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55화 (5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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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세계 헌터 포럼#1-

‘세계 헌터 포럼’.

유민섭이 준비한 포럼의 이름이었다. 주제는 ‘게이트 이상 현상’으로, 포럼의 정식 명칭은 ‘게이트 이상 현상 실체에 관한 세계 헌터 포럼’이었다.

유민섭은 포럼의 참가 자격을 ‘길드장’으로 정했다.

그렇게 허들을 낮춘 덕분에 참가 신청이 폭발할 정도였다.

포럼 참가를 위해 세계적으로 길드 창설 수치가 껑충 뛰어오르기까지 했다.

물론 세계의 모든 길드에서 참가 신청을 한 것은 아니었다.

관심을 갖고 참가하려고 기를 쓴 헌터가 있는 반면,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 헌터도 많았다.

그 외에 예외로 ‘세계 각성자 기구’와 ‘BR 코퍼레이션’을 필두로 하는 던전 관련 기업 정도에 참가 자격을 부여한 상태다.

그런데도 이번 포럼의 참가자는 거의 700명이었다.

흔히 볼 수 없는 대규모 포럼이었다.

어지간한 강연장이나 호텔 세미나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기에, 유민섭은 잠실에 있는 실내 체육관을 대관했다.

체육관 중앙에 동그란 단상을 놓고, 단상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의자를 배치했다.

그것으로도 자리가 모자라 관중석에도 참석자들이 앉았다.

단상에 가까울수록 등급이 높고 큰 길드의 길드장들이 앉았다. 그래도 모든 자리에 실시간 통역기가 배치되어 있어 별다른 혼선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길드장들이 귀에 실시간 통역기를 착용하고, 유민섭이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혼원 길드의 유민섭입니다.”

유민섭은 별다른 식순 없이 곧장 포럼을 시작했다.

“우선 자료 화면부터 보시죠.”

유민섭의 말에 따라 체육관 벽 사방에 걸어 놓은 대형 스크린에 화면이 떠올랐다.

어느 위치에 앉아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배치였다.

화면에는 린디웨가 비밀을 밝힌 문제의 술석 사진이 떠올랐다.

“얼마 전 각국의 친분 있는 길드에 이 사진을 보내면서 한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막공 쪽에서 이런 물건을 사람에게 던지는 자들이 있는데, 이 물건들을 회수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작은 웅성거림이 퍼졌다.

대부분의 길드장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에 대한 확신이 없어 친분이 있는 길드에만 요청을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기에 지금까지 알게 된 사실을 공개하기 위해 이번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유민섭이 말을 이었다.

“이것에 관해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밝혀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유민섭은 참석자석 사이사이에서 이쪽을 향해 촬영하고 있는 방송국 카메라들에 한 번씩 시선을 주었다. 해당 포럼은 국내 공중파 방송국은 물론 해외 방송국에서도 특별히 중계를 위해 찾아온 상태였다.

그 사이에서 강이찬도 자신의 캠을 들고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방송을 하지는 못하지만, 채팅을 이용해 열심히 중계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계진을 보내지 못한 국가들도 국내 방송국과 연계해 자막을 입혀 방송을 중계하고 있었다.

유민섭은 잠시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배면계라는 곳이 있습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백 사이드 디멘션(Back Side Dimension) 혹은 백 사이드 월드(Back Side World)쯤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곳에도 각성자가 있고, 몬스터 같은 괴물이 있는 그런 세계입니다.”

유민섭이 준혁과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부분이었다.

공개해야 하는가? 공개한다면 어디까지 알려야 하는가?

그리고 결론은 모든 걸 공개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놈들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다면 이쪽에서도 다 알고 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장내가 한층 더 소란스럽게 변했다. 가까운 이들과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고, 통역이 잘못된 게 아닌가 고민하는 이도 있었다.

“충분한 질의 시간을 드릴 테니, 지금은 제 이야기에 집중해 주십시오. 우선 이 배면계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한 후에 논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배면계라는 곳은…….”

유민섭은 준비해 놓은 원고를 틈틈이 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중간중간 콘셉트 아트 느낌의 그림까지 스크린에 띄우며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혼원 길드에 그 배면계 출신의 각성자가 3명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흑태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김지후, 그리고 중국 출신의 리쉬옌과 마잉타와 출신의 린디웨입니다. 일단 눈에 보이는 증거를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준혁을 포함한 세 사람이 단상 위로 올라섰다.

준혁은 온몸으로 영력을 뿜어낸 상태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스크린에는 준혁이 스킬을 사용하는 장면이나 무기 등을 촬영한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리쉬옌과 린디웨의 차례가 되어 두 사람의 영력과 동영상도 스크린에 펼쳐졌다.

그러는 동안 유민섭은 세 사람의 직업이나 역할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중에서 특히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은 린디웨에 관한 것들이었다. 마법사와 다른 점과 어떤 방식으로 술법을 사용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처음 화면에 띄웠던 술석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그렇게 한 번씩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을 끝낸 후 유민섭이 말을 이었다.

“이것만으로 믿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3명의 헌터가 단순히 ‘이레귤러’일 수도 있다는 의심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이 유민섭의 명예를 걸고 진실이라는 것을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질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모든 질문에 답을 할 생각이니, 좌석에 마킹된 번호 순서대로 질문을 해 주십시오. 우선 1번 자리부터 질문을 해 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1번 자리에 앉은, 짙은 갈색 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미국 ‘팀 히어로’의 ‘리처드 개런’입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캡틴 유’가 명예를 건 만큼 지금 한 이야기에 전적으로 신뢰를 표명합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 처음 사진에서 보여 준 ‘술석’이라는 물건에 대해 우리 길드에도 수거 요청을 하셨었죠. 그 술석이 어떤 기능을 하는 아이템입니까?”

“현재 저희 쪽 술사인 린디웨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시스템과 배면계의 시스템을 서로 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네. 이미 술사들의 술석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설명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이 술석에 어떤 술법이 각인되어 있는지를…….”

그렇게 질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헌터계에서 이름 높은 길드들의 순서가 앞쪽이었기에, 1시간 가까이 흘렀는데도 겨우 10번의 차례가 되었다.

그만큼 유민섭이 말한 배면계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중국 ‘천룡방’의 방주 ‘쓰자오밍(石昭銘)’입니다. 지금까지 이어진 질의에 따르면 현재 각 게이트 던전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말인데, 중국에서는 별다른 현상이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유민섭 뒤에 앉아 있던 준혁이 갑자기 눈을 치떴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니 때마침 린디웨도 준혁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포럼 시작 전에 유민섭이 생각의 통로를 모두 개방해 놓았다. 준혁은 그것을 이용해 린디웨에게 물었다.

-야, 지금 이거……?

준혁과 유민섭은 그 의문의 무리가 이번 포럼을 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헌터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다. 놈들이 꾸미는 짓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쪽을 적대시한다면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예상이 정확히 맞아 들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온몸에 진득하니 달라붙는 듯한 이 기분 나쁜 감각은 준혁이 익히 알고 있는 그것이었다.

‘배면계 짐승 새끼들!’

그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배면계의 짐승을 직접 불러다 이쪽을 공격하는 방식을 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니, 배면계 짐승을 원하는 곳에 불러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린디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 경계용 술석이 울렸어. 당장 움직여야 해!

실내 체육관을 크게 감싸는 형태로 술석들을 배치해 놓았다. 일종의 경보 장치였다.

-수준은?

-영수(靈獸), 영수급!

“젠장!”

벌떡 일어선 준혁이 빠르게 체육관을 벗어났다. 그 뒤를 리쉬옌과 린디웨가 빠르게 쫓았다.

생각의 전달을 모두 듣고 있던 유민섭도 곧장 마이크를 들었다.

“기습입니다! 전투 준비! 당장 인벤토리 열어요!”

다급한 외침이 묵직한 충격이 되어 실내 체육관을 휩쓸었다.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당황과 웅성거림이 뒤섞이고, 그사이에 신속한 대응이 튀어나왔다.

가장 빠른 반응을 보인 쪽은 역시나 번호의 앞 순번들이었다.

경험이 많았기에 유민섭의 말을 듣는 즉시 인벤토리를 열어 전투태세를 갖췄다.

사방에서 빛과 함께 각종 갑옷과 무장이 튀어나와 헌터들의 몸에 얹어졌다.

“내가 센 놈들 먼저 친다. 너희 둘은 가까이 오는 것들을 우선으로 처리해!”

준혁이 말을 마침 동시에 허리춤의 영소적을 꺼내 입에 물었다.

삐이이익-!

길게 울려 퍼진 피리 소리에, 체육관 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환수 3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개를 활짝 펼친 백효는 하늘 높이 떠올랐고, 흑호는 순식간에 은신을 펼치며 체육관 지붕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청랑은 소형화를 풀며 준혁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왔다.

몸길이 2미터까지 성장한 청랑의 등 위에 준혁이 훌쩍 올라타자, 청랑이 한층 빠르게 내달렸다.

준혁의 시야에 백효의 눈에 비친 광경이 겹쳐서 잡혔다.

“아주 떼거리로 몰려왔네. 이 짐승 놈들은 진짜 답도 없다!”

방식도 방식이지만, 그 수가 만만치 않았다.

도합 10마리였다.

백효가 공유해 준 시야를 통해 10마리 영수의 면면을 확인하던 준혁이 흠칫 놀라며 황급히 외쳤다.

-사면오공(四面蜈蚣)이다! 제길! 린디웨, 당장 움직여! 다른 놈들은 일단 무시해!

-알았어!

저 멀리서 리쉬옌과 린디웨의 영력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유 길드장, 안에서 팀 짜요. 드래곤급이라고 생각하고 구성하세요!

-드, 드래곤급! 알았습니다!

준혁이 유민섭에게 생각을 전하는 사이, 청랑은 제가 알아서 방향을 잡고 달리고 있었다.

목표 지점은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다. 실내 체육관과 100여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주경기장 외벽 너머로 몸뚱이를 꼿꼿이 세운 거대한 지네가 보였다.

체절(體節), 즉 몸마디 한 칸이 1미터에 달했는데 그 체절이 모두 100여 개였다. 즉, 전체 몸길이가 1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지네다.

대가리 다음에 자리한 4개의 몸마디 배 쪽에 거대한 인간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각각 희로애락(喜怒哀樂)의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들.

그래서 사면오공이었다.

“뛰어!”

준혁의 외침과 동시에 청랑의 뒷발이 땅을 박찼다.

-저주스러운 인간들! 오늘 네놈들의 세상을 짓밟을 것이다!

각각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4개의 감정을 실은 목소리가 같은 말을 외쳤다.

절지에 박힌 4개의 거대한 얼굴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지랄!”

버럭 소리를 지른 준혁이 청랑의 등판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급격하게 허공으로 솟구쳤던 청랑 위에서 한 번 더 튀어 오르니, 가히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였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준혁의 무상곤이 사면오공의 대가리를 쳐 올렸다.

빠악-!

우악스러운 힘에 사면오공의 대가리가 붕 떠오르고, 그에 따라 몸뚱이가 허공으로 들썩였다.

콰르르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주경기장의 바닥이 뒤엎어졌다.

사면오공의 꼬리 쪽 몸마디에 달린 다리들이 땅을 파고들어 지면을 움켜쥐고 날려 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준혁의 진짜 목적은 대가리가 아닌 그 아래 몸마디에 박혀 있는 4개의 거대한 얼굴.

커다란 망치로 변한 무상곤을 수평으로 길게 휘둘러 가장 위에 있는 기쁜 얼굴, 희면(喜面)을 후려쳤다.

묵직한 소음이 터져 나오고 사면오공의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희면의 얼굴은 여전히 기쁘기 짝이 없다는 표정.

-크하하하하하!

되레 기쁨에 물든 광소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닥쳐!”

그때 유민섭의 생각이 준혁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준혁 씨, 이거 뭡니까? 사람들이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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