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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린디웨, 술석#1-
<혼원 길드 유민섭 길드장 ‘게이트 돔의 몬스터들이 2배로 강해졌다.’>
<게이트 돔의 이상 현상, 재앙의 전조인가?>
<세계의 길드, 게이트 돔 이상 현상에 검증 끝. ‘유민섭 헌터의 말은 사실이다.’>
<게이트 돔의 외벽은 절대 깨지지 않는 장벽인가?>
<던전 속 몬스터에게는 이상 징후 나타나지 않아.>
유민섭은 게이트 돔 안의 몬스터가 2배 강해졌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당연히 세상은 난리가 났다.
세계 유수의 길드들이 자국에 있는 게이트 돔에 들어가 확인 작업에 나섰다.
게이트 돔에 들어갔다고 해서 안에 있는 몬스터를 모두 죽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검증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앞다투어 유민섭의 발표에 신빙성을 보탰다.
연일 그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던전, 혹은 마나 전문가들이 나서서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기사마다 무수히 많은 댓글이 달리며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러다 몬스터들이 게이트 돔 외벽 뚫고 나오는 거 아니냐?>
<우리 교수님이 그러던데 돔 외벽은 절대 안 깨진댔어요.>
└교수 이미 짐 싸고 있을 듯.
└아니거든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흑태자 님 계시니 안전한 거 아니냐?>
└그런 거임?
└혼원 길드가 국내에 있는 게이트 돔부터 싹 치운다고 발표했음.
└와, 그럼 발 닦고 자도 됨?
<국내에 남은 게이트 돔 몇 개냐?>
└3개?
└ㄴㄴㄴ 2개임.
└누가 맞냐?
<2개가 맞음. 제주도 1, 강릉 1>
<혼원 길드 빨리 거기까지 정리하라 그래라.>
└니가 할 거 아니면 닥쳐라.
그나마 한국은 혼원 길드가 게이트 돔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동요가 덜했다.
외국 같은 경우는 시민들이 극도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한국으로의 이민 신청이 부쩍 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그런 걸 왜 발표해서 사람들 불안하게 하냐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발표한 데는 유민섭의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바로 두 시스템이 엉키는 현상 때문이었다.
나중에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받을 충격의 강도를 상대적으로 적게 느끼게 만들기 위해 미리 자극을 주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혼원 길드는 ‘신갈 JC 게이트 돔’ 진압 후 건물에 불이 꺼진 상태였다.
유민섭이, 길드의 핵심인 공략팀은 물론 일반 사무 인력이나 분석팀까지 회사 전체에 일주일의 휴가를 내린 것이었다.
단, 서울을 떠나지 않는 조건이 걸렸다.
뭔가 일이 생기면 바로 길드에 모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맞이한 휴가 마지막 날, 준혁은 오랜만에 형네 가족들과 함께 놀이공원을 찾았다.
“어? 김준혁 선수?”
“와, 팬입니다. 많이 힘 드시다던데 이제는 괜찮아요?”
“사인해 줘요!”
“혹시 복귀할 생각은 없나요?”
은퇴했는데도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국민 타자의 계보를 이었던 덕분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형님네 가족들이랑 같이 온 거라… 다음에 해 드리겠습니다.”
현역 시절에 팬서비스가 훌륭했던 준혁이었지만, 적어도 가족들과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모두 거절했다.
“꺄하! 삼촌, 귀여워!”
준혁이 얼굴에 쓴 아기 사자 가면을 보며 지유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까르르 웃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예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이었다.
매구탈을 이용하면 다른 얼굴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조카가 그것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삼촌~ 저거 타러 가자. 응?”
지유가 준혁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이것저것 졸라댔다.
준혁은 지유에게 집에 오면 잘 놀아 주던 삼촌이기는 했다. 그러나 함께 놀이공원에 온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유독 어리광을 부렸다.
물론 조카를 끔찍하게 아끼는 준혁은 그 많은 요구를 단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주었다.
김준혁과 이세연 부부도 오랜만에 나오는 가족 나들이라 그런지 환하게 웃으며 가족끼리의 시간을 즐겼다.
“나는 지유 데리고 퍼레이드 보고 올게. 둘 다 오전에 고생했으니 좀 쉬어요.”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이세연이 지유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싫어~ 삼촌도 같이 가.”
지유가 제 엄마에게 안긴 채 준혁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안 돼, 지유야. 삼촌은 조금 더 쉬고 싶대. 엄마랑 둘이 가자. 응?”
준혁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으나, 이세연의 손사래에 급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지유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따가 삼촌이랑 또 놀자. 응?”
“알았어!”
이세연이 지유를 안고 사라진 후, 두 형제는 느긋하게 벤치에 등을 기댔다.
“휴가도 오늘이 마지막이지?”
“그렇지.”
“유 길드장 발표 때문에 세상이 난린데, 너네 길드는 어쩔 거야?”
“요청이 마구 밀려들고는 있는데… 일단은 국내에 있는 것들부터 처리한 후에 생각하려고.”
준혁의 말에 김준석이 넌지시 물었다.
“그럼 한국은 안전한 거냐?”
“안전?”
“시스템 말이야.”
김준석은 준혁과 함께 던전에 들어갔었고, 그 당시 이상한 시스템 메시지를 보았기에 그 후의 일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준혁이 김준석에게는 모두 설명했었기 때문이다.
“흐음…….”
준혁이 깊은 숨소리를 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저 멀리서 지유가 이쪽을 돌아보며 새삼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마구 흔들었다.
준혁도 그런 조카를 향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는 나도 알 수가 없어.”
린디웨가 문제의 구슬을 조사하고 있었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휴가 기간에도 회사 숙소에 틀어박혀 그것만 들여다보는데도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휴가 직전에 유민섭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 보았지만, 추측만 난무할 뿐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고…….”
단서가 너무 부족한 탓이었다.
잠시 말끝을 흐린 준혁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떤 일이 생기든 형이랑, 형수, 지유는 내가 지켜.”
준혁에게는 세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조금도 아쉬울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고생 많이 했던 형과 형수에게 풍족한 일상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자신과 형은 어린 시절에 잃었던 가족의 따스함을 지유는 만끽하며 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만약 막지 못하고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그 속에서 가족만큼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준혁이 다시 한 번 단단한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했다.
“내가 꼭 지킬 거야.”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졌다고 생각했는지 김준석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쭈, 이놈 봐라? 이 형 무시하냐? 인마, 내가 너 오줌 싼 이불 빨면서 키웠다. 어디 형을 제치고 지키니 마니 하면서 분위기를 잡아, 건방지게?”
너스레를 떠는 김준석의 모습에 준혁이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 그래. 형도 있지.”
등급만으로 따지면 김준석은 C등급밖에 안 되는 약한 헌터였다.
하지만 어렸던 준혁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보호자였다.
그리고 여전히 준혁의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다.
준혁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김준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이 자식이 어디서 형한테 그런 느끼한 눈빛을 보내? 닭살 돋아서 안 되겠다. 잠깐 기다려.”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향한 김준석은 돌아오면서 양손에 캔 맥주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덥다. 시원하게 한 캔 해라.”
“좋지.”
두 형제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나란히 차가운 맥주를 목으로 넘겼다.
***
휴가가 끝이 났다.
그리고 출근과 동시에 유민섭이 길드의 공략팀을 모두 회의실에 모았다.
“휴가는 잘 보냈습니까?”
질문을 던지는 유민섭의 표정이 무거웠기에 다들 목소리는 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 모인 공략팀 전원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대외비입니다.”
회의실 분위기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일단 지난 게이트 돔 진압 당시에 배면계라는 이야기는 들었을 겁니다.”
유민섭이 슬쩍 시선을 옮겨 준혁과 눈을 마주쳤다.
“그 배면계부터 설명하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일단 배면계라는 것은…….”
유민섭은 준혁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요약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꺼낸 이야기는 시스템의 문제였다.
원래는 서로를 더 깊이 신뢰할 수 있게 되면 말할 예정이었지만, 던전에서 굉황을 만나는 바람에 그것을 앞당겨야 했다.
신뢰가 깊으면 좋겠지만 지금 이야기해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일단 유민섭 자신과 준혁, 린디웨, 리쉬옌은 원래부터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최유나는 입이 무겁고 다른 이들과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유민섭이 최유나를 깊이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장민호는 진저리칠 정도로 준혁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유민섭이 차분하게 모든 설명을 끝냈을 때였다.
“그게 전부 사실입니까?”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장민호였다.
최유나는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무뚝뚝한 그 성격 때문인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입니다.”
“허, 내가 지금 어디에 엮여 있는 거야?”
그 발언에 모두의 날카로운 시선이 장민호에게 꽂혔다.
흠칫 놀란 장민호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우리 흑태자 님 옆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하겠네요.”
신속한 태세 전환이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강자에게 붙어 있는 게 그나마 안전한 길이었다.
하지만 팀원들의 눈길에는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었다.
“우와! 내가 돈을 좀 밝혀서 그렇지, 이런 이야기까지 듣고 엉뚱한 짓 할 정도로 막장은 아니거든요?”
조금은 가벼운 말투지만, 진심이 녹아든 말에 모두들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혁이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다들 걱정할 거 없습니다. 민호가 내 말이라면 껌뻑 죽거든요. 그렇지, 민호야?”
“아하하… 맞습니다. 내가 우리 흑태자 형님을 너무 사랑하죠.”
“남자의 사랑은 거부… 아니, 그냥 죽인다.”
“넵!”
농담처럼 진담을 주고받으면서 딱딱했던 분위기가 꽤 편안하게 변했다.
유민섭이 장민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최유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유나 헌터는 어때?”
“알겠습니다.”
무뚝뚝한 대답이었지만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유민섭이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자, 그럼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말을 마친 유민섭이 린디웨를 보았다.
시선을 받은 린디웨가 품에서 그 문제의 구슬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게 뭔지 이제 파악이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