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14장. 파티 구성#2-
잠시 기억을 더듬던 유민섭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화두? 아, 네가 강한 거냐, 스탯이 강한 거냐?”
“네.”
“흐음…….”
홀로 뭔가를 생각하던 유민섭이 다시금 물었다.
“그런데 그 기본기를 다지는 게 성장의 발판이 되는 건 맞습니까? 그러잖아도 전에 말한 거 한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전에 말한 거?”
“던전에서 유나 가르칠 때, 나한테 야구의 타격을 예로 들었잖아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궁금했던 게… 뭐, 딱 맞는 말은 아닐 수 있지만, 그렇게 기술적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스탯이 높아질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고요.”
“충분히 궁금할 수 있겠네요. 기본기를 습득하는 건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성장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요?”
“아까 말했죠? 기본기라는 건 효율의 극대화라고.”
유민섭은 준혁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그 메커니즘을 좀 더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런 겁니다. 그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달하는 근육이 바뀝니다. 기본기가 몸에 익으면, 눈으로 보는 것은 물론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영역 자체도 바뀌어요. 그런 것들이 기본기를 따라 저절로 발달하게 됩니다. 물론 이 정도로 단순한 방식은 아니지만, 기본기를 체화하면 스탯 또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겁니다.”
“흐음, 확실합니까?”
유민섭은 여전히 확신이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제가 확인은 안 해 봤지만, 세계의 S급 각성자 중에는 각성 전에 무술을 단련했던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있죠.”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른 S급들에 비해서 조금 더 나은 역량을 가지고 있겠죠?”
“맞습니다.”
“그게 기본기의 차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유민섭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마침 이야기 꺼내기 쉽게 그 예가 나온 참이라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결국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들도 끝내 S급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의문을 품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수련하지 않으니까.”
“기본기는 기본기로 끝나지 않아요. 그것을 끝없이 반복하다 보면 한 발 더 나아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본기를 넘어 자신만의 것을 만들게 되고, 그것이 다시 스탯의 상승을 불러오죠. 하지만 그 과정은 정말 길고 험난합니다. 꾸준히 수련했다 해도, 어느 순간 더는 발전이 없다고 결론짓고 포기했을 겁니다.”
“흐음…….”
유민섭의 얼굴에 고심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궁금증은 풀렸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흐음, 유나를 어떻게 한다?”
유민섭이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이대로 두면 너무 불쌍한데…….”
하지만 실상은 준혁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아이고, 짠해서 못 보겠네.”
시선도 준혁에게 고정한 채였다.
“어떻게 돌려보내야 하나?”
그리고 찾아온 어색한 침묵.
“하아!”
결국 참지 못한 준혁이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일단 그 최유나 씨 불러 봐요.”
동시에 유민섭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변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유민섭은 다시 최유나를 불러들였고, 접객실로 들어온 최유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준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긴장감은 이 자리에서 유민섭만이 알아차릴 정도였다.
“최유나 헌터.”
“네.”
짧은 대답일 뿐인데도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물론 이 역시도 유민섭만이 감지할 수 있었다.
“하나만 물을게요.”
“말씀하십시오.”
“성장하고 싶다고 했지요?”
“네.”
“그런데…….”
준혁이 말꼬리를 흐리며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 표정에, 그러잖아도 빠르게 뛰던 최유나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방망이질을 쳤다.
최유나는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러다 만난 준혁은 유일한 구원 줄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가르침을 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맹렬한 비난과 경멸 어린 눈빛이었다.
최유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최유나의 성장 욕구는 다른 모든 감정을 짓이길 정도로 강렬했다.
“일전에 말한 무술을 배워 보라는 건 어떻게 했어요?”
최유나는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준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가 보았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검도 도장에 다녀 보았다. 서양식 검술을 가르쳐 준다는 곳도 갔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길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이렇게 다시 준혁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과는요?”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르쳐 준 대로 하려다가 자세가 불편해져서 위력이 떨어진 느낌이 들어서 그만두었습니다.”
최유나답지 않게 말이 길었다. 이 역시 최유나의 절박한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례였다.
그 말에 준혁이 슬쩍 유민섭에게 시선을 던졌다. 유민섭 역시 준혁을 향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준혁이 했던 이야기가 최유나의 입에서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흐음, 얼마나 다녔죠?”
“석 달 정도 다녔습니다.”
준혁은 그제야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어쨌든 나름의 노력은 해 보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부터 나눌 이야기가 진짜였다.
“후!”
짧게 숨을 고른 준혁이 최유나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목숨 걸 수 있어요?”
최유나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준혁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격한 감정의 동요였다.
“네?”
“목숨 걸 수 있냐고요.”
최유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농담을 하는 것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쉬이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유민섭 역시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잔뜩 긴장한 채 두 사람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목숨.’
그 한 단어가 가슴 한편이 뻐근할 정도로 무겁게 날아들었다.
새삼스러운 느낌이었다.
최유나는 헌터였다. 그것도 S급 헌터.
헌터계에서도 최상위권에 드는 강자였지만, 그런 만큼 항상 가장 위험한 전장을 누벼 왔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그런데도 준혁이 입에 담은 그 단어가 유독 묵직하게 내리꽂혔다.
‘나는 왜…….’
천천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는 왜 강해지려는 거지?’
솔직하게 최유나는 모든 걸 가지고 있었다.
무훈 길드에 그대로 있으면서 적당히 던전 공략만 해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늘 최유나를 괴롭혔다.
성장에 대한 욕구였다.
각성 전 최유나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학교에 다녔고, 대학에 진학했다.
특별한 목표 같은 것은 없었고, 앞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저 학교에 다녀야 하니 다녔고, 열심히 공부하라니 했으며, 대학교 역시 관성에 따라 진학했다.
뛰어난 미모 덕에 학교 내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그조차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인간관계 역시 그저 그런 편.
대한민국에 많고 많은 ‘수동적인 삶’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던 그녀가 처음으로 부모님의 반대를 꺾고 선택한 것이 헌터가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던전을 공략하며 난생처음 해방감을 느꼈다.
몬스터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고, 날아오는 몬스터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으며 비로소 살아 있음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던전 공략 역시도 관성에 의한 패턴 반복으로 변했다.
그러다 그것이 깨진 때가 ‘골드 드래곤의 레어’를 공략하면서였다.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상대를 만났고, 그로 인해 공포를 느꼈으며, 그 공포를 극복하고 맞서 싸우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가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최유나의 두 눈에 단단한 결의가 맺혔다.
그리고 준혁의 두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걸 수 있습니다.”
준혁도 최유나의 두 눈에 떠오른 단단한 각오를 읽었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네.”
“단 하나라도 어기면, 그 후부터 우리가 서로 얼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따라오세요.”
준혁이 일어서서 접객실을 나섰고 최유나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유민섭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준혁이 말했다.
“길드장님은 오지 마요.”
“어? 치사하게 이럴 겁니까?”
“무공 전수할 때 훔쳐보면 손모가지 자르는 거 모릅니까?”
“허! 무슨 무협 소설 쓰시나?”
“아무튼 오지 마요.”
“쳇! 치사해서 안 갑니다.”
유민섭이 삐친 표정을 지었지만, 준혁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접객실을 나섰다.
그리고 최유나 역시 유민섭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와~ 최유나!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냐?”
접객실 안에는 유민섭의 징징거림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준혁이 최유나를 데리고 간 곳은 지하에 있는 개인 훈련장이었다.
“음… 내가 좀 불편해서 그러니 지금부터 말 놓습니다.”
“편한 대로 하십시오.”
“좋아. 그럼 검도장에서 배운 거부터 한번 해 봐.”
최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벤토리에서 롱 소드를 꺼내 쥐었다.
크게 별다를 것은 없었다.
검을 쥐는 법과 베기, 찌르기, 막기 등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흔히 아는 검도가 아니라 서양식 검술이라는 점 정도였다.
던전과 헌터의 등장으로 한국에도 서양식 검술 도장이 꽤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 한 거 열 번 연달아 해 봐.”
준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유나가 다시 롱 소드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열 번의 반복이 끝난 후 준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배우기는 제대로 배웠네.”
“그렇습니까?”
“내가 지금 당장 특별히 가르칠 것은 없는 것 같고…….”
잠시 말꼬리를 흐린 준혁이 두 눈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말씀하십시오.”
“오늘 이후 지금 반복했던 것만 무조건 사용한다.”
“네?”
“앞으로 공략할 때 지금 했던 그 기본기 외에 어떤 것도 하지 마라. 검 쥐는 법부터 휘두르는 것까지 전부 지금 해 보였던 것만 사용할 것. 스킬 사용 금지.”
준혁이 목숨을 걸 수 있느냐고 물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아직도 어색한 문제의 기본기만을 사용해서 모든 스탯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게이트 돔을 공략하라는 뜻이었다.
약간의 편법, 그리고 매우 위험하지만 속성으로 실력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스탯이 떨어지니 훨씬 더 위험하고, 그런 속에서 기본기만을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체득되는 것이었다.
최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단 한 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스킬을 사용하면, 그때는 정말 끝이야. 할 수 있겠냐?”
재차 이어지는 준혁의 물음에, 최유나는 언제 동요했었냐는 듯 굳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당장 다음 공략 때부터야. 그때까지 좀 더 손에 익게 훈련이나 해.”
준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훈련실을 나섰다.
그리고 훈련실에서는 밤새도록 칼 휘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