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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수상한 놈들#2-
“혼원 길드에서 내일부터 길드원 모집한다더라.”
“그래? 한 달이나 가만히 있어서 괜히 설레발 친 건 줄 알았더니.”
“그런데 길드원이 오기는 할까?”
“뭐,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으니까.”
“그 미친놈이 혼원 길드에 다 모여서 이제 더는 없을걸?”
대로변에 설치된 게이트 관리용 임시 천막 앞에서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듯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3명의 헌터 사이로 한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거, 말들이 심하시네? 그래도 좋은 일 하겠다는 사람들, 응원은 못할망정 뭐 그리 뒷담화를 해요?”
뒤이어 또 1명의 남자가 가세했다.
“그러게. 어쨌든 게이트 돔 사라지면 다 좋은 거잖아. 난 흑태자 팬인데, 거 말 좀 가려서 합시다.”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세 남자가 갑작스러운 불청객을 노려보았다. 결코 곱지 않은 눈빛.
그중 1명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떼려는 찰나, 또 다른 누군가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에헤이, 뭣들 하십니까? 던전 들어가면 서로 도와야 하는 공대원들끼리. 조금씩 양보하고 좋게 좋게 갑시다.”
이제 곧 시작할 게이트 공격대의 공대장이었다.
흔히 막공이라 불리는 임시 공격대는 항상 이런 일이 제일 큰 문제였다.
모르는 사람끼리 모이니 의견 충돌이나 감정싸움이 빈번하게 생기는 것이었다.
언제나 중재 역할은 공대장의 몫.
그래서 막공의 공대장은 분란을 얼마나 잘 죽이느냐로 그 능력을 가늠할 정도였다.
‘저놈의 흑태자 소리 좀 안 하면 안 되나?’
그리고 먼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준혁이 민망한 표정으로 인상을 팍 찡그렸다.
흑태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팔에 소름이 돋는 별명이었다.
문제는 준혁을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그 별명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팬클럽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을 정도다.
인터넷에 수많은 팬 카페가 떠올랐고, 그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은 회원 수가 무려 5만 명에 육박했다.
‘하아! 강이찬 이놈의 자식!’
확실히 돈 되는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재간이 있는 놈이었다.
회원 수 5만의 팬 카페도 강이찬이 팬클럽 회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아, 이게 아니지.’
흑태자라는 말만 들으면 부지불식간에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는 했다.
준혁은 황급히 고개를 털어 머릿속의 생각을 지웠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놈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저 세 놈이군.’
한 달.
정보를 취합하고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세계 각지의 던전 공략 데이터를 깡그리 모았다. 그중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을 모았고, 그것을 상황별로 분류했다.
사망 비율의 변화를 검토했고, 특별한 경우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들을 추렸으며, 그들과 사망 사건이 겹치는 경우를 또 따로 뽑았다.
한국의 자료만으로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였다. 하지만 전 세계의 자료를 검토하니 특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특이점 몇 개를 특정해 내고, 다시 그것을 한국 자료에 대입해 역으로 자료를 뽑았다.
무서울 정도로 규모가 큰 작업이었다.
그 모든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조건문으로 자료를 추리고 추려서 연관성 있는 것들을 또 따로 묶다 보니 한 달이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방대한 정보량을 모두 처리하는 데 한 달은 어마어마하게 짧은 시간이었다.
이는 혼원 길드 분석팀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 주는 예시였다.
그 덕에 혼원 길드 분석팀은 전원 열흘의 유급휴가에 휴가비까지 넉넉하게 받고 쉬는 중이었다.
그리고 혼원 길드를 두고 찧고 까불던 세 남자가 분석팀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기혁, 황동진, 신광훈.’
준혁은 기척을 완전히 죽인 채 공격대 소속 11명 헌터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는 동안 공대장이 모인 헌터들의 이름을 부르며 등급, 클래스, 포지션을 일일이 확인해 최종 점검을 했다.
그리고 준혁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헌터 1명이 천막 뒤쪽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거기, 어디 가요?”
“담배 1대 피우고 올게요.”
“늦으면 안 됩니다.”
남자가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준혁도 걸음을 뗐다.
‘박지훈, D급, 전사, 근접 딜러.’
준혁의 머릿속에는 담배를 피우러 골목으로 들어간 남자의 프로필이 맴돌고 있었다.
‘흑태자 팬……. 아, 이건 아니고.’
준혁이 버릇처럼 고개를 털었다.
***
‘일반적인 던전 공략은 이렇게 하는구나.’
준혁은 두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준혁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던전 공략을 한 적이 없었다.
혼자 들어가서 눈에 보이는 몬스터를 모조리 죽이는 건 제대로 된 공략이 아니었다.
공략이니 아니니 따질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학살일 뿐이었다.
그렇게 처음 본 공격대의 던전 공략은 생각 이상으로 체계가 잘 잡혀 있었고, 효율적이었다.
“서포터! 탱커들 버프 보충!”
“1번, 좀 더 앞으로 나서! 1딜은 좀 더 바짝 붙고!”
“원딜들 마나 아끼지 마!”
정면의 세 방위를 커버하는 탱커들의 왼쪽, 중앙, 오른쪽을 1번, 2번, 3번이라고 불렀다.
각 탱커 뒤에 붙은 근접 딜러들은 탱커 번호에 따라 1딜, 2딜, 3딜이라 부르는 식이었다.
공격대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은 2열에서 대기하는 지원 탱커 역할의 공대장이었다.
전방 세 방향의 탱커들 중 위험한 곳을 돕는 역할이면서, 2열에서 전체 상황을 보고 지휘할 수 있는 위치였다.
‘양태군이라고 했던가?’
준혁은 몰랐지만, 다른 헌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막공 계통에서는 꽤 알아주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양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안정적인 공격대 운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양태군이 만드는 공대는, 막공이어도 정공 못지않게 안정적이라고들 한다.
“사냥 끝. 수고하셨습니다! 잠시 휴식하시죠!”
양태군의 선언으로 세 번째 사냥이 끝이 났다.
그리고.
“박지훈 헌터.”
“네?”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박지훈이 바로 준혁이었다.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박지훈을 가볍게 재운 다음, 매구탈을 이용해 박지훈의 얼굴로 던전 공략에 참석한 것이었다.
물론 장비도 박지훈의 것을 대신 착용하고 왔다.
잠든 박지훈은 유민섭이 알아서 보호하기로 했다.
‘뭐지?’
양태군의 뒤를 따르며 준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조용한 곳에서 따로 할 이야기가 있는 분위기였다.
‘힘 조절을 잘못했나?’
준혁의 근력 수치는 1,999였다. 오랜 경험과 날카로운 감각으로 완벽하게 힘 조절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실수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따로 공대라도 만들자고 제안하려는 건가? 그건 좀 곤란한데…….’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은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라인 이탈 좀 자제해 주세요.”
양태군이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준혁의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네?”
“자꾸만 탱커 저지선을 넘어서 나가니까, 탱커 라인이 엇나가서 몬스터가 새잖아요.”
“그게 무슨…….”
준혁은 여전히 양태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으음, 처음 보는 얼굴인 걸 보면 라이센스 딴 지 얼마 안 됐죠?”
“아, 아마 그렇겠죠?”
“아실지 모르지만 탱커 라인은 던전 공략의 시작인 동시에 끝입니다. 탱커 라인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따라 사냥 효율이 달라지거든요.”
어린아이 달래듯 차근차근 설명하는 양태군의 모습은 확실히 경험 많은 공대장의 그것이었다.
“네, 탱커 라인이요.”
“그런데 박지훈 헌터가 자꾸 그 탱커 라인을 앞서 나간단 말입니다. 박지훈 헌터가 앞서 나가면, 박지훈 헌터 앞에 있는 탱커는 박지훈 헌터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라인이 비틀리면 몬스터가 새서 1열을 넘어 들어온단 말이죠.”
“그러니까 공대장님 말은…….”
준혁은 생각지도 못한 당혹감을 애써 억누르며 힘겹게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제가 트롤?”
양태군이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트롤이라고까지 부를 정도는 아니고… 조금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규칙을 따라 주면 감사하다, 뭐 이런 얘기죠.”
준혁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애써 부정하고 있었지만, 그 태도가 오히려 준혁에게 확신을 주었다.
트롤 맞네.
“조, 조심하겠습니다.”
“예. 좀 부탁드립니다. 라인, 라인입니다. 아셨죠? 라인?”
“예. 알겠습니다.”
준혁은 힘없이 대답하고는 공대원들이 쉬고 있는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쩐지… 아까부터 3딜을 그렇게 찾더니…….’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랬던 거 같았다.
오른쪽 탱커인 3번, 그리고 그 3번 뒤에서 창을 쓰는 딜러인 ‘3딜’이 준혁이었다.
‘내가 트롤이라니!’
배면계에 소환당한 초기 2년 정도를 제외하고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해 본 적이 없는 준혁이었다.
엽사라는 준혁의 직업이 정해진 역할만 수행해야 하는 포지션과 어울리지 않는 탓이었다.
아니, 집단을 이루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준혁은 항상 프리롤(Free Role)이었다.
정해진 위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상황을 살핀 후 알아서 자기 일을 찾아 하는 역할이었다.
배면계 시스템에서도 흔치 않은 엽사라는 직업이 올라운더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해진 자리를 지켜야 하는 데다, 극도로 섬세하게 힘 조절 하는 것은 물론 의심스러운 세 사람을 살펴보기까지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트롤링을 구사한 것이었다.
공대원들이 쉬고 있는 장소로 돌아가니 준혁에게로 모든 시선이 쏠렸다.
“큼큼!”
준혁은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평소에는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이래야만 했다. 자칫하면 박지훈의 헌터 활동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거, 잘 좀 합시다.”
“에이, 이래서 초짜들은 공대에 끼워 주면 안 된다니까?”
“저러다 뒈져야 정신을 차리지. 근데 꼭 지는 안 죽고 남을 죽이더라니까?”
준혁이 주시하는 세 놈이 기다렸다는 듯 면박을 줬다.
‘쯧!’
준혁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일단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첫째 날 사냥은 세 번으로 끝이었다. 양태군은 조심스레 이동하다 기습에 대비하기 좋은 장소에서 야영을 지시했다.
다들 익숙하게 바닥을 고르고 침낭을 깔아 노숙을 준비했다.
‘옛날 생각 나네.’
배면계에 있을 때도 자주 노숙했었기에, 이 상황은 준혁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공대원 모두가 깊이 잠든 밤, 불침번을 서던 이기혁이 소리를 죽인 채 자신의 일행인 황동진과 신광훈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야영지에서 벗어나는 세 사람을 따라가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사냥꾼이 짐승의 흔적을 쫓듯, 기척을 완전히 지운 채 움직이는 준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