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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청랑의 일상#2-
소형화가 풀리는 동시에 억지로 바꿔 놓았던 털색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주인님, 작은 주인이 위험합니다!
일단 주인님께 먼저 연락을 했다.
갑자기 불쑥 나타난 게이트에서는 요란한 빛이 새어 나오며 광포한 기운이 몰아치고 있었다.
“꺄아아악!”
이제야 사태가 파악됐는지 유치원 안쪽에서 인간 암컷의 비명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괴, 괴물? 어떡해! 어떡해!”
인간 암컷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러 댄다.
어떡하긴 뭘 어떡하냐, 당장 어린 인간들부터 대피시켜라.
어른은 새끼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게 무리의 어른이 당연히 해야 할 책무다.
“으앙~”
어린 인간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 파랑이?”
소형화를 풀었는데도 나를 알아본 것 같은 작은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일단 대피하는 게…….
털썩!
무언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유치원 창 너머로 눈이 풀린 채 주저앉아 있는 인간 어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 선생님, 무슨……. 어머, 어머! 저건 뭐야?”
2층에서 다른 인간 어른이 내려와 이곳의 상황을 확인하고 놀란 외침을 터트렸다.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저 인간 어른도 그른 모양…….
삑, 삐이익!
이미 주저앉은 인간 어른처럼 똑같이 주저앉을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인간 어른이 무언가를 입에 물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울렸다.
뒤이어 또렷해진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이들, 대피 훈련이에요! 자, 연습했던 거 기억하죠? 줄 서서 침착하게!”
따르르르릉-!
유치원 안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따라 유치원 2층에서도 어른 인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이들, 줄 서세요! 대피 훈련 할 거예요. 2층은 미끄럼틀 타고 가는 거 알죠?”
그래. 저래야 한다. 저게 무리의 어른이 보여야 할 모습이다.
유치원은 문제가 없을 것 같으니, 이제 이 게이트에 집중할 때다.
빛이 살짝 어두워지는 듯하더니, 그림자 하나가 게이트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꾸워억!
일전에 게이트 돔이라는 곳에서 봤던 돼지처럼 생긴 놈이다.
난 앞발을 휘둘렀다.
퍽!
놈의 머리가 가볍게 으깨져 나갔다. 그런데 1마리가 아니다.
정신없이 앞발을 휘둘러 머리통을 박살 내고, 입을 벌려 목뼈를 부러트렸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놈들을 정신없이 죽여 없앴다.
그러는 중에도 틈틈이 작은 주인의 기운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젠장! 저 어른 인간 놈들은 뭐 하는 거야? 왜 아직 안 피한 거야?
그때, 지금까지와 조금 다르게 생긴 놈이 나왔다.
똑같이 돼지 대가리지만 덩치도 더 크고, 입고 있는 옷도 앞선 놈들보다 더 많다.
물론 걱정할 건 없다.
내가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 놈들을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콱, 퍼퍽!
꾸웩, 꿱!
돼지를 두드려 패니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당연한 일이다.
퍽, 퍼퍼퍽!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놈들이다.
꾸어어-!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젠장, 뭔 돼지 대가리가 이렇게 많아?
새어 나가는 놈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옆으로 빠져나가 내 뒤를 노리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다.
크허엉-!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기술을 발동했다.
[돌개바람]
몸속의 영력이 격렬하게 솟구치며 온몸에서 뿜어져 나갔다.
꾸웍?
주변의 돼지 대가리들이 당황한 돼지 소리를 냈고, 그 순간 영력으로 뭉친 날카로운 회오리바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씨이잉-!
꾸웨엑!
또다시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돌개바람’에 사방으로 퍼져 나간 회오리바람이 돼지 대가리들을 짓이겼다.
붉은 핏줄기와 으깨진 살점들이 눈을 어지럽히고, 달콤한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피의 자극에 몸속에서 기운이 끓어 넘친다.
망할 돼지 대가리들, 작은 주인 쪽으로는 한 발짝도 못 간다!
“옆에 친구 확인해요! 친구들 다 있죠?”
“네!”
“아저씨, 빨리 출발해요! 어서요!”
“대피소라고 했죠?”
“네! 제일 가까운 대피소요! 빨리요! 서둘러요!”
인간 암컷과 대화하는 목소리는 버스를 운전하는 인간 수컷의 것이다. 이제 곧 빠져나갈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단 작은 주인은 안전하다는 뜻이다.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싸워 볼까?
-덤벼라, 돼지 대가리들아!
-제기랄!
크하악!
돼지 대가리가 너무 많다.
점점 더 강한 돼지 대가리가 나오는 건 문제가 아니다. 아직은 손쉽게 끝장낼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옆으로 새는 놈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그리고 새어 나간 놈들이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주인님이 빠르게 다가오고는 있다. 하지만 튀어나오는 돼지 대가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주인님이 도착하기 전에 꽤 많은 놈들이 빠져나갈 것 같다.
이럴 때는 뱀이 최곤데, 지금 없으니 고려할 가치가 없다.
그런다면 방법은…….
젠장! 그것밖에 없겠군.
[무리 소환]
아우우우우-!
길고 긴 울부짖음이 영력을 머금은 채 공간을 때렸다.
우우우웅!
울리는 소리와 동시에 현계와 환계 사이의 통로가 열리고, 그 틈으로 나의 동족들이 튀어나왔다.
크윽!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체구가 작아졌다. 무리를 불러내기 위해서 성장을 통해 커진 기운을 완전히 소모해야 하니까.
환계로 통하는 문을 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큰 문제는 아니다. 나중에 다시 ‘강식’을 통해 성장할 수 있으니까.
-부르셨습니까, 족장!
아우우우-!
열린 통로를 통해 넘어온 30마리의 동족들이 빠르게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꾸웍?
돼지 대가리들이 깜짝 놀라 주춤하는 사이 소족장이 말했다.
-족장이여, 명을 내려 주십시오.
-돼지 대가리들을 죽여라!
-족장의 명을 받듭니다.
대답과 동시에 나의 동족들이 돼지 대가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직 덜 여문 놈들이지만, 돼지 대가리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훌쩍 뒤로 몸을 날려 무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흑풍은 무리를 이끌고 바깥쪽에 2진을 형성하라.
-중청은 무리와 함께 저 입구를 둘러싸라. 강한 놈들은 포위진의 바깥쪽으로 내보내라.
-혈라는 중청 무리의 바깥쪽에서 새어 나오는 놈들을 집중 공격한다.
-존명!
컹, 컹컹!
흑풍, 중청, 혈라는 자신을 포함한 10마리의 작은 무리를 이끄는 소족장들이다.
환계에는 더 많은 작은 무리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를 소환하면 힘을 너무 많이 소진해야 하기에 이 정도만 불러낸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주인님이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우리 늑대들은 원래 무리 사냥을 한다. 그런 만큼 무리를 이루었을 때 훨씬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돼지 대가리들을 차근차근 정리할 때였다.
깨앵-!
게이트를 포위하고 있던 중청의 무리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쿠웍! 잡스러운 개새끼들이 우리의 길을 막느냐! 쿠워어!”
돼지 대가리 하나가 다른 놈들보다 훨씬 많은 옷을 걸치고 말까지 하고 있었다.
-이놈이 감히!
버럭 소리를 지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크하하! 크워어! 건방진 개새끼, 죽여 주마! 쿠워어-!”
괴상하게 웃던 돼지 대가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쿠워억!
놈의 날붙이에 맺힌 하얀 섬광이 갑자기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을 마주보며 재빨리 앞발을 휘둘렀다.
[바람칼]
빠르게 앞발을 내질렀다.
휘리릭!
영력을 머금은 다섯 줄기의 바람이 광포하게 휘몰아쳤다.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유치원 놀이터의 모래들이 난폭하게 튀어 오른다.
한층 더 자세를 낮춘 채 놈의 다리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그리고 내 앞발의 궤적을 가로막는 돼지 대가리의 날붙이.
칵, 카카카칵!
세찬 바람과 하얀 섬광이 휘몰아쳤다. 순식간에 10여 합을 주고받았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일격을 주고받는 동시에 각자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쿠워억! 개새끼 주제에 나를 화나게 하는구나!”
놈이 기술을 터트린다.
어깨를 한껏 뒤로 젖히며 큰 한 방을 준비한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저 돼지 대가리는 멍청하다.
나는 순식간에 땅을 박차며 거리를 좁혔다.
“꾸워… 헙!”
돼지 대가리가 기겁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싸움 중 당황하는 것은 패배를 자처하는 꼴이다.
돼지 대가리가 황급히 기술을 취소하려고 든다.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짓이다. 그리고 나는 적의 빈틈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뒷발로 땅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까각!
내 주둥이에 물린 것은 놈의 날붙이. 그대로 고개를 비틀었다.
까앙!
날붙이가 부러지는 쇳소리가 울렸다. 풀썩 피어오른 쇠 냄새에 코끝이 아릿하다.
돼지 대가리가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날카롭게 아래로 파고들며 입에 문 날붙이를 휘둘렀다.
이빨을 통해 퍼진 나의 영력이 날붙이에 맺히고.
서걱!
“꾸웨에엑!”
잘린 발목이 저만치 날아가고, 예의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균형을 잃은 돼지 대가리의 몸뚱이가 기울어진다.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땅을 박차며 또 한 번 입에 문 날붙이를 휘둘렀다.
츠커컥!
놈의 갑주와 어깨가 동시에 끊어져 나간다.
“크아아악!”
비명이 높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적에게 베풀 자비 따위는 없다.
도약과 동시에 놈의 목을 향해 또 한 번 날붙이를 휘둘렀다.
츠컥!
돼지 멱따는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이미 목이 잘려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주인님이 도착했다.
주인님이 내 옆으로 내려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잘했어. 무리 소환까지 하는 바람에 힘들었겠구나, 청랑… 아니, 파랑이.”
-주, 주인님마저!
끼이잉.
서럽다.
“일단 지유한테 가 있어.”
-예!
왕!
힘차게 대답하고 소형화하는 동시에 불러냈던 무리들을 환계로 되돌려 보냈다.
-다시 불러 주십시오, 족장님!
그리고 작은 주인의 위치를 가늠했다.
아까 ‘대피소’라는 곳으로 간다는 것 같았는데?
길거리에는 요란하게 도망치는 인간들로 가득했다. 인간들의 발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빠르게 작은 주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대피소라는 곳에 도착하니 어른 인간들 뒤에 모여 있는 작은 주인과 어린 인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다른 인간 암컷이 어린 인간들을 감싸 안은 채 다독이고 있었다.
“괜찮아. 울지 마. 응? 이제 괜찮아. 엄마, 아빠한테 연락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자. 알았지?”
저 인간 암컷도 유치원 무리의 어른 중 하나다. 주저앉아 ‘어떡해!’만 외쳐 대던 인간 어른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래, 무리의 어른이라면 응당 저래야 한다.
“파랑아~ 걱정했잖아! 나 지켜 주려고 싸운 거 맞지?”
작은 주인이 냉큼 달려와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얼굴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있고,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다. 그런데도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난 혀를 내밀어 작은 주인의 눈물 자국을 핥아 주었다.
“이히히! 간지러워~”
그렇게 말하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작은 주인이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시청자 형님들, 지금 저는 종로의 대피소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오신 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종로의 한 유치원 놀이터에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당연히 거기 들렀다가 지금은 대피소에 나와 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엄청난 걸 보고 말았습니다.”
시끄러운 놈이 등장했다.
쉴 새 없이 떠들면서도 우리 주인님만 보면 두 눈을 번쩍번쩍 빛내는 기분 나쁜 놈이다.
“게이트, 그리고 갑작스러운 게이트 다운에서 어린아이들을 지킨 게 누군지 아십니까? 궁금하시죠? 궁금하면 500원! 아이구, 후원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청랑! 우리 흑태자 님의 소환수 청랑이 단신으로 게이트 다운을 막았다는 거 아닙니까! 대단하죠?”
정말 시끄러운 놈이다. 저 주둥이 좀 닫게 했으면 좋겠다.
“네 주인 거기 갔었지? 그래서 온 거지? 난 여기서 사람들 지키라고 하더라고.”
어? 얼마 전에 주인님의 부하가 된 큰 암컷이다. 옆에는 만날 같이 다니는 작은 암컷도 있다.
그런데…….
저 덩치 큰 암컷은 좀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수상한 것이라고 부르고 있다.
뭐가 이상하냐고?
주인님도 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데, 저 수상한 것은 내 말을 완전히 알아듣는다.
그래서 그 후로 저 수상한 것에게는 말을 안 걸고 있다.
앞으로 옆에 바싹 붙어서 감시해야겠다.
당연한 일이지만 주인님은 내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