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16장. 시스템의 차이#2-
멀찍이 있던 2기의 켈카두스가 갑자기 온몸이 연기처럼 변하더니, 두 줄기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올라타 있던 해골 전마까지 달그락거리며 해체되더니, 이내 그 뼈까지 전부 회색의 연기로 변해 뭉치고 있는 연기 덩어리에 합류했다.
분석팀의 보고서에 이런 내용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게이트 다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켈카두스라는 유일의 존재가 동시에 한 장소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건 분명 이상 현상이었다. 그리고 준혁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올해 삼재였나?”
어이가 없었다.
“뭔 놈의 이상 현상이 또 생겨?”
저릿한 긴장감이 온몸 말단의 신경세포를 자극했다.
“하긴, 원래 메인이벤트가 밋밋하면 재미가 없지. 어디 얼마나 센 놈이 나오나 한번 보자.”
마지막으로 기대감이 섞였다.
원래 있던 켈카두스만 해도 강력한 적이었다.
그런데 그 두 놈이 하나로 합쳐졌으니 얼마나 강한 놈이 나올지 쉬이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최소 2배는 강한 놈이 나올 것이다.
격렬하게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흐으!”
입가가 비틀리며 비릿한 미소가 떠오르고, 묘한 웃음소리마저 새어 나왔다.
그리고 하나로 섞인 잿빛 연기가 마침내 하나의 형상을 빚어냈다.
크기가 작았다.
켈카두스일 때 신장 2미터에 덩치가 좋은 체구였는데, 그보다 키와 덩치가 모두 작아졌다.
연기처럼 흐리멍덩했던 형태가 천천히 선명한 선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놈의 모습은 정밀하게 조소(彫塑)한 회색 조각상 같았다.
놈이 양손을 가볍게 떨쳤다.
오른손에는 몸뚱이와 똑같은 잿빛의 롱 소드가, 왼쪽 팔뚝에는 둥근 방패가 생성되었다.
“나는 켈카두스. 만만치 않은 인간이여, 너의…….”
꽈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롭게 탄생한 켈카두스의 몸뚱이가 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황급히 몸을 띄워 자세를 고친 켈카두스가 사나운 목소리를 냈다.
“이놈이 감히-”
하지만 그 역시도 준혁이 뎅겅 끊어 버렸다.
“어떻게 된 게 보스라는 것들은 죄다 주둥이로 덤비냐? 어디 인간도 아닌 게 감히 인간한테 대거리질이야?”
준혁은 짐짓 거만한 표정으로 외쳤지만, 내심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 새끼, 보통이 아니네?’
잠깐의 틈을 보아 기습을 찔러 넣었다.
‘전뢰보’로 거리를 좁혔고, ‘태산인(泰山刃)’을 사용해 칼을 휘둘렀다.
[태산인(泰山刃)]
영력을 변환시켜 휘두르는 무기를 무겁게 만든다.
타격 순간 무기의 무게가 1,000관(貫, 1,000관=3.75t)으로 늘어난다.
재사용 대기 시간:10분
‘전뢰보’의 폭발적인 가속력을 이용해, 그 속력에 ‘태산인’으로 엄청난 무게를 실어 무상곤으로 후려쳤었다.
그런데도 켈카두스는 준혁의 공격을 막아 냈다.
순간적인 반응으로 방패를 들어 막아 낸 것이었다.
다만, 그 힘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기에 바닥을 구른 것뿐이었다.
결정적으로 무상곤을 휘두른 오른손에 둔중한 충격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진짜 보통 놈이 아니네?’
준혁의 손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금문묵룡삭을 잡았다. 하지만 이내 손을 멈추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보류.’
위급하면 금문묵룡삭까지 동원해야겠지만, 일단은 한번 붙어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스킬조차 쓰지 않겠다는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켈카두스의 형체가 흐릿하게 변한다 싶은 순간, 준혁은 반사적으로 양팔을 교차했다.
동시에 두 발로 땅을 차며 몸을 뒤로 밀었다.
꽈앙-!
팔뚝의 완갑을 뚫고 거센 충격이 파고들었다. 팔뚝을 지나 가슴팍까지 밀고 들어오는 거센 힘.
스탯들의 빠른 연계로도 모든 힘이 해소되지 않았다.
방어를 하고, 몸을 뒤로 밀었던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반응이 크나큰 손해를 막았다.
“끅!”
억눌린 신음이 밀려 올라왔지만, 빠른 반응 덕에 유효한 데미지가 쌓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파앙-!
공기를 터트리는 듯한 소음과 함께 뒤로 튕겨 날아가는 준혁의 속도를 켈카두스가 따라잡았다.
확실히 피지컬만으로는 비벼 볼 수가 없다.
뒤로 거세게 튕겨 나는 중이라, 상대적으로 켈카두스의 속도가 그나마 눈에 정확히 들어온 점은 다행스러웠다.
맞고 날아가는 중에도 두 눈을 부릅뜬 채 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날아드는 켈카두스의 잿빛 롱 소드가 보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격.
“흡!”
숨을 끊은 준혁은 급히 무상곤을 들어 롱 소드의 궤적을 갈랐다.
묵색의 영력이 순식간에 준혁의 온몸을 감싸며 스킬이 발동되었다.
퍽!
쇠붙이끼리 부딪쳤는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준혁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영력이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반응했다.
허물 벗겨지듯 준혁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영력이 한 점으로 압축되었다.
무상곤과 롱 소드가 맞닿은 바로 그 한 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조각상의 그것과 같은 켈카두스의 두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파앙-!
문제의 점에서 갑자기 영력이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롱 소드의 형태로 바뀌어 켈카두스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켈카두스가 준혁에게 내리그었던 바로 그 궤적의 칼질이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켈카두스의 얼굴이 세로로 쩍 벌어지며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 모든 일이 불과 0.1초 사이에 일어났다.
스킬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위력이었다.
이러한 반격이 가능한 것은 준혁의 몸에 완전히 체화된 기본기 덕분이었다.
타격 순간 몸을 뒤로 날려 충격을 최소화시킨 것도, 그런 와중에도 눈을 떼지 않은 것과 공격을 받아 내고 정확한 타이밍에 스킬을 사용한 것도 모두 준혁이 최유나에게 강조했던 기본기였다.
빠르게 자세를 고친 준혁이 땅을 박찼다. 튕겨 날아가는 켈카두스를 쫓는다. 조금 전과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었다.
이런 괴물을 상대하는 데 스킬을 아끼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스킬을 펼치자 준혁의 손에 들린 무상곤이 연기처럼 변해 준혁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큽!”
저릿한 압박감이 전신의 뼈와 근육을 옥죄었다.
뒤이어 준혁의 피부가 날염이라도 하듯 묵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모든 스탯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온몸에 부하가 걸린 탓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물아일체’는 가지고 있는 장비 중 하나의 힘을 흡수해 순간적으로 스탯을 늘리는 기술이었다.
‘20분!’
물아일체의 유지 시간을 가늠한 준혁이 달려 나가는 무릎에 힘을 주었다.
튕겨 나가는 켈카두스를 완전히 따라잡았다.
“놈-!”
버럭 소리를 지르는 켈카두스는 갈라졌던 얼굴이 어느새 복구되어 있었다.
“놈이라니? 님이라고 불러라, 새꺄!”
그렇게 온전해진 켈카두스의 얼굴, 그중에서도 턱에 준혁의 주먹이 꽂혔다.
쩌억-!
통렬한 타격감이 주먹을 타고 신경을 자극했다.
연달아 내뻗은 손발이 켈카두스의 온몸을 두드려 댔다.
내뻗는 주먹에는 조금의 낭비도 없이 영력이 실렸고, 날아드는 발에는 맹렬한 회전력이 얹혔다.
발경과 회경의 기본에 충실한 기본적인 권각이었다.
쿵!
무려 10여 대를 얻어맞은 후에야 켈카두스의 방패가 준혁의 주먹을 막았다.
“얌전히 죽지 못할 것이다!”
분노에 찬 외침을 내질렀지만, 돌아온 것은 이죽거림이었다.
“에라이, 뻔한 새끼!”
준혁의 손발에 변화가 실렸다.
켈카두스가 빠르게 그것을 막아 보았지만, 제대로 막는 것은 겨우 3할 정도였다.
변화라고 해 봐야 무협에 등장하는 신기막측한 변초 같은 게 아니다.
어깨를 슬쩍 떨면서 다른 방향으로 주먹을 뻗는다.
낮은 발길질을 뻗던 중에 슬쩍 무릎을 굽혀 오히려 역방향으로 다리를 걸어 잡는다.
현대 무술, 아니 복싱과 같은 격투기에서 흔히 보이는 페이크였다.
하지만 준혁이 펼치니 무협 속의 절세신공보다 훨씬 과격한 위력을 내보였다.
흠씬 두드려 맞던 켈카두스의 몸에서 사나운 회색의 불꽃이 폭사되었다.
퍼엉!
준혁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17분.’
차분하게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3분 동안의 공방으로 놈의 정확한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놈을 끝장내는 것뿐이다.
켈카두스가 롱 소드를 휘둘렀다. 잿빛으로 타오르던 불덩어리 10여 개가 광폭하게 들이닥쳤다.
준혁이 어느새 뽑아 든 금문묵룡비를 던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쾅, 콰쾅!
허공에서 산화하는 불꽃들 사이로 준혁이 ‘전뢰보’를 펼쳤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들고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다.
깡, 까강!
금문묵룡비와 롱 소드가 허공에서 쉴 새 없이 부딪쳤다.
붙었다 떨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다시 한 번 거리를 벌리는 찰나, 켈카두스가 롱 소드를 던졌다.
롱 소드가 저 홀로 칼날이 잘게 떨리는 동시에 칼날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늘어난 칼날이 다양한 궤적으로 준혁을 향해 짓쳐 들었다.
어떤 것은 고도를 낮추며 아래를 노렸고, 또 어떤 것은 횡으로 크게 회전하며 준혁의 뒤통수를 노렸다.
가볍게 던진 금문묵룡비가 순식간에 30개로 분리되며 그 칼날의 공격을 일일이 받아 냈다.
그중 정면으로 날아오는 칼날은 준혁이 직접 받아 냈다.
캉, 카캉!
호선을 그리며 바깥쪽으로 휘두르는 팔뚝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묵린갑의 팔뚝 완갑이 칼날들을 완벽하게 쳐 냈다.
파파팟!
가볍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두 발을 움직인 준혁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전뢰보’ 같은 스킬이 아니었다. 준혁이 내보인 것은 복싱의 스탭이었다.
물론 이 역시 배면계에 있을 당시 배우고 익힌 것이었다.
거리를 좁히자마자 연달아 뻗은 두 번의 잽이 켈카두스의 안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켈카두스가 급히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 순간 잽처럼 뻗던 손을 펼치며 놈의 목을 감싸듯 잡았다.
“큿!”
깜짝 놀란 켈카두스가 임기응변으로 상체를 숙이는 순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준혁의 통렬한 니킥이었다.
무릎이 안면을 찍었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켈카두스가 바닥을 뒹굴었다.
급기야 켈카두스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쾅, 콰르르릉!
켈카두스의 스킬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불꽃이 떨어지고 칼날이 공간을 쪼갰다. 땅속에서 손들이 튀어나와 발목을 잡아챘다.
하지만 준혁은 안정적인 스텝으로 그 모든 공격을 피했다.
‘7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계획대로 켈카두스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한 번.’
그거면 충분했다. 한 번만 틈이 보이면 그대로 끝낼 수 있었다.
‘4분.’
그리고 마침내 그 틈이 눈에 들어왔다.
켈카두스가 갑자기 두 손을 하늘 높이 뻗으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거대한 스킬을 위한 준비였다.
박투든 스킬이든 동작이 크면 빈틈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준혁은 그 틈을 놓치기에는 너무 경험이 많았다.
준혁은 두 발로 힘껏 땅을 박찼다. 폭발적인 도약력으로 솟구치는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1미터 길이의 금문묵룡비가 화려한 묵색의 무지개를 그렸다.
[천단참(天斷斬)]
“큽!”
켈카두스가 급히 손을 내리며 준혁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큰 동작의 빈틈을 메우기에는 준혁이 너무 빨랐다.
스걱!
가벼운 소음과 함께 켈카두스의 동작이 멎었다. 그런 켈카두스의 몸에는 세로로 금이 가 있었다.
***
“길드장님, 그리고 장민호 헌터.”
강이찬의 부름에 장민호가 시선을 던졌고, 유민섭이 대답했다.
“네?”
“두 분의 존재 의의는 뭡니까?”
“그게 무슨?”
유민섭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강이찬이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청랑과 리쉬옌, 린디웨, 최유나가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하는 게 없잖아요? 우리 얼음여왕 님은 저기서 칼질이라도 하는데 말이죠.”
“나는 버프 넣어 주는데요?”
“그럼 버프 셔틀?”
순간 유민섭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지만 강이찬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슬쩍 시선을 돌려 장민호에게 묘한 눈길을 던졌다.
의미는 명백했다.
여기는 버프 셔틀이라도 하는데, 넌 뭐 하냐?
딱 그거였다.
‘이 새끼가?’
장민호가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흑태자 님, 오늘 이 새끼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불끈 쥐어진 주먹.
“어허, 이 사람이 지금? 나 법산 거 몰라요? 한판 붙어 봐?”
강이찬이 순식간에 양손에 불길을 피워 올렸다. 자낳킹은 몬스터는 몰라도 사람한테까지 겁먹지는 않았다.
게다가 강이찬은 마법사, 장민호는 사제였다.
누가 봐도 싸움이 안 된다.
“아우, 진짜!”
장민호가 깊이 빡친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찰나였다.
“잠깐!”
유민섭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청랑을 포함한 나머지 팀원들이 다급하게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유민섭의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청랑의 생각.
-위험. 주인님.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