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49화 (4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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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청랑의 일상#1-

“청랑, 이 개새끼야!”

갑작스러운 인간의 외침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인간, 그러니까 주인님의 1번 부하이며 술 셔틀인 놈이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언젠가 저 인간이 술을 따라 주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에휴! 내가 무슨 네 술 셔틀이냐?’

술 셔틀.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1번 부하를 술 셔틀이라 부른다.

그나저나 저 술 셔틀이 난리는 치는 건 아무래도 술을 좀 마셨다고 저러는 거 같다.

일곱 번의 밤낮이 지나도 안 들어오기에 좀 마셨기로서니 저렇게 흥분하면 안 되는 거다.

확실히 쪼잔한 인간이다.

게다가 ‘개’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환계의 지배 계층 중에서도 수위권에 드는 푸른 늑대족이다.

-말조심하지 못할까!

컹, 컹컹!

항의의 뜻을 담아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시끄러워!”

저 건방진 술 셔틀은 되레 화를 낸다.

쪼잔한 데다 건방지기까지 한 술 셔틀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개미 눈곱만큼 찔끔 부어 주고 얼마나 생색을 냈는지 모른다.

흥분한 술 셔틀이 바지춤에서 납작하고 네모난 뭔가를 꺼내더니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처음에는 저 납작한 판때기가 낯설고 이상했는데, 이제는 저게 뭔지 안다. 이름도 알고 있다.

휴대폰이라는 물건이다.

“준혁 씨, 당장 이 개새끼 데리고 가요!”

(갑자기 뭔 소리예요? 그리고 개가 아니라 늑대라니까?)

휴대폰에서 새어 나온 소리는 분명 주인님의 목소리였다.

-주인님, 언제 오세요?

왕, 와왕!

반가워서 물어봤지만, 주인님에게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전해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건방진 술 셔틀이 주인님께 화를 냈다.

“개새끼든 늑대 새끼든 내 알 바 아니고, 당장 데려가요!”

(도대체 왜 그렇게 화를 내요?)

“저, 저 개새끼가… 저놈이… 이번에 산 내 빈티지를 전부 마셨다고요!”

(헐. 난 또 뭐라고……. 까짓것 내가 사 줄게요. 청랑이 좀 마실 수도 있지.)

“이거 돈 있어도 못 구한다고요. 마지막 1병이었다고! 돌아가시겠네, 진짜.”

(일주일이나 집을 비우니까 그렇죠. 아니, 애초에 청랑이 술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그 방에 데려다 놓은 겁니까?)

“개 주제에 술병을 딸 줄 내가 알았습니까? 아무튼 당장 데리고 가요. 당장!”

(하아! 알았습니다. 일단 그리로 갈게요. 기다려요.)

술 셔틀이 휴대폰을 다시 바지춤에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본다.

아니, 노려보는 걸로 끝이 아니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불끈 주먹을 쥐고 내 머리를 때렸다.

물론 아프지는 않다.

저 솜방망이 같은 주먹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나.

다만, 기분은 좀 상한다.

술 셔틀 주제에…….

그래도 내가 윗전이니 아량을 베풀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제 주먹과 나를 번갈아 보던 술 셔틀이 제 분에 못 이겨 다시 한 번 고함을 질러 댔다.

“아오, 진짜 이 개자식!”

개라니, 나는 어디까지나 위대한 푸른 늑대족이다.

에휴! 말해 뭐하겠나? 그냥 잠이나 한숨 자야겠다.

저런 놈 일일이 상대하면 나만 피곤해진다.

“너 이 자식, 설마 이래 놓고 퍼질러 자겠다고?”

술 셔틀이 그래도 눈치는 있는 모양이다.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아서 그냥 앞발을 포개고 머리를 얹었다.

저놈의 투정을 받아 주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다. 이럴 때는 그냥 자는 게 최고다.

잠결에 친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번쩍 눈을 뜨고 기운의 정체를 가늠해 본다.

주인님이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이 기운은 분명 주인님의 기운이었다.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왕, 왕왕!

“에휴~”

그새를 못 이기고 술 셔틀이 긴 한숨을 쉬며 나를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뭔 잘못이냐? 널 여기에 둔 내 잘못이지.”

술 셔틀의 뜬금없는 고백.

자식, 그래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놈이다.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

주인님이었다.

술 셔틀이 문을 열어 주고, 안으로 들어온 주인님이 오피스텔 내부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하긴 하네요.”

“일단 들어와요.”

-전혀 심하지 않습니다. 술 셔틀이 아직 천지 분간이 안 돼서 그래요, 주인님.

컹, 컹컹!

술 셔틀이 한참 동안 어지러운 집 안을 살피더니, 그나마 술이 남아 있는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잔할래요?”

“좋죠.”

주인님과 술 셔틀이 술을 따르고 한 차례 잔을 기울였다.

나도 좀 땡기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은 참기로 했다.

“후우!”

짧게 숨을 뱉은 술 셔틀이 피식 웃으며 주인님에게 말했다.

“아까는 좀 흥분했어요. 사실 뭐, 쟤를 여기에 둔 내 잘못이 크긴 합니다.”

“그래도 집 안 꼴을 보니 화가 날 만하긴 하네요. 그래서 그 문제의 술은?”

주인님의 말에 술 셔틀이 억울한 표정으로 하소연을 했다.

“저 망할 술랑 놈이 진짜 술맛은 기가 막히게 안다니까요? 비싼 술은 전부 다 마시고, 시중에서 살 수 있는 건 반도 안 마셨어.”

“크흐흐! 그건 진짜 내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배면계에서 몇 년이나 같이 있었는데 그런 건 전혀 몰랐거든요.”

“거긴 술이 없었다면서요?”

“뭐, 그렇긴 하죠. 따로 식사가 필요한 놈도 아니었고.”

“크흐흐! 밥 얘기 하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그건 진짜 편해요. 배변 패드 안 깔아 줘도 되잖아. 치울 필요도 없고.”

배변 패드? 그건 또 뭐냐?

주인님이 말했다.

“일단 청랑이는 내가 데리고 갈게요.”

-오, 저도 좋아요.

왕왕!

그런데 술 셔틀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아까는 내가 순간적으로 좀 흥분해서 그런 거죠. 데리고 있으면 적적하지도 않고, 나쁘지 않아요. 아까 한 말은 일단 번복하는 걸로…….”

-1번 부하 주제에 주인님의 결정에 토를 달겠다는 거냐, 이 건방진 놈아!

크르르르!

이번에도 술 셔틀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와아! 청랑 이노무 시키, 지금까지 술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이렇게 나오기냐?”

-그건 네놈의 당연한 의무다.

크르르르!

“허어, 이 의리 없는 댕댕이 시키 같으니라고.”

이제 저 ‘댕댕이’가 무슨 말인지 나도 잘 안다.

개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개 아니다. 푸른 늑대다.

주인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청랑도 저렇게 나오는데, 그냥 제가 데리고 갈게요.”

역시 주인님이 최고다.

“뭐, 어쩔 수 없죠.”

술 셔틀도 심하게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주인님!

왕, 와왕!

***

“강아지, 강아지!”

개라니, 위대한 푸른 늑대족이다.

인간 세계는 버릇없고 보는 눈도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지금 나를 보고 달려오는 작은 인간 암컷도 마찬가지다.

슬쩍 주인님을 확인했다.

주인님 옆에는 또 다른 인간 수컷이 서 있다.

몇 번 본 적 있는 인간 수컷이다.

저 인간 수컷은 주인님의 핏줄이었다.

냄새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걸어오는 작은 암컷은 주인님의 핏줄의 핏줄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작은 암컷이 와락 달려들더니 내 목을 껴안는다.

“귀여워!”

허허, 귀엽다니! 푸른 늑대는 전투 종족으로서, 환계에서도…….

“부드러워!”

작은 암컷이 이번에는 등에 얼굴을 묻고 마구 비벼 댔다.

떨어져라, 이것아!

“삼촌!”

작은 암컷이 주인님을 불렀다.

“지유, 왜?”

“강아지 나 줘!”

건방지구나. 나는 이미 주인님과 영혼의 맹약으로 이어져 있…….

“그래. 지유 해.”

무, 무슨?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대신에 가끔 삼촌이랑 놀러 갈 때는 보내 주기다. 알았지?”

“응, 알았어!”

-주인님, 이건 아니잖아요!

끼잉-!

항변해 보았지만, 주인님은 오히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사해라, 청랑. 여기는 지유라고, 내 조카. 잘 보살펴 줘라. 알았냐?”

하아, 주인님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앞으로 작은 주인으로 모시기로 하자.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청랑이다.

나 대신 주인님이 작은 주인에게 말해 주었다.

“청랑.”

“쩡낭? 청낭?”

“청랑.”

“어려워! 파랑이 할래, 파랑이!”

건방지구나. 나는 이미 ‘청랑’이라는, 주인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그래. 그러면 파랑이 하자.”

서럽다.

“파랑아, 나는 김지유야. 잘 부탁해!”

작은 주인이 또다시 내 등에 얼굴을 비볐다.

흠, 이건 나쁘지 않군.

***

“엄마~ 파랑이가 밥 안 먹어!”

이렇게 불쾌할 수가 없다.

사료라니. 더군다나 이건 하등한 개가 먹는 사료가 아닌가?

위대한 푸른 늑대에게 겨우 개 따위가 먹는 사료를!

아무리 작은 주인이라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나는 음식이 필요 없다.

환계의 종족은 세상으로부터 기운을 받아 존재를 유지한다.

음식 따위는 필요 없으니 차라리 술을 내놔…….

“으앙~ 파랑이 배고프면 안 돼!”

작은 주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이럴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다. 먹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일단 주둥이를 밀어 넣었다.

아작, 아작!

아, 아니! 이럴 수가!

이게 이렇게 맛있는 것인가?

“엄마~ 청랑이는 똥 안 싸?”

작은 주인이, 작은 주인의 핏줄로 이어진 큰 인간 암컷에게 묻는다.

작은 주인은 지금 구석에 놓인 하얀 천 쪼가리 앞에 앉아 있다.

배변 패드라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하등한 개가 배변을 보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죽어도 못한다.

하기 싫은 게 아니라 그냥 불가능하다.

나는 환계의 환수, 이슬만 먹고도 살 수 있는 게 환수다.

똥 따위를 쌀 리가 있겠는가?

애초에 나 같은 환수를 일반적인 짐승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구조가 다르다.

먹는 건 가능하지만 배변만큼은 불가능하다.

입속으로 들어간 음식을 분해해 영력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난감한 일들이 있었다.

밤이 되면 작은 주인의 품에 안겨 침대에 누워야 했다.

그거 진짜 힘들다.

작은 주인이 나를 안고 있는데, 내가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작은 주인은 죽는다.

그러니 돌이라도 된 것처럼 굳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작은 주인이 나를 훈련시키겠다며 공을 던져 대는 일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숨만 나오는 짓을 수없이 반복하자니, 스스로가 한심해 환계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꼭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작은 주인이 환하게 웃으면 나도 기분이 좋다.

주인님은 저렇게 밝고 환하게, 티 없이 웃은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더 그렇다.

언젠가 주인님도 한 번은 저렇게 웃어 주면 좋겠다.

그리고 또 있다.

작은 주인이 다니는 유치원이라는 곳의 지붕 위에서, 지금처럼 햇빛을 받으면서 누워 있는 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나는 전투를 사랑하는 전투 종족 푸른 늑대족이지만, 이렇게 누리는 작은 평화로움 또한 사랑한다.

다른 인간들의 눈에 띄는 탓에 털 색깔을 하얗게 바꾸는 게 번거롭기는 하지만, 이 시간을 생각하면 작은 수고일 뿐이다.

음?

그런데 뭐냐?

이 기운은?

영력과는 다른 성질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던전, 게이트다!

유치원 앞 놀이터 방향이다.

급히 지붕을 가로질러 놀이터로 내려갔다.

젠장!

이건 그냥 게이트가 아니다. 주인님과 함께 갔던 그곳, 게이트 돔이라 불리는 곳의 기운이 느껴졌다.

일단 소형화를 풀었다.

-모두 대피하라!

아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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