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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시스템의 차이#3-
청랑이 전력으로 달려 나가고, 그 뒤를 나머지 팀원들이 쫓았다.
“무슨 소리야? 김지후 헌터가 위험하다니?”
유민섭이 턱까지 차오른 숨과 함께 의문을 토했다.
달리는 2팀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가장 앞서 달리는 청랑, 조금 거리를 두고 뒤따르는 리쉬옌과 린디웨, 마지막으로 꽤 거리를 두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최유나, 유민섭, 장민호, 강이찬.
게이트 돔에 들어오면 스탯이 절반으로 깎이는 바람에 육체적인 능력 또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최유나는 그나마 전사 클래스라 덜했지만, 나머지 셋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가 보면 알겠지!”
린디웨가 빽 소리를 질렀다.
상황을 모르는 건 린디웨도 마찬가지였다.
청랑이 갑자기 주인님과 위험의 두 단어만을 반복하며 내달렸기 때문이다.
“먼저 간다! 천천히 따라와!”
가장 선두에서 달리는 청랑이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치우고 있었기에 딱히 위험할 일은 없었다.
“헉, 헉헉! 저, 저건 진짜…….”
숨이 가쁘고 다리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강이찬은 입을 쉬지 않았다.
“완전 청랑무쌍이네. 헉헉! 끝내준다, 우리 댕댕이…….”
그러는 동안에도 두 번째 그룹과 세 번째 그룹의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헐! 이게 뭐야?”
강이찬이 입을 쩍 벌린 채 주변을 살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크레이터와 쌓여 있는 뼈 무더기, 그리고 갈가리 찢겨 나간 회색의 잔해, 마지막으로 세로로 갈라진 회색 조각상 같은 괴물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김지후가 창백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청랑과 리쉬옌, 린디웨는 준혁을 둥글게 둘러싸고 바깥을 보며 서 있었다.
준혁을 보호하는 듯한 위치 선정이었다.
“지후 씨, 괜찮아요?”
유민섭이 황급히 준혁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린디웨가 재빨리 유민섭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은 그냥 놔둬.”
“예?”
“더 다가가면 너, 죽을지도 몰라.”
“죽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일단 뒤로 물러서.”
린디웨의 날 선 목소리에 유민섭이 일단 뒷걸음질 쳤다.
그때 리쉬옌이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안전한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우리도 조금 거리를 벌리자.”
왕왕!
청랑과 린디웨, 리쉬옌도 준혁과 두어 걸음 더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리쉬옌이 자신의 영패 10개를 띄워 일행들 주변을 맴돌게 했다.
그제야 린디웨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고, 나머지 팀원들도 엉거주춤 자리를 깔고 앉았다.
강이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우리 흑태자 님 왜 저래요?”
언제부터 ‘우리’ 흑태자였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린디웨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작용이야.”
“반작용?”
“큰 기술을 쓰는 바람에 리바운드가 왔어. 지금 몸속의 기운이 마구 날뛰고 있어서 그거 가라앉히고 있는 거야.”
유민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시스템의 각성자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전사들의 스킬 중 ‘광폭화’가 대표적인 예였다.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지만, ‘광폭화’가 끝나면 그대로 기절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반작용이 있었다.
1시간 동안 써야 할 힘을 10분 사이에 모두 끌어다 쓰는 바람에 번 아웃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저 상태일 때 다가가면 무조건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거든. 힘 조절이 안 돼서, 한 방 맞고 그대로 인생 퇴장하는 수가 있어.”
“그럼 청랑이 말한 위험하다는 건 또 뭡니까?”
“몸에서 기운이 날뛰잖아. 그 상태로 움직이면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가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청랑이 저놈은 뭘 그렇게 급하게 뛰었대요? 주변에 별로 위험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야 나도 모르지.”
“어우, 저 설레발 견(犬).”
“개 아니고 늑대.”
“아, 그거나 이거나죠!”
놀라서 달려왔던 걸 떠올리니 괜히 울컥한 마음에, 유민섭이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내 실수를 깨닫고 흠칫 표정을 고쳤다.
“험험! 아무튼 우리는 가드를 서면 되는 겁니까?”
유민섭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강이찬이었다.
“가드는 무슨 가드예요? 버프 셔틀이면서.”
또 한 번 유민섭의 이마에 힘줄이 빡 돋아 올랐다.
***
“후우…….”
길고 편안한 날숨과 함께 준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소리를 들은 2팀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며 준혁을 살폈다.
“괜찮아요?”
유민섭의 물음에 준혁이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왕!
청랑이 반가운 소리로 짖으며 다급하게 달려와 준혁의 얼굴을 마구 핥아 댔다.
하는 짓만 보면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고생했다.”
준혁이 청랑의 턱과 목덜미를 긁어 주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
유민섭이 준혁의 말을 끊었다.
“거 되게 나쁜 사람이네?”
“네?”
“우리는 긴장한 채로 있었더니 진이 다 빠졌거든요? 우리도 좀 쉽시다.”
그 말에 준혁이 주변을 살폈다.
게이트 돔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첫 번째 발생한 이상 현상 때문이었다.
준혁이 지나간 경로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준혁을 쫓아갔었다. 그 때문에 뜻하지 않게 몰이사냥을 하게 되어 주변에 남아 있는 몬스터가 없었다.
그리고 2팀이 이곳으로 오는 중에 있던 몬스터는 청랑이 모두 쓸어 버렸다.
뜻하지 않게 안전지대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죠.”
엉거주춤 서 있던 준혁이 자리에 앉았고, 2팀도 그 주변에 각자 편한 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중 최유나가 조심스레 다가와 준혁의 옆에 앉았다.
“할 말이라도?”
준혁도 이제는 최유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인싸로 보이지만 철저한 아싸.
최유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었다.
‘얼음여왕 최유나’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실체는 친한 사람과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항상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으며, 마주 대하면 5분도 대화를 이어 가기 힘든 존재였다.
그런 최유나가 일부러 옆에 다가왔으면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렇게 강합니까?”
최유나의 물음에 준혁은 잠시 멈칫했다.
이 질문은 단순히 기본기가 충실하다는 대답으로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흐음, 그건 말이지…….”
준혁이 슬쩍 운을 떼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내가, 그리고 리쉬옌이나 린디웨가 일반 각성자들과 다르다는 건 눈치챘지?”
그 말에 흠칫한 사람은 유민섭이었다.
“김지후 헌터! 잠깐만요. 그 말을 지금 하면…….”
이곳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장민호까지는 그래도 같은 팀이니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강이찬이 문제였다.
강이찬의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면, 전 세계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인 탓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요. 이 이야기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나한테 뒈질 테니까.”
“히끅!”
과격한 언사에 강이찬이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대거리도 하지 못했다. 준혁의 눈빛을 받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 탓이었다.
‘저건… 진짜다.’
본능이 알려 주고 있었다. 자칫하면 죽는다.
강이찬은 황급히 손을 올려 입가에 대고 지퍼를 닫는 시늉을 했다.
그런 강이찬을 향해 싸늘하게 웃어 보인 준혁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있던 곳은 배면계라는 곳이야.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리쉬옌이나 린디웨한테 듣도록 하고. 필요한 것만 말할게.”
이어지는 준혁의 말에 모두들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배면계에 떨어지면 그곳에서도 각성이라는 걸 합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A등급, S등급 하면서 강한 힘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각성만 했을 뿐, 비각성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몸 상탭니다. 그런데 배면계에서 안 죽으려면 죽도록 싸워야 하거든요?”
이 이야기는 유민섭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유민섭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처음에는 F등급도 안 되는 스탯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죠.”
“허!”
“아무튼 그 상태에서 살려면 싸울 수밖에 없어요. 원할 때만 던전에 들어가는 여기와 달리, 거기는 어디서 짐승 새끼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그러니 이를 악물고 강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볼 때 그 차이가 가장 큽니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배면계 각성자들의 강함과 직결된다는 뜻이었다.
잠깐의 정적 후 준혁이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볼 때 배면계와 던전의 각성자 차이는 이겁니다.”
“이거?”
“배면계는 이런 거예요. 가능성이 큰 사람만 뽑아서 던져 놓은 다음, 살고 싶으면 알아서 강해져라 하는 방식이요.”
“그럼 던전 쪽은요?”
“가능성을 떠나 각성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각성시킵니다. 그런 후에 처음부터 강한 힘을 주는 방식인 거죠.”
“하지만 던전 쪽도 등급을 올릴 수 있습니다만?”
“쉽게 말해서 100만큼 강해질 수 있는 사람에게 50만큼을 미리 주는 거예요. 나머지 50은 스스로 노력해서 채워야 하는데, 문제는… 현대화된 세상이라 사람들이 그런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는 거. 그러니 강해지는 것도 한계가 생기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흐음…….”
“내가 볼 때 S급으로 각성했다면, 최소한 린디웨나 리쉬옌 정도, 최대로 보면 제 수준까지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또 한 번 정적이 찾아왔다.
다들 성장이라는 주제에 대해 각자의 상념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그 상념들을 깬 것은 이번에는 청랑이었다.
벌떡 일어난 청랑이 바크론의 뼈 무더기로 달려가더니,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가 요란하게 무언가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뼈 무더기 속에서 청랑이 거대한 뼈 하나를 끌고 나왔다.
이빨을 박고 질질 끌고 나온 뼈는 사람보다 큰 바크론의 두개골 조각 중 하나였다.
와그작, 와그작!
‘강식’이었다.
죽은 바크론은 3마리였고, 청랑은 그것들의 두개골 조각을 하나씩 끌고 나와 씹어 먹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처음 준혁의 ‘폭류격’에 맞아 죽은 켈카두스의 조각 중 하나도 씹어 먹었고, 마지막에 합체한 회색 조각상 같은 켈카두스의 일부도 뜯어 먹었다.
당연히 급격한 성장이 이루어졌다.
커엉-!
즐거운 듯 짖어 대는 청랑의 덩치는 알래스칸 말라뮤트 견종의 크기까지 성장했다.
이제는 농담으로도 귀엽다는 말은 못할 정도.
“이야, 청랑이 잘생겼다.”
유민섭의 말에 청랑이 묘하게 으스대는 듯한 느낌으로 고개를 거만하게 휘저었다.
물론 이렇게 성장해도 소형화를 하면 원래의 강아지 크기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준혁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 그럼 마저 정리합시다.”
게이트 돔의 보스와 중간 보스까지 처리되었기에, 게이트 돔 정리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이상 현상도 더는 발생하지 않았기에, 혼원 길드의 2개 팀은 빠르게 게이트 돔을 정리했다.
마나석도 다 모았고, 마지막에는 린디웨가 술석을 이용해 불을 질러 식생까지 완벽하게 처리했다.
남은 일은 게이트를 부수는 일.
길드원 모두가 게이트 돔 중심에 있는 게이트로 모였다.
퍽!
“어?”
유민섭이 놀란 듯 소리를 내질렀다.
원래는 가볍게 무너져야 할 게이트가 멀쩡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이잉!
묘한 울림과 함께 게이트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이건 또 뭐야?”
또다시 찾아온 이상 현상이었다.
준혁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진짜 무슨 마가 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