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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2차 게이트 돔 공략#3-
따아앙-!
잿빛 막까지 통째로 밀어붙이며 그대로 나아간 해머가 바크론의 옆머리를 두드렸다.
비틀거리는 바크론의 거구. 하지만 잿빛 막은 깨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판처럼 해머의 형태만 움푹 들어갔던 그것이 맹렬한 반탄력으로 해머를 밀어냈다.
준혁의 해머가 후려친 속도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튕겨 나왔다.
동시에 준혁의 머리 위에 시커먼 무언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어?”
허공에 떠오른 무언가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맹렬한 무언가.
“흡!”
짧게 호흡을 끊었다. 두 팔을 들어 머리 위에 X자로 교차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그것이 팔뚝을 두드렸다.
콰앙-!
폭음에 버금가는 소리와 함께 준혁의 몸뚱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예 지면을 파고들어 준혁의 몸통 둘레의 굴을 뚫고 땅속에 처박혔다.
‘뭐, 뭐였지?’
지면을 뚫고, 땅속에 직선의 굴을 뚫으며 처박힌 준혁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날아든 일격에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1,999에 도달한 5개의 스탯은 서로 간에 긴밀한 상호 작용을 하며 외부에서의 자극에 가장 적절한 대응을 한다.
감각 스탯이 접근해 오는 위협을 감지했고, 온몸에 신경망처럼 퍼져 있던 영력이 근력 스탯을 자극하며 해당 부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순발력은 반사적으로 근육을 움직였고, 지력은 가장 피해를 덜 입는 방법을 짜냈다.
그 결과 몸을 두드린 충격을 영력으로 받아 허공으로 돌려 해소했고, 그렇게도 풀어내지 못한 운동에너지는 차라리 고스란히 받아 내며 땅으로 파고들어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땅속에 묻힌 상태지만 충격은 조금도 받지 않았다.
각 스탯의 상호작용도 뛰어나지만, 착용하고 있는 묵린갑 또한 방어력이 금강불괴 수준이었다.
지금 준혁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해머질을 튕겨 낸 잿빛 막과 머리 위에서 날아든 일격이었다.
준혁은 땅속에 묻힌 상태로도 여유롭게 팔짱까지 낀 채 생각에 잠겼다.
‘길드장이 말한 그거… 는 아닌 거 같은데?’
게이트 돔의 몬스터들이 2배로 강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었다.
바크론이 마법이나 어떤 스킬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게이트 돔의 중간 보스지만, 그 압도적인 거체가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보고서를 통해 알고 있었다.
의문을 해소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나가자.’
생각과 동시에 스킬을 펼쳤다.
[천천(穿天)]
지표면이 들썩거린다 싶은 순간, 준혁의 신형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까마득한 고도에 도달한 준혁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 눈에 영력을 집중했다.
“어? 저거!”
바크론의 거대한 빗장뼈 위에 올라선 무언가가 있었다.
잿빛, 회색의 기사가 있었다.
광택 없는 회색의 마갑을 뒤집어쓴 해골 전마, 그리고 똑같은 재질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그 위에 검정색 후드를 뒤집어쓴 기사가 있었다.
갑옷의 안쪽은 잿빛의 연기가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투구 속에 새빨간 2개의 광원이 사이한 빛을 뿜으며 준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기사가 3마리의 바크론 어깨 위에 한 놈씩 서 있었다.
‘켈카두스.’
이곳 ‘망자의 전장’의 보스 몬스터인 데스나이트 켈카두스였다.
‘거리가 꽤 있었는데?’
분석팀에서 작성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켈카두스가 있는 곳은 당연히 게이트 돔의 중심인 게이트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직경이 무려 5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돔이었다.
바크론의 위치는 돔 벽에서 겨우 500미터 떨어진 위치였고, 켈카두스가 있는 곳까지는 무려 2킬로미터 거리였다.
그런데 이곳에 켈카두스가 나타난 것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절대 중심에 있는 게이트를 비워 두지 않는다는 규칙이 여지없이 깨졌다는 뜻이다.
‘변수인가 본데…….’
궁금하긴 했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바크론 3마리에 켈카두스 3마리, 1 대 6의 싸움이었다.
켈카두스가 나타났다면 마냥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던전이든 게이트 돔이든 들어왔으면 일단 몬스터는 까고 볼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준혁과 카이르무스의 힘 싸움은 거의 막상막하 수준이었다.
그 카이르무스가 있던 던전이 11급, 그리고 지금 이곳의 던전이 10급이었다.
켈카두스가 드래곤보다 겨우 한 등급 아래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이상 현상으로 인해 2배나 강해졌다면?
힘 싸움에 들어가면 준혁이 단순 스탯으로는 밀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나마도 준혁은 던전 시스템의 각성자가 아니어서, 게이트 돔에서 스탯이 절반으로 떨어지지 않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힘든 싸움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준혁의 입가에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전투는 원래 빡셀수록 뒷맛이 개운한 법이었다.
지상으로 낙하하는 준혁을 쳐다보며 3마리의 바크론은 주먹을 올려칠 준비를, 3마리의 켈카두스는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잡아 휘두를 준비를 했다.
쉐에엑!
준혁은 세찬 바람이 귓바퀴를 할퀴는 소리를 들으며 무상곤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갑자기 크기를 키운 무상곤이 속이 빈 탄두의 형태로 변하며 준혁을 완전히 감쌌다.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무게를 대폭 늘리는 선택이었다.
피이이이-!
지나치는 바람 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지며 중력에 의한 가속도가 한계까지 올라갔다.
마치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거대한 탄환을 연상시켰다.
콰르르르!
바크론과 켈카두스의 주변으로 잿빛의 마나가 맹렬하게 요동쳤다.
하늘을 향해 뻗는 거대한 3개의 주먹과 날카롭기 짝이 없는 잿빛 오러.
떨어지는 낙하물과 솟구치는 여섯 줄기의 공격이 한 점에서 격돌하기 직전, 준혁이 낙하하는 동안 준비하고 있던 무언가를 펼쳤다.
콰앙-!
허공을 수놓은 것은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탄환의 묵빛 궤적이었다.
그리고 켈카두스 1마리가 해골 전마와 함께 몸통의 절반이 터져 나가며 갈가리 찢겨 후드득 쏟아졌다.
그러고도 탄환의 운동에너지는 해소되지 않았다.
죽은 켈카두스가 올라타 있던 바크론을 산산조각 난 골편으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상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뭉클 솟구친 뿌연 먼지가 구름처럼 지면을 뒤덮고, 그 위에 서 있던 2마리의 바크론과 켈카두스가 비틀거리며 크레이터의 흙더미와 함께 바닥을 향해 쓸려 내려갔다.
그리고 일대를 뒤덮은 뿌연 먼지 구름 위에 준혁이 천천히 낙하하고 있었다.
[폭류격(瀑流擊)]
낙하하던 탄환과 올려쳐 오는 여섯 줄기의 공격이 맞부딪치기 직전에 준혁이 사용한 스킬이었다.
[폭류격(瀑流擊)]
내뻗는 공격에 영력을 이용한 강한 일격을 날린다.
타격 순간 근력이 10배, 순발력이 10배로 증가한다.
발동 준비 중에 움직이면 취소된다.
발동 준비 시간:10초
재사용 대기 시간:1시간
준비 시간도 길고 쿨 타임까지 길어서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는 스킬이었지만, 일단 한 방의 위력만큼은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켈카두스와 바크론 1마리씩을 없앴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폭류격’은 사용 조건이 까다로운 기술이었기에, 이제는 즉발성 스킬로 피 터지게 싸워야 했다.
물론 힘들다는 건 예상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준혁은 배면계에서 이놈들보다 훨씬 강한 신수(神獸)들도 모조리 봉인했었다.
결정적으로 전투의 스릴은 준혁에게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
“벽(壁)!”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탕, 타타탕!
무언가 격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리쉬옌의 정면에서 인해전술로 달려들던 흑색 좀비들이, 갑자기 솟아난 반투명한 흰색 막에 부딪힌 듯 튕겨 나갔다.
컹컹!
청랑의 힘찬 외침이 울리고, 순식간에 흰색 막이 사라졌다.
기다렸다는 듯 청랑이 땅을 박차고 점프해 좀비들에게 달려들었고, 최유나 또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느새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을 피워 올린 청랑이, 좀비 떼가 양 떼라도 된 양 늑대 본연의 역할에 맞게 날뛰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좀비의 목덜미를 찢었다. 앙증맞은 작은 앞발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묵직한 풍압이 좀비들의 사지를 뜯어냈다.
으드득!
쓰러진 좀비의 목을 뒷발로 짓이겨 부러트린 청랑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우우우-!
긴 하울링과 동시에 청랑의 주변에 암청색 기류가 솟구치더니, 그것이 폭풍처럼 퍼져 나갔다.
순간 퍼져 나가는 암청색 기류가 청랑과 똑같은 늑대의 잔상으로 변해 좀비 떼를 휘어 감았다.
살점이 뜯기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며, 주변의 좀비들이 순식간에 암적색 육편으로 변해 흩어졌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청랑은 또다시 좀비 떼를 향해 긴 사나운 포효를 뱉으며 달려들었다.
문제는 최유나였다.
“타앗!”
기합을 터트리며 애병(愛兵) ‘기사의 신념’을 휘둘렀다.
츠커컥!
좀비의 관절을 가르는 칼날을 통해 약간의 저항감이 손바닥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칼을 휘둘렀다.
스탯이 절반으로 깎였다 해도 눈앞의 좀비 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최유나에게는 이보다 힘든 일이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칼을 내리긋는 단순한 동작인데도 온몸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 강렬한 호소가 자꾸 예전의 방식으로 싸우라며 본능을 충동질했다.
그 속에서 좀비들은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스킬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저 기본기만을 사용해 베고 또 베어 넘겨야 했다.
불편함은 어색함을 만들고, 그 어색함이 쌓이며 동작이 굼떠진다.
그리고 종국에는 위기를 만들었다.
쉴 새 없이 기사의 신념을 휘둘러 7마리째 좀비의 목을 끊는 순간이었다.
크아아아!
갑자기 좌우에서 들이닥친 좀비 2마리가 쇄도해 들었다.
때마침 칼을 휘두르는 중간이라 뭘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으면 뭐라도 해 보겠지만, 그조차도 하면 안 되는 상황.
최유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럴 때는 몸으로 받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입고 있는 갑옷이 S급이니 큰 피해는 없으리라.
그때였다.
갑자기 퍼진 파공성이 빠르게 쇄도해 왔다.
그와 함께 저 뒤에서 울리는 리쉬옌의 외침.
“간(干)!”
터엉!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좀비가 무언가에 부딪혀 뒤로 자빠졌다.
왼쪽의 좀비는 갑자기 날아든 불길에 꿰뚫려 터져 나갔다.
최유나의 오른쪽에는 어른 손만 한 크기의 금속판이 떠올라 있었다. 금속판에는 커다란 방패 형상의 반투명한 흰색 막이 덧씌워져 있었다.
리쉬옌의 스킬이었다. 그리고 왼쪽의 좀비를 꿰뚫은 불길은 당연히 린다웨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일일이 감사를 표할 때가 아니었다.
“타앗!”
최유나는 이를 악문 채 다시 칼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리쉬옌도 묵직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제 임무에 몰두했다.
한차례 몰려온 좀비 떼는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유민섭이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잠깐 정비를 좀 하고 다시 이동…….”
그때 포갠 앞발을 베고 엎드려 있던 청랑이 갑자기 귀를 쫑긋 세웠다.
유민섭의 머릿속으로 청랑의 생각이 흘러 들어오는 것과 날카로운 울음이 동시에 울렸다.
컹컹!
-위험!
“어?”
유민섭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먼저 반응한 사람은 리쉬옌이었다.
“곽(廓)!”
새하얀 영력이 폭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