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52화 (5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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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흑태자#2-

뒷북 대책반이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때릴 뒷북도 없었다.

온전히 준혁의 독무대였다.

준혁이 휘두르는 롱 소드에 오크 1마리가 세로로 쪼개졌다.

게이트, 던전에 대한 정보 확인이 안 돼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 ‘영웅의 성지’에서 잡았던 보스 ‘크락크토’보다 훨씬 약한 놈들이었다.

던전 등급도 낮은 데다, 어쩐 일인지 2배로 강해지는 이상 현상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준혁의 활약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어린 자식들의 눈을 가린 채 쉴 새 없이 환호성을 내지를 정도로 화려했다.

말 그대로 준혁이 국민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준혁은 순식간에 4마리의 보스 오크를 쓰러트리고, 마지막 오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허공의 헬리 캠에 선명하게 영상이 담기도록 조금은 느리게 움직였다.

으득, 빠악!

목울대를 움켜쥐는 동시에 보스 오크의 배에 주먹을 내질렀다.

등을 뚫고 나올 듯 강력한 펀치 한 방에 보스 오크의 몸이 폴더 폰처럼 180도로 접혔다.

그런 보스 오크를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파앙-!

어찌나 격렬하게 내던졌는지, 놀이터라 바닥이 모래인데도 거센 반발력에 보스 오크의 몸뚱이가 3미터 가까이 튕겨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검정색의 롱 소드가 허공을 향해 새까만 무지개를 그려 냈다.

촤아악!

효율성 따위는 팔아먹은 화려함에만 중점을 둔 칼질이었지만, 형편없을 정도로 약한 보스 오크는 그대로 몸뚱이가 갈라졌다.

피분수가 뿜어지고, 잘게 분사된 핏방울에 허공이 한순간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검게 변하고 있는 게이트.

그때였다.

텅, 터터텅!

갑자기 주변에 떠 있던 헬리 캠들이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귓속에 끼우고 있던 이어폰 통신기에서 치이익! 하는 잡음이 울려 퍼졌다.

“통신 두절?”

유민섭이 깜짝 놀라 외쳤다.

그리고 준혁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이거 설마 그때 그?”

끝나 버린 게이트, 그리고 통신 두절 현상은 데자뷔처럼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 말에 유민섭도 같은 기억을 떠올리고는 급히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꺼낸 것은 던전 에너지 측정기.

삐삑!

측정기에서 짧은 비프음과 함께 패널의 숫자가 정신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건 그때 그거 맞죠?”

준혁의 물음에 유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무슨 일이야?”

심상찮은 분위기에 린디웨가 급히 질문을 던졌다.

대책반 헌터들도 바쁘게 준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게이트 다운을 제대로 막은 것 같은데, 측정기가 왜 요동치는 겁니까?”

그들로서는 처음 보는 상황이기에 당황하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이미 한 번 겪었던 유민섭은 침착했다.

“잠시만요.”

그 순간 준혁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시적으로 시스템의 기능을 회복하였습니다.]

역시 그날의 그 현상과 똑같았다.

“이게 뭔가요?”

“어?”

리쉬옌과 린디웨 역시 배면계 시스템이었기에 준혁과 똑같은 메시지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준혁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이 켜졌다.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재빨리 허리춤의 피리를 꺼내 길게 불었다.

‘영소적’이라는 이름의 이 피리는, 준혁이 자신과 계약한 환계의 환수들을 불러낼 때 쓰는 것이었다.

청랑을 불러낼 때도 이 피리를 불었었다.

곧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그 공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2마리였다.

“됐다!”

짙은 검정색 털을 가진 새끼 호랑이 1마리, 그리고 이제 겨우 날개를 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새하얀 깃털을 가진 새 1마리였다.

준혁이 빠르게 유민섭을 향해 외쳤다.

“길드장님, 지휘권!”

청랑이 등장했을 때 이미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유민섭이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2마리 소환수에게 빠르게 ‘지휘권’을 사용했다.

[‘피지휘자 1’이 지휘권을 인정하였습니다.]

[‘피지휘자 2’가 지휘권을 인정하였습니다.]

[‘피지휘자 1’의 콜사인을 정해 주십시오.]

[‘피지휘자 2’의 콜사인을 정해 주십시오.]

“이름이 뭡니까?”

“호랑이는 흑호, 수리부엉이는 백효.”

척하면 척이었다. 유민섭은 빠르게 흑호와 백효의 콜사인을 지정했고, 그로써 완벽하게 ‘지휘권’이 적용되었다.

저 멀리서는 강이찬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조금 전 갑작스러운 통신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 탓에 제 드론이 추락했네요. 어쩔 수 없이 제 액션 캠으로 화면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여러분도 분명 보셨죠? 흑태자가, 흑태자가 또 다른 소환수를 2마리나 불러냈습니다.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는데 하나는 호랑이처럼 생겼고, 나머지 하나는 새였던 거 같습니다. 이 소환수들에 대한 건 나중에 따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쩌엉-!

멀리서 들리는 강이찬의 외침에 잠시 신경을 돌린 사이, 뭔가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그대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검붉은 영력이 풀썩 새어 나왔다가 흩어졌다.

-그런데 지난번보다 진도가 빠른 거 같죠?

청랑을 불러냈을 당시에는 게이트의 저 상태가 지금보다 길었다.

-그런 거 같습니다.

-이번에는 리쉬옌이랑 린디웨도 있으니, 나중에 길드로 돌아가면 이야기 한번 해 보죠.

-그게 좋겠네요. 일단은 여기부터 정리합시다.

유민섭이 준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일행들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 부산물들은 따로 업체를 불러 처리를…….”

그때 누군가 유민섭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유 길드장님.”

말을 건 남자는 대책반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황 반장님?”

“네. 오랜만입니다.”

“그렇네요.”

유민섭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준혁을 향해 인사를 했다.

“흑태자 김지후 헌터군요. 던전 관리청 소속 긴급 대책반 반장 황도형입니다.”

“김지훕니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시죠. 오늘은 좀 바쁘네요.”

그렇게 말을 마친 황도형이 다시 유민섭을 향해 말했다.

“죄송하지만 절차상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네?”

유민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황도형은 대답을 하는 대신 방향을 틀어 허공에 떠 있는 헬리 캠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 장소는 던전 관리청 관할 구역입니다. 당연히 공개 전에는 촬영 금지니, 드론을 회수하십시오. 1분 안에 회수하지 않을 시, 입게 되는 손해에 대해 던전 관리청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헬리 캠들이 방향을 선회해 어디론가 날아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도형 뒤쪽의 대책반원들이 게이트가 있던 장소를 중심으로 넓게 폴리스라인 같은 저지선을 쳤다.

바깥쪽에서도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이 천으로 만든 울타리를 만들어 외부의 시선을 차단했다.

행동의 목적을 눈치챈 유민섭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황 반장님, 이거 설명을 먼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보시다시피 게이트 발생 지역 초기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눈이 있으니까 그건 압니다. 그런데 이걸 할 이유가 없는데 하니까 묻는 겁니다.”

게이트고 던전이고 이미 사라졌으니 가림 막과 저지선을 펼칠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새로운 게이트가 발견됐을 때 하고, 낙찰되면 해당 길드에 관리를 넘기면서 해제하는 조치였다.

새삼스레 이런 짓을 하니 유민섭으로서는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황도형이 유민섭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누구도 공략권을 갖고 있지 않은 게이트는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입니다. 이곳은 던전 관리청에서 입찰을 넣지 않은 게이트였죠. 그러니 여기 있던 게이트는 국가의 소유이고, 혼원 길드는 불법 공략을 한 셈이 되는 겁니다.”

유민섭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때마침 준혁이 생각을 전해 왔다.

-이거 뭡니까?

-황 반장 이 사람이 좀 꼬장꼬장합니다.

-꼬장꼬장?

-음… 뭐랄까, 원칙주의자? 융통성이 없어요. 딱 정해진 규칙대로 절차 밟고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라…….

-그래요?

-네. 그래서 길드장들이 되게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유민섭의 말에 황도형을 향해 시선을 돌린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느낌이 아닌데?’

그렇다고 법규를 들먹이며 말하는데 깽판을 치기도 애매했다. 길드장인 유민섭도 가만히 있는 터라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유민섭이 다시 생각을 전해 왔다.

-속이 좀 쓰리기는 한데,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 정도는 넘어가기로 하죠. 우리 상대로 완전히 입 닦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죠.

그렇게 대화를 마친 후 유민섭은 황도형을 보았다.

어쩔 수 없기는 해도 군말 없이 넘어가기는 딱히 좋은 기분이 아니었기에 한 마디 안 할 수는 없었다.

“이거 좀 기분이 구리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불법 공략 부분은 상황이 급했으니 참작해서 넘어갈 겁니다. 그러니 일단 자리를 좀 비워 주시죠.”

“일단 여기서는 물러서겠습니다만, 그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절차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유민섭이 방향을 틀어 길드원들을 데리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돌아오는 길에 준혁이 물었다.

“그런데 황도형 그 인간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국내에 S급은 모두 7명입니다. 그중 하나죠. 그리고 아직 기준을 못 정했지만 SS등급의 기준이 잡히면, 아마 거기에 포함될 거라고 봅니다.”

“강하다, 이거죠?”

“네. A급 근접 딜러 수준의 근력과 순발력을 가졌는데, 정작 그의 클래스는 마법사거든요.”

“흐음…….”

준혁이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그 사람 원칙주의자라면서요.”

“네. 절차를 뭐 그리 좋아하는지 원……. 진짜 피곤합니다.”

“아닌 거 같은데?”

“뭐가요?”

“원칙주의자.”

“네?”

유민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본 황도형은 항상 규칙과 절차에 목을 매는 사람이었다.

“원칙주의자고, 그 사람 말대로 해당 게이트가 국가의 소유였다면 말이죠.”

“네.”

“중간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물리고 자기들이 몬스터를 막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대로 우리는 공략권이 없으니까, 몬스터도 잡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거야 상황이 급박하니까…….”

“원칙! 그 사람 거기에 목을 매는 사람이라면서요. 원칙주의자는 다른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그 원칙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어?”

유민섭이 꽤 놀란 표정으로 눈을 치떴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원리원칙을 입에 달고, 약간은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니 자연스레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흠, 다음에 보면 자세히 살펴봐야겠네요.”

일단 지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 그럼 우리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죠.”

유민섭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시작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마침 일이 터져 준 덕분에 진행이 수월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겁니까? 기자회견?”

“아니요.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포럼을 열까 합니다.”

“하긴, 억측이 난무하는 것보다 사실 기반으로 발표하는 게 낫죠.”

“이제부터 바빠지겠네요.”

유민섭의 말에 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길드장님 문제죠. 저는 안 바빠요.”

“쳇!”

입을 삐쭉인 유민섭이 운전하는 기사를 재촉했고, 차는 빠르게 도로를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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