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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수상한 놈들#3-
‘이기혁, 황동진, 신광훈.’
순서대로 탱커,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포지션의 세 사람이었다. 현재의 공격대에서는 왼쪽 라인을 이 세 사람이 맡고 있었다.
늘 함께 다니다 보니 손발이 잘 맞는 편이라, 어느 공대에 들어가도 항상 같은 방향에 배정받는 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야영지와 꽤 거리가 벌어진 작은 공터에 둘러앉았다.
던전 안에서 불침번이 자리를 뜨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씨발!”
짧게 욕을 뱉은 이기혁이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2리터 정도를 담을 수 있는 물병이었는데, 던전의 몬스터 부산물로 만든 것으로 헌터들이 식수를 담아 오는 용기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안에서 새어 나온 것은 톡 쏘는 술 냄새였다.
“크으!”
크게 한 모금 마신 이기혁이 황동진에게 병을 건넸고, 황동진과 신광훈이 차례대로 한 모금씩 술을 들이켰다.
그런 후에야 세 사람은 대화를 이어 갔다.
“내가 양태군 저 새끼 공대는 가지 말쟀잖아.”
짜증이 좀 묻어나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최대한 낮춘 채였다. 야영지와 꽤 거리가 있어도 혹시나 누군가가 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황동진과 신광훈이 차례대로 이기혁의 말을 받았다.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공대가 여기밖에 없었잖아.”
“이번이 마지막인 데다, 이번 달까지 끝내야 해서 어쩔 수 없었지, 뭐.”
“에이, 씨발. 답답해 죽겠…….”
뭐라고 투덜거리려던 이기혁이 갑자기 말꼬리를 흐렸다.
“왜?”
“야, 나 방금 좋은 생각 났다.”
“뭔데?”
“이번에는 양태군 그 새끼한테 던지자.”
“응?”
다른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기혁은 마치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야, 우리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렇기야 하지만…….”
“어차피 한몫 단단히 챙겨서 한국 땅 뜰 거잖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과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준혁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무리 감각이 발달한 짐승이라 해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기척을 지운 채였다.
이는 사냥꾼인 ‘엽사’라는 직업의 기본 스킬이었다.
[엽맥(獵脈)]
숙련도:완(完)
엽사의 맥을 잇는다.
사냥에 필요한 추적과 은신, 덫 설치, 궁술, 도주술이 육체와 뇌에 각인된다.
몸과 영력을 사용하는 데 사냥과 관련한 모든 것을 체득한다.
체득 수준이 높을수록 체력과 영력의 소모가 줄어든다.
준혁의 상태창에서 ‘기’, ‘술’, ‘외’ 중 ‘외’에 속하는 스킬이었다.
MMORPG의 ‘마스터리(Mastery)’와 유사한 개념이었다.
준혁이 배면계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의 출발점이 이 ‘엽맥’이었다.
준혁은 거기에 포함된 은신의 몸놀림으로 몸을 숨긴 채 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던진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보아 분석팀이 제대로 결과를 뽑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자칫하면 놓칠 뻔했네.’
준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길한 느낌도 들었다.
‘마지막이라…….’
만에 하나 이자들이 시스템 이상과 연관이 있다면, 꾸미고 있는 어떤 일이 이제 막 터질 수도 있었다. 그것이 준혁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단 이놈들부터 조지고 보자.’
그러는 동안에도 세 놈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키득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언제가 좋을까?”
“앞으로 던전 공략할 필요도 없으니, 내일 첫 사냥 때 하면 될 거 같은데?”
“내일?”
“공대장 뒈지면 공략도 중단하고 나갈 테니, 이게 바로 일석이조.”
모든 이야기를 이기혁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아, 세 놈 중에서도 이기혁이 대장 격인 모양이었다.
‘던진다는 그 뭔가도 이기혁 저놈이 갖고 있으려나?’
일단은 그럴 가능성이 컸다.
‘내일 바로 결과 나오겠군.’
더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준혁은 조심스레 자리를 떴다.
공격대는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아침을 맞이했다.
공대원들은 익숙하게 물건들을 정리하고, 고열량 에너지 바로 식사까지 빠르게 마쳤다.
그리고 던전의 중심지에 진입했다.
이번에 들어온 던전은 3급 던전으로 이름은 ‘파란 밀림’이었는데, 그 이름 그대로 녹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뒤덮인 밀림이었다.
나무의 줄기와 잎사귀부터 땅에 자란 이름 모를 풀들까지 그 색이 온통 새파란 색을 띠고 있었다.
준혁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이기혁 일행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사냥에 들어가면 그때 시작할 생각인가?’
준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방, 몬스터!”
공대원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고,
“전투 대형!”
양태군이 반사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동 대형이 전투 대형으로 바뀌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가장 선두에 있던 3명의 탱커가 좌우로 흩어지며 자리를 잡았다.
뒤이어 3명의 근접 딜러가 각각의 탱커 뒤에 서고, 가장 후미에 있던 양태군이 훌쩍 몸을 띄워 근접 딜러와 원거리 딜러 사이에 착지했다.
이동 대형 자체가 전투 대형으로 빠르게 전환하기 위한 준비와 같았기 때문에 가능한 전환.
크아아앙-!
포효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몸길이만 3미터에 달하는, 새파란 털을 가진 표범 무리였다.
“청표범 5개체, 서포팅, 탱커 밀집, 딜러 대기! 탱커 스킬 순서 3, 1, 2!”
양태군이 빠르게 상황을 살피며 명령을 내렸고, 공대원들이 그 말에 신속하게 반응했다.
가장 후미의 서포터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감각 고조! 감각 고조! 감각 고조!”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은 탱커들이 방패를 세워 들었다.
동시에 준혁 앞에 있던 3번 탱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언 월(Iron Wall)!”
쩌엉-!
3번 탱커의 방패에서 맑은 쇳소리가 울리며 방패를 중심으로 흑철색의 벽이 홀로그램처럼 솟아올랐다.
그와 거의 같은 순간 가장 선두에 있던 청표범의 앞발이 날아들었다.
꽈앙-!
“카운트 2분!”
“1, 2번 대비. 1딜, 3딜 사이드 견제, 원딜 공격!”
슈슈슉!
2명의 패스파인더가 빠르게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플레임 미사일!”
마법사의 불꽃 공격도 청표범의 몸뚱이에 작렬했다.
왼쪽과 오른쪽의 1딜과 3딜이 좌우 탱커 바깥쪽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청표범을 대비했다.
던전의 사냥은 MMORPG에서처럼 ‘어그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그로를 잡는다고 딜러들이 대기하는 시간 따위는 없다.
탱커들이 몬스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 딜러들은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를 죽여야 했다.
케에엑!
가장 선두에 있던 청표범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어?’
그 순간 양태군을 포함한 4명의 탱커가 동시에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청표범이 죽는 데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다.
평소라면 3명의 탱커가 ‘아이언 월’ 스킬을 돌아가면서 한 번씩 펼쳐야만 1마리를 죽일 수 있는 몬스터가 청표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첫 번째 탱커의 ‘아이언 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1마리가 죽었다.
‘변수?’
양태군의 얼굴에 긴장감이 바짝 솟아올랐다.
던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변수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키헤에-!
뒤이어 청표범 2마리가 연달아 무거운 몸뚱이를 땅바닥에 떨궜다.
양태군의 반응은 신속했다.
“2번, 거리 벌려! 후퇴!”
“강타!”
꽈앙-!
가운데에 있던 2번 탱커의 스킬이 폭발했다.
콰르르르!
강렬한 일격에 남아 있던 2마리의 청표범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뒤이어 공격대 전원이 신속하게 뒷걸음질 치며 청표범과의 거리를 더 벌렸다.
남은 청표범 2마리도 제 동료들이 순식간에 죽은 것에 겁을 먹었는지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사이 원거리 딜러 하나가 나직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너무 빨리 죽었어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대답은 이기혁의 입에서 나왔다.
“씨발, 이래서 초짜들하고 하면 안 된다니까? 변수잖아. 닥치고 시키는 거나 잘해!”
원거리 딜러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기혁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사냥 중에 공대원들끼리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최악 중의 최악이기에 일단은 시선을 돌렸다.
처음 3마리의 청표범이 빠르게 죽은 것은 당연히 준혁이 한 짓이었다. 금문묵룡비를 몰래 날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죽인 것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헌터 등급이 낮은 공대원들은 그 누구도 금문묵룡비를 볼 수 없었다.
이기혁 일행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기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 한 일이었다.
양태군은 양태군대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물러서? 아니면 일단 싸워 봐야 하나?’
앞서 3마리를 손쉽게 죽였으니 남은 2마리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탱커의 강타 스킬에 속절없이 밀려난 걸 보면 남은 2마리도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은 2마리를 마저 끝냈을 때, 오히려 다른 위험이 닥칠 수도 있었다.
“신광훈 헌터, 견제 공격 해 보세요.”
이기혁 무리 중 원거리 딜러인 신광훈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슈슈슉!
연달아 날린 3대의 화살 중 1대가 청표범에 명중했다.
청표범의 살갗을 뚫은 화살촉이 몇 방울의 피를 흩날리고는 그대로 튕겨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킬을 걸지 않은 화살 공격이었고, 이 정도면 일반적인 청표범과 다를 바 없었다.
양태군의 얼굴에 또 한 번 고민스러운 표정이 스치는 찰나, 이기혁이 힐끔 뒤를 돌아보며 제 일행들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제 시작하려는 건가?’
그리고 준혁은 그런 세 놈의 행동을 놓치지 않았다.
이기혁이 정면을 주시한 채 말했다.
“공대장, 이대로 대치하는 것도 위험한데 일단 남은 놈들 마저 잡고 대비하도록 합시다.”
“그게 좋겠습니다. 남은 2마리는 한 번에 몰아칠 겁니다. 탱커들 대기하세요.”
철컥!
탱커들이 방패를 고쳐 잡으며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원딜 공격, 탱커 돌격!”
“흐아아아!”
탱커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가고, 그 뒤로 근접 딜러들이 바짝 따라 붙었다.
그들의 머리를 넘어 화살과 마법이 청표범의 몸뚱이에 작렬했다.
콰쾅!
크허어엉!
흥분한 청표범들 역시 공격대를 향해 마주 내달렸다.
양태군의 리딩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2번 버텨! 1, 3번 좌우로 빠져서 뒤쪽 놈 견제! 근딜은 앞쪽 놈 앞다리부터 잘라!”
묵직한 바람을 머금은 청표범의 날카로운 발톱이 탱커의 방패를 두드렸다.
꽝-!
“큭!”
2번 탱커가 무릎에 잔뜩 힘을 주고 버티는 찰나, 좌우의 탱커가 앞으로 나서며 뒤쪽에 있는 청표범을 막아섰다.
쉐에엑!
날카로운 도검이 청표범의 앞다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까가강!
앞서 죽은 3마리와 달리 이번에는 정상적인 사냥이 진행되었다.
근딜들의 날붙이가 쉴 새 없이 청표범의 두 앞다리를 갈라냈다.
콰, 콰쾅!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은 놈의 머리와 목에 집중되었다.
츠커컥!
마침내 놈의 왼쪽 앞다리가 잘려 나갔다.
“2번과 근딜은 오른 앞다리 집중 공격. 원딜들, 더 붙어서 쏴!”
지체 없이 공격이 몰아쳤다.
쿠웅-!
오른쪽 앞다리까지 잘라냈을 때,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은 놈의 목을 절반 이상 뜯어낸 후였다.
“놔두고 뒤쪽 놈 합류! 1, 2번은 중앙 열고, 3번은 후방! 근딜은 뒷다리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양태군의 리딩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공격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뒤쪽의 청표범이 절명했다.
“남은 놈 끝냅시다.”
양태군이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2개의 앞다리를 잃고 늘어져 있는 청표범을 공격하려 할 때였다.
후방에 있던 신광훈이 인벤토리에서 골프공 크기의 구슬 하나를 꺼냈다.
휙!
가볍게 던진 구슬이 양태군을 향해 날아가던 그 순간이었다.
구슬이 날아가는 궤적 중간에 갑자기 무언가가 끼어들었다.
탁!
가볍게 구슬을 낚아챈 손.
손의 주인은 준혁이었다.
“뭐, 뭐 하는 짓…….”
기겁한 신광훈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준혁이 그 말을 끊었다.
“딱 걸렸다, 이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