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33화 (3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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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손님#1-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공대원 모두의 행동이 정지 화면처럼 멈췄다.

짧은 정적 끝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나 공대장 양태군이었다.

“박지훈 헌터,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무리 사냥이 끝났어도 라인 이탈은…….”

그리고 준혁이 가볍게 그 말을 싹둑 잘랐다.

“각성자 관리청 산하 비밀 수사국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현 던전을 비밀 수사국 관리하에 두겠습니다.”

“비밀 수사국?”

공대원들이 하나같이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다들 금시초문인 표정들이었다.

당연했다.

준혁이 급조해 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비밀 수사국 따위가 있는지는 준혁 또한 모른다.

준혁이 천을 1장 꺼내 얼굴 전체를 덮고 문지르며 그사이에 매구탈의 형태를 바꿨다.

“사정이 있어 박지훈 헌터의 신분을 잠시 빌렸습니다.”

어느새 드러난 준혁의 얼굴은 최초에 사용했던 100원짜리 동전 속의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었다.

“시, 신분을 제대로 밝혀 주십시오.”

“여러분의 보안 레벨로는 그것을 알 자격이 없습니다. 아니, 알게 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목소리에도 영력을 조금 실어 거만하게 말을 하니 다들 슬쩍 무기를 내린다.

“비밀 수사국에서 여기에 무슨 일로…….”

“씨발! 튀어!”

어디선가 터져 나온 외침과 함께 이기혁, 황동진, 신광훈 세 사람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어떻게도 비벼 볼 수 없는 빠르기였다.

퍽, 퍼퍽!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간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한 방씩 얻어맞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헙!”

남은 공대원들이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세 놈이 기절한 것으로 보였다.

말 그대로 절대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수준 차이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모습에 아무런 말도 붙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준 차이가 작은 물웅덩이와 태평양 정도의 차이라는 말로도 도저히 형언이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국가 권력이니 감히 말을 붙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특히 양태군은 손끝이 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저런 사람을 끌고 가서 트롤링 좀 그만하라고 갈궜다.

‘미친! 아니, 왜 저딴 힘으로 트롤링을 하고 지랄이야…….’

나이 40에 나름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양태군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준혁은 금문묵룡삭으로 세 놈을 동시에 포박한 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공대원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각자 이름과 인적 사항을 적어서 제출해 주십시오.”

반항 따위는 없었다.

“그럼 어젯밤에 노숙했던 곳에서 모두 대기해 주십시오.”

가타부타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만해 보이는 말투와 무시무시한 실력 앞에 반항하는 사람은 없었다.

D, E등급 헌터들이 S급도 넘어선 듯한 준혁의 말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던전 내부의 헌터들에게는 강자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공대원들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묶어 둔 세 놈이 널브러진 곳으로 향했다.

기절한 놈들의 정수리에 가볍게 영력을 밀어 넣었다.

“으허어업!”

“사, 살려 주어얼…….”

눈을 뜨자마자 진저리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아우성을 질러 댔다.

“시끄러워.”

하지만 준혁의 가벼운 한마디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입을 다물었다.

준혁은 놈들 앞에 선 채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질문에 대답할 사람?”

뻔한 전개를 보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세 놈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준혁의 눈길을 피했다.

그 모습에 준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흘렸다.

“뭐 하냐?”

입을 다물고 있지만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이런 놈들을 다루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먼저 말하는 놈은 안 죽인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 놈의 눈동자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준혁의 얼굴을 한 번 보고, 패거리들의 시선과 입 모양을 살핀 후 다시 준혁을 본다.

그 세 번의 눈짓을 하는 동안 사고의 흐름 또한 세 번의 과정을 거쳤다.

보통 처음에는 저런 협박은 무시한다. 설마 사람을 죽이겠냐 하는 생각이다.

그런 다음 패거리의 눈치를 살핀다. 설마 다 불어 버리겠냐는 생각을 했지만, 패거리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무감정하게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준혁의 눈빛에서 진짜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다음은 자연스러웠다.

“말하겠습니다!”

“저요!”

“다 불겠습니다!”

세 놈이 거의 동시에 악을 내질렀다.

“뭐냐, 이 병신들은?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세 놈은 또 한 번 눈치를 살폈지만, 서로를 향해 인상을 찡그리기만 할 뿐이었다.

“쯧!”

가볍게 혀를 찬 준혁은 한 놈씩 뒷덜미를 들어 멀찍이 던져 놓았다. 그리고 한 놈, 한 놈 직접 찾아가 물었다.

첫 번째 질문은 구슬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거, 뭐 하는 물건이냐?”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그걸 던지면 맞은 사람에게 던전의 변수가 발생하고 죽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걸 던지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짓을 한 거네?”

“그, 그건…….”

“그래서 몇 명이나 죽였냐?”

“15명 정도…….”

두 번째 질문은 당연히 그 배후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누가 시켰냐?”

“그, 그게, 저도 잘 모릅니다.”

“몰라? 모르는 놈이 시키는 걸 그렇게 착실하게 했냐?”

“한 번 할 때마다 들어오는 돈이…….”

“개새끼들이네?”

예상했던 대로다. 상종 못할 쓰레기들이었다.

준혁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 하나라도 있을 거 아냐?”

“연락도 갑자기 메모 같은 게 날아오는 방식이었습니다. 항상 모자에 마스크,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오기 때문에 얼굴도 모릅니다.”

“하나도 몰라? 특징 같은 건?”

“아, 아!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그럼 그걸 말해.”

“말하는 걸 들으면 이상하게 위화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위화감?”

“더빙된 영화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요.”

“응?”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확실치는 않은데, 입 모양이랑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안 맞는 느낌이요.”

순간 준혁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거다!’

더빙이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영화(靈話)]

영력을 통해 대화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영화’ 사용자의 말을 상대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영화’ 사용자는 상대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통역 마법과 같은 것이었다.

준혁을 포함한 배면계 소환자들은 당시 이것을 통해 다른 국가 출신들과 대화했었다.

그리고 입 모양과 들리는 소리가 다른 것 때문에 장난삼아 더빙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준혁의 표정이 미묘한 상태로 딱딱하게 굳었다.

‘역시 배면계 시스템에서 돌아온 놈들 짓이었나?’

예상했던 일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니 이상하게 허탈한 감정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참을 수 없는 화가 났다.

‘이 개새끼들이 감히 형을!’

형에게 닥쳤던 위험과 세상을 위험에 빠트려 ‘일상’을 무너트리려 한다는 사실에 곱절로 화가 솟구쳤다.

“후우!”

준혁은 애써 호흡을 고르며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던데, 무슨 소리야?”

“그, 그걸 어떻게……?”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게, 이번이 마지막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시킬 일 없을 거라고…….”

준혁이 또 한 번 인상을 굳혔다.

‘마지막? 이거 설마!’

위험신호였다.

‘벌써 준비가 다 끝난 건가?’

누구인지도, 무엇을 하려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시스템에 이상을 일으키려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 이상은 분명 큰 위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늦었나?’

준혁은 이까지 악문 채 대화를 이었다.

“그래서 그 외에는?”

“없습니다.”

“잘 생각해라. 다른 놈들한테서 다른 이야기 나오면, 그때는 알지?”

“정말입니다. 놈들에 대해서는 그게 전부입니다!”

“돈 받았다며? 계좌 같은 거라도 있을 거 아냐?”

“아뇨! 놈들은 ‘이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현금으로만 줬습니다!”

“큭!”

이기혁, 황동진, 신광훈 세 놈에게 돌아가면서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을 확인한 후 준혁은 세 놈을 다시 한곳에 모았다.

“자, 그럼 볼일은 끝났으니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준혁이 손을 흔들자마자 놈들을 묶고 있던 금문묵룡삭이 저 스스로 포박을 풀고는 뱀처럼 구불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가, 감사합니다!”

세 놈이 동시에 허리를 접으며 인사하는 찰나였다.

으드득!

“끄아아악!”

동시에 비명을 터트리며 세 놈이 한꺼번에 땅바닥에 처박혔다.

“끄으윽! 왜 이러십니까?”

“약속이…….”

하지만 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놈들을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놈들 역시 준혁의 눈빛에 기가 질려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고통스러운 신음만을 흘려 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변화가 생겼다.

크하아아!

키에엑!

갑자기 들려온 것은 몬스터들의 괴로운 울부짖음이었다.

세 놈이 동시에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소리가 들린 쪽에서 금문묵룡삭이 10여 마리의 몬스터를 포박해 이쪽으로 끌고 오고 있었다.

“서, 설마…….”

“약속과 다릅니다!”

놈들이 악을 써 댔지만, 준혁은 깔끔하게 방향을 돌려 공대원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준혁은 죽이지 않겠다고 했지, 살려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크허어엉-!

“끄아아악-!”

저 멀리 준혁의 등 뒤로 몬스터의 포효와 단말마의 비명이 길게 메아리쳤다.

금문묵룡삭은 어느새 매듭까지 지어진 채 준혁의 허리에 걸려 있었다.

***

‘이걸로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준혁은 여전히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한 채 걷고 있었다.

김지후의 얼굴로 길을 돌아다니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탓이었다.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은 신광훈이 던졌던 문제의 구슬이었다.

자세히 보면 확실히 배면계의 물건이라는 걸 알 수는 있었다.

구슬 표면에 아주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배면계에서 ‘술사(術士)’였던 이들이 사용하는 술식과 비슷했다.

하지만 준혁이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배면계 시스템을 모르지는 않지만, 직업이 다른 술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탓이었다.

준혁은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머릿속의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일단 던전 쪽은 큰 문제 없이 처리한 것 같고…….’

양태군을 통해 던전 안에서 사고가 생겨 3명이 죽은 것으로 처리했다.

던전 공략 실패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보상할 생각이었다. 이름과 연락처 등을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박지훈한테는 비밀 수사국 얘기로 넘기면 될 것 같고…….’

의외로 효과가 좋아서 마지막까지 그렇게 마무리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걸었을 때였다.

“반갑습니다, 김지후 씨!”

갑자기 길을 막고 말을 거는 여자가 있었다.

준혁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뭐냐?”

그렇게 묻는 준혁의 두 눈에는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기운이 어려 있었다.

지금 준혁은 김지후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김지후라고 불렀다는 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다음 순간 준혁의 두 눈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스쳤다.

‘저건!’

길을 막고 선 여자의 오른손이 새파란 연기 같은 것에 휩싸여 있었다.

준혁도 익히 알고 사용하는 그것, 영력이었다.

저벅.

그리고 준혁의 뒤에도 누군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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