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36화 (36/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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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파티 구성#1-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사삭!

펜촉이 빠르게 움직이며 이름을 적어 나갔다.

린디웨와 리쉬옌이 각자 자신의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 유민섭 쪽으로 계약서를 밀었다.

“좋군요.”

유민섭의 얼굴에 오랜만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사실 혼원 길드는 길드원 모집에 애를 먹고 있었다.

게이트 돔 공략 전문 길드라는 점 때문이었다.

게이트 돔을 없애는 데 앞장선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혼원 길드였다.

하지만 그것과 길드원 수급은 궤가 다른 이야기였다. 위험한 탓이었다.

헌터라는 것이 항상 위험을 안고 사는 직업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위험이 훨씬 큰 게이트 돔 공략을 자청할 정도로 사명감이 높은 헌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지원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들의 등급이 문제였다.

최소 A등급은 돼야 하는데, A등급 이상 되는 헌터의 지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S급을 능가하는 탱커와 마법사가 등장했으니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린디웨와 리쉬옌도 꽤 만족했다.

유민섭이 연봉을 박하게 주는 편도 아니었을뿐더러, 무엇보다 두 사람의 마음에 든 것은 숙소였다.

혼원 길드 본사에는 기숙사처럼 헌터에게 제공하는 숙소가 있었는데, 그 숙소의 수준이 어지간한 호텔급이었던 것이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유민섭이 웃으면서 오른손을 내밀자, 두 사람도 차례대로 악수를 했다.

“이제 대충 파티 구성은 된 거죠?”

준혁의 물음에 유민섭이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근접 딜러 하나만 더 있으면 딱 좋은데…….”

준혁과 유민섭은 게이트 돔 공략을 이원화할 생각이었다.

하나는 당연히 준혁이었다.

준혁의 역할은 게이트 돔 내에서도 강력한 몬스터 위주로 사냥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남은 또 하나가 일반 몬스터를 처리하며 청소한다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준혁처럼 혼자 날뛸 수 없으니 파티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그 구성이 쉽지가 않았다.

그 파티 구성원이 유민섭, 청랑, 장민호였다. 각각 서포터, 근접 딜러, 힐러 포지션이었는데, 린디웨와 리쉬옌의 합류로 원거리 딜러와 탱커가 충족되었다.

이로써 탱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서포터, 힐러까지 하나의 파티 구성 요건이 충족된 것이었다.

하지만 유민섭은 근접 딜러가 조금 아쉬웠다.

청랑의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앞에서 싸워 줄 딜러가 하나 더 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당연히 쉽지는 않은 일.

준혁이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며 말했다.

“일단은 이렇게라도 구성이 되었으니…….”

그때였다.

“안 됩니다!”

“거기 서세요!”

문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섰다.

유민섭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실성한 듯 말을 흘렸다.

“최유나 헌터?”

“죄송합니다!”

문을 열고 나타난 최유나의 뒤로 유민섭의 수행 비서가 나타나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유민섭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최유나가 막무가내로 여기까지 왔을 것이고, C급 각성자인 수행 비서 장형준은 그녀를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궁금한 것은 최유나가 왜 여기 왔는가였다.

그날, 던전 안에서 준혁에게 강해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던 날 이후 최유나는 준혁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4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갑자기 예고도 없이 등장한 것이었다.

“할 얘기가 있습니다.”

무뚝뚝한,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는 여전했다.

최유나가 ‘얼음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물론 본인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최유나의 말에 유민섭이 슬쩍 고개를 돌려 린디웨와 리쉬옌을 바라보았다.

“두 분, 실례가 안 된다면 일단 오늘 자리는 여기까지 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네.”

두 사람의 허락에 유민섭이 수행 비서인 장형준을 불렀다.

“장 비서님.”

“네.”

“기숙사 올라가서 이 두 분 방 배정해 주세요. 방금 계약 끝났으니 인사과도 들러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린디웨와 리쉬옌이 장형준을 따라 나간 후, 유민섭은 최유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유나 헌터, 아니 유나야.”

“네, 길드장님.”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

최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

질문을 던지는 유민섭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얼음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최유나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유민섭은 오랜 시간 함께한 만큼 극히 미세한 그 표정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최유나는 가타부타 설명 없이 그대로 본론을 꺼냈다.

“혼원 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뭐?”

유민섭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최유나를 보았다. 최유나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유민섭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혼원 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최유나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나서야 유민섭은 애써 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무훈 길드는 어쩌고?”

“허락받았습니다.”

“응?”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민섭은 길드장 자리를 내놓고 나왔다고는 해도 여전히 무훈 길드의 소유주였다.

무훈 길드의 헌터를 빼내서 혼원 길드의 길드원으로 삼는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전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태웅이, 아니 강태웅 길드장이 허락했다고?”

“네.”

“잠깐만!”

유민섭은 손을 들어 최유나의 말을 막은 후, 급히 강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전화한 거 보니 유나가 도착한 모양이네요?)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요. 유나가 말했을 텐데요?)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무훈 길드를 나간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하아…….)

갑자기 고막을 훑고 지나가는 한숨 소리에 유민섭은 말을 멈췄다.

잠시 후, 강태웅이 한탄하듯 말을 이었다.

(형도 유나 걔 고집 알잖아요. 무작정 나가겠다고 말하는데, 내가 뭔 수로 말려요?)

“그러면 무훈 길드는?”

(뭐, 별수 있나요? 새로 뽑든가, 있는 헌터들로만 꾸리든가.)

“얘 빠진 틈이 그런 식으로 메워지냐?”

S급 근접 딜러의 공백을 메우는 건 당연히 쉽지 않다.

당장 대한민국에 있는 S급 헌터가 7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근접 딜러는 2명뿐이었다.

(아, 몰라요. 유나 잡겠다고 기 빨리느니, 그냥 무능한 길드장 할래요. 답 안 나온다니까, 진짜.)

“허어!”

(붙잡아 둔다고 제대로 던전 공략 나갈 거 같지도 않아서, 그냥 위약금 받고 보냈어요.)

“위약금?”

(당연히 받아야지. 길드는 뭐 땅 파서 장사해요?)

그건 그렇다.

개인적인 관계야 어떻든 계약 관계는 당연히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잠시 말을 끊었던 강태웅이 조금 차분한 목소리로 넌지시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혼원 길드에 있는 게 유나한테는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거 혹시……?”

(예, 성장이요. 지구상에 있는 S급 헌터 중에 그 윗급으로 성장한 사례는 단 1명도 없어요. 그런데 엽사 씨, 아니 김지후 헌터랑 함께하면 왠지 최초의 사례가 될 거 같거든요.)

단순히 최유나를 말리기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유나가 한 단계 더 올라간다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없다고 알려진 S급들의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세상이 한층 더 안전해진다는 뜻이었다.

“알았다. 일단은 끊자.”

(예.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요.)

통화를 마친 유민섭은 최유나를 향해 물었다.

“유나, 아니 최유나 헌터.”

“네.”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뭐죠?”

“성장하기 위해섭니다.”

최유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민섭의 시선이 준혁에게로 향했다.

-뭐? 어쩌라고요?

하지만 준혁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을 전할 뿐이었다.

“끙!”

짧게 앓는 소리를 흘린 유민섭이 최유나를 향해 말했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을까요?”

“네.”

곧장 일어선 최유나는 준혁에게 짧지만 강렬한 시선을 한 차례 던진 후 접객실을 나섰다.

그리고 준혁과 유민섭의 대화가 이어졌다.

“왜 그렇게 유나를 싫어해요?”

“아닌데요?”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진짜 나는 필요한 조언은 다 해 줬다니까요?”

“아니, 그 이유를 자세하게 알려 줄 수도 있잖아요.”

“듣고 이해하는 건 소용이 없어요. 오히려 방해된다고요.”

“아니, 이해하고 생각하다 보면 도움이 되지, 왜 방해가 돼요?”

유민섭조차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니, 준혁으로서도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준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기본기를 다지라고 말했었죠?”

“했죠.”

“이 기본기라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유민섭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충 개념은 잡고 있지만, 정작 말로 설명하려니 제대로 된 단어가 조합되지 않았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형화의 체득(體得) 혹은 체화(體化).”

“오호!”

절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정리였다.

“그런데 이 기본기라는 거, 사실은 아주 불편합니다.”

“불편?”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원래는 내 마음대로 칼을 휘둘렀어요. 그런데 칼질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자꾸 정형화된 자세를 시켜 봐요. 안 불편할까요?”

“불편하겠네.”

“최유나 씨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헌터면 개념을 가르치고, 체득할 때까지 강제로 시켜서 자세를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그게 차이가 있습니까?”

“시간이 걸리거든요.”

“시간?”

유민섭으로서도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대화가 길어졌다.

“아마추어에서 프로에 입문하는 선수들 중에 코칭 스탭이 가장 가르치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뭔지 아세요?”

“뭔데요?”

“나쁜 버릇을 갖고 있는 애들. 이미 나쁜 버릇이 배어 있어서 고치는 데 한참 걸리고, 정작 배우는 애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든요. 왜냐? 원래 하던 게 자기한테는 더 편하니까.”

“최유나 헌터가 그런 경우라는 말이죠?”

“맞아요. 이미 자기 마음대로 칼질하던 게 몸에 배어서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더군다나 스탯이 S급이야. 이게 말로 설명한다고 될 거 같아요?”

“안 될 건 또 뭐 있어요?”

“머리로는 이해했어요. 근데 해 보니까 불편해. 그러면 의심이 생기죠. 그리고 이 의심에 몸이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는 기본기를 훈련한다고 하지만, 그만큼 필사적으로 훈련하지 않아요. 그 결과는 성장의 실패죠.”

“머리로 이해하고 자꾸 경험하다 보면 스스로 깨우치는 게 더 빨라질 수도 있죠.”

“보통의 경우라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문제가 하나 더 있죠.”

“또?”

“아까 말했듯이 최유나 헌터의 스탯이 S급이라는 거.”

“그건 또 무슨……?”

유민섭은 문득 자신의 이해력에 대해 고민하며 그렇게 물었다.

“너무 강하기 때문에 영원히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커요. 그러니 괜히 설명을 듣고 의심만 하고 있는 것보다, 내가 던진 화두를 고민하는 게 훨씬 빠를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준혁은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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