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45화 (4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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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예상 밖의 등장#2-

[그래비티 컨트롤(Gravity Control)]

준혁에게 내던져진 유민섭이 추락하던 중에 펼친 스킬이었다.

[그래비티 컨트롤]

하나의 대상에게 가해지는 중력을 조절할 수 있다.

기준 중력의 1,000퍼센트에서 0퍼센트까지 조절할 수 있다.

지금 유민섭은 자신에게 0퍼센트의 중력을 적용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무중력 상태.

그렇게 중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공기의 저항력을 이용해 천천히 속도를 줄여 바닥에 착지했다.

“굉황(轟荒)!”

-오랜만이군, 엽사 김준혁. 아니, 도살자 김준혁!

유민섭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꽤 거리가 있는데도 저 멀리서 나누는 대화가 명확하게 들렸다.

‘굉황? 도살자? 둘이 아는 사이야? 그런데 이름이 굉황이라고?’

던전 시스템에 나오는 네임드의 이름은 모두가 인도유럽어족의 느낌이었다. 즉, 영어나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의 뉘앙스가 강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자어 이름이 나왔다.

‘배면계? 배면계의 네임드?’

거기까지 생각한 유민섭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배면계의 네임드가 던전에 등장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 가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시스템이 진짜 엉키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굉황이라는 이름의 네임드가 준혁을 칭한 별명을 떠올렸다.

‘도살자?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딱이네.’

사전적인 의미는 고기를 위해 짐승을 잡는 사람을 뜻한다.

도축업자와 같은 뜻인데, 드래곤의 시체를 기가 막히게 해체하던 준혁의 모습을 생각하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별명이 없다 싶었다.

‘그나저나 거리를 좀 더 벌려야겠다.’

아주 무시무시한 일전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에 유민섭은 황급히 발을 옮겼다.

“일단 맞자!”

어마어마한 속도로 낙하하는 준혁의 손에 거대한 창 1자루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무상곤의 변형된 형태.

-어림없다!

굉황의 몸을 감싸고 있던 회색 안개가 한층 짙어지며 한곳에 뭉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대한 하나의 방패로 변했다.

두우우웅-!

무시무시한 운동에너지에 더해 영력까지 잔뜩 맺힌 그 충돌이 무색하게 울려 퍼진 소음은 지극히 낮았다.

둥, 두두둥!

영력과 영력의 충돌.

최초의 격돌 직후, 검은색과 회색의 두 영력이 허공에서 수십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준혁과 굉황 둘 다 별다른 이득은 보지 못한 채 거리를 벌렸다.

“망할 뱀 새끼, 힘을 다 못 쓰는구나.”

굉황이 원래의 힘을 쓸 수 있었다면 이런 공방 자체가 불가능했다.

-뱀……. 크흐, 오랜만에 듣는군.

배면계에 있던 준혁은 영물, 혹은 신수들을 그런 식으로 불렀다.

용과 비슷한 존재들은 ‘뱀 새끼’, 호랑이와 비슷한 존재들은 ‘고양이 새끼’ 같은 식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특히나 원한이 깊은 존재가 있었는데, 지금 준혁의 눈앞에 나타난 굉황이었다.

준혁의 스승, 아니 배면계에서는 아버지와 다름없던 황창훈을 죽인 존재가 바로 굉황이었기 때문이다.

준혁은 왼손으로 허리춤에 걸어 놓았던 포승줄 들어 올렸다.

포승줄은 마치 자유의지가 있기라도 하듯 스스로 매듭을 풀고 준혁의 왼손과 팔뚝에 촘촘하게 감겼다.

[금문묵룡삭(金文墨龍索)]

켈카두스를 상대할 때 잠깐 쓸지 말지 고민했던 그것이었다.

묵색의 동아줄에 금색의 무늬가 섞인, 준혁의 새로운 아이템이었다.

이 역시 카이르무스의 사체에서 뽑아낸 가죽과 힘줄,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 만든 물건이었다.

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과거의 원한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벌써 봉인이 풀릴 때가 됐나?”

-두려운가?

그리고 지금 그중 하나였던 굉황이 봉인을 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긴, 린디웨가 나온 게 얼마 안 됐지.’

린디웨는 배면계에서 신수들을 봉인하지 못하고 귀환했다고 했다.

“크큭! 너도 다 됐네?”

-무슨 헛소리냐?

“허구한 날 신이니 위대하니 하던 새끼가 귀신 놀이나 하고 있냐? 아, 귀신도 신으로 끝나니 신은 신인가?”

-귀신?

“엉뚱한 드래곤 몸뚱이에 빙의한 거면 귀신 놀이지, 이 새꺄!”

-이놈!

굉황이 크게 격분하며 소리를 지르는 순간 준혁의 모습이 사라졌다.

쿠르르릉!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굉황 주변의 회색 안개가 산 전체를 뒤덮었다.

꽈과과광!

산 곳곳에서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혔다. 흙과 나무, 바위들이 파편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폭발 중 한 곳에서, 새까만 영력을 온몸에 두른 준혁이 솟구쳤다.

그리고 굉황은 이미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에 떠 있었다.

-잡았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굉황의 영력이 거대한 주먹으로 변해 준혁을 후려쳤다.

두우우웅-!

이번에도 낮고 둔탁한 소음이 사방으로 퍼졌다. 영력과 영력이 충돌할 때 생기는 특유의 소음이었다.

연달아 날아드는 10여 번의 주먹질을 모두 막아 낸 준혁이 왼손을 휘둘렀다.

휘리릭!

왼손과 팔뚝에 감겨 있던 금문묵룡삭이 제 스스로 풀려 나가며 1마리 뱀처럼 날렵하게 허공을 날았다.

끼이이익!

굉황의 목에 감긴 금문묵룡삭이 갑자기 길이를 줄였다. 격한 탄성에 몸을 실은 준혁이 튕기듯 굉황을 향해 날아갔다.

자욱하게 깔린 굉황의 영력에서 소용돌이 같은 회색의 기둥 수십 개가 솟구쳐 올랐다.

소용돌이를 품은 수십 개의 영력 기둥이 동시에 준혁을 향해 들이닥쳤다.

슉, 슈우욱!

일부는 급격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

콰쾅, 둥-!

일부는 묵린갑의 크기를 키워 막았고, 나머지는 무상곤을 휘둘러 터트렸다.

그리고 영력 기둥의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갔을 때, 준혁은 굉황의 목덜미에 붙어 있었다.

“크흐흐, 역시 귀신 놀이였구나.”

-뭐?

“빙의해서 쓰는 게 영력뿐이잖아.”

이미 굉황과 한 번 싸워 봉인까지 했던 준혁이었다.

당시 굉황의 무서움은 이런 영력을 이용한 공격 따위가 아니었다. 놈의 진짜 무서움은 거대한 육체를 이용한 물리적인 공격과 재앙이라고까지 불렸던 자연의 왜곡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모두 접어 두고 영력만 쓰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크흐흐! 이 쓸모없는 몸뚱이가 문제로군.

굉황은 카이르무스가 들었다면 억울해서 잠도 못 잤을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이 몸뚱이에도 꽤 괜찮은 게 있더군.

“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준혁은 빠르게 그 말의 의미를 잡아냈다.

‘카이르무스가 갖고 있던 힘을 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떨.어.져.라.

용언이 터져 나왔다.

“큭!”

준혁의 몸이 통제를 거부하고 반사적으로 기울어지며 그대로 땅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하지만 굉황의 용언은 완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

금문묵룡삭이 여전히 자유의지를 가진 듯 움직이며 준혁의 몸을 붙들어 맸다.

금문묵룡삭을 불끈 감아쥔 왼손에서 풀썩 피어오른 영력이 빠르게 밧줄을 물들였다.

=멈.춰.라.

굉황의 입에서 또다시 용언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준혁도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둥.이.다.물.어.

그냥 목소리로 하는 말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말이 터져 나왔다.

따아악!

동시에 굉황의 긴 주둥이가 거세게 다물려졌다.

-이건?

굉황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용언이었다.

굉황의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은 분명 용언의 힘이었다.

문제는 그 용언이 준혁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교라도 바른 듯 딱 다물려 벌어지지 않는 주둥이가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것을 느끼며 굉황이 무심한 눈으로 물었다.

-이것도 훔친 것이냐?

“뭐, 그렇겠지?”

-도둑질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

금문묵룡삭의 기능이었다.

몇 가지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카이르무스의 용언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드래곤 하트를 3개나 때려 부었으니 이 정도 효과가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크아아아!

분노에 찬 굉황의 외침과 함께 사방에서 영력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빙의했을 뿐인 굉황과의 영력 싸움이라면 준혁이 질 이유가 없었다.

갖고 있는 영력의 양과 질은 비교할 필요도 없이 굉황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각종 아이템과 무시무시한 운용력이 있었다.

인간과 검은 드래곤의 영력 싸움은 순식간에 100여 합을 지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찾아온 소강상태.

산을 뒤덮은 굉황의 회색 영력은 꽤 옅어진 상태였다. 그에 반해 준혁은 조금도 지치지 않은 듯한 표정.

그런 준혁이 슬쩍 거리를 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지.”

사실 끝내려고 마음먹었다면 이미 예전에 목을 칠 수 있었다.

아니, 잊었다고 생각했던 원한이 되살아나면서 당장이라도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그것을 참은 건 알아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혁에게 시선을 준 굉황도 땅으로 내려앉아 엎드리듯 몸을 바닥에 댔다.

“어떻게 왔냐?”

-크흐흐! 그게 궁금한 모양이군.

그제야 준혁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는 듯, 여전히 다물려 있는 주둥이 끝이 삐죽 솟구쳤다.

“당연히 궁금하지. 배면계와 전혀 체계가 다른 던전에는 어떻게 넘어왔냐? 그것도 귀신 흉내나 내면서.”

-말해 줄 것 같으냐?

“에이, 왜 이래? 우리 사이에 이러지 말자.”

-우리 사이라?

“서로 죽고 죽이는, 피가 타고 살이 터지는 살벌하게 친한 사이잖아, 우리. 그러니 유치한 짓 그만하지? 쫄리면 뒈지시든가.”

-내가 그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갈 거라 생각하느냐?

“그래, 뭐 그렇다고 치자. 아무튼 그래서?”

-네놈이 원하는 걸 내가 해 줄 리가 없지.

살살 구슬려 봐야 넘어오지도 않을 거라 생각해서 직접적으로 물어봤는데,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상태창.’

[상태창]

김준혁

직업:엽사(獵師)

등급:혼원급(混元級)

근력:[1,999+150]

순발력:[1,999+150]

지구력:[1,999+150]

감각:[1,999+150]

영력:[1,999]

미분배 점수:[0]

기(技)

[전뢰보(電雷步)], [천라시(天羅矢)], [추종시(追從矢)], [천천(穿天)], [무극(無隙)], [천단참(天斷斬)], [태산인(泰山刃)], [이화접목(移花接木)], [폭류격(瀑流擊)], [연환(連環)]

술(術)

[화룡연무(火龍燃舞)], [낙일홍(落日虹)], [추뢰망(墜雷網)], [뇌호강전(雷虎降電)], [빙경낙월(氷鏡落月)], [쌍생상사(雙生相死)], [잠리탄주(潛鯉呑珠)], [금륜천전(金輪千轉)]

외(外)

[엽맥(獵脈)], [천기술(千器術)], [천신강림(天神降臨)], [영박(影縛)], [물아일체(物我一體)], [영화(靈話)], [융합], [제작]

장비

[매구탈], [묵린갑], [무상곤], [금문묵룡비], [금문묵룡삭], [도깨비 보따리], [영소적], [구련환](2)

청랑을 불러냈을 때처럼 상태창이 완벽하게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배면계의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양쪽 시스템이 엉키고 있다. 그리고 저놈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말해 줄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무.슨.일.이.벌.어.지.고.있.는.지.말.하.라.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비웃음이었다.

-겨우 그 정도로 정신까지 지배할 수 있을 줄 아느냐?

‘안 되나?’

용언과 유사했지만 높은 정신 체계를 가진 신수의 정신까지 조종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굉황이 다시 말을 했다.

-일단 인사를 하러 왔는데, 이렇게 그냥 갈 수는 없으니 선물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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