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5화 (2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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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화려한 데뷔#1-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유민섭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헉, 헉헉!”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소리가 귓전에서 요란하게 맴돌았다.

게이트 돔의 영향으로 모든 스탯이 절반으로 떨어진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유민섭의 마음이 급한 탓이었다.

그만큼 준혁에 대한 걱정이 컸다.

‘여기 보스 몬스터가…….’

급하게 달리는 중에도 유민섭은 머릿속의 정보를 빠르게 정리했다.

‘영웅의 성지.’

원래 이곳에 있던 던전의 이름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크락크토’라는 이름의 오크 영웅이었고, 호위 몬스터만 해도 오크 대주술사 5마리에 오크 정예병 30마리였다.

그리고 게이트 다운 현상이 일어나면, 남아 있던 리젠 회수 동안 나올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다 튀어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이 게이트 돔에 있던 보스 몬스터 크락크토는 총 4마리였다.

당연히 호위 몬스터도 4배로 오크 대주술사 20마리, 오크 정예병 120마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 정도면 드래곤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놈들 모두가 2배로 강해졌다.

아무리 준혁이라고 해도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민섭은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컹컹!

앞서 달리는 청랑은 상황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짖어 대고 있었다.

-지금 네 주인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냐?

컹컹!

유민섭이 머릿속으로 건네는 말에도 청랑은 여전히 유쾌하게 짖어 댈 뿐이었다.

‘쯧! 복잡한 문장은 의미 전달이 안 되는 모양이군.’

청랑과 생각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아닌 어렴풋한 이미지의 전달이었다.

그 이미지가 알고 있는 언어의 방식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래도 단순한 내용은 확실하게 전달됐다.

-서둘러!

많은 몬스터들이 연이어 앞을 막아섰다.

크앙-!

“널 사이트!”

“프로텍션 돔!”

하지만 청랑의 무시무시한 공격력과 유민섭의 찰진 서포트 마법의 조합은 그 모든 것을 돌파해 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유민섭이 급히 발을 멈췄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우두커니 굳은 듯 서 있는 강이찬의 뒷모습이었다.

강이찬은 어깨를 떠는 것은 물론이고, 두 무릎까지 힘이 풀렸는지 휘청이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유민섭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딱 봐도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분위기였다.

‘제길! 너무 급했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준혁의 강함에 너무 마음이 부풀었던 것 같다. 제대로 팀을 만들고, 인재를 영입하고 왔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강이찬을 구하고, 가능하다면 준혁까지 구해서 이 게이트 돔을 벗어난다.

할 일이 명확해지는 순간, 유민섭은 입술을 깨물며 강이찬의 옆에 다가갔다.

그리고 강이찬의 시선을 좇아 눈길을 옮겼다.

“어…….”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현장은 피바다였다.

잘린 사지와 몸뚱이가 핏물에 잠겨 펄떡댔다. 그러는 중에도 연거푸 비명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

키에엑!

사람의 비명이 아니었다. 괴물의 비명이었다. 핏물에 잠겨 있는 것 역시 사람이 아닌 오크들의 머리와 몸뚱이가 분해된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오크 영웅 크락크토의 시체도 섞여 있었다.

“저, 저 사람…….”

강이찬의 떨리는 목소리에 유민섭이 고개를 돌렸다. 강이찬의 얼굴에는 생각지도 못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미소, 환희에 찬 미소였다. 게이트 돔에 입장할 때 잔뜩 겁을 집어먹어 얼어 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유민섭이 저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픽 터트리고 말았다.

‘나도 멍청하군.’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한 평가였다.

보스 몬스터가 복수라는 점과 2배로 강해졌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가장 중요한 준혁의 강함을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일반적인 S급, 혹은 개념도 잡히지 않은 SS급 같은 기준으로 준혁을 바라본 것부터가 오답을 향한 지름길이었다.

준혁은 어떠한 기준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존재였다.

오랫동안 갖고 있던 상식과 틀을 놓고 보니, 그 틀 내에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고 자부하는 유민섭마저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준혁이 규격을 벗어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겨우 한시름 놓은 유민섭은 어느새 느긋한 마음으로 준혁의 전투를 감상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전투가 아닌 학살이었다.

저 멀리 떨어진 준혁이 있는 곳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콰드드득!

두꺼운 나무뿌리가 땅을 뚫고 솟구쳤다. 살아 있는 뱀이라도 된 듯 꿈틀거리던 나무뿌리가 지면을 따라 구불거리며 뻗어간 곳에 준혁이 있었다.

하지만 내디디는 준혁의 두 발은 거침이 없었다.

으적!

준혁의 발을 휘어 감으려 나아가던 뿌리가 허무하게 으깨지며 사방으로 수액이 튀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무뿌리는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솟아올라 준혁을 향해 뻗었다. 땅이 갈라지며 흙덩이로 뭉친 거인이 솟구쳐 준혁을 덮쳤다.

땅의 풀잎이 날카로운 칼날로 변했고, 갑자기 불어온 붉은 바람에는 독이 스며 있었다.

오크 대주술사의 수는 20마리에서 어느덧 10마리로 줄어 있었지만, 파상공세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도 그랬듯 준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모든 주술이 그곳을 덮쳤을 때, 준혁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전뢰보]

한 줄기 빛살과도 같은 그의 걸음은 순식간에 장소를 벗어나 이미 1마리의 크락크토 앞에 당도해 있었다.

꽈아앙-!

굉음과 함께 하나의 인영이 총알처럼 튕겨 나갔다.

‘역시 제법이긴 하네.’

흠뻑 피를 뒤집어쓴 준혁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떠올랐다.

크락크토들은 꽤 끈질겼다.

4마리 중 2마리가 죽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준혁의 공격을 막아섰고, 한쪽 팔이 터져 나가면서도 준혁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물론 준혁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튕겨 나간 놈 대신 옆에 있던 놈이 준혁을 어깨로 들이받으며 밀어붙였다.

콰르르르르!

준혁의 두 발이 주르륵 뒤로 밀려나며 땅바닥에 긴 흔적을 만들었다.

힘도 제법이었다.

다만, 준혁의 힘이 더 강했다.

콱!

두 발이 멈추는 순간, 준혁의 양팔 근육이 불끈 솟아올랐다.

“인간-!”

길게 부르짖는 크락크토의 목소리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자신과 똑같은 힘을 가진 개체가 넷이었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에게 제대로 된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 채, 동일 개체가 둘이나 죽었다.

대주술사는 절반이 죽었고, 정예병은 전멸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힘이 2배나 늘었는데도 나온 결과였다.

그리고 지금 그 인간의 손이 크락크토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끅, 끄르르륵!”

숨막힌 소음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크락크토의 몸뚱이는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한낱 인간의 손에 쥐어져 허공에 들려 있었다. 크락크토에게 있어 이보다 더 치욕스러운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 치욕조차 느낄 수 없었다.

푸우욱!

심장을 파고드는 화끈한 감각과 함께 의식이 끊어진 탓이었다.

찰칵!

긴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셔터 소리를 울리며 하나의 정지 장면을 이미지로 만들었다.

파스스슷!

그와 동시에 망원렌즈가 서서히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든 강이찬의 손이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바디의 옆 부분을 열고 황급히 메모리 카드를 뽑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사이 카메라는 완전히 바스라져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몇 개쨉니까?”

“5대요.”

유민섭의 물음에 강이찬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장면을 담을 수 있는데 아까울 리가 없죠.”

강이찬에게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현실의 물건을 던전이나 게이트 돔 내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따로 스킬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강이찬 본인도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몰랐다.

우연히 발견한 능력이었다.

신경을 집중했더니 던전 안에서도 카메라가 바스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딱 1장. 1장만 찍으면 그 순간 카메라는 다른 물건들이 그렇듯 바스러진다.

하지만 그 1장의 사진이라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강이찬이 유일했다.

그런 이유로 강이찬은 인벤토리에 특수하게 제작한 카메라를 20개 이상 넣고 다녔다.

그리고 오늘 벌써 5대의 카메라를 날리면서까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방금 담은 장면은, 준혁이 크락크토를 들어 올려 그 심장을 꿰뚫은 장면이었다.

크아아아-!

아스라이 들리는 비명과 함께 마지막 크락크토까지 바닥을 뒹굴었다.

그사이 남아 있던 오크 대주술사들도 모조리 시체로 변해 있었다.

강이찬이 또다시 인벤토리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 담은 장면은, 4마리 크락크토와 그 수하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대지 위에 오연하게 서 있는 준혁의 뒷모습이었다.

사진 제목까지 벌써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웅의 등! 크으, 죽인다!’

누가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제목을 떠올리며 홀로 감탄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빠르게 땅을 박찬 준혁이 순식간에 두 사람 앞에 도착했다.

“어? 벌써 끝냈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준혁의 모습에, 유민섭은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와, 이분 진짜 악덕 길드장이시네?”

“네?”

“자기 할 일까지 나한테 미루시겠다?”

“그런 거 아닌데요? 혼자 뭘 좀 착각해서 온 것뿐입니다. 저놈들 저하고 청랑이 다 처리할 거예요.”

“하세요, 그럼.”

“할 겁니다. 가자, 청랑!”

컹컹!

1명과 1마리가 재빨리 사방에 널려 있는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이찬이 갑자기 준혁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김지후 헌터님!”

“네?”

“저하고 사진 1장 찍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여기서? 그 카메라들, 한 번 찍으면 바로 부서지는 모양이던데요?”

그렇게 싸우는 중에도 주변의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준혁이었다.

“사진은 사람도 중요하지만, 장소도 중요하죠. 게이트 돔 안에서 갓지후와 사진 한 방. 크으! 얼마나 멋져요? 이 사진은 제 SNS 프사로 넣을 겁니다.”

강이찬은 신나게 떠드는 중에도 바쁘게 손을 놀려 카메라 렌즈를 바꾸고 있었다.

“뭐, 원하신다면.”

그렇게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한 채 폐허가 된 게이트 돔 내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1장 찍었다.

그리고 강이찬은 급히 메모리 카드를 갈무리하며 머릿속으로 외쳤다.

‘이제 갓민섭의 시대가 가고 갓지후의 시대가 온다!’

강이찬은 부지불식간에 유민섭에서 김지후로 최애를 갈아치웠다.

본능적으로 돈 되는 콘텐츠의 냄새를 감지하는 자낳킹의 무시무시한 후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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