이 빠져 있기에, 피지컬이 약한 유민섭도 어려움 없이 제압 가능했다.
빡, 빡!
유민섭의 행동에 다른 헌터들 역시 신속하게 움직였다.
돌발 상황이지만, 그들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들이었다.
필요하다면 의문을 뒤로하고 일단 행동하는 게 가능했다.
“닥쳐!”
유민섭과 대화를 마친 준혁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거대 망치를 희면의 주둥이에 쑤셔 넣었다.
사면오공은 그대로 맞아 주지는 않았다.
투두두둑!
관절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몸마디의 다리들이 수많은 마디의 다리로 변해 준혁의 망치를 막아 세웠다.
쩌엉-!
-크하하하하!
그럴수록 희면의 입에서는 더욱 거대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장 저 입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다.
준혁이 황급히 린디웨에게 생각을 전했다.
-아직 멀었냐?
-제길! 시간, 시간이!
-리쉬옌, 너라도 뭘 좀 해 봐!
“알겠습니다!”
소리를 내 대답한 리쉬옌이 마지막 하나의 영패를 허공에 띄웠다.
“고(鼓)!”
빛과 함께 허공에 불쑥 떠오른 것은 거대한 ‘북’이었다.
-크하하하하!
사면오공의 희면이 터트리는 웃음소리에 반응하듯, 거대한 북의 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둥둥둥!
스스로 울린 묵직한 북소리가 퍼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부딪쳐 기묘한 소음으로 상쇄되기 시작했다.
양손을 앞으로 뻗은 채 온몸의 영력을 집중하고 있는 리쉬옌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린디웨, 서둘러요!”
“거의 다 돼 가!”
-어떻게 사면오공까지!
-준혁, 빨리 죽여! 다른 놈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두 사람의 생각이, 유민섭이 열어 놓은 생각의 통로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사면오공은 배면계의 영수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놈이었다. 거의 신수에 가까운 능력은 지녔다.
다만, 죽음의 굴레를 벗지 못했기에 영수에 머무를 뿐이었다.
-하고 있다고!
생각일 뿐인데도 준혁이 이를 악물고 외치는 듯 그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때마침 주경기장 외곽을 돌며 미친 듯이 술석을 박아 넣던 린디웨의 작업이 끝났다.
“거궤(巨櫃)!”
그때였다.
파앙-!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리쉬옌의 ‘고’가 터져 나갔다.
“쿨럭!”
쓰러지듯 앞으로 고꾸라진 리쉬옌이 시뻘건 선현을 게워 냈다.
“크윽!”
린디웨가 활짝 펼친 양손으로 무지막지한 영력을 쏟아냈다.
푸른 안개가 린디웨의 손에서 풀썩 피어 나와 바닥의 영력을 타고 빠르게 선을 그었다.
양쪽으로 뻗어 나간 영력은 주경기장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사각형을 그렸다.
두 줄기의 영력이 반대편에서 만나 완전한 사각형을 만든 순간, 거대한 4개의 변에서 푸른색의 반투명한 벽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주경기장을 완전히 감싸는 거대한 상자로 변했다.
거대한 상자(櫃), ‘거궤’가 완전한 모양을 갖추자 6개의 면이 쉴 새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주경기장 벗어나지 마! 거기가 내 한계야!
거궤는 물리적인 막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영력으로 발현하는 정신계 영력 파동을 막아 내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알았다!
30자루의 금문묵룡비가 어지러이 허공을 날았다.
사면오공의 다리들이 수없이 관절을 늘리며 길어지더니 채찍처럼 허공을 난무했다.
휘리리링!
수십 개의 다리와 30자루 금문묵룡비의 격렬한 싸움.
준혁은 그 와중에도 희면을 향해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빡, 빠악!
창으로 형태를 바꾼 무상곤이 희면의 얼굴에 수십 개의 구멍을 뚫어 댔다.
짙은 회색의 영력이 뚫린 구멍에서 쉴 새 없이 새어 나왔다.
-크하하하하!
하지만 희면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주경기장 벗어나지 마! 거기가 내 한계야!
때마침 주경기장 전체가 거대하고 반투명한 육면체에 싸여 있었다.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준혁이 꺼낸 것은 금문묵룡삭이었다.
“청랑!”
준혁의 외침에 지금까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청랑이 득달같이 튀어나왔다.
파파파팍!
바닥을 파헤치며 돌진한 청랑이 스킬을 펼쳤다.
[돌개바람]
나선을 그리는 바람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변하며 사면오공의 몸뚱이 중간을 후려쳤다.
콰드드득!
그러자 사면오공의 아래쪽 다리도 관절의 마디가 늘어나며 길게 뻗어 채찍처럼 청랑을 공격했다.
컹, 커엉!
청랑이 스킬을 있는 대로 난사하며 사면오공의 발밑을 어지럽혔다.
-더러운 짐승 놈들!
마침내 웃음소리가 아닌 말소리가 사면오공의 4개의 얼굴에서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역시나 다른 목소리의 같은 말.
사면오공의 신경이 청랑에게 잠시 쏠린 그 틈을 타 준혁이 금문묵룡삭을 허공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흑호!”
키아앙-!
아직 완전한 성체가 되지 못한 흑호가 앙칼진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흑호의 모습은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준혁이 다시 한 번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쉬이이이익!
사면오공의 대가리에 비쭉 튀어나온 집게 같은 2개의 발톱이 쭉 늘어나며 쏘아 낸 창처럼 준혁을 향해 쇄도했다.
독이 스며 있는 지네의 독 발톱이었다.
2개의 독 발톱이 쉴 새 없이 준혁을 찔러 댔지만, 준혁의 무상곤이 더 빨랐다.
어지러이 휘두르는 무상곤이 독 발톱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냈다.
그런 공방을 주고받는 순간이었다. 사면오공의 사면, 희로애락 4개의 얼굴이 동시에 고함을 질러 댔다.
-크하하하하!
-그워어어어!
-흑, 흐으으윽!
-깔깔깔깔!
기쁘게 웃는 소리, 노한 고함 소리, 슬픔에 젖은 울음소리, 즐거운 비명이 한데 어우러졌다.
과르르르릉!
주경기장을 감싼 ‘거궤’의 6개 면이 사정없이 진동했다.
-깨진다! 서둘러!
머릿속에 울리는 린디웨의 경고성.
그리고 그때 마침 준혁이 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면오공의 대가리 위에 무언가가 갑자기 불쑥 나타났다.
방금 전 은신했던 흑호였다. 그리고 흑호의 입에 물린 것은 준혁이 늘어놓은 금문묵룡삭의 끝자락.
휘리리릭!
꼿꼿하게 서 있는 사면오공의 몸뚱이를, 흑호가 횡으로 띠를 그리듯 한 바퀴 타고 돌았다.
그에 따라 흑호의 입에 물린 금문묵룡삭이 사면오공의 몸뚱이에 매듭처럼 묶였다.
위치는 사면오공의 대가리와 그 아래 몸마디의 사이.
꽈아아악!
-크하하하하!
-그워어어어!
-흑, 흐으으윽!
-깔깔깔깔!
순식간에 꽉 조여지는 금문묵룡삭의 힘에, 4개의 얼굴이 한층 더 큰 소리를 터트렸다.
그때였다.
=입.닥.쳐.
준혁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4개의 얼굴이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웃음소리도, 노한 괴성도 들리지 않았다.
금문묵룡삭을 통해 강탈한 카이르무스의 권능인 용언이었다.
-이것은……?
그리고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사면오공의 진짜 목소리였다.
“크흐흐! 여기에는 신기한 게 있더라고!”
-잡스러운 기운이구나!
버럭 소리를 내지른 사면오공의 온몸에서 짙은 잿빛의 영력이 풀썩 피어올랐다.
동시에 100여 쌍의 지네 다리가 쭉 길어지며 사방의 공간을 휩쓸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길게 늘어난 지네 다리가 주경기장 관중석과 바닥, 천장 곳곳에 박혔다.
마치 주경기장 전체를 복잡한 거미줄로 뒤덮은 듯한 광경이었다.
-린디웨, 리쉬옌! 빠져!
준혁은 배면계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들을 잡은 경험이 있었다. 그 덕에 사면오공이 지금 무얼 하려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준혁이 금문묵룡삭의 끝자락을 쥔 손에 힘을 불끈 주는 순간이었다.
콰라라라라!
사면오공의 몸마디 곳곳에서 묘한 소음이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사면오공이 100미터에 달하는 몸뚱이를 수직으로 꼿꼿하게 세웠다.
-크오오오오!
괴성과 함께 주경기장을 뒤덮은 지네 다리에서 과격한 영력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준혁도 준비하고 있던 술을 펼쳤다.
[낙일홍(落日虹)]
실내 체육관 지붕 위쪽 허공에 거대한 술식진이 그려지더니, 그곳에서 새빨간 광원이 급격하게 떨어져 내렸다.
쩌저저적!
지면에, 그리고 견고하게 세워져 있던 주경기장 건물 모든 곳에 수천, 수만의 실금이 갔다.
준혁이 불러낸 ‘낙일홍’이 새빨간 빛살을 방사했다.
지면을 완전히 뒤덮은 햇살 같은 빛들이 주경기장 전체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주경기장 건물이 수십만 개의 조각으로 쪼개지며 폭탄의 파편처럼 터져 나갔다.
콰아아아앙-!
린디웨의 ‘거궤’는 순식간에 터져 나갔고, 아예 일대의 건물 전체가 흔적도 없이 바스라졌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먼지가 올림픽 경기장 일대를 뒤덮었다.
거대한 영력의 폭탄이 일대를 완전히 집어삼키며 시계를 0으로 만들었다.
그 속에서 준혁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대.가.리.들.어.
아직 이어져 있는 금문묵룡삭을 통한 용언이 펼쳐졌다.
까가가가가!
뼈가 부딪치는 듯한 괴악한 소음이 일대를 뒤덮는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높은 곳부터 먼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드러난 모습.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던 사면오공이 등 쪽으로 머리를 한껏 젖히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 아래 있는 ‘사면’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가리 들어.’라는 용언의 영향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준혁이 아래로 내려서고 있었다.
지이이잉-!
준혁의 무상곤이 거대한 대도로 변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4개의 얼굴을 세로로 가를 듯 머리 위로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4개의 얼굴이 마지막 괴성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그워어어어!
-흑, 흐으으윽!
-깔깔깔깔!
준혁의 대도가 거센 압력을 품은 채 날카롭게 떨어져 내렸다.
“닥치기 싫으면 찢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