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30화 (30/240)

-030-

-12장. 수상한 놈들#1-

준혁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전화부터 걸었다.

(여어~ 흑태자 님!)

몇 번 신호가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김준석이 짓궂은 목소리로 준혁을 불렀다.

“형, 장난칠 기분 아니야.”

(응? 어, 말해라.)

목소리에서 동생의 기분을 읽은 김준석은 이내 말투를 바꿨다.

“지금 어디야?”

(나? 종로.)

“응?”

(오늘 헌터 라이센스 등급 조정 받으려고.)

지난겨울 동안 김준석은 준혁의 하드한 트레이닝에 맞춰 미친 듯이 몸을 굴렸었다.

그로 인해 각종 스탯에서 가시적이 성장을 이뤄 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C등급 수준의 스탯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단순한 훈련이 아닌, 던전 안에서의 실전을 통해 성장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 왔던 등급 조정을 오늘 하려던 참이었다.

“종로 올 거면 우리 길드도 들를 겸 전화라도 하지.”

(일하느라 바쁘신 흑태자 님이시잖냐.)

“아놔, 그거 좀 하지 말고…….”

(아무튼 중요한 일 있는 모양인데, 무슨 일이야?)

“아, 맞다. 일단 우리 길드로 좀 와 줄래? 아이디 발급한 건?”

(어, 갖고 있다. 지금 갈게.)

10분쯤 지나 김준석이 준혁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왔어?”

반가이 건네는 준혁의 인사에 김준석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야, 방 좀 꾸며라. 보니까 이거 딱 길드에서 배치해 준 거 그대로 쓰는 거지?”

“번거롭게 뭐하러…….”

준혁의 집무실은 삭막함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가구와 전자기기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물론, 장식장도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하다못해 꽃이라도 두든지.”

“됐어. 취미 없어. 일단 앉아. 뭐 마실래?”

준혁은 일부러 잠깐의 짬을 내기 위해 그렇게 물었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듣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믹스 커피나 한 잔 줘.”

“오케이. 내가 또 그건 기가 막히게 잘 타지.”

잠시 후, 두 형제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마주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형 병원에 있을 때 왔다 간 사제한테 들었거든?”

“사제? 아, 그 사람?”

“어. 그놈 얘기가… 형이 걸린 저주, 그거 F급 서포터가 들어갈 던전에서는 걸릴 수가 없는 수준이라던데?”

“음… 그렇기는 하지. 근데 그건 뭐랄까, 일종의 돌발 상황? 뭐 그런 거였는데?”

“그래?”

“나도 얘기만 들어 보고 겪은 건 처음. 근데 가끔 그런 경우 있어.”

헌터가 던전을 공략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를 통해 얻은 마나석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몬스터 부산물이 다양하게 인간의 생활에 활용된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던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3급 던전에서 갑자기 5~6급 던전의 몬스터가 등장할 수도 있다. 몬스터가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스킬을 사용하거나, 돌연변이 몬스터가 등장할 수도 있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변수.

그 변수가 그렇잖아도 위험한 던전 공략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

헌터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각성자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 역시 그 위험 때문이었다.

김준석은 자신이 당한 저주를 그 변수라 여기고 있었다.

“자세하게 얘기해 봐.”

“음, 자세하게라……. 2급 던전이었는데 이름이 ‘묘지’였어. 뭐, 이름대로 언데드 계열 몬스터들이 나오는 곳이었고…….”

“언데드? 위험하지 않아?”

“야야, 언데드도 종류가 있고, 등급이 있다. 겨우 2급인데, 뭐.”

“아무튼 그래서?”

“거기 보스가 거대 좀비였거든? 키가 한 3미터쯤 됐나? 뭐, 아무튼 크다는 거 외에는 일반 좀비랑 다를 거 없는 놈. 나야 서포터니까 제일 뒤에 있었고.”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던전 공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 자꾸 말 늘이지 말고 핵심만 좀 말해 봐.”

“인마, 지금 말한다, 말해. 보스 몬스터 거의 다 잡았을 때였나? 갑자기 내 뒤에서 섬뜩한 느낌이 드는 거야. 깜작 놀라서 뒤돌아보는 순간…….”

“순간? 순간, 뭐?”

“바로 저주에 걸렸지. 쓰러지는 순간에 본 건… 반투명한 것이 유령 계열이었던 거 같기는 한데…….”

“아무튼, 그다음은?”

“비명을 지르니까 공대원들이 나를 봤는데… 그 유령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침 보스도 거의 죽인 참이었고…….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죽겠더라고. 돌아가는 데 시간도 걸리고. 그래서 니가 준 귀환석을 써서 탈출했지. 그다음은 게이트를 지키던 던전 관리청 직원이 119 불러서 병원으로. 끝!”

김준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 그렇게 말을 끝냈다. 하지만 준혁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인상 좀 펴라. 진짜 그냥 돌발 상황이었다니까?”

“내가 확실하게 몰라서 그러는데 뭐 좀 물어보자.”

“어, 물어봐.”

“돌발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1급 던전에서 10급 던전의 몬스터가 나오는 정도로 격차가 큰 변수는 안 생기는 거 아냐?”

“그렇지? 보통은 변수가 발생해도 그 격차가 2~3급 정도?”

“근데 형이 당한 저주는 10급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거는 수준이라던데?”

김준석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뭐? 10급?”

“어, 10급.”

“지, 진짜냐?”

“그러니까 내가 걱정…….”

“풉!”

준혁의 말을 끊은 것은 김준석이 터트린 웃음이었다.

“받아 주니까 끝까지 가려고 하네? 네가 흑태자니 뭐니 사람들이 떠받들어도 내가 니 똥 기저귀 갈면서 키웠어, 인마! 어디서 형을 놀려?”

“놀리는 거 아니야.”

“이노무 시키가 그래도…….”

“엘릭서가 필요한 수준이라면 말 다 한 거 아냐?”

“응?”

그제야 김준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번은 연기가 아닌 진짜 심각한 표정이었다.

홀로 뭔가를 한참 고민하던 김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준혁을 향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 있기는 했다.”

“어떤 거?”

“나 다 낫고 나서 헌터 앱 게시판에서 봤는데… 그때 같이 던전 들어갔던 사람들 중에 2명이나 죽었더라고.”

“뭐? 그걸 왜 얘기 안 했어?”

“뭐 하러 얘기해? 어차피 막공이었는데. 처음 본 사람이었고, 슬쩍 보니 좀 험하게 구르는 사람들 같아서 그런가 보다 했던 거지. 근데 네 얘기 들으니 좀 이상하긴 하네.”

“그때 그 사람들 다 기억해?”

“이름?”

“어, 이름이나 얼굴.”

“전부는 기억 못하지. 그런데 그거 던전 관리청 들어가면 금방 나와.”

“알았어. 잠시만.”

준혁은 급히 유민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준혁은 자신의 집무실 소파에 앉은 채 유민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혁의 맞은편 자리에는 김준석이 앉아 있었다.

“그놈들이 전부 죽거나 실종이란 말이죠?”

“맞습니다.”

던전이 발생하면, 던전 관리청은 해당 던전을 입찰을 통해 공략권을 판매한다.

그것을 통해 길드가 던전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던전이 그렇게 길드의 소유가 되지는 않는다.

5급 이하의 던전은 수익성이 떨어져 길드들이 잘 입찰하지 않는 추세였기에, 대부분 던전 관리청에서 직접 관리했다.

등급이 높은 던전들 중에서도 일부는 입찰을 하지 않고 던전 관리청에서 관리하기도 했다.

길드에 속하지 않은 헌터들이 조직한 공격대들이 공략할 수 있도록 일종의 물량 조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 던전을 공략하는 공격대 소속 헌터들의 신상이 기록되고, 그 정보는 공개된다.

유민섭은 그것을 통해 김준석과 함께 ‘묘지’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들을 조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김준석과 함께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 7명이 모두 죽거나 실종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준혁이 턱을 쓰다듬으며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우연일 리는 절대 없고…….”

그때 유민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이상한 부분?”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무슨 오해?”

“일단 실종된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살해당했다는 가정하에… 이 사람들을 죽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목적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고.”

준혁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은 대답을 했다.

“그렇다고 봐야죠.”

“그러면…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어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김준석 헌터를 제거하는 게 그쪽에서는 훨씬 안전하지 않을까요?”

준혁은 그제야 유민섭이 오해하지 말라고 했던 게 뭔지 이해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번거롭게 여러 사람을 제거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제거하는 게 확실히 효율적이다.

준혁이 김준석에게 물었다.

“형, 아무 일 없었어?”

김준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잘 생각해 봐. 느낌이 이상했다거나…….”

“아니. 그런 건 확실히 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당분간 형수님이랑 지유 데리고 여기 길드 건물에서 생활하는 게 어때?”

혼원 길드 사옥에는 길드원들의 생활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에 김준석도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네.”

“그나저나 왜 그랬을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홀로 생각에 잠긴 준혁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며 유민섭에게 물었다.

“최초로 죽은 놈이 언제 죽었어요?”

“네? 잠시만요.”

유민섭이 황급히 태블릿을 열어 준혁이 물어본 내용을 확인했다.

“아! 이거 설마?”

그리고 준혁이 왜 그걸 물어봤는지 곧장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한 게 맞아요?”

“예, 맞습니다. 김준석 헌터가 ‘골드 드래곤의 레어’에 들어간 직후… 정확하게는 저하고 밖에서 몇 번 같이 다닌 이후에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말에 준혁과 김준석이 안도감과 긴장감이 뒤섞인 복잡한 한숨을 토했다.

국내 최고 길드의 길드장과 친해 보이는 김준석을 제거할 수 없으니, 그 일을 실패한 이들을 제거해 비밀을 지킨 것이었다.

잠시 김준석을 바라보던 준혁이 유민섭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조사해 볼 수 있겠습니까?”

“조사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제대로 결과나 나올지 확신이 안 서는군요.”

“조건 몇 개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유민섭의 표정은 회의적이었다.

“조건 몇 개를 공통적으로 대입해서 싹 훑으면 결과가 나올 수는 있어요. 그런데…….”

말꼬리를 흐린 유민섭이 보고서 1장을 준혁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던전 공략 중 사망 비율입니다. 보시다시피 월별로 나눴는데,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요. 서너 명 많거나 적거나 딱 그런 정도 수준.”

보고서를 확인하는 준혁은 절로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여간 신중한 놈들이 아니었다.

김준석과 던전에 들어갔던 자들이 살해당한 것만 보아도, 배후에서 무언가를 꾸미는 놈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보고서를 보면 실체를 잡을 수가 없다.

이제 어떻게 한다?

한참을 고민하던 준혁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유민섭에게 말했다.

“던전이 처음 발생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공략 현황을 전부 구할 수 있습니까?”

“구할 수는 있죠. 법이 제정된 후부터의 기록은 남아 있을 테니까.”

준혁이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부연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공략 현황이요.”

유민섭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산화가 안 된 곳은 힘들지만, 다른 곳은 가능하죠.”

“그거 전부 모아 보죠.”

“뭘 어쩌시려고?”

“신중한 놈들입니다. 제 생각에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일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면 아예 초창기 자료부터 훑어야죠. 분명 뭔가 보일 겁니다.”

“으음… 자료가 너무 방대한데요?”

유민섭이 앓는 소리를 했지만, 준혁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차피 본인이 직접 할 것도 아니잖아요.”

혼원 길드에는 다른 길드에는 없는 ‘분석팀’이 있었다. 시스템 이상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 특별히 편성한 부서였다.

“하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악덕 고용주로 만드시네?”

그리고 꽤 오랫동안 혼원 길드 본사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