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7화 (27/240)

-027-

-10장. 화려한 데뷔#3-

“에비! 그거 지지야, 지지!”

유민섭이 청랑에게 달려가며 양손을 세차게 내저었다. 하지만 청랑은 귀조차 쫑긋거리지 않은 채 제 하던 일에만 열중했다.

찌익, 으적!

준혁에게 죽은 던전 보스 크락크토의 살점을 뜯어 먹고 있었다.

다급해진 유민섭이 청랑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준혁에 의해 막혔다.

유민섭이 답답한 표정으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 청랑을 말려야지, 왜 나를 말립니까? 저, 저거 안 보여요?”

몬스터의 고기는 먹지 못한다는 건 이미 수차례 입증된 정설이었다. 오염된 마나를 품고 있기에, 지구상의 생물체는 그것을 먹는 순간 즉사였다.

오크야 인간형이니 그런 엄두조차 내지 않았지만, 동물형 몬스터의 고기를 가지고 이미 많은 실험이 있었다. 다양한 분석은 물론, 동물을 이용한 실험까지 했지만 결국 나온 해답은 섭취 불가였다.

그런데 그것을 청랑이 먹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요.”

“괜찮다니! 저건 먹는 순간… 어?”

유민섭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먹는 순간 즉사인 몬스터의 고기를 청랑은 여전히 야무지게 뜯어 먹고 있었다.

4마리의 크락크토를 돌아가며 각각 한 점씩 뜯어 먹은 것이었다.

유민섭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준혁이 강이찬을 향해 급히 말했다.

“이찬 씨, 우리 청랑이 이미지도 좀 생각해 주세요.”

“네? 아, 하하. 알겠습니다.”

강이찬이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준혁이 두 사람을 한 번씩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강식(强食)이라는 청랑의 패시브 스킬입니다.”

“강식?”

“지켜보세요.”

준혁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랑에게 고정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직후, 청랑의 몸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푸른빛의 범위가 살짝 넓어진다 싶은 순간, 청랑이 갑자기 앞발을 쭉 뻗으며 하늘을 향해 주둥이를 내밀었다.

아우우우-!

길고 긴 하울링이 메아리처럼 퍼져 나가는 순간, 청랑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어?”

“커, 커졌어?”

유민섭과 강이찬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청랑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말대로 새끼 강아지 같던 청랑의 체구가 살짝 커진 것이었다.

유민섭이 놀란 표정으로 준혁을 향해 물었다.

“설마 성장?”

“맞습니다.”

“방금 말한 강식이라는 게 혹시…….”

유민섭의 말을 강이찬이 재빨리 받았다.

“강한 상대의 고기를 먹고 성장한다는 건가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청랑을 불렀다.

“청랑이, 이리 와.”

컹컹!

몸집이 조금 크기는 했지만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냉큼 달려가 준혁의 다리에 앞발을 기대고 서서 헥헥거리는 모습이 여전히 영락없는 강아지다.

조금 전, 몬스터의 고기를 뜯어 먹던 모습이 도통 그려지지 않았다.

준혁이 한쪽 무릎을 꿇고 청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형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랑의 체구가 살짝 줄어들면서 처음의 그 강아지 크기로 돌아왔다.

유민섭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해도 이렇게 작아질 수 있습니까?”

“덩치가 너무 커지면 데리고 다니기 힘들잖아요. 이렇게 작아지면 소모하는 에너지도 줄어들어서, 힘을 비축하는 면에서도 괜찮고요.”

옆에서 듣고 있던 강이찬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청랑은 어느 정도까지 성장하는 겁니까?”

“완전한 성체가 되면 몸길이가 대강 5미터 정돕니다.”

“헐! 그래요? 그 정도면 타고 다녀도 되겠는데요?”

준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면계에 있을 당시에는 청랑의 등에 올라탄 채로 이동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다행이요?”

“커다란 늑대도 멋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이 댕댕이 모습이 제일 귀엽잖아요. 인기 관리 차원에서는 이게 좋지 않겠어요?”

“뭐… 그렇기는 하겠네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유민섭은 ‘통찰’ 스킬을 통해 청랑의 스탯을 살피고 있었다.

[피지휘자 청랑의 상태창]

근력:[+20] 순발력:[+15]

지구력:[+16] 감각:[+21]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어차피 원래의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버프로 추가된 수치를 통해 원래의 수치를 역산해 볼 수는 있었다.

4개의 스탯 모두 버프된 수치가 1씩 늘어 있었다. 버프로 강해지는 수치가 15퍼센트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성장이었다.

‘반올림이 적용되는 걸 생각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성장했을 수도 있고. 허! 이거 대박인데?’

청랑이 이대로 꾸준히 성장하기만 한다면, 어지간한 S급 전사는 찜 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드원 모집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유민섭이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강이찬과 준혁은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김지후 헌터님은 소환사가 맞습니까?”

“음, 글쎄요? 왜 물어보십니까?”

“마검사 아닙니까?”

“마검사?”

“전사 스타일로 싸우면서 마법도 썼잖아요. 거기에 소환수라는 청랑이까지 생각하면… 딱 마검사잖아요?”

“뭐 그렇게 봐도 괜찮겠네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준혁과 유민섭의 노림수였다.

처음에 소환사라고 한 것도 각성자 등록을 빠르게 마치기 위해서였을 뿐, 처음부터 이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목표였다.

‘김지후’라는 헌터가 강한 모습을 보여 줄수록 혼원 길드가 나갈 길이 탄탄해지기 때문이었다.

강이찬을 데리고 들어온 것 역시 그러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때 강이찬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김지후 헌터님 별명을 지어 봤습니다.”

“별명?”

“유명한 헌터들은 전부 별명을 갖고 있잖아요. 유민섭 헌터님이 ‘더 커맨더’, 최유나 헌터는 ‘얼음여왕’, 강태웅 헌터는 ‘강철성벽’이라고 불리죠.”

“그, 그래요?”

묘하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 별명에 준혁이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마치 아주 맛없는 음식을 삼킨 것 같은 표정, 그리고 그 한편에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그런데 오늘 김지후 헌터님 전투하는 걸 보는 순간 딱 머릿속에 떠오른 별명이 있습니다.”

“그런 건 필요가 없습니다.”

준혁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신이 난 강이찬은 제 흥에 취해 곧장 말을 이었다.

“검은색 갑옷에 검은색 검, 그리고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흑기사, 블랙 나이트 막 이런 걸 생각했어요.”

“별론데요.”

“그런데 뭐랄까, 김지후 헌터님의 이미지를 충분히 담지 못하는 느낌이더라고요.”

“안 담아도 됩니다.”

“그러다 팍! 하고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뭘요?”

“백년전쟁 초기에 프랑스군에게 사신과도 같던 잉글랜드 에드워드 왕자의 별명이 뭔지 아세요?”

“모르는데요.”

“흑태자!”

“쿨럭, 쿨럭! 서, 설마…….”

“캬아! 멋지지 않습니까?”

“아뇨. 안 멋진데요?”

준혁이 정색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강이찬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 없었다. 이 별명은 자낳킹이 생각하는 돈 되는 콘텐츠의 화룡점정이었다.

“흑태자 김지후! 으아, 간지가 아주 그냥!”

배면계에서 돌아온 후, 준혁은 처음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건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때 유민섭이 불쑥 끼어들었다.

“흑태자? 블랙 프린스? 오, 멋진데요?”

유민섭의 두 눈이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준혁을 놀릴 거리를 잡아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준혁은 그런 유민섭의 눈빛에 담긴 생각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안 된다!’

마음을 먹은 준혁이 황급히 강이찬을 불렀다.

“이찬 씨!”

“네, 김지후 헌터님.”

“저는 그런 별명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불리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영력까지 실은 탓에 묵직하게 위압감마저 어린 목소리였다. 그만큼 준혁은 절박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에이, 왜 그러세요? 다른 헌터들보다 훨씬 더 멋집니다. 제가 장담하죠. 오늘부터 흑태자 김지후의 시대가 옵니다.”

그 무거운 위압감도 돈 냄새를 맡은 자낳킹의 본능을 누르지 못했다.

그리고 유민섭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자자, 이제 마나석이랑 장비 회수하고 불 지르러 갑시다.”

게이트 돔이 형성되면, 돔 내부의 식생은 이계의 것으로 변화했다. 그 토양과 식물의 성질은 지구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라 반드시 불태워야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게이트 다운보다 훨씬 더 막대한 피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이계의 토양이 사방으로 증식해 퍼져 나가고, 식물들이 씨앗을 퍼트려 이계의 식물이 토양을 따라 퍼져 나간다. 그렇게 이계의 토양에 점령당한 지역은 절대 지구의 생명체가 살 수 없었다.

실제로 던전 시대 초기에는 세계 곳곳에서 그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었다.

100만 명의 인구가 살던 도시 하나를 몽땅 불태운 국가도 있었다.

그렇기에 게이트 파괴 전에 식물부터 토양까지 깡그리 불태워 죽여야 했다.

마나석을 캐고, 쓸 만한 아이템 회수까지 끝낸 후 마지막으로 불을 지르는 작업까지 마친 후 세 사람과 1마리는 게이트 앞에 모여섰다.

“준비됐죠?”

유민섭의 물음에 준혁과 강이찬이 고개를 끄덕였고, 청랑이 천진난만하게 컹컹 짖었다.

파사삭!

모든 몬스터가 죽은 후의 게이트는 유민섭이 가볍게 내려친 충격에 모래처럼 그대로 허물어지며 사라졌다.

치이이이잉-!

동시에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짙은 회색의 돔이 기묘한 소음과 함께 흔들리며 옅어지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세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기겁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었다.

전력 질주를 하듯 세 사람을 향해 달려온 기자들이 빠르게 질문을 쏟아 냈다.

“단 두 사람이 게이트 돔을 진압한 겁니까?”

“혼원 길드의 다음 목적지는 어딥니까?”

“길드원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유민섭이 기자들의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리고 그사이 혼잡함을 뚫고 기자들 뒤로 몸을 뺀 강이찬이 방송을 켰다.

“형님, 누님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캬아, 오늘 제가 진짜 역사에 남을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봤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오늘 사진을 무려 6장이나 찍을 정도였으면 말 다 했죠?”

강이찬이 던전 안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아 온다는 건 그의 시청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채팅창에 난리가 났다.

<뭐? 6장?>

<레알?>

<도대체 어떤 사진이냐?>

<댕댕이, 댕댕이 어때? 잘 싸움?>

<사진 좀 공개해요! 궁금해서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아, 그런 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아니, 잠깐……. 그 전에 던전문가 님, 풍선 1천 개 어떻게 됐습니까?”

<아까 나갔다.>

<아이디까지 삭튀. ㅋㅋㅋ>

<내 그럴 줄 알았지.>

“허, 약속을 못 지키는 분이네요. 뭐, 상관없습니다. 자, 그럼 다시 진짜 중요한 이야기로 돌아가죠.”

<그래, 중요한 거 뭔데?>

<빨리 말해라. 아, 진짜 빨리.>

“김지후 헌터는 단순한 소환사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마검사!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김지후 헌터는 마검삽니다.”

<마검사? 그런 클래스도 있냐?>

<강이찬 또 헛소리한다.>

<저래 놓고 마가 낀 검사, 이럴지도 모름.>

“그래서 제가 특별히 사진 딱 1장만 공개하죠.”

강이찬의 손짓에 매니저가 빠르게 노트북을 조작했고, 화면에 사진이 떠올랐다.

준혁이 뇌호강전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크으! 멋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특별히 김지후 헌터의 별명을 지어 봤습니다.”

<뭐냐?>

<이찬 오빠가 별명 지으면 그거 전부 흥하잖아. 빨리 말해 줘.>

“흑태자. 흑태자 김지후.”

그날 밤, 대한민국 전체가 ‘흑태자 김지후’라는 이름으로 뒤흔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