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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화려한 데뷔#2-
“그런데 이제 좀 괜찮은가 봐요?”
앞으로 김지후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활용할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강이찬에게 준혁이 물었다.
“네?”
“처음 들어올 때나 나 따라올 때 엄청나게 겁먹은 거 같았는데, 지금은 편안해 보이네요.”
“어? 그러네요?”
강이찬이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긴장으로 벌벌 떨렸어야 할 손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강이찬이 그대로 시선을 돌려 준혁을 향해 밝은 미소를 지었다.
“김지후 헌터님 덕분인 거 같습니다.”
“저요?”
“압도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나 봐요. 그렇다고 몬스터하고 싸우는 건 무리겠지만…….”
마지막에 조금 자조적인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강이찬의 표정은 확실히 편해 보였다.
준혁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이대로 가면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으니, 같이 마무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런데 사진은 계속 찍을 건가요?”
“사진이요? 당연히 좋은 장면이 있으면 찍어야죠.”
강이찬이 인벤토리에서 새 카메라를 꺼냈다.
“그럼 선물 하나 드리죠.”
“선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강이찬을 향해 준혁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왕이면 화려한 것도 하나 필요하지 않겠어요?”
“있으면 좋기는 하죠.”
“그럼 셔터 누르는 거 잊지 마세요. 아, 위험하니 너무 떨어져 있지는 마세요.”
“옙!”
대답을 들은 동시에 준혁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저만치 몬스터 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청랑과 유민섭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준혁이 향한 방향은 그와는 조금 다른 쪽이었다. 청랑과 유민섭을 향해 달려드는 엄청난 몬스터의 군세를 향해서였다.
‘제법 똑똑한 놈이 있는 모양이네.’
달려오는 것은 단순한 몬스터 무리가 아닌, 훈련된 군대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1,000여 마리로 이루어진 오크 군대였다.
그 군대가 4개 무리로 나뉘어 질서정연하게 진격하고 있었고, 각 무리의 선두에 단단한 갑옷을 받쳐 입은 덩치 큰 오크가 1마리씩 있었다.
‘중간 보스쯤 되나?’
준혁의 예상은 정확했다.
오크 군단장 ‘자슈카’. 원래 이곳에 있던 영웅의 성지 던전의 중간 보스였다.
보스인 크락크토가 4마리였던 것처럼, 중간 보스인 자슈카 역시 4마리였다.
놈들은 자신들의 보스인 크락크토의 죽음을 감지했고, 주변에 있던 모든 오크를 모아 각자의 군대를 만들어 달려온 것이었다.
“후우!”
땅을 박찬 준혁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오크 군단의 함성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그 발 구름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준혁과 오크 군단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불과 200미터 정도로 좁혀진 그때, 준혁이 영력으로 시커멓게 물든 오른손을 내밀며 외쳤다.
“금륜천전(金輪千轉)!”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손의 영력이 속이 빈 커다란 원을 그렸다. 뒤이어 원 안으로 퍼져 나간 영력이 빛의 속도로 복잡한 문양을 원 내부를 가득 채웠다.
‘화룡연무’를 펼칠 때와 같은, 영력으로 그린 일종의 마법진이었다.
완성과 동시에 황금색으로 물든 마법진 앞의 공간이 벌어지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키이이잉-!
굉음과 함께 튀어나온 것은 직경 10미터, 폭 5미터의 거대한 수레바퀴였다.
거대한 황금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대지를 짓뭉개며 구르는 수레바퀴의 속도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콰르르르-!
수레바퀴가 구르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일대를 뒤덮었다.
그리고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핏물만이 흥건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양학에는 이게 최고지.’
크락크토를 상대하면서 스킬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영력은 차고 넘쳤다.
그리고 준혁의 스킬 중 마법과 유사한 ‘술(術)’ 영역의 스킬은 대부분이 광역기들이었다.
‘금륜천전’이 짓이긴 것은 달려들던 오크 군단의 절반.
크워어어억!
살아남은 절반의 군대와 2마리의 자슈카가 자신의 군대를 향해 비명을 내질렀고, 오크들이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준혁이 여유롭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준혁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카메라를 든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이찬의 모습이었다.
준혁이 그런 강이찬을 향해 피식 웃으며, 오른손 검지를 펼쳐 신호를 보냈다.
‘한 번 더.’
빠르게 그 의미를 이해한 강이찬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들었고, 준혁은 또 한 번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뇌호강전(雷虎降電)!”
순식간에 허공을 수놓은 술식 진이 새파랗게 물들며 공간이 열렸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시퍼런 빛이 호랑이 형상으로 뭉친, 뇌호라는 이름대로 뇌전으로 빚어진 1마리 호랑이였다.
시퍼런 빛의 호랑이가 힘껏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른 후 거대한 포효를 터트렸다.
크허어어엉-!
포효와 동시에 뇌호에게서 터져 나온 새파란 스파크가 오크 군단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시야가 탈백될 정도로 빛이 폭사된 직후 오크들의 비명만이 휘몰아쳤다. 뒤이어 매캐한 고기 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서서히 빛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새카만 숯이 되어 버린 오크 군대였다.
준혁이 슬쩍 뒤를 돌아보니 강이찬이 이쪽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 올리고 있었다. 그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니 제대로 사진을 찍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게이트 돔 안에 있던 몬스터를 모두 잡은 것은 아니었다.
지이이잉-!
준혁은 곧장 금문묵룡비를 펼치며 바닥을 찼다. 빠르게 달리는 준혁의 뒤를 따라 30자루의 금문묵룡비가 또 한 번 죽음의 비행을 시작했고, 게이트 돔 내부에는 몬스터의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게이트 돔 내부의 몬스터를 전멸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2시간 남짓이었다. 그것도 몬스터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바람에 일일이 잡아 죽이느라 시간이 더 걸린 것이었다.
“어이구, 삭신이야.”
돔 중심에 있는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며 유민섭이 앓는 소리를 냈고, 준혁이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받았다.
“헌터 생활 접을 때 된 거 아닙니까?”
“예?”
“겨우 그거 움직이고 삭신이 쑤시면 뭐 말 다 했지.”
“허! 내가 술랑이 놈 쫓아다니느라 얼마나 죽을 똥을 쌌는데요.”
“뭐, 그렇다 치죠.”
“이런 식이면 나 진짜 억울…….”
“그런데 길드원을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청랑이하고 둘만 움직이는 건 무리가 있을 거 같은데?”
제 할 말만 하고 바로 화제를 돌려 버리는 준혁의 모습에 유민섭이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일단 오늘 발표 후에 공식적으로 모집할 겁니다.”
“모집한다고 사람이 모일지 걱정이네요.”
두 사람이 만든 혼원 길드는 게이트 돔 진압 전문 길드를 표방했다. 던전 공략도 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주 활동 영역은 게이트 돔 진압이었다.
그리고 게이트 돔 진압은 던전 공략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게이트 돔에 들어가면 모든 스탯이 절반으로 깎이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몬스터들이 이상…….”
몬스터가 강해졌다는 사실을 말하려던 유민섭이 재빨리 입을 닫았다. 맞은편에서 강이찬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래요?
생각으로 전해 오는 준혁의 물음에, 유민섭 또한 머릿속으로 대답했다.
-몬스터들이 강해졌어요.
-음? 강해져?
-준혁 씨는 던전 공략 경험이 적어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때는 확실합니다.
-그거 혹시 시스템 이상 때문입니까?
-그럴 수도 있는데…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그럽시다.
그렇게 정리한 후 유민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 보여 줄 결과가 있으니까 1명도 안 모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위해서 기자들까지 부르면서 일을 키웠으니까요.”
게이트 돔 진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면 헌터 모집이 조금은 쉬워질 거라는 계산이었다.
유민섭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곧장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A급 사제 클래스 헌터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A급 사제?”
“예. 헌터 쪽에서는 흔치 않은 자원이죠. 원래 돈을 좀 많이 밝혀서 헌터 일은 안 하던 친구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길드에 들어오겠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요?”
“예. 장민호라고, 돈을 좀 밝히기는 하는데 실력은 확실한 사람입니다. 길드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잠깐! 지금 뭐라고 했어요?”
“뭐요?”
“이름이요.”
“장민호요. 혹시 아는 사람입니까?”
준혁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외로 꺾었다.
‘그놈 말하는 거 같은데…….’
준석이 저주에 걸렸을 때 불렀던 그 사제의 얼굴, 나중에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잘못했다고 빌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깜빡했네.’
말 그대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준혁의 반응을 오해한 유민섭이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돈을 밝히기는 했는데… 두어 달 전부터 갑자기 새로운 사명이라도 받았는지 확 바뀌었어요.”
“어떻게요?”
“어마어마하게 기부도 하고, 봉사 활동도 자주 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고 싶은 그런 느낌?”
“흐음…….”
준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한 모양이네?’
완전히 잊고 있었기에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본 적도 없었다.
그래도 스스로를 고치겠다고 말한 부분을 그런 식으로 보여 주려고 노력한 모양이었다.
“실력이 좋다고요?”
“실력은 확실하죠. 최초 각성 등급 A급이었고, 헌터 생활도 잠깐은 했는데… 스킬 몇 개 개방하고 나서 바로 그만뒀거든요. 아, 그런데 이상한 조건을 하나 걸었어요.”
“이상한 조건?”
“자기를 확실하게 지켜 줄 수 있는 최소 S급 전사 클래스 헌터가 있어야 들어오겠다더라고요. 이상한 놈한테 위협이라도 받고 있나 싶더라고요.”
‘이상한 놈?’
그 말을 듣자마자 준혁은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나를 피하고 싶은 모양인데…….’
거기까지 생각한 준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친구 영입할 때 한 번 만날 거죠?”
“그래야죠.”
“그럼 같이 갑시다.”
“네?”
평소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던 준혁이 그렇게 말하니 유민섭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뭐… 호기심? 뭐, 그런 거요.”
“근데 웃는 게 왜 그리 사악해 보입니까?”
“그건 기분 탓.”
“뭐, 그렇다고 넘어가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났을 때, 어느새 합류한 강이찬이 불쑥 말했다.
“지금 장민호 씨 말한 거 맞죠?”
“맞습니다. 이찬 씨도 그 사람 알아요?”
“모르면 안 되죠. 한국에서 제일 비싼 사제인데. 와, 장민호까지 합류하면 진짜 역대급 길드가 탄생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봐야 겨우 3명에 1마린데요?”
“괜찮습니다. 갓지후 헌터만 있으면 다른 헌터들 아무도 필요 없을 테니까.”
준혁을 쳐다보는 강이찬의 두 눈이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민섭이 짐짓 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찬 씨,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나한테 갓민섭, 갓민섭 할 때가 바로 한두 시간 전인데, 이런 식으로 태세 전환을 하시나?”
“세상이 다 그런 거죠. 뭘 새삼스럽게…….”
그때였다.
“어, 어어! 청랑아!”
갑자기 청랑을 부르는 유민섭의 얼굴에 기겁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